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눅 15:3-7).
언젠가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TV에 특집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길거리에서 놀던 아이들이 없어지고 학교에 갔다 돌아온다던 아이가 영문도 모르게 사라져서 몇 년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이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어린 나이 불과 너 댓살 밖에 안 되는 아이를 잃어버린 어느 집안의 기막힌 사연이 보도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이 아이를 찾기 위해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애썼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동안에 직장도 다 떨어지고 하던 생활도 모두 다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부모가 마지막 택한 직업이 골목골목 누비며 전국을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놀이기구(자동차, 비행기, 말 모형을 리어카에 부착해서 만든 것)를 태워주는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새까맣게 모이면 그 속에서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하여 그 일에 종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이 부분은 기독교에서 유명한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백 마리의 양을 기르던 목자가 있었습니다. 들판에 와서 헤아려보니 한 마리가 사라지고 아흔 아홉 마리 만 남았습니다. 안전한 들에 이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리 양의 가격이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지만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온 길을 되 돌이키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것이 목자에게 있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비유를 가르쳐 주신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양으로 비유하고 그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당신 자신의 모습을 목자로 그려낸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고 하나님은 자신을 목자로 비유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어떠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나운 이빨은 없지만 아주 빠른 다리가 있어 도망치는 말도 있고 아주 빠른 다리와 탄탄한 이빨은 없지만 기린처럼 목이 길어서 멀리서 오는 맹수들의 위협을 미리 알고 도망칠 수도 있는 그런 장점도 있습니다. 카멜레온처럼 주위의 색깔에 자기를 맞추는 변신의 천재도 있는가 하면 좀 치사하기는 하지만 사태가 불리할 때 방귀를 뀌어서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스컹크 같은 짐승들도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특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동물의 왕국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라는 프로에서 사자가 어느 뿔 달린 염소 같은 짐승을 잡아먹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니까 염소 비슷하게 생겼는데 뿔이 유난하게 길고 체구가 작은 짐승입니다. 사자가 매우 배가 고팠습니다. 서서히 표적을 발견하고는 군인들이 낮은 포복을 하듯이 땅에 붙어서 풀에 숨어서 포복으로 기어가는 것입니다. 최대한 가까이 가서 사자는 드디어 어깨를 들추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자가 오는 것을 발견한 이 작은 짐승은 사력을 다해서 벌판을 달렸습니다. 사자의 빠르기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사자에게 잡히기 직전에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몸을 확 돌리면서 뿔로 사자를 받았습니다. 사자는 몸집이 400-500kg되는 큰 짐승입니다. 달려오던 가속도가 있기 때문에 앞에 가는 그 작은 짐승처럼 빨리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뿔이 사자의 옆구리로 들어가 등 뒤로 튀어나와 버렸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사자는 쓰러졌고 양은 그 틈 사이에 피 묻은 뿔을 사자의 품에서 빼고 들판으로 절뚝거리며 사라졌습니다. 그 광경을 촬영하던 기자가 마취 총을 쏘고 거기에 가서 적당하게 치료를 해 준 다음에 거기에다 칩을 달았습니다. 그 사자가 어떻게 되나 관찰을 했는데 두 달 만에 상처가 덧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초식동물들도 각자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 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얼룩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사자와 얼룩말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정답을 모르세요? 사자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 중의 하나가 얼룩말 고기랍니다. 사자는 얼룩말 떼가 있으면 그 중에 한 마리만 목표를 삼고 돌격을 합니다. 얼룩말들이 함께 모여 있는데 사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누가 대장인지 모르지만 도망가야 소용없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랬더니 얼룩말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가운데에 자기 새끼들을 모읍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사자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얼마큼 달려왔을 때에 누가 명령했는지는 모르지만 일제히 흙과 모래를 끼얹으면서 뒷발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놀랍게 그 중에 한 얼룩말이 힘차게 뒷발질을 했는데 주먹만 한 돌멩이가 총알처럼 날아갔습니다. 왼쪽 사자의 눈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콱 맞으니까 금방 시뻘건 피가 확 쏟아집니다. 결국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자는 애꾸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순하디 순한 얼룩말도 이런 맹수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같이 빠르고 힘센 다리도 없습니다. 이빨은 풀을 뜯어 먹기에 좋아할 넓적한 어금니가 발달한 초식동물의 이빨입니다. 양은 눈이 매우 나빠서 2-3m만 사물이 떨어져도 희미해서 보지 못하는 짐승입니다. 뿐만 아니라 뿔이 있기는 있는데 염소는 그래도 앞을 향해 조금 솟았는데 양은 만두처럼 말려서 붙어있으므로 중심이나 잡는 장식품이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여러분 저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잠간 자랐는데 장마철이 되면 흙탕물이 내려오는데 짐승들이 떠내려 오는 안타까운 광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소도 헤엄을 잘 칩니다. 그 큰 체구의 소가 제법 헤엄을 잘 치면서 겁에 질려서 눈을 크게 뜨고 음머 음머 하면서 강물을 타고 떠내려갑니다. 고양이도 헤엄을 잘 칩니다. 결국은 빠져죽겠지만 잘 칩니다. 닭을 물속에 넣으면 안 가라앉습니다. 개는 개헤엄이 유명합니다. 돼지는 뚱뚱하지만 금방 가라앉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떠내려갑니다. 물에 빠져 죽은 오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양은 물에 집어 넣으면 곧 바로 쑥 들어가고 올라올 줄 모릅니다. 양은 물을 아주 무서워합니다. 이런 동물은 지구상에서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을 양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창조하시고 동물들을 만드셨는데 그중에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양 같은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양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고 인간 가까이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이 모든 동물보다도 뛰어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고 모든 짐승이 감당할 수 없는 발달한 문명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재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지만 겨우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존재로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물건들이 만들어진 곳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공업용품들은 공장에서 생산되었고 꽃은 화원에서 잘라온 것입니다. 인간도 만든 곳이 없이 저절로 생겨날 수가 없겠죠?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몸을 빚으셔서 첫 번째 재료로 삼으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어서 영혼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혼이 합쳐져서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었을 때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어디로 돌아갔다는 것입니까? 죽으면 몸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셨고 영혼은 그 몸에서 나와서 본래 영혼을 창조한 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인간이 죽은 것을 가리켜서 돌아갔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두 요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는 이 세상의 자원을 필요로 하고 영혼은 하늘의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육체는 잘 먹고 따뜻하게 잘 입고 편안하게 지내면 고생을 많이 하면서 굶고 병든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똑같이 우리 속에 있는 이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주 는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지만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육체만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 결국은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한 증거를 꿈에서 입증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꿈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육체가 활동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입니다. 김소월 같은 시인은 말하기를 꿈은 영혼의 해적거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영혼의 움직임이 바로 육체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활동을 해서 우리 속의 기억을 남긴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한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 중에 좀 나은 동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반드시 영혼이 있고 육체는 이 땅에서 사멸되어 없어질 것이지만 영혼은 영원히 있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자원,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부어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자비, 친교 등 영혼과 육체가 함께 건강한 사람이 되어서 참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영혼이 죽어있는 상태로 태어나서 육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기본적인 기능은 영혼이 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의 자원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자원만으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의미 있는 통계를 내 놓았는데 자기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아프리카의 못 사는 나라가 1등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세계 11위의 규모인데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34위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육체를 위한 물질만이 우리의 마음에 행복이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씀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을 안 믿으면서 사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930년 대 프랑스에서는 아주 기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사람들이 짐승이 아닌 사람 둘을 사로잡아 온 것입니다. 10세가 훨씬 안 된 아이 하나와 그보다 더 어린 아이 둘을 잡아 왔습니다. 모양만 사람이지 전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데 머리털은 길게 나왔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여서 얼마나 잘 뛰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우리에 가두었더니 햇빛이 있는 동안에는 컴컴한 구석에서 눈에 불을 켜고 으르렁 거리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고 밤이 되면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고 늑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었습니다. 왜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 소년처럼 어떻게 해서 짐승들에게 물려가게 되었고 그 짐승들의 젖을 먹으면서 자랐음에 틀림없다는 것이 사람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전 세계 교육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이 프랑스에 쏠렸습니다. 이름을 내놓으라하는 유명한 교육학자들이 프랑스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회의를 열면서 최대의 관심사에 연구를 집중했습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짐승이 다 되어 버린 이 아이들을 인간 사회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발한 교육의 방법과 이론들이 그 아이 둘을 교육하는데 접목이 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그 교육은 실패하고 아이들은 16, 17살을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결국 이것을 통해서 당시 교육학자들이 내린 아주 중요한 결론이 있습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한데 그 교육은 아무 때나 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엄마 품에 있는 갓난아이 때부터 시작해서 3-4살 사이에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사회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의 품에서 젖을 먹으며, 엄마의 품에서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인간과 세상과 자기에 대해 배우면서 자라나는 것도 살아있는 것이고 그 어린 아이들처럼 숲 속에 끌려가서 늑대의 젖을 먹으면서 네 발로 뛰어다니면서 살아있는 것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자의 아이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후자의 숲 속에서 네 발로 뛰어다니며 짐승의 울음소리를 하는 야행성 동물처럼 되어 버린 그 아이들을 향해서 누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점은 사는 것이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답게 잘 살아있어야지만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도 배어나옵니다. “요즘 어때? 재미 좋아?” 사업에 시달리고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고 자식들이 고생을 시키고 시련이 겹칠 때 “말마, 요즘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우리도 언어의 습관 속에서도 이런 고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안 믿고도 인생 살 수 있습니다. 세끼 먹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겨우 밥이나 먹으면서 이 세상에서 울고 웃으면서 살도록 그렇게 창조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 중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피조물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신기하지 않아요? 50-60kg, 심지어는 100kg가 넘는 사람도 네 발로 다니지 않고 두 발로 다닙니다. 그 나온 배, 그렇게 큰 몸집에 두 발로 균형을 잡느냐는 것이에요? 두 발로 뛰어가기도 하고 허리 굽혀 펴기도 하고 가다가 멈추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이런 신기한 로버트가 없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이 발을 땅에 딛고 고개를 들고 살게 하신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영혼이 온 고향인 하늘을 바라보며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짐승과 구별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부모의 슬하에서 잔소리 듣는 것이 짜증이 나면 가출을 꿈꿉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부모와 함께 땅을 파면서 농사를 지으며 고생을 하느니 나는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시로 갑니다. 정신없이 몸부림 치며 성공을 해보자하고 삽니다. 나이가 점점 들고 어느 안정되고 자리가 잡히면 고향이 생각납니다. 먹을 것 있고 입을 것 있어도 고향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좋으신 부모님 그리운 내 동기간이 생각납니다. 그때 비로소 고백을 합니다. 배불리 먹는다고 행복이 아닙니다. 좋은 옷 입는다고 호사가 아닙니다. 나의 돌아갈 곳은 내 그리운 고향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철이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가 여러분들을 낳았다면 여러분들의 영혼은 그 부모가 준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의 영혼의 부모이고 또 여러분들의 부모의 부모이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혼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것은 육신의 부모를 찾지 않고 타향에서 혼자 배불리 먹고 살아가는 불효자식처럼 영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주 심한 불효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지지만 영혼이 육체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영혼의 아버지를 찾기 전까지는 인간의 존재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기 전부터 사람을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이 모든 세계를 다 주고 당신과 가족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영혼에 아버지가 되어서 우리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육체는 이 땅에 있는 많은 것들을 통해 배부르고 건강하게 하시고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과 친교로 영혼이 배불러서 함께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자식들이 당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자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잃은 양을 찾는 것처럼 찾아 나서시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으로서 아무리 사람을 통해 전해 주어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을 위해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에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말구유에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말로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지만 사실 때에는 모든 사람과 똑같이 그렇게 성장 과정을 거치시면서 사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몸에 갇혀있을 수 없는 분이셨지만 예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신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실까 하는 것은 보이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어떻게 사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우리 손 안에 있는 성경은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어떻게 사셨는지를 보도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 그중에서도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33년 동안 사시면서 당신을 위한 생애를 사시지 않고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마음 가득히 아버지의 사랑을 품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보셨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영혼들을 위해 그들을 먹이시고 그들을 돌보셨으며 병들어 신음하고 버려진 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헌데를 어루만지시며 그들을 치료하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이 아프고 외로울 때 예수님이 함께 있어 주시면서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덜어 주셨고 그들이 갈 길을 모를 때에는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 영혼 속에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시면서 갈 길을 알게 하셨습니다. 인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이 친히 그 눈에 눈물을 씻기시며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누가 죄를 지으면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우리가 그 죄가를 치른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버림받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컸기 때문에 죄는 우리가 지었지만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우리를 위해 형벌을 받으시고 이제는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예수님이 나 같이 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았던 이 불효한 자식을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삼아 주셔서 그의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예전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던 사랑과 자비와 친교를 영혼 속에 진리의 말씀으로 부어주시므로 육체는 이 세상의 자원의 축복으로 살고 영혼은 하나님 자신에게로부터 오는 큰 위로와 용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은 죽음으로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보고 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옥 형벌에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며 살도록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을 하나님이 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런 영혼의 아버지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 없이 아버지 없이 불효하게 살아온 것을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진심으로 이제 내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나를 자식으로 받아주시고 다시 내 영혼을 위한 하늘의 자원으로 나를 배부르게 해 주시옵소서. 내가 주님과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떠한 인생의 시련과 위기와 고독 앞에서도 혼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집안의 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미 하나님을 믿은 사람이었다면 예전에 주님을 믿었을 때에 신앙과 사랑을 버리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방황하고 힘이 없을 때에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그 사랑에 얼마나 감격했습니까?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배반하지 말고 주님의 손을 꼭 붙들고 주님과 함께 동해하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왜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세상의 죄 때문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아버지와 함께 영생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