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녹취자: 조봉수
I. 본문해설
지난 시간에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본문 말씀 가운데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 바로 뒤 이어서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한없이 멀어져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멀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많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시는 방법이 있는데, 그가 하나님 앞에서 상한 심령이 되면, 죄나 환경이나 거리나 그런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신다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영성을 이야기 하는데 그 영성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영적인 교제를 제외해 놓고는 영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귀신을 내어 쫓거나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영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지각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친밀하신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죄를 싫어하시는 그 분의 성품을 늘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예민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하는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진수에 해당되는 부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존 오웬은 자기의 책 속에서 성경 속에서 성경을 아무리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에 대해서 깊이 모르는 사람, 때로는 그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얼마나 알겠는가라고 반문하였습니다. 이처럼 친밀함은 우리의 모든 영적 생활의 진수이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 속에서 영적인 삶은 이어 나가게 하는 생명적인 부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이미 복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친밀함을 누구에게 보여주시냐 하면은 마음이 상한 자, 그래서 건들기만 해도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낄 것 같은 그렇게 마음이 깨어진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가까이 계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II. 중심에 통회하는 자
A. 중심에 통회하는 자.
그러면서 인제 그 다음에 짝을 이루면서 나오는 이야기가 머냐면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중심이라고 되어있는 이 낱말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로아흐’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영혼입니다. 그러니 영혼에 통회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신다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통회하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 다시 말하면 그 영이 깊이 통회하는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깊이가 믿음의 질이 같아도, 믿음의 깊이가 모두 다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질이 모두 같아도, 경험의 깊이가 모두 다르듯이, 회개의 색깔이 모두 같아도 깊이가 다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 깊이는 질은 똑같지만은, 그러나 그 깊이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질은 똑같지만은 그 질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매우 깊이가 있어진다는 이야기죠.
B. 통회의 질적인 차이.
예를 들자면 이런 이야기죠. 귤 같은 것을 제외하곤 제가 과일을 워낙 좋아하니깐 일가견이 있습니다. 귤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큰 과일이 대부분 맛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고 큰 과일이 맛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데 여러분 길거리에 보면 버려진 사과나무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과나무로 농사를 짓다가 그냥 농부가 봇짐을 싸가지고 어디로 떠나버린 경우입니다. 그래서 자라지는 않고, 몇 년씩 팽개쳐버리니깐 나무가 썩고, 돌보는 사람이 없으니깐 벌레가 새카맣게 달려들고, 거름을 안주니깐 사과가 뽕투라지 같이 이렇게 비비틀린 사과가 됩니다. 그런 사과도 먹어보면 사과 맛이에요. 잘 기른 크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도 역시 사과 맛입니다. 그렇게 얼핏 보면 버려진 나무 같은데 매달린 것 같은 작은 사과도 먹어보면 그것이 사과라는 사실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맛없는 배라도 먹어보면 그게 배라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맛있게 익은 그 과일에 맛과 버려진 나무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과일의 맛은 똑같이 맛을 보아서 같은 과일이라는 사실은 알 수는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똑같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시기만 하고 아무 맛이 없는, 단 맛이라고는 없는, 얼굴 찌푸려지도록 만드는 사과와 한 입을 입에 물고 흠하는 감탄사를 만들어 내게 하는 그 사과 같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C.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통회
하나님 앞에 통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것도 사실은 통회입니다. 그것도 회개입니다. 분명히 그렇고, 진실이 담겨있는 한 그것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회개처럼 여겨지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회개라고 하더라도 오늘 이야기하는 ‘로아흐’의 회개, 중심에 말하자면 영혼 깊은 곳에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탄식 속에서 우러나오는 죄의 고백, 그리고 하나님의 찬란한 진리의 빛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는 깊은 아픔과 고통이 담겨져 있는 자기 고백을 동반한 통회, 그것은 질에 있어서는 같을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도저히 같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런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D. 중심이 없는 통회
요시아라고 나오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겠다. 예수님, 예수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같은 어근입니다. 구원을 맛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속에서 그런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 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현실 생활에 대해서 만족해하지 못하고 깊이 괴로워 하는 대도, 무엇인가 깊은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또 그렇게 무언가 불만족스러워 하면서 무언가 신앙생활의 변화가 일어나길 원하지만은, 그렇게 원하는 대도 불구하고 정말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이들에게 정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는 것을 느껴지지 않는지를 우리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근심하고 마음 아파하는 적은 있지만,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셔야 할 정도로 마음이 상한 가운데서 주 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수인 것입니다.
자신들에 잘못된 생활에 대해서 깊이 후회하고 그리고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러나 그런 후회가 단지 인간적인 뉘우침에 그치거나, 인간적인 후회나, 인간적인 회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러한 자신들의 잘못이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얼마나 철저히 갈라놓았고, 자신에게 뼈아픈 고통과 영혼의 통증을 안겨주었는가를 깨달으면서 깊이 마음아파 하면서 마음 중심 깊은 곳에서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통증을 느끼면서 통회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소수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기도 속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는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E. 마음을 지키라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이 기독교가 마음의 종교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마음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신앙,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된 신앙,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그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고, 자기를 볼 수밖에 없고, 또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인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참된 기독교인에 이르는 길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 해나가기에 가장 어려운 점이 바로 우리가 이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너무나 심각하게 거리가 나있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 쪽에서 가까이 다가가도 하나님을 다시 뵈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낙망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오늘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한 자, 마음이 깨뜨려진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혼으로 깊이 통회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진심으로 구원하기를 기뻐하는 하나님이시다라고 자기의 성품을 알려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F. 진실함과 정직함.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무기는 진실함입니다. 진실함과 정직함,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것이 최선의 정책으로 통용되지 않을 적이 많지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정직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보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우리의 모습을 정직히 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지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삶과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재를 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와 관련된 사람들을 보면서 충분히 상한 마음이 되고, 그리고 충분히 중심에 통회할만한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이나 우리의 죄를 능가하시는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기도의 제목은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