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청소년 회심 집회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9-14)
녹취자 : 김세나
자, 그렇게 길게 설교 안 할테니까 조금 이렇게 똑바로 이렇게 앉아서 점퍼 더우니까 웃옷 벗어도 돼요. 그리고 고개 들고 목사님을 쳐다봐. 다른 데 보지 말고 설교 하는 동안에 목사님을 쳐다 봐.
이렇게 수련회 때가 되거나 또 우리 예배를 드릴 때에는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해서 실망을 하기도 하고 그래요. 오늘은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정말 주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지만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 그것을 오늘 살펴보면서 우리들이 주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도대체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는게 무슨 뜻인가. 그것부터 알아야지만 주님을 못 만나는 게 무엇인지, 또 만나는 게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에요.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고 할 때 이 주님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 이 세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이 세상의 인간들이 죄로 타락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우리들이 주님을 만난다라고 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지만, 그 하나님을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만나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몸을 가지고 공간안에 이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내가 장소를 이동해서 내가 그를 찾아가거나, 그가 나를 찾아와서 대면을 하고 말을 하면 그것이 만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시잖아요. 이 세상 어디에든지 하나님이 계시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무대도 하나님은 안 계신 거죠.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면도 있지만 주님을 만난다고 할 때는 그 만나는 것이 틀린 것이에요. 그러면 무엇을 가리켜서 주님을 만난다고 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하면 지식과 경험이에요. 그래서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들이 그 분을 보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육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신의 눈으로 지성의 눈으로 예수님을 뵈옵게 되는 거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우리의 정신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요.
우리가 우리의 이 두개골부터 시작을 해서 온 몸을 둘로 가르고 내장을 다 끄집어낸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양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죠. 해부학적으로는 골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속을 다 뒤져도 거기에는 사랑, 정의 평화, 양심 이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 친구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어요. 엄마가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 친구들이 나와 우정을 나누는 것, 선생님이 나를 염려해 주시는 것, 이 모든 것들을 해부학적으로는 찾을 수 없지만 우리는 볼 수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이렇게 육신의 두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성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을 있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때로는, 잘 들어봐요. 때로는 그 친구에 대해서 안 좋은 이야기가 나에게 들려도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친구가 나에게 안 좋은 행동을 보이는데 나는 그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 속에 있는 친구의 마음속에서 본 나를 향한 우정, 이것을 내가 더 믿는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아주 일부이고, 사실 우리는 정신으로 보는 것으로 사는 것이라 이거죠.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가 눈을 뜨고 볼 때에는 어디에도 예수님은 안 계신 거죠. 어디에도. 심지어 교회 건물을 다 허물고 천장부터 지하실을 다 뒤져도 거기에 예수님은 안 계신단 말이에요. 마치 우리의 배를 갈라도 양심이 여기에 없듯이 예수님은 안 계시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는 안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 아까 이야기 할 때에, 없는 것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있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이야기를 했죠? 그러니까 건축학적으로는 종탑부터 시작해서 지하실까지 뒤져도 예수님이 안계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죠. 그것은 바로 정신으로 예수님을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정신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 이것과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 예수님을 정신으로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될 때 그 때에 그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신 뚜렷한 경험이 있을 때 우리는 그 두 가지 지식과 경험을 합쳐서 그것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다고 말하는 거죠. 그러면 잘 생각해봐요. 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머리에 있죠.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는 뜨거운 감격은 우리의 이, 우리의 이 심령 속에 있어요. 이 두 개가 어디에서 만나냐 하면, 마음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만나는 거예요. 그러면 왜 예수님은 머릿속에서도 안 만나 주시고 우리의 이 가슴, 이 뱃속에서도 안 만나주시고, 왜 예수님은 꼭 우리를 만나주시는 그 장소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예수님에 대한 경험이 우리 마음에서 일어날 때에 예수님을 만나게끔 해 주실까. 궁금하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마음을 점령한 그것이 그 사람을 차지한 거예요. 차지한 거예요.
제가 아는 여러분 같은 청소년 가운데 한 사람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계속 전교에서 1등을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딱 들어가고 나서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어요. 거짓말같이 1년 반 만에 저 바닥으로 내려갔어요. 난 지금 공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는 예전에 있었던 이 마음이 학교와 가정을 향할 때에는 공부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요. 그런데 나쁜 친구들을 만나서 다른 것으로 가득 찼어요. 그러면 자신의 의무를 다 버리는 거예요. 그렇죠. 마음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틀린 거죠. 여러분,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죠. 두 개가 충돌을 일으킬 때에는 누구의 지시에 따라요? 머리의 지시를 따라요, 마음의 지시를 따라요?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머리가 지시하는 바와 마음이 지시하는 바가 다를 때에는 누구를 따라요? 마음을 따르죠. 머릿속으로는 교회도 가고 기도도 하고 경건하게 살고 해야된다 라고 하는 것이 쫙 머릿속에 있는데, 가슴으로는 그게 싫어요. 놀고 싶고 그리고 좀 부패한 짓을 하고 싶어요. 그러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을 따라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만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의 사랑으로 채우시기 위해서 그 지식과 경험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자 그러면, 그러면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죠. 그렇죠. 첫째가 뭐에요. 여러분 지금 설교 듣는 수준이 초등학교 1,2,3학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세요? 지난여름에 회심집회 할 때, 초등학교 학생들이 이렇게 똑바로 앉아서 74분 동안을 설교를 들었어요.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끝나고 나서 74분. 그리고 마지막 결론이 뭔지 아세요? 엄마, 엄마 오늘 회심집회가 정말 최고였는데, 단점이 하나 있었어. 목사님 설교가 너무 짧아. 여러분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왜 왜 지식에 집중하지 않으면 주님을 못 만나는지 제가 한 2분 정도만 설명을 드리고 그 다음에 주님을 만나는 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 인간이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식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정확한 지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이 우리에게 설명될 때, 그 때 그 분이 누구인지를 또렷이 알게 되는 거예요. 그 때에 우리에게 그 주님을 만나는 감동, 경험, 체험, 이런 것을 가져다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지식의 분명한 말씀과 성령님의 강한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서 만나게 될 때, 그 때 주님을 만나게 돼요. 주님을 만나게 돼요. 주님을 만나게 돼요. 그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따라서 아주 분명한 지식이 필요해요. 아주 또렷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전해져야 하는데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자동적으로 어떤 큰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의해서 그 지식이 그 사람의 마음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의 생각 속에서 산산이 흩어 질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회심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쳐 주는 지식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깨닫고 싶어 하는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있었던 것이에요. 그 순간이 없이는 누구도 회심할 수 없고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고 아주 분명하게 회심하고 변화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서 눈을 뜨는 거예요. 주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주님의 은혜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회 가서 맨날 친구들과 놀고, 먹고 마시고 그리고 노래나 부르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지내면 결국은 한 번도 주님을 못 만나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늙어 갈 수 있어요. 제일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는 마음, 그리고 그 지식이 마음 안에서 감동적인 경험으로 부딪히게 될 때에 그때 여러분 속에 주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게 되는 거죠. 그 때에 주님은 찬란한 빛으로 다가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는 전혀 몰랐는데 그 찬란한 빛을 통해서 자기가 정말 너무나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 주님이 하나님이신데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그렇게 고통을 받으시고 멸시를 받으시면서 인간을 섬기시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자기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때에 주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인데, 나는 주님이 싫어서 멀리 떠나고 죄를 짓고 불순종하고, 내가 행한 많은 악한 행동들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은 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원수와 미움으로 갚았던 자기의 죄에 대해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깊이 회개하게 되는 것이에요. 회개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주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때 어떤 마음이 생기냐 하면 자기 미움이 생겨나는 거예요. 자기에 대한 미움이 생겨나요. 예수님이 이렇게 살아계시고,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을 사랑하셨는데, 왜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욕하고 그리고 예수님 무시하고, 그리고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실 일을 행하면서 그렇게 살았을까 하는 후회가 가슴속에 확 밀려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뉘우치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그렇게 뉘어치게 될 때 자기가 행한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는 마음이 들고, 예수님께 대해서는 믿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회심이에요. 이것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후로도 구원 얻었어도, 한번 회심했어도 죄를 지어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불순종할 때 있어요. 그 때마다 다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잘 지식으로 깨닫고 또 그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때 똑같이 또 회개하고 또 예수님을 꼭 붙드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고백하게 돼요.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훨씬 더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만 주님을 만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에 보면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어요. 당시는 유대인들이,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하루에 3번씩 성전에 올라갔어요. 올라갔는데 한 사람은 세리였고, 또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어요. 바리새인은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들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지킨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사람이, 그 사람 중 하나가 성전에 올라갔는데 당시 세리는 누구였냐 하면 로마 시대 때에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세금을 공평하게 먹인다기 보다는 이 동네에서 얼마 겆는 목표가 할당되어요. 그러면 얼마를 걷는다고 하는 것은 얼마를 거둬서 나라에 바친다고 하는 것은 정해 주지만 걷는 돈에 대해서는 세리가 어느 정도 자율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세금을 2천 원씩 거둘 세금을 안 내는 사람들 벌충하고, 못 내는 사람들 벌충하고, 자기도 거기에서 벗겨먹기 위해서 3천 원, 4천 원씩 세금을 거둔 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은 비록 유대인이었으나 유대인에게는 아주 악명 높은 사람이었고 더러운 인간으로 따돌림을 받았던 거죠. 그래서 남자가 세리라고 하는 것은 여자가 창녀라고 하는 것만큼 사람들에게 아주 무시당하는 신분이었어요. 그런데 그 세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바리새인이 올라갈 때 같이 그 성전에 있었어요. 바리새인이 하나님 앞에 그 당시에 기도하는 습관대로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양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감사기도를 먼저 드렸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런 일, 이런 일, 이런 일을 안 하는 사람이니까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이 바리새인은 토색, 불의, 간음, 이런 것들을 안 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아무 응답이 들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가서 하니님, 그리고 말문을 열었더니 견딜 수 없는 슬픔이 확 밀려 왔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행한 것이라고는 죄 지은 것 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고개를 들고 두 손을 높이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경배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는데, 이 사람이게는 그럴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람은 차라리 머리를 숙이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기도했던 거죠.
하나님은 세리를 통해서 바리새인보다도 이 세리를 통해서 더 많은 악을 행하는 것을 보셨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바리새인을 찾아오시지 않고, 오히려 이 더러운 세리를 찾아 오셔서 이 세리를 만나 주신 거죠. 왜 그랬을까요. 바리새인은 토색, 토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돈을 갈취하는 거예요. 토색하고 불의, 율법을 마구 억이면서 사는 거예요. 그리고 간음, 이런 것을 안 했지만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없었을 뿐이지, 이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아주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지금 하나님 앞에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 자기가 이렇게 잘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순간이었어요.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으로서는 이 일을 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지 않는 이 바리새인을 하나님께서는 만나 주실 수가 없었어요. 다시 말해서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지식도 없었고,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아주 강렬하고 열렬한 갈망도 이 사람에게는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사람을 만나주시질 않으셨어요. 이 세리는 다 사실이었어요. 동족의 돈을 더 많이 뜯어서 착복한 것, 그리고 율법의 금한 많은 것을 행하여 죄를 저지른 것,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네가 나를 찾으면서 이렇게 나쁜 일을 했느냐. 이렇게 나쁜 일을 하도고 어떻게 나를 찾을 수가 있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자기가 왜 그래야 했는지를 하나님 앞에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가슴을 치면서 눈물로 고백을 했던 것이에요. 가슴을 왜 쳤을까요. 너무나 안타까워서, 혹은 너무나 많이 울어서 이 가슴이 저려서 아프기 때문에 아픔을 완화하기 위해서 가슴을 두드린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하면 비록 죄를 지었지만 세리의 마음속에는 죄를 지었고, 그리고 자기는 바리새인만도 못한 더러운 인간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그리운 마음이 이 세리의 가슴속에 가득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살아온 비교적 선한 행실 별로 없기도 했겠지만 자신의 모습은 다 잊혀지고 오직 떠오르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분인데 자기는 더럽고, 죄짓고, 악한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이 아주 뚜렷이 깨달아 진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고 죄를 지은 인간인데 어떻게 나를 찾느냐 라고 하나님이 물어 보시면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세리가 그렇게 대답할만한 자신은 없었지만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간절히 주님 앞에 기도하다가 그만 주님 앞에 가슴을 치며 슬피 울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 뭐냐 하면 하니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했어요. 그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정직하게 고백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속에는 이미 자기가 정말 더러운 인간이고 나쁜 짓을 많이 했고 마음속이 불결하고 더럽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아주 불결하고 더러운 인간이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고, 또 하나는 내가 비록 이렇게 더러운 인간이지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 이외에는, 주님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 라고 하는 믿음이 동시에 있었어요. 그래서 주님 앞에 은혜를 구한 거예요. 그래서 뭐 해요. 자비를 구한 거예요. 그래서 뭐 해요.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님 앞에 고백을 한 거예요.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백을 한 거예요.
우리가 비록 잘못된 일을 행했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큰 사고를 당했다면 부모님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 보다도 우리가 사고를 당해서 처하게 된 그 큰 재난, 여기에 훨씬 더 주목 하겠죠. 이게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이 세리의 믿음이었어요. 그래서 주님은 여러분들이 아무리 가정에서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교회에서 선생님들에게 인정을 받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여러분들이 모범생이고, 장래가 총망 된다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박수와 갈채를 받아도 하나님은 그런 것 보고 여러분들을 만나 주시지 않으셔요. 뭘 보고 만나 주시냐 하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사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갈망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주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이에요. 만나 주시는 것이에요. 정말 놀라워요. 그렇게 교회 오래 다니고 기도 잘하는 부모님들이 못 만나는 하나님을 아주 어린 아이들이 만나요. 왜, 주님은 그 사람의 지식의 크기나 나이를 보고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가 아주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주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찾아오시는 거예요.
(예화) 목사님이 한 20년 전에 전도사 생활 할 때였어요. 그 때에는 겨울이 아니라 여름인데 수련회를 갔어요. 한번 수련회를 갔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성에 안차요. 그래서 두 번째 수련회를 또 갔어요. 7월 달에 한번 가고 8월 달에 수련회를 한 번 더 갔어요. 아이들이 다 따라왔어요. 고3들은 학원 다니느라고 정신없잖아요. 학원에 여학생 하나가 자기는 수련회에 너무나도 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8월 14일 날 모두 버스를 타고 기도원으로 갔는데 얘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그날 14일 날 저녁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온 거예요. 왔는데 이 기도원에 간다고 적어 주니까, 여기서 내려서 절로 쭉 들어가면, 저기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옆으로 쭉 들어가면 된다고 그리고 자기를 탁 내려놓고 웅 하고 떠났어요. 그 때는 캄캄한 밤이에요. 아마 집회도 거의 끝났어요. 끝나갈 때였어요. 아마 9시쯤 되었을 거예요. 9시 좀 넘었을 때에요. 그리고 완전 시골이에요. 가로등도 별로 없을 정도 그렇게 캄캄한 시골인데, 절로 가면 된다고 가르쳐 줬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저기 뭐가 있나 그랬더니 시커먼 숲속이에요. 이 기도원은 사실은 여기에서 몇 킬로미터를 들어가야 되는지 몇 미터를 들어가야 되는지 표지판이라도 있으면 될 텐데, 그런 표지판도 없어요. 그냥 기도원이 저기 있습니다 라고 화살표만 되어 있는데 어딘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캄캄한데 거기 옆에 섰는데, 간증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이 갈등이 생기더라는 거예요. 이 산길을 들어가다가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른다고 하는 가슴에 확 밀려오는 두려움, 그래서 여기 가만히 서 있다가 다음 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라고 하는 마음, 그리고 두 번째 마음은 뭐냐 하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이 두 마음이 잠깐 동안 막 싸웠는데 나는 그래도 주님을 만나야 돼. 그러면서 싹 들어갔는데 숲길이에요. 캄캄한 숲길이에요. 얘가 계속해서 뛰면서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나 좀 인도해 달라고. 그리고 산모퉁이를 쫙 돌아서 들어오니까 거기 기도원 불빛이 딱 보이는 거예요. 막 뛰어 들어오는 거예요. 뛰어 들어오자마자 엎드려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성통곡하고 우는 거예요. 그런데 집회가 다 끝나 가는데 그렇게 대성통곡하며 운거죠. 그런데 말씀이 마지막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탁 하고 만나요. 성령께서 그에게 강하게 임하면서 이 아이가 주님을 아주 확실하게 만나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그게 뭐냐 하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님 앞에 뉘우치고 주님을 만나고자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그 때 주님이 그 사람을 만나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에요.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당신을 간절히 찾는 거예요. 당신을 간절히 찾는 거예요. 당신의 은혜에 목말라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가 무지하면 지식을 주시고, 그가 지혜가 모자라면 총명을 주시고, 그가 죄가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그가 외로우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해주셔서 그래서 주님을 깊이 만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바리새인이 못 만나고 간 하나님을 세리는 거기에서 만났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바리새인이 받을 수 없는 은혜를 이 세리가 받게끔 만들어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 목마른 사람, 주님의 은혜에 간절한 사람,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그리고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내가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오늘도 만나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