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사랑의 아픔: 불완전하기에 아름다운
녹취자 : 강정아
1. 지상의 교회가 원리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이유와 실제적인 측면에서 불완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10)
원리적인 측면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연합인 교회 자체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으로 속죄 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속죄의 성질 자체가 됐다 안됐다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정된 것이고 원리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연합을 이룹니다. 요즘에 와서 이런 것들을 흔들려고 하는 신학자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완전한 신적기관으로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하나님이 세우신 당신 자신의 기관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원리적인 측면에서 그 교회는 완전한 하나님의 기관입니다. 그래서 원리적인 측면에서 완전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점에서 흔들리지 않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불완전한데 먼저 선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심판을 종료하실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까 미리 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의 숫자를 가지고 144,000을 가르치는데 사실은 12*12라고 하는 것은 144,000의 144인데 12의 완전수 10을 곱하고 또 12의 완전수 10을 곱해서 144,000이 되는데 이것은 상징적인 충만한 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구원 얻고 교회가 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까지는 그 충만한 수에 이르지 못한 것이고 선교적인 측면에서 불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목양적인 측면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하더라도 모두 믿음의 정도가 다르고 성숙의 정도가 다르며 또 사람들이 미끄러지기도 하는 등 목양적인 측면에서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불완전합니다. 그 불완전함 때문에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그 문제들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불완전한 교회를 완전하게 하십니다.
1) 교회의 온전함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112)
이런 불완전함의 세 가지 원인은 첫째, 세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당장 내일 회사로 출근해서 세상 속에서 삽니다.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고 통하는 윤리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기준이 다릅니다. 그런 속에서 갈등하고 살기 때문에 결국은 그런 불완전 세상 속에 있는 교회도 어느 정도는 불완전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고 성화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상 교회는 역시 불완전합니다. 신자 자신이 구원은 받았지만 온전히 주인이 되려하는 신자의 불완전함 때문에 결국 교회는 불완전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서 너무 큰 관용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교회가 이런 문제들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것들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적인 견해입니다. 저도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성으로 문제가 생겨서 얼굴에 이상이 생겼는데 상처로 인해 몸에 이상이 오면 그것은 매우 나쁜 것이지만 정성껏 고쳐서 몸을 온전하게 하듯이 교회도 그런 불완전함을 고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화란 무엇일까요? 죄와 불결로부터 신자의 전 본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작용입니다. 결국 성화란 신자 안에 있는 죄와 불결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전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제거되면 결국은 거룩하게 하시는 것의 주체는 바로 성령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도적 주체는 성령이시고, 믿음과 순종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것이 교회의 온전함입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총합이 결국은 개개인의 성화의 총합이고 이는 교회를 완전하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2) 교회가 자신을 완전케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113-114)
교회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입니다. 개인의 성화라는 것이 공동체적인 측면하고 나뉠 수 없지만 구분하자면 개인의 성화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가 정결하게 되는 것이고 교회적 지평으로 깔아놓고 보면 그것은 수많은 관계와 동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함께 연결이 되면서 일치된 섬김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하면 잘 할수록 교회는 보다 더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온전하다’라고 할 때 그것은 두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우선 정신과 마음이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그 올바른 생각과 마음을 자신의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몸으로 움직여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교회의 온전함은 신자 개개인의 성화의 정도와 교회가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섬길 수 있을 때 더욱 높아집니다. 인간과 영혼과 육체, 교회에 의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정신이 깃드는 것이 성화라면, 그 예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삶이듯이 교회가 모든 성도들의 성화를 통해 온전한 교회가 되고, 그 성화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수립된 공동체입니다. 이상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 세상에 가득해져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편 마지막의 비전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온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이 땅의 교회에서 선취적으로 구현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중요한 의무 중에 하나는 이 예배의 기쁨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생생한 기쁨이 있어야 압니다. 그런데 은혜가 없어 쓰러지는 사람이 나옵니다. 교회는 바로 이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전도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섬김을 통해 교회는 온전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해본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느낄 수 있습니다. 영혼을 돌보고 목양해본 사람들만이 영혼의 가치를 알 수 있고,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해본 사람들만이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기적처럼 놀라운 일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교인들이 이것을 통해서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섬김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섬김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교회가 온전한 교회로 바뀌어가고 변화되어 갑니다. 영혼들을 목양하는 일에는 기쁨만 있는 게 아니라 눈물과 고통, 아픔, 벗어버리고 싶은 말할 수 없는 속박감 등이 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를 붙들어주는 역할들을 합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 안에 두신 지향성은 교회를 온전하게 합니다.
➀ 목적인으로서 영혼의 지향성은 무엇이며 이것이 교회와 완전함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115-116)
➁ 완성인으로서 영혼의 지향성은 무엇이며, 이것이 교회와 완전함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116-117)
지향성이라는 것은 뭘까요? 가리킬 ‘지’, 향할 ‘향’ 성품 ‘성’, 영어로 propensity 혹은 inclination 으로도 불립니다. 어느 쪽으로 향하는 성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이런 지향성을 주십니다. 그 지향성은 본래적인 지향성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사랑의 나라이고 그곳은 하나님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플라톤은 재미있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니고 철학자들의 견해인데 기독교들과 비교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승 저편에 영혼들이 있고 영혼이 육체를 만나기 위해서 레테(Lethe)의 강을 건넙니다. 영혼들이 헤엄을 쳐서 건너는 레테의 강은 망각의 강입니다. 그 강을 건너서 육체와 결합을 해서 사람이 된다는 그런 전설적인 철학 이론이 있습니다. 영혼들이 헤엄을 치는데 이 흐르는 물이 망각의 물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물을 많이 먹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입에 물을 한 방울도 넣지 않고 헤엄을 칩니다. 물을 많이 먹은 사람은 고향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거룩함 등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극단적으로 그런 기억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조폭 같은 사람들입니다. 막 사는 것입니다. 영혼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미친 듯이 사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엊그제 tv에서 역대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국에 나오는 한 스타가 동시에 20명과 연애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나중에 컴퓨터를 수리하러 갔다가 탄로가 났고 온통 난리가 나서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런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마치 나방처럼 감각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을 덜 마신 사람은 그 때 기억이 생생하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돈을 줘도 만족이 안 되고 잘 살아도 만족이 안 되고 모든 게 자기 뜻대로 되도 만족이 안 됩니다. 끊임없는 공허감을 느낍니다. 제가 아는 돈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 있는데 자기는 35세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싸게 나온 그랜저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키를 누르고 시동을 걸면서 ‘나보다 행복한 30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랬지만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누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공허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사업이 망한 것도 아닌데 부부관계도 서로 사랑하고 모든 게 좋은데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레테의 물을 덜 마셔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그런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주셨고 그것을 어떤 사람들은 거의 잃어버렸고 어떤 사람은 안 잃어버렸거나 덜 잃어버렸는데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미친 듯이 감각적인 것에 몰입하고 감각적인 것에 몰입하면서도 하나님을 못 잊는 그래서 불가해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신을 찾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평생 사람들이 자기를 못 찾고 남으로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한 번도 자신의 인생에 주체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이 삽니다. 얼마나 공허합니까?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완전함과 온전함의 차이는 영혼의 완전함은 정지된 상태이고 온전함은, completeness, wholeness 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행적 개념으로서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상태이고 개개인의 성화를 통해서 완전함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케 된 사람은 온전함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목적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인론입니다. 형상인, 질료인, 유효인, 목적인으로 나뉘는데 ‘인’이라는 것은 원인입니다. ‘형상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물질이 있기 전에 그렇게 되려고 하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빵가게에서 제빵사가 수많은 빵을 만드는데 토스트 빵을 만들 때 머릿속에 하나의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그런 걸 만들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밀가루 반죽이 팥빵이나 곰보빵이 안 되고 토스트용 식빵인 된 것입니다. ‘질료인’은 빵 반죽을 얘기하고 ‘유효인’은 실제로 그 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고 ‘목적인’은 무엇인가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향해서 가려고 하는 성질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인간에게 당신을 아는 지식을 주셨는데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향하여 살고자 하는 ‘영혼의 지향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셨지만 죄 때문에 깨져서 기억이 희미해졌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지니까 세계는 그대로 있는데 이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는 능력도 같이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유교, 불교 등에서 올바르게 행하려고 하는 요소들이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교에서는 다 때려치우고 막 사는 사람보다는 유교사상대로 살면 세상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대의명분을 위해서 살고 그런 것을 비판한 묵자의 예를 보면 그런 사상은 그런 사상대로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창조 목적에 대한 인간의 영혼에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 말처럼 모든 도덕적 논제는 종교적일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자식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것은 종교적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해야 되는 이유가 뭡니까? 효도받기위해서? 그것은 정말 허접한 일을 하는 겁니다. 누가 그렇게 효도를 할까요? 요즘 세상은 시집 장가가면 다 잊어버리고 해외로 이민가면 해외동포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제를 끌어안고 살아야합니까? 종교적이란 말입니다. 쪼가리, 쪼가리 흔적들이 창조목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가 이만큼이라도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은 당장 때려 내쫓으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종교적입니다. 왜 부패하면 안 될까요? 우리에게 해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이익을 줍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결국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다음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 사물들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선의로 대해야합니다.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영혼의 지향성이 올바로 발휘되면서 인간과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도 신학적으로 올바로 정리되면 그렇게 훼손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매우 중요한 책임입니다. 자녀들에게도 환경에 대한 교육을 잘 시켜야합니다. 인간이 이 환경 때문에 엄청난 질병을 얻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약을 발견합니다. 죽음은 연장하는데 삶의 질은 계속 떨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을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전일성은 전부가 하나인 성질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영원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영혼은 그런 상태를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움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성공하고 이래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쾌락, 탐욕 등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더더욱 곤고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진리와 은혜를 주시면 사람들이 그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주님을 사랑하고 성화되어 감으로써 영혼은 전일성을 갖게 되고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은 이 영혼이 영원 아닌 것들로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가 될 때 인간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3 . 하나님이 지상의 교회에 불완전함을 남겨놓으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신자들은 교회의 불완전함을 봄으로써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118-119)
2) 신자가 교회의 완성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19-120)
3) 교회의 불완전함을 보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20-121)
불완전한 사람들이 있고 완전한 사람이 있으면서 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을 보고 경험합니다. 불완전한 영혼은 우리에게 고통으로 경험이 됩니다. 그때에 이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런 불완전함이 신자를 온전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보편교회의 회원이 아닌 교인들을 보면서 예수 믿는 다고 교회 들어와 있지만 사실은 진정으로 거듭나서 접붙여지지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속해있고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랑하기 어려운 신자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 안에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회심했지만 미끄러진 신자들, 교회 안에 그런 모습이 똑같이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간이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런 아간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들을 정말 아골 골짜기에서 처단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다시 정결하게 하십니다. 마지막에 자신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깨닫게 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4. 이중적인 면에서의 미완성으로 인해 지상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는 아픔이 동반됩니다. 이중적인 면에서의 미완성이란무엇이며 이때 신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입니까?(121-122)
개인과 교회의 온전함에 대한 갈망은 그렇게 자기가 온전해지는 것이 행복하니까 교회도 그렇게 온전해질 때 행복하고 그 때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개인의 온전함에 대한 경험은 교회의 온전함에 대한 갈망으로, 하나님께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불완전함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이유는 시험이 일어나고, 환란이 일어나고, 싸우고, 대들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교회를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중적인 면에서 미완성으로 지상의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는 아픔이 동반되는데 이중적인 미완성이란 우리가 사랑하는 주체가 물론 주님이 주인이시지만 우리가 결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게 불완전해서 사랑을 줘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은 이중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을 권면하고 목양하고 돌보고 전도함으로써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필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