1-3장 : 신자의 특별한 삶
녹취자: 김순미
1.신자 안의 죄성은 영생을 풍성히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1-1. 회개란 무엇이며,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미끄러진 채 살던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본성이 있습니다. 심겨진 이것은 곧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 본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과 관계없이 인간에게 본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항상 함께하셔서 이 본성이 생겨집니다.
언젠가 열린 교회로고를 설명하면서 그려 드렸는데 사람모양에 회색 테두리는 여전히 옛사람의 성품이 신자에게 남아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결국 신자 안에 있는 죄, 혹은 부패성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새 성품이 하얀 색이라면 아직 남아있는 옛사람의 본성이 있어서 신자에게는 긴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긴장을 하면서 하나님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은혜 주시기를 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1)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사도 바울이 불신자였던 시절의 경험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명백하게 사도바울이 신자가 된 후에 경험한 내적인 경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중생의 은혜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부패한 옛사람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본성과 끊임없이 다투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새 사람이 옛사람을 짊어지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롬 7:22-23) 여기에서 ‘법’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법은 크게 ‘공표된 법’과 ‘실효적 법’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공표된 법은 요새 김영란 법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법이 바뀌었으니 지켜야하는 법입니다. 실효적 법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법이 없지.’ 그러면 그것은 공표된 법이 아니라 참새 안에 있는 낱알을 좋아하는 성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법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다른 법이 있다. 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운다. 내 마음에 있는 거듭난 신자의 본성과 싸워서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본다. 결국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법이 유지 되는 것이고 이 은혜로부터 소외 돼 버리고 나면 죄의 법속으로 우리들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표현 하면 이렇게 됩니다. 불신자의 상태라면 이게 신자의 상태입니다.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살다가 넘어집니다. 넘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이 사랑이 있긴 있었는데 깨진 사랑이 됩니다. 그러다가 회개를 합니다. 회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사랑의 회복을 가져다줍니다. 진정한 회개의 표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그러다 그것이 완성이 됩니다. 언제 완성이 되냐면 신자의 죽음과 함께 완성이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각기 죽는 지점에 가면 어떤 사람은 많이 성화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성화가 많이 안 된 사람이 있습니다. 죽음의 그 순간에 모두의 성화를 주님이 완성 시키십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럼 ‘뭐 하러 힘들게 성화를 하냐? 그냥 살지’ 그냥 살면 매우 고달픈 삶이 되므로 성화의 삶은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영화는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다시 부활 하실 때 우리 모두를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회개는 죄성을 물리치는 일격이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일격’은 한방 때리는 것입니다. ‘회개’는 ‘메타노에오’라는 희랍어 단어입니다. ‘메타’는 ‘뒤에, 후에, 다시’ 이런 뜻이고, ‘노에오’는 ‘생각하다’입니다. ‘생각하는데 뭔가 사물을 통찰하면서 깊이 생각함. 다시 생각한다.’ 원래 고전 그리스어에는 ‘회개하다’라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생각이 전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기독교권에서 ‘메타노에요’라는 단어를 ‘회개하다라’는 의미를 부여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통찰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회개한 사람의 결정적인 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사랑과 함께 아주 결정적인 놀라운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회개한 사람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생각이 파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우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신이 존재할까? 없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 확실히 ‘하나님은 존재 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그 하나님의 존재를 놓고 이제 그 존재의 빛 아래서 모든 것들이 규정이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이세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의미는 뭔가?’ 이런 것들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바뀐 생각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처음에서부터 사상의 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깨닫는 순간 모든 가치관이 바뀝니다. 이 회개는 결국 죄를 슬퍼하는 것과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을 포함합니다. 참된 회개는 언제나 자기 깨어짐을 당연히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 깨어짐에서 배웠지만 결국은 그것은 무엇에 대한 깨어짐입니까? 첫째는 죄에 대한 사랑이 깨지는 것이고 그다음에 자기 의가 깨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사랑은 자기 사랑입니다. 그릇 된 자기 사랑 혹은 여기서 말한 대로 부패한 자기사랑이 깨지는 것이고 그릇 된 자기 사랑이 재편 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질서를 세우다가 하나님을 깨닫고 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있는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가치관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에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당연히 이렇게 회개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때에 자신의 죄악을 보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발견하고 그 죄에 대해서 자신이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무력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하나님이 무엇하나도 그냥 넘어가시는 법이 없는 엄위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피조물과 창조주의 무한한 격차를 느끼는데 모든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결국은 우리 자신의 죄를 버리고 자신의 나악함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1-2. 쇄신이란 무엇이며, 신자가 날마다 쇄신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쇄신한다.’ ‘전적으로 새로워진다.’ 는 뜻입니다. 이것을 라틴어로 ‘레노바티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커다란 지혜 속에 있는 것인데, 불신앙의 상태에서 불으심이 있었지만 이 부르심은 유효하지 않았고,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이 부름심이 유효하게 이 사람 마음속에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회개와 신앙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이 결국은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지게 되면 하나님은 이 사람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어떤 식으로든지 이 사람을 쇄신 시키십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영적인 회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인도하시지만 말씀으로 그 사람이 영향 받지 않을 때 때로는 삶의 질서를 움직여 그 사람의 마음이 가난하게 하나님을 붙들도록 만드셔서 하나님이 신자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가지고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도구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다시 이 회개와 신앙이 다시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회개와 신앙이 즉 회심이 반복되면서 그 사람이 죄로 물들고 어두웠던 이 마음이 완전히 새로워 져서 하나님을 다시 사랑하게 해 주시는 데 놀라운 것은 인간에게는 항상 누군가가 잘못하면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입견이 맞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실하게 회개하면 언제나 그를 다시 살아 갈 수 있도록 쇄신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영혼과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쇄신의 은혜입니다. 그 쇄신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때 미끄러진 사람들이 주님이 항상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① 영혼의 쇄신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쇄신이 가져오는 제일 큰 효과는 감각의 회복입니다. 무슨 감각이냐 하면 이것은 육체적 감각이 있고, 신령적 감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듭날 때 신령한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은혜에서 미끄러지면 둔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막 맛있게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다 가도 몸이 병이 들면 음식도 맛이 없고 어디 가고 싶은 욕망도 없고 모든 욕망들이 퇴화 되듯이 마찬가지로 영혼이 건강을 잃어버리면 이런 신령적 감각들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을 회복 시켜 주는 것은 사죄, 하나님의 forgiveness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감각 그다음에 사랑, 그 다음에 글로리,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 주실 때에 인간은 사죄 감각을 느끼면서 자신이 지은 죄의 크기와 용서의 크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감각이 생기면서 속되고 세속적인 것에서 찾던 만족을 하나님께로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광에 대한 감각이 들어오면서 이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잠시 지나가는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며 참된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쇄신을 회복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렇게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로 쇄신되면 두 가지를 회복하는데 순결을 회복하게 하시고, 사랑의 감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순결과 그다음에 사랑입니다. 이 순결이 정결해 지는 것이 예전에 있는 그릇된 것을 내 보내는 것이라면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시 사랑해서 하나님을 향해 살게 하시는 것이 쇄신이 가져다주는 효과입니다. 하나님이 쇄신을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이 다시 삼위하나님과의 풍성한 교통 속으로 들어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셔서 결국은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며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쇄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될 바는 이렇게 하나님이 쇄신해 주시면 다시 순결해 지고 그다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들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쇄신을 주시는 목적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잘 보관하는 상자와 같은 것 입니다. 집어넣어서 보관을 하는 것 입니다.
② 영혼이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쇄신과 영혼의 아름다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쇄신을 통해서 영혼의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이 원래 주신 그 기능으로 돌아가는 것 입니다. 그게 아름다움입니다. 그럼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똑같은 기능의 차이가 전혀 없는데도 모양이 새롭다는 이유 때문에 바꾸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냉장고도 새로운 디자인이라 바꾸고 혹은 핸드폰도 한 2년 지나면 일부러 잃어버리기를 바라거나 고장 나길 희망하면서 만지작거립니다. 바꿀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있는 그 자리에서 가장 역할을 잘하고 주위에 있는 사물하고 어울릴 때 그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것 입니다. 자동차나 TV 자전제품의 기술은 거의 끝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서 디자인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오면서 잠깐 보니 핸드폰 두께가 7미리 밖에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벽돌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제는 7미리 밖에 안 되니까 좀 더 지나면 접어서 수첩사이에 명함처럼 집어넣을 수 있는 핸드폰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창조 하셨을 때 아름다운 영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원래 영혼에 기대하셨던 바대로 기능을 하면서 그 영혼이 인간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상태가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늙지도 않고, 섞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고, 망가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육체와 다릅니다. 예뻤던 얼굴이 나이 들면 죽음의 기운이 들어와서 석음석음 해 집니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혼의 아름다음을 쇄신과 함께 회복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세상을 닮아 갔지만. 쇄신 할 때 인간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고 이렇게 순항하면서 결국은 하나님은 쇄신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름다움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애기 한다면 아름다움의 두 요소입니다. 개별적인 사물의 완전성과 질서의 완전성입니다. 사물하나하나가 원래의 그것의 가장 가까운 것이 완전성이라면 보편적인 질서에서 완전성은 다른 것들과의 어울림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의 또 다른 정의를 이 책에서는 지순의 사랑이라고 봅니다. 영혼이 아름다웠을 때 그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지순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라 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이 아닌 피조물들을 선의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만하게 차오르는 지순의 사랑으로서 하나님이 사랑을 부어주시면 그 사랑이 충만하게 차오름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의 완전한 모본이기 때문입니다.
1-3. 신자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발견함으로써 얻게 되는 변화는 무엇이며, 그 지식에서 자라가기 위해 싸워야 할 두 가지 어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쇄신을 인간에게 주실 때 그 때에 하나님은 이런 쇄신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은 사랑은 사실은 사랑 때문에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반대 되는 것 때문에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인간에게 용서를 통해서 가장 확실하게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았던 모든 사람들은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굉장히 신비스럽잖습니까? 왜? 어두움을 경험한 사람만이 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악이 무엇인지를 경험한 사람들이 비로써 선을 경험하고, 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만이 악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질서를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 것인지를 알고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경험한 사람들이 질서가 우리에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인간이 죄를 지은 것은 나쁜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이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고 아주 경쟁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비참하지만 그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그 반대되는 당신의 사랑과 정의 그리고 아름다움을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밑그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지어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도 당신이 받으실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이 지식은 결국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더 상세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그 통치의 질서 속에서 자신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 하나님이 쇄신을 통해서 주시는 지식입니다.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두 어둠이 있는데, 하나는 주관적인 어두움입니다. 마음 안에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결국은 어둠 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여기서 판단 착오를 일으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든지, 잠시 있을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는 행동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바로 이런 주관적 어두움 때문입니다. 객관적 어두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ㄴ다.. 이런 어두움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그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주관적인 어둠속에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자기사랑에 대해서 깨뜨려 짐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영생을 누리는 신자는 교회의 지체로서 두 가지 실천적인 삶을 요구받습니다.
2-1.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일을 위해 신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사랑 안에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에는 지식이 필요하고 이 지식과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모두 연결을 이루면서 결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2-2.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라가는 것과 하나님의 지헤를 깨닫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요일 5:20) 결국은 하나님의 지혜를 방해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잘 못 된 사랑이 이 지혜를 가로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마음 안에서 가장 잘 발휘 되는데 이런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속에 기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 적으로 알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 지혜는 더 풍성해 지는 것이니 결국은 아는 것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교회가 신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신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신자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섬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오늘 우리가 배운 것들을 잘 소화해서 사랑하는 양떼들에게 먹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