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와 교회의 영광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 19:33-35)
녹취자: 김재혁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신 직후에 일어난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하셨나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착한 일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굶주린 사람을 만나면 먹여주시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쳐 주셔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병이 나서 어디에서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환자들을 주님이 고쳐주셔서 기적적으로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잘못하셨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이렇게 이웃들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됐습니다. 물론 이 일은 당시 예수님을 시기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모함한 일이었습니다. 가짜 증인들을 세우고 거짓말을 하게 해서 예수님을 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재판하는 빌라도는 왜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했을까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빌라도도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유월절이기 때문에 많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이 그 유대인들을 꼬드겼습니다. “예수님을 사형시켜달라고 그래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형시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만약에 예수님을 무죄로 석방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예수님이 억울하게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예수님 아버지입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 두었을까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렇게 사랑하시는데 왜 십자가에 죽게 놔두셨을까요?
여기에는 큰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죽음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에 죽게끔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마음먹으신 모든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고 자기가 예수님을 믿어야지만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버려두면 하나님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나쁜 일은 누가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주 쉽게 배웁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착하고 좋은 삶을 살려고 하면 보통 노력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 말씀 매일 읽고 기도해야지라고 마음먹지만 몇 주가 지나고 나면 금방 자기도 게을러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죄를 가지고 태어날까요? 하나님이 맨 처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우리 모든 이 인류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그들과 약속을 맺으시고 하나님이 온 세상을 그들을 위해 창조하셔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범죄했습니다. 그 후로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죄를 물려받아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혀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짊어지게 하시고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시고 이후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한없이 부어주시기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 중 너무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래서 예수님이 오늘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인류가 만들어 낸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총으로 탕 쏴서 죽이면 죽는데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목을 매달아 사람을 죽이는 교수형도 삼십분 안에 사람이 죽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세로 막대기를 땅에다가 박습니다. 큰 막대기를. 그리고 두 번째로는 가로 막대기에다가 사람을 못을 박습니다. 이것이 안 붙어 있겠죠? 그러니까 밧줄로 감아서 도르래를 이용해서 서 있는 세로 막대기 위에다가 끼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을 세로 막대기에 큰 못으로, 손가락보다 긴 굵은 못으로 박아서 이 못 세 개에 의해서 손과 발이 지탱되며 그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못이 손을 뚫고 들어가고 발을 뚫고 들어갔는데 체중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피가 흐릅니다. 그래서 피가 철철 쏟아집니다. 그러면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려서 금방 죽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님은 여섯 시간 매달려 계셨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삼일씩이나 죽지 않고 매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기절했다가 깨어나고 기절했다가 깨어나면서 그렇게 죽어갑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최고의 고통을 느끼게끔 만들어진 것이 십자가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 십자가 형벌을 당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많고 컸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는 아무나 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흉악 범죄자들 무시무시한 흉악 범죄자들, 절대로 곱게 죽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만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 제도가 너무너무 무서운 형벌이었기 때문에 십자가라는 말을 사람들이 꺼내는 것조차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렸는데 양쪽에는 강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 혼자 십자가에 매달면 사람들이 저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었다라고 그렇게 사실을 알릴까봐, 양쪽에 흉악한 강도 두 사람을 매달고 예수님을 함께 못 박음으로 예수는 강도들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보라는 듯이 예수님을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실 그때에는 십자가를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형당하는 죄수가 꼭 해야 하는 두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형을 언도를 받은 후에 하나는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자기 스스로 지고 가는 것이었고 약 130kg에서 140kg 정도 되는 무게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죽도록 채찍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올라가다가 예수님이 자꾸 쓰러지시니까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지워서 예수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브라이도리온이라는 왕궁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옷을 모두 벗기고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어떤 사람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의 채찍이 지금 보는 것 같은 그런 말채찍이 아니라 그 채찍에 이렇게 낚시 바늘 같은 그런 뼈로 만든 갈고리들이 매달려 있는 채찍이었습니다. 그래서 채찍을 후려치면 살점을 물고 후두둑 뜯어지는 그런 무시무시한 채찍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채찍에 맞았는지 모르지만 그런 채찍에 맞으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채찍으로도 사람들이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예수님이 왕이라고 스스로 칭한 것을 비꼬면서 예수님 머리에 아주 굵은 팔레스타인의 가시로 만든 관을 콱 눌러서 씌웠습니다. 당연히 그 10cm는 넘는 가시의 길이를 가진 관이 예수님의 이마를 찌르면서 피가 낭자하게 예수님의 얼굴에 흘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갈대로 꺾어서 조롱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라고 조롱하면서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가장 아끼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부터 시작해서 마태를 부르신 것까지 해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3년 동안이나 그들과 함께 먹고 주무시고 또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에게 커다란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중에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당시에 노예의 몸값이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는 데까지 자기들이 따라가겠다고 해놓고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채찍에 맞으면서 골고루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무서워서 다 도망갔습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했던 야고보도, 그리고 예수님의 품 안에 기대어서 떡을 먹고 예수님이 그렇게 예뻐하시던 요한까지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에 죽으시는 광경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을 때에 로마 군인은 반드시 죽었는지를 확인을 했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끌어내렸는데 이 사람이 아직 살아 있으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람들은 다리를 꺾어버렸습니다. 왜 다리를 꺾었을까요? 강도들도 그 다리를 다 꺾어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이렇게 매달려서 두 발이 못 박혀 있잖습니까? 그리고서 그 못 박혀 있는데 다리에 지탱하고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를 확 꺾어버리면 지탱을 못합니다. 그러면 몸이 이렇게 주저앉으면서 이 뼈가 이 가슴을 눌러가지고 기도가 막혀서 숨을 못 쉰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숨이 끊어지게 하기 위해서 다리를 꺾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와서 보니까 예수님이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안 꺾었습니다. 그 대신 로마 군인들이 창을 가지고 예수님을 확인 사살하기 위해서 아마도 오른쪽 옆구리에다가 창을 쑤셨고 그 창이 창자와 폐를 뚫고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쏟아진 그 피는 심장을 터뜨려서 쏟아져 나오는 다량의 피였습니다. 그것을 본 것처럼 이 사람이 생생하게 이 성경에다가 묘사를 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이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거를 봤을까?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는데 도대체 누가 예수님이 창의 허리를 상하여서 물과 피를 모두 쏟으시는 광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그렇게 정확하게 묘사를 했을까요? 그런 궁금증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이 이 복음서를 썼고 이 예수님이 창에 허리 상하여 피와 물을 흘린 광경은 요한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래서 찔러서 그 물과 피를 쏟아지는 광경을 사도 요한이 자기 혼자 사도 제자들 중에 자기 혼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광경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마태복음 26장에 보면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끌려가실 때에 제자들이 다 도망갔다고 그랬습니다. 요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한도 예수님이 끌려가실 때 도망갔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지금 여기에 와 있을까요? 돌아온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가시는데 무서워서 꽁꽁 숨어 있었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는데 어디에서는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의 깊은 가책이 밀려왔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애쓰셨는가, 허무하게 살던 나를 부르셔서 당신의 품에 안으시고 함께 떡을 떼실 정도로 그렇게 어린 자기를 사랑해 주셨는데 나는 이럴 수 없다라는 마음이 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예수님께로 가야 되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 멀찌 감치서 따라갔는데도 사람들이 딱 알아보고 “너 예수와 한 패지?” 그렇게 지적했을 때 베드로는 마음에 찔려서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세 번이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절대 모른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저기 보고 계시는데. 그런데 요한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잠시 로마 군인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이것은 옳지 않다. 예수님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 다시 달려왔던 것입니다.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이제 골고다 언덕에서 다 이제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까 이제 사람들이 더 이상 볼 게 없다 그리고 내려왔습니다. 왜 거기까지 따라왔는지 아세요? 예수님이 놀라운 기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풍랑이는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어떤 놀라운 기적을 행할까 봐 그걸 보기 위해서 거기서 따라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실망하고 마음으로 투덜거리고 욕하며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이제 십자가 십자가를 모두 다 뒤로 하고 언덕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을 때 멀리서 한 젊은 소년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소년하고 청년의 중간쯤 되었을 것입니다. 막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눈물을 흘리면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예수와 한패라고 말하고 예수님처럼 자기를 잡아가서 십자가에 매달려도 나는 상관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뉘우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이 요한의 마음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고 하나님을 가르쳐주셨는데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그리고 내가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었다는 사실에 깊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로 달려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막 내려오는데 그 사람들을 막 인파를 헤치면서 오직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갔을 때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힌 채 한없는 고통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일곱 마디의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말씀하실 때부터 요한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세 번째 말씀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라 보라 네 어머니이다”라고 요한에게 십자가에서 마리아 육신의 어머니를 부탁할 정도로 예수님은 요한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꽁꽁 숨었지만 요한은 달려가서 그 십자가 아래에 있던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사도 요한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요한이 십자가 아래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당신의 십자가는 나누어질 수 없지만 모든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요한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그 십자가 아래서 못 박히고 죽어가시며 온 얼굴에 가시관을 쓰시고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예수님의 그 모습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십자가 아래에 서 있다면은 눈물 흘리지 않았겠어요? 그러면서 그 십자가 아래서 이 요한은 한없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까지 남기는 유언과 같은 말씀을 모두 듣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다 이루었도다 하고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시면서 마지막 운명하시는 광경까지 모두 지켜보고 마지막에는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창으로 찔러 창의 허리 상하여 피와 물이 모두 쏟아지는 그 광경을 가슴 아픈 광경을 요한은 두 눈을 뜨고 생생하게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십자가 아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멀리 떠나서 꽁꽁 숨어 있습니까 아니면 이 요한처럼 주님을 잠시 떠났지만 이제는 내가 예수님께 돌아가야 되겠다 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 달음박질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주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성령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의 생명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 사랑하며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염려와 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품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잘못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요한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있는 이 자리에서 치고 박차고 일어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향해 마음껏 달려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주님은 마음의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모든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오늘 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영접하고 그 예수님과 함께 사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