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삶 10 (2006/09/20 수요예배설교)
하나님이 기쁨이 될 때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잠16:15)
I. 본문해설
잠언은 짤막짧막한 경구들을 모아 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앞뒤의 문맥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 이 성경 구절은 우리에게 왕이 살던 시대의 배경에 대해서 지식을 가지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그런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큰 잘못을 하고 왕 앞에 끌려가서 이제는 죽음이구나하고 눈을 감고 인생을 깊이 체념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왠지 왕이 그날 기분이 좋아서 죄인에게 “죄인은 고개를 들라” 하는데 목소리가 다릅니다. 그 얘기는 뭐냐 하면, “한 번 봐줄께”라는 뜻이거든요. 고개를 들어보니 왕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거예요. 그럼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몇 달을 감옥에서 기다렸다가 재판을 받는 날이 오는데, 제일 재수 없는 죄수가 누구냐 하면 아침에 부부 싸움하고 온 판사한테 재판을 받는 사람, 아침에 차를 몰고 오다 다른 운전수하고 시비가 붙어서 옥신각신하다가 온 판사... 이미 짜증이 나 있겠죠! 물론 법과 양심을 따라 재판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이 열을 받았는데 그때 사람들을 곱게 보면 얼마나 곱게 보겠습니까?! 무기징역 할 만한 사람은 사형, 십년 할 사람은 15년, 5년 할 사람은 7년 이렇게 판단을 내리지 않겠습니까?! 반면에 너무 행복한 일이 생겼어요.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한 발표가 난 날이라든지, 딸이 좋은 집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든지...어쨌든지 무엇인가 좋은 일이 일어난 날에 재판을 받는 죄수들은 아무래도 혜택을 받지 않겠습니까!
II. 왕의 희색
하물며 하나님이신데, 판사는 모든 권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은 모든 힘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활짝 웃으시면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행복입니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에스더입니다. 그 시대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죽임을 당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왕의 마음이 그때 기쁨이 가득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이 큰 구원을 얻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A. 생명의 보증
그러면 이 세상에 있던 신하들의 왕은 자기네 나라의 임금이지만 우리의 임금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잖아요! 신앙생활은 바로 그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삶입니다. 그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왕의 희색입니다. 왕의 희색이 가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것이 바로 생명의 보증입니다. 왕에게 큰 기쁨이 될 때, “그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죄를 짓고 형벌을 받아야 할, 스스로 불행해져서 고통받아야할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원래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몇 주간의 설교의 골격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본성적으로 원 수되었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과 속속들이 반감과 대적하는 감정으로 가득 찬 원수 맺은 사이였는데 그때에 우리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아무 생명이 없고, 영혼은 어두움에 굳게 붙잡혀 있고, 우리의 지성은 눈멀었고, 우리의 감정은 충동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의지는 헛된 것에 굴복하는 아무 희망이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이심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멀리 떠난 채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는 일은 어두움의 행실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두운 영혼, 죽은 마음으로부터 수많은 악한 행실과 죄악들이 자연스럽게 솟아나서 우리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욱 하나님 앞에 진노를 받아야 하는 대상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전에 살았던 생명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여전히 죄인인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았고, 우리보다 먼저 교회에 다닌 사람도 많았고, 우리보다 더 선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희망 없이 어두움 속에 살고 있었던 비천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셨습니다.
누구에게도 믿어지지 않는 복음인데, 어느 날 그 어리석은 복음이 내 귀에 들릴 때, ‘아, 그렇구나! 나는 정말 더러운 죄인이구나! 나는 정말 무익하기 짝이 없는 더러운 인간이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회개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을까? 그 큰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하게 살지 못하는 미력한 인생인데 왜 나같이 쓸데없는 인간을 구원하셨을까? 하나님이 왜 나 같은 사람을 기뻐하셨을까?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지금은 모두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다만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나의 의로운 행위나 나의 지식이나 나의 이 세상에서의 지위를 보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피 공로를 보고 우리를 구원해야겠다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셨지만 주님이 죽으신 희생의 공로를 우리에게 전가시킴으로서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를 왜 기뻐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기뻐하시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의 희생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 희생의 공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왕이신 하나님의 기쁨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생명의 역사를 불러일으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우리들이 금년에 가장 많이 기도했던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가 가족들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회심이었습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놀라운 은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남편의 회심, 사랑하는 딸의 회심, 이제껏 강퍅하던 우리 아들의 회심... 이런 간증들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아이들이 여름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회심하더니 요새는 은혜가 떨어져서 다시 까분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엄마, 아빠가 그런 아이들을 보며 “회심했는데 왜 저래?”하는데, 자기들도 그랬던 것을 잊어버려요. 신년 사경회 때 은혜 받고 가을 사경회 가기 전에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자기면서...! 그래서 제가 엊그제 교역자들을 불러놓고 겨울에 또 한 번 집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회심 집회가 아니라 회심 보존 집회. 그런데 보십시오. 회심 안 한 아이들보다 은혜 떨어진 아이들이 아주 쉽게 은혜를 받습니다. 자기 엄마, 아빠가 그러면서 신앙이 깊어져갔던 것처럼 그렇게 깨어지고, 회개하고, 다시 성화의 길을 가고 하면서 아이들이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돌보지 않고 야생초처럼 내버려두면 죄의 지배 속으로 들어가지만, 부모가 수시로 위해서 기도하고, 교회에서 말씀으로 다그치면 아이들 속에 놀라운 은혜가 일어납니다. 이번에 12월 방학하자마자 영아부부터 전 주일학교가 대심방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 한 사람 타일러서 변화시키면 어른하고 똑같이 은혜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2003년도에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설교를 다 듣고 은혜를 받은 다음에 엄마, 아빠가 주는 용돈을 모아서 그 테잎을 샀습니다. 제가 걱정이 되서 “얘야, 굉장히 어려운 설교인데 이해가 되니?” 하고 물어봤습니다. “아빠, 이제껏까지 들은 설교 중에서 가장 이해가 잘 돼요.” 하고 대답을 해요. 그래서 속으로 ‘네가 은혜에서 미끄러지니 그게 그렇게 이해가 잘 되지’ 그랬어요. 그것이 우리 작년 한 해 동안의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가장 기뻐하셔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구원받지 못한 나의 남편과 우리의 부모님, 내 아내, 우리의 자녀들을 위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려야 됩니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우리가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 가족을 위해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심령이 주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쉬지 않고 계속할 것입니다. 이번 겨울에도 회심하지 못한 아이들은 회심에 이르도록, 회심한 아이들은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도록 열렬히 기도해서 그 아이들이 정말 변화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번 청년 집회 할 때에도 생명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렸을 때 마음이 부드러웠을 때에 기도하지 못했던 부모들이 그들을 위해 마음 아파하며 기도했습니다.
B. 은택을 입음
이 생명의 역사는 구원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하면 하나님의 은택을 입게 됩니다. 이 은택은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방은 강수량이 매우 적은 지방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그 물을 받아서 먹는 나라입니다. 정기적인 비가 두 번 오는데, 이른 비가 오면 그 비의 덕을 입어 씨를 뿌리고, 막 결실하려는 마지막 때에 늦은 비가 오면 그 비를 머금고 곡식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면 추수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제때에 내리시는 것으로 여러 번 묘사됩니다. 이것이 농경사회에 있어서 풍년이 드는 비결입니다. 사람들이 바알 종교를 섬겼던 이유도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바알을 잘 섬기면 비를 제 때에 내려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떨어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바알의 힘도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를 내려주는 구름이 하늘에 가득한 거예요. 맑은 하늘에 늦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 뿌려놓은 씨앗들과 무럭무럭 자라난 곡식들이 마지막 결실을 못할까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시커멓게 밀려오는 구름은 그야말로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의 삶은 이런 은택으로 입혀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면! 여러분, 살라고 태어난 인생인데 죽겠습니까? 살죠. 그런데 그냥 사는 것과 정말 행복하게 사는 것은 틀리잖아요! 그냥 살면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면서 삽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많은 근심을 끼쳐 드리고, 주님의 마음에 도저히 기쁨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끊임없는 근심을 안겨드려요. 심지어는 주님의 마음에 큰 고통이 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도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안 되는 사람은 돈도 못 벌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하나님이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이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돈만 주어질 뿐이지 생명이 없습니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메일을 열어보니 열두 명이 메일을 보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답장을 썼는데, 그런 편지를 받을 때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편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이제껏 자신의 생활은 어두움 속에 칙칙하고, 왜 사는지도 모른 채 곤고한 인생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인생의 어두운 길에서 자신을 살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이 자신의 마음에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찬양이 꽉 차 있는 거예요.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의 마지막 부탁은 항상 똑같습니다. “목사님, 오래 사세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위해서 하는 소리지요! 오래오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달라는 뜻이겠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복하게 했을까요? 돈? 아닙니다. 명예가? 아니요. 젊음이? 아니죠! 뭐죠? 거기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은 곧 우리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냥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역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속에 그런 일이 더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기뻐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뻐하시게 되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거들던 사람들이 그 일을 하면서 주님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누가 시켜서 했는데, 직분을 주어서 할 수 없이 부담감 때문에 맡았는데 하나님이 그 교회를 기뻐하시고, 그 사람을 기뻐하시면 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그를 돕는 가운데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돌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생명으로 가득 차서 그 일을 시킨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잘하고 싶어요? 거기서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엇을 해도 거기에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생명의 은택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장 생활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이곳에서 주님의 일을 이루시는구나!’ 가정에서 은혜의 간증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함께 하시는구나! 우리에게 생명의 은택을 입히시는구나! 우리는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복은 너무나 놀랍구나!’ 매일매일 이웃을 만나서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 아름다운 간증을 이야기해도 모자라리만치 많은 간증.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이러한 간증의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뭐죠? 하나님이 은택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III.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개울은 파져있지만 물이 흐르지 않는 개울과 같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아무 물도 흐르지 않고 그 메마른 곳에서 밑을 내려보니 가까이 가기도 싫을 정도의 악취가 나는 더러운 오수가 절절절 흐릅니다. 시커먼 색깔의 오수가 흐르고, 그 가장자리에서는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향기도 없고 모양도 없는 더러운 가시 덩굴이 가득 자라서 인간의 접근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겠습니까? 물질이 많으면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겠죠! 물질이 없으면 세상에 대한 염려와 근심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시간이 없겠죠! 마음에 여유가 없겠죠! 고난과 어려움이 오면 그것 때문에 사랑해야 할 사람들끼리 서로 물고 뜯으면서 원수 맺으면서 고통스런 시절들을 보내겠죠! 그리고 모든 것이 형통해서 여유가 있으면 타락하겠죠!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환경의 변화는 우리 마음이 가지고 있는 주된 본성에 의해서 활용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참된 행복은 우리 주변의 여건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본성 자체가 변화되어서 영혼이 올바르고 아름다운 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런 기쁨을 드리는 사람이 될 때에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의 인생은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커다란 개울과 같습니다. 막힌 것이 없이 형통한 인생의 길을 지날 때에는 도도히 흘러서 그 개울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를 줍니다. 시련과 어려움이 와서 많은 방해물들을 만나게 되면 그 돌멩이들을 지나면서 개울이 노래를 하는 거예요.
오늘 수요예배 시간에 조경의 권위자이신 한희동 집사님이 여기 나와 있는데 이런 설교를 해서 쑥스럽지만, 미국에 집회를 갔을 때 그곳 목사님이 제게 산책을 좋아하냐고 물으시면서 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언덕 위로 조그만 전철을 타고 올라갔더니 숲 속에 예쁘게 지은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쁘게 지은 도서관은 처음 봤습니다. 거기를 산책하면서 인생과 신학, 성경,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건축물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어떻게 돌멩이로 이렇게 예쁘게 지었을까?’ 그러면서 걸어가며 돌멩이를 두드리며 ‘이것은 무슨 돌멩이일까? 이것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돌멩이로 죽 지어진 건물 옆에 잔디밭과 나무를 심은 정원을 넓게 만들고 거기에다 인공 개울을 만들었어요. 개울이 휘돌아서 흐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느 한 곳을 지날 때에 돌멩이를 걸리게 놓고, 그러다 한참 똑바로 흘러가다 저기다 몇 개를 놓아두었어요. 그래서 목사님께 물어봤죠. “목사님, 저 개울을 보십시오. 건축하는 사람이 이렇게 휘돌아서 지금 s자로 개울을 만들었죠. 그런데 왜 커다란 돌멩이 몇 개씩을 군데군데 놨을까요?” “모르겠는데요.” “소리입니다.” 물이 흘러가면서 돌멩이가 있으니까 와글와글 하면서 내려오다 또 조용히 내려오다 저 밑에 폭포쯤에 가서는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거예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의 인생은 항상 형통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흐르는 물이 없는 마른 개울과 같이 하나님이 안 기뻐하는 사람은 그러한 인생의 때에 원한과 상처, 고통과 아픔으로 꽉 찬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그렇게 큰 고난의 때에 아름다운 소리가 납니다. 마치 바이올린 연주가가 천천히 연주하다가 절정에 가서 강하게 연주하며 아름다운 소리가 막 쏟아져 나오듯이 인생의 고난과 고통의 시기를 지날 때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나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아름다운 수많은 찬송가들이 가장 고통스런 시기에 씌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백합화와 같습니다.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향기를 발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가 인생의 시련을 만날 때는 노래합니다. 평탄할 때는 도도히 흘러서 보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주고, 시련을 만날 때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우리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러면서 막 흘러갑니다. 그렇게 개울이 그 물을 가득 끌어안고 흘러갑니다. 개울은 그것만 할 뿐인데, 그 물을 먹으면 물속에서도 생명이 생겨나고, 물 밖의 언덕에 시뻘건 땅에서도 풀들이 돋기 시작하고, 꽃들이 피기 시작하고,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고, 새들이 깃들기 시작하고, 벌레가 깃들고, 짐승들이 깃들고 이윽고 사람들이 이주를 와서 기름진 개울 옆에 밭을 일구면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합니다. 다만 물은 흘러가기만 했을 뿐인데 이런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합니다.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자기가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님을 믿으면서 살 뿐이었는데...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게 주 밖에 없네
그 사랑 강 같이 흐르고 그 손길 치료하네
아무것도 없고, 그냥 날마다 주님이 나같이 더러운 인간을 위해 생명을 버리고 십자가에서 자기를 다 버리셨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 그러면서 매일매일 주님을 더 사랑하려고 애썼을 뿐인데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자체가 흘러가는 강물이 된 것입니다. 강물이 흘러가면서 철새들 보고 날아오라고 손짓 한 적 없고, 산에 있는 나무들 보고 내려와서 같이 살자고 부른 적이 없어요. 그냥 흘러가기만 했는데 그렇게 수많은 생명이 깃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택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관건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소원, 그것은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머저리 같은 사람들은 “목사님, 담배 피는 것이 죄인가요?” 하고 묻습니다. “목사님, 취하지 않게끔만 술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니겠죠?” 왜 그렇게 주님이 주신 자유를 가지고 죄의 벼랑 끝에서 재주를 부리십니까? 하나님이 슬퍼하시지만 않으면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인간과, 반대편으로 가서 ‘나는 아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중에 못해 드린 것이 너무 많아’하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누구의 영혼이 더 안전하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 안한 게 뭐가 있나?’하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주님을 위해 해드리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하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영혼의 건강함의 차이가 얼마나 크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겨우 죄 안 짓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여기 있으나 떠나 있으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 이것이 우리 마음에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인생의 자리에 처해 있든지 간에 그 상황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면 염려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교회를 목회하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요. 주님이 그 종을 아주 기뻐하세요. “너는 내 마음의 기쁨이구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로구나.”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어느 날 모든 사역이 끝나서 은퇴하고, 이제는 중풍에 걸려서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기동하며 시골에서 아무 할 일 없이 성경이나 읽으면서 지내는, 아무것도 자신에게 사역이 주어지지 않는 시골 할아버지가 되었어요. 그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뻤던 것입니다. 다윗을 만날 때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었죠!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참 기쁘구나!”
반대로 가난할 때에 주님의 마음에 깊은 고통을 드리는 신자였어요. 그런데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고급 승용차를 타고 어마어마하게 큰 집에서 일꾼들을 거느리면서 호화스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환경이 바뀌었으니까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IV. 결론과 적용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 우리에게 있어서 그 이상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왕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의 마음에 슬픔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가난한 농부로 살면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인생이 더 많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항상 무엇이 잘 안 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이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주님의 마음에 내가 기쁨이 되고 있을까?’ 곳곳에서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된다는 표징을 보여주실 때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삶 속에는 꿈꾸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간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만 사랑하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매일 매일 걸어갑니다. 물론 그 길은 고난의 가시밭길을 지날 때도 있고, 마실 물이 없어서 마라와 같이 쓴 물을 머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기 위해 살던 사람,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굳게 붙들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재물 대신 주님을 간절히 찾던 사람, 주님이 내 마음에 기쁨이 되고, 내가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기 원했던 사람들만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기뻐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을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기뻐하고 계시다면 더욱 더 주님의 십자가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때에만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지, 분초라도 주님이 우리를 놓으시면 우리는 가장 더러운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의의 근거가 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우리는 다만 예수 죽인 것을 우리의 몸에 짊어지고 모든 생명이 예수 통해 나타나는 것을 믿으면서 매일매일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으며...... 믿음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