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회심 집회(고등부)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찿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대로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 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 23:22-27)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 본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것 자체가 죄 지은 사람을 죽이는 형집행의 방법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죽일 사람은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는 재판의 판결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앞에 보면 빌라도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같이 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말도 되지 않는 재판이었습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을 불러다 법정에 세우고 재판을 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 이셨습니다. 또 혹시 잘못해서 죄 없는 사람을 법정에 세웠다면 죄인을 백명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죄 없는 사람을 무고하게 형벌하지 않는 것이 동서고금의 법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 재판장에 섯지만 결국은 죄 있는 분으로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재판이 잘못된 재판 이었습니다. 더욱이 증인들의 증언이 아무것도 맞지를 않았는데도 이 재판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던 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재판장도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는데 사형 언도를 내렸으니 이 재판은 법적으로 정당성을 상실한 재판 이었습니다. 더욱이 실제로 반란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인 바라바는 놓아주고 오히려 사람을 살리고 병든자를 고친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주었으니 이것은 정말 잘못된 재판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 재판에서 사형 언도가 내렸을 때에 조용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이 당시 역사적인 기록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무죄라는 사실을 빌라도도 확신하고 있었지만 이때 빌라도의 법정 그 뜰은 물론이고 그 언덕을 뒤덥는 수 많은 인파들이 에워싸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거의 강압적인 시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고 합니다. 만약에 유대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되면 빌라도는 관직을 잃고 책임을 추궁 당할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게 내어 주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렇게 사형 언도가 내렸을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때에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삶의 교훈은 불의하고 옳지 않은 일에 굴복하지 말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쳐 주신것이 예수님의 삶의 교훈 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무엇때문인지 이 말도 되지 않는 재판의 결과를 스스로 짊어 지시고 그리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무죄 이시면서도 이 끔찍한 십자가 형벌을 당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였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는데 이 일이 있기전에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사랑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큰 능력으로 이 모든 세상을 창조 하셨을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아무렇게나 창조된 세상이 아니라 질서를 가지고 창조된 세상 이었습니다. 제일 밑에 피리미드로 되어 있는 존재의 질서에서 제일 밑에는 존재하기만 하는 이세상의 무생물들, 사물들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살아 있는 식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위에는 지각하는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그 위에 맨 꼭대기에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살아 있고,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지각하고, 지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진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식물과 동물과 모든 사물들을 맡겨서 그래서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이해하고 이 모든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가꾸고,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간의 위대성은 단지 도구로 사용하고 모든 동물들 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인간의 위대성은 영혼을 가지고 이세상에 창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창조된 영혼을 가진 육체와 함께 한 몸을 이룬 인간이 땅에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해서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공급 받으면서 이 세상에 있는 사물들을 사용해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흙으로 빚으시고 후 하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으니 이것은 영혼을 주입하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육체를 위해서는 이 땅에 있는 자원들을 사용해야 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하늘에 있는 자원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세상에 인간을 만드신것은 당신과 가족관계 속에서 살게 하시면서 하늘의 자원을 그 영혼에 끊임없이 공급해 주심으로서 그 영혼들로 하여금 육체를 함께 다스리며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을 따라서 이 온세상을 다스리고 가꾸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학문과 예술과 기술과 그 모든 산업과 경영과 이 모든 지혜를 주어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처럼 다스리게 하기 위해서 창조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창조될 때 그렇게 정말 하나님의 탁월한 지성을 인간이 공급 받고 태어 났는데 인간에게는 모든 이세상에 있는 무생물들과는 틀리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창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달은 지구 주위를 자동적으로 돌고 자구도 태양 주위를 자동적으로 돌지만 인간은 선을 택할 수도 있고 악을 택할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진 존재로 이세상에 하나님이 창조 하셨는데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닮은 그러한 인간으로 이세상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인간에게 모든 창조된 세상을 주시면서 내가 창조해 놓은 이것들을 사용해서 내가 너에게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줄 터이니 그 사랑과 지혜와 능력안에서 나의 사랑과 지혜를 이해하고 이 모든 피조물들을 사용해서 이 창조된 세상을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라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회를 주시고 지위를 주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에게 굴복하고 복종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유로운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이 인간이 하나님께 정말 순종하고 하나님만 사랑하시는지 실험하기 위해서 동산 나무에 실과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과를 명하여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니 너는 먹지 마라. 먹는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이 선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거기에 그런것을 만들어 놓으셔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실까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고 만약에 인간이 그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해야 되겠다고 의지적으로 마음을 먹지 아니 하였다면 그 선악과는 음해의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맡겨 주셨기 때문에 모두 자신이 주인이요 자신이 온 세상을 창조한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었는데 선악과 앞에 오면 “아! 이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구나!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는 틀린 존재구나 하나님은 이세상을 창조하셨고 나는 이세상에 창조된 존재일 뿐이구나” 하고 깨닫고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속에 많은 욕망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바로 그로 하여금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하나님이 판단하는 것보다 더 확고하고 분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어디든지 계신 이 표편적인 임재가 자기의 행복과 생명의 보존에 위협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어기기로 마음 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을 합니다. “아 그거 하나님도 쩨쩨하시지 온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 과일인데 그것 하나 좀 먹었다고 그걸 뭐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고 죽음을 선고하시나”
(예화) 내가 중국의 자금성을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 보니까 축구장 몇배나 되 보이는 궁궐이 9개인지 몇 개가 모여서 어마어마한 큰 궁궐을 이루었습니다. 거기에 가 보니까 중앙에 황제가 앉는 집무실이 있고 황제가 앉는 의자가 있었습니다. 비단으로 잘 만들어진 의자입니다. 그런데 그 청나라 시대에 어떤 청소부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 청소부가 청소를 하다가 황제가 앉는 의자를 보니까 한번 앉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가서 의자에 앉아서 :야! 여기 좋구나!“ 하고 폼을 한참 잡고 있는데 황제가 들어 왔습니다. 그 청소부를 살려 두겠어요 죽이겠어요? ”뭐 그렇게 황제가 쩨쩨해 한번 앉어 본다고 해서 닳는것도 아니고 뭐 의자를 뿌러뜨린것도 아닌데 그거 뭐 한번 앉으면 어때, 비단이 닳아“ 그런데 왜 대역죄로 불려가서 그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까? 의자가 닳고 안닳고가 문제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앉아서 ”에헴“하는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면 자기가 황제가 되고 싶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있는 황제는 없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역죄라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것이 하나님에게는 커다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는 그 순간에 죄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 왔습니다. 온땅에 죄가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후에 태어난 인간은 그 죄 아래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빚을 많이 지면 자식이 태어나자 마자 그 빚의 상속자가 되는 것처럼 아담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이 태어 날 떄부터 그 영혼안에 이런 죄를 물려 받게 되었고 그리고 이 죄는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기 싫다는 큰 반항심 이었습니다. 그럼 누구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까? 엄마의 뜻, 아빠의 뜻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창조 하셨지만 판단은 내가 내린다 그리고 이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기여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후로부터 모든 인간들은 계속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네가 정령 죽으리라.” 이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즉각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진노중에 긍휼을 베푸시는데 죽음을 연기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즉각 죽이지를 아니 하시고 100년이나 200년 혹은 70년이나 80년을 사는 동안에 자식을 낳게 하시고 그 사람이 죽어도 자식을 낳습니다. 그래서 이세상에는 인간이 계속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해서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하신일은 뭐냐면 메시아가 이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영원히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미리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드리던 그 수 많은 제사, 그 제사속에서 죽어간 수 많은 짐승들은 바로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메시아의 약속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역사가 흘러 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뭐냐면 영혼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찿아 온 것입니다.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지옥에 가건 천국에 가건 그 영혼은 영원히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혼 그 자체의 살고 죽음을 이야기 할 때에는 영혼이 움직이냐 안 움직이냐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영혼이냐 아니야 이것과 관련을 지어서 살았다 죽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육신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살아 가는데 여러분들 회심 안 했으면 여러분들의 영혼은 죽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부모가 장로이고, 집사이고, 권사이고 예수 많이 믿은 집안에서 태어 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이 거듭나서 죄 때문에 죽어버린 그 영혼이 여러분들이 회개하고 거듭남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과 관련을 맺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영혼에 필요한 하늘의 자원이 영혼에 공급되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죽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날 동안에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게 반항을 하고 자기가 이 모든 인생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세상에 살면서도 항상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고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그리고 지옥으로 보내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전같이 개명한 시대에 지옥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그것은 가장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이세상 사람들보고 누가 하나님 살아 계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착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도 고난을 받고 마지막에는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악하고 그렇게 더럽게 사는데도 그 사람들이 이세상에 살면서 떵떵 거리고 살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만약에 죽음 이후의 세계가 없다면 이 모든 인생에 있어서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말하기를 “지옥이 있느니 없느니 이야기 하기 전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이 세상의 도덕적인 모순을 해결 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날 동안은 행복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공부 조금 잘하는것,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노는것, 쾌락에 빠지는 것, 셋상 사랑에 빠지는 것, 젊은 날 환락에 빠지는 것 그런것들이 행복하게 해 줍니까? 그것이 정말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인간이 태어 났다가 계속 죽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십시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육신이 죽어 있는 상태에 있다면 죽어 있는 그 육체에다가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그리고 입술을 그리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아름다운 팔목 시계를 채우고 목거리를 고운 목거리를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똑같이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오고 뭘하든 무슨 좋은 행복한 일이 생겨 난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오늘 회심하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의 영혼은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어느 한 순간에 여러분들은 죽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은 고등학교 졸업한지 30년 조금 넘었는데 요번에 앨범을 받아 보니까 한 페이지에 서너명씩 사진이 없습니다. 벌써 죽은 것입니다. 수십명이 죽은 것입니다. 그럼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옥을 가 봤냐고 이야기 하는데 만드신 분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아 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렇게 죽음 아래 있게된 고통과 상황을 극복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세상을 살면서 여러분들이 고통이라고 하는것을 많이 겪게 됩니다. 가정불화가 있어서, 엄마 아빠로부터 상처를 받아서 고통을 겪거나 학교에서 혹은 육신의 질병에 걸려서 하여튼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고통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같이 어린 사람이 자살하는 아이들도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고통이 왜 오냐하면 콜록콜록 하면서 기침을 하는것은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고통이라고 하는것은 기침하고 제채기하고 콧물이 나는 것입니다. 병의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무슨병에 걸렸느냐? 영혼의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징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콧물이 나와서 콧물을 닦아내고 온몸에 열이 나는데 찬물을 들이 부은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기에 걸려 있는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 질병을 옮겨준 병원체가 바로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라는 병원체에 의해서 죽음이라는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고통이라고 하는 증상이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육체는 이땅의 자원으로 먹고, 입고, 쓰고, 마시고, 바르고 해야 삽니다. 그런데 영혼은 그것 가지고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직접 공급되는 그 무엇을 공급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어서 그 하나님께로부터 그 영혼의 계속해서 양식이 주어지고 은혜가 주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아야 합니다. 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 죽은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죽은 행실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지 죽은 행실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참한 일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속에는 그 지독한 미움, 원망, 질투 그리고 시기, 탐욕, 다툼, 전쟁 이 모든 고통들이 바로 그런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외로움, 번민, 고통, 유혹 이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약에 그대로 내 버려 두셨다면 인간이 전부 다 동물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지었는데도 불쌍이 여겨 주셔서 조금씩 조금씩 하늘에 있는 자원을 인간에게 공급해 주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지은 죄를 모두 눈물로 회개하며 내 대신 짐승을 죽여 그 피를 흘리게 하면 하나님이 잠깐동안 그 사람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하나님이 그의 영혼에 생존에 필요한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 은혜를 힘 입어서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고 누구를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야 할지를 깨달아서 인간의 본분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대학의 철학과 선생님이 교문앞에 서서 9시가 되니까 학생들이 막 뛰어 오는데 지각하는 학생을 붙들고 “자네 왜 뛰나?” “교수님 저 지각하게 생겼습니다. 빨리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 왜 지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수업 출석 체크는 해야지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 “그래야지 점수가 나오죠. 왜 자꾸 바쁜데 물어 보세요?” “점수 나오면 어떻게 되는데?” “그래야 졸업을 하죠?” “졸업을 하면 뭘 하는데?” “그래야 취직을 할것 아닙니까? 저 가게 그냥 놔 주세요” “취직하면 뭐 하는데?” “그래야 장가를 가죠” “그러면은?” “그래야 애를 낳죠” “그리고?” “그리고 늟죠” “그리고 어떻게 되는데?” “퇴직하죠” “그리고는?” “죽죠” “그럼 중간의 것 다 빼고 왜 뛰었느냐?” 가만 생각을 해보더니 뛰지를 않더람니다. “아! 가방을 들고 죽으려고 뛰었구나”
여러분 왜 공부 합니까? 뭘 알고 해야지요. 왜 지금 죽으면 안 됩니까? 왜 살아야 합니까? 목사님이 여러분만 했을 때 목사님이 중학교 2학년 말부터 2학년 말까지 사춘기를 겪고 지냈는데 여러분만 할 때 제일 힘든것이 뭐냐면 내가 왜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가? 차라리 발 아래 구르는 돌멩이나 길가에 피어난 풀 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가? 인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 였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한 것입니다. 문학을, 철학을, 사상을 이런것을 통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 보다는 게임 하면서 잊어 버리 더군요.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면 하늘의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 들어오면서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 앞에 있는 모든 물건들 목적없이 만들어 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놓고 사용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꽂기 위해서 성경책 사이에 꽂아서 페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것은 입술을 닦기 위해서 물을 담기 위해서 이것은 벽을 가리기 위해서 어느것 하나도 목적이 없이 창조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이 더군다나 인간같이 정교한 이 피조물을 창조 하셔서 당신의 영혼의 형상을 닮게 하셨을 때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럼 그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혼을 주셔서 하나님과 사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죄가 밀려 들어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막힙니다. 그래서 이것은 영원한 방법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씩 자기의 죄를 위해서 애꿋게 죽어가는 그 수많은 피흘린 짐승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이 모든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 그리고 죄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구세주가 이세상에 오셔서 이 희생의 어린양처럼 죽어갈 것이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땅에 자기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옷을 입으셔서 이세상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원래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데 불구하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세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두가지 때문 이었습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에게 사랑하신다고 말씀 하시지만 그것은 모두 말로 들려오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옷을 입고 이세상에 내려 오셔서 33년 동안을 사셨습니다. 사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생애는 가난하고 병든자들과 함께 하시고 외로운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고통받는 자들의 이웃이 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면서 사신 생애 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 하실때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 오심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섬기실 때 그때 모든 사람들 중에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찬송)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이 지금 엄마 아빠가 있는 따뜻한 가정을 버리고 따끈따끈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는 곳을 다 버리고 이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들이 사는 빈민굴에 들어 가라고 한다면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인간이 있던 곳에서 인간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이 아니라 참 하나님 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셨다”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 오셔서 자신의 온 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고통하는 자를 끌어 안고 눈물을 흘리시는 그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는것을 예전에는 말로만 들었지만 이제는 눈으로 선명하게 보게 된 것입니다. 그 기록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지금 다시 그 성경을 풀어 설명하면 다시 생생하게 이천년전의 이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멸시와 욕을 당하며 사셨던 예수님 그분이 생생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분이 하나님의 사신으로 이세상에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내려오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일입니다. 회심은 그 사랑이 생겨나게 만들어 줍니다.
또 한가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죽으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 이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어야지만 죽을 수 있었습니다. 짐승이 죽지 않고는 하나님께 제사가 바쳐질 수 없고 제사가 바쳐지지 아니하고는 죄의 용서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세상에 내려 오셨습니다. 처음 아담이 죄를 지을 때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죄를 용서 받게 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사람만이 이 죄를 위해 희생의 제물로 죽을수 있었는데 아담이 죄를 짓고 난 다음부터는 이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 중에는 누구도 죄 없는 인간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죄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 아래서 태어났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몸이 아닌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셔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세상에 태어 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 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의 몸에서 태어 나실 수 밖에 없었고 죄는 없으셔야 했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 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서 동정녀의 몸을 빌어 성렬으로 잉태 되어져 이세상에 태어 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의 몸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33년 동안을 이세상에 사셔셨는데 그 생애 전체는 멸시와 욕을 당하신 생애 였습니다. 예수님이 이세상에 내려 오신것은 당신이 창조하신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손님처럼 취급했고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가의 백성들에게 영접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멸시와 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33년 동안을 사시면서 인간이 겪는 죄는 없으시지만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과 괴로움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죄인들이 어떠한 인간들인지를 사랑으로 충분히 이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는 이땅에 있는 우리같은 인간들, 죄 때문에 창조의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져서 고통속에 사는 죽음아래 있는 인간들을 향한 눈물로 가득찬 세월을 예수님이 일생동안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이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라고하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 공로 없이 구원을 주시기로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실 수 없는 심판하셔야 할 하나님의 의로움과 그 십자가의 공로을 통해서 자기의 모든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 사랑이 도화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로움과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입맞추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세상에 내려 오신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놀라운 지혜를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계획을 다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멸시와 욕을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죽으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당신은 죽으러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엉터리 같은 재판의 결과를 감당하고 죽으러 스스로 올라 가시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당시에 있던 로마의 관습을 따라서 두가지 규례를 행하여지만 십자가를 지실 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은 죽도록 채찍에 맞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가 매달릴 나무 십자가는 스스로 지고 형장까지 끌려 가는것이 바로 인간들이 하여야 할 일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형 언도를 받으신 후에 간악한 로마 병정들과 그리고 유대인들의 손에 이끌려 브라이도리온이라고 하는 왕궁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셨고 그 왕궁 수비대가 있는곳에 끌려 가셔서 거기에서 옷을 모두 벗기시고 그리고 심한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신약시대 채찍에 대해 연구하던 사람들에 의하면 그 당시에 유행하던 채찍에 의하면 말 채찍처럼 기다랗게 되어있는 외가닥의 채찍이 아니라 아홉가닥으로 되어있고 그 끝에는 뼈나 금속으로 깍은 고리 같은것이 달려 있어서 벗은 죄수의 몸에 후려치면 살점이 후두득 떨어지는 그런 무서운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예수님이 맞으신 그 채찍도 그런 채찍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죄수들은 종종 십자가를 지기전에 채찍에 맞아 절명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몸을 다 벗기우시고 그리고 그는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온 몸이 그 채찍을 맞으시고 그리고 유혈이 낭자하게 되셨을 때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워서 왕의 흉내를 내게 하셨는데 그 가시관은 팔레스타인에서 나는 길이 7cm 이상의 험한 가시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서 씌웠고 그 가시들은 모두 예수님의 머리에 박혀서 이마와 뺨에 온통 흘러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벗으신 몸으로 채찍을 맞아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몸에 붉은 보자기를 둘렀고 그리고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 들렸으니 이는 마치 황금의 홀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붉은 제복의 옷을 입은 이땅의 임금들을 흉내낸 그러한 모욕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고 침뱉고 주먹으로 치고 돌을 던졌습니다. 예수님이 일생을 사시면서 무슨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그분이 이세상에 오셔서 하신일은 우리같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 갈 수 없는 비참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 오신것 사시는 33년 동안의 생애동안 멸시와 욕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밖에는 예수님에게 별다른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처절하게 박해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규례인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야하는 일을 치루셨습니다. 120kg에서 150kg에 이르는 매우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예수님의 어깨위에 짊어지게 하시고 채찍을 휘들러 예수님을 재촉해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이었습니다.
(찬송) 멸시와 욕 가시관 쓰셨네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고 계셨습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골고다 언덕으로 함께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올라간 사람들을 두종류로 구분을 하고 있는데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들 이었습니다. 백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했더니 우리가 읽은 그 성경 본문후를 보니까 구경하러 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를 구경하던 자들도 돌아가고 백성은 서서 구경하고 이사람들은 모두 구경하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피투성이가 된채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때문 이었습니까? 그분이 이세상에 오셔서 누구의 물질을 취하거나 누구를 괴롭게 하거나 누구에게 고통을 주신일이 있습니까? 무지한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에게 기도하여 그 병들을 고치시고 주린자에게 물고기와 보리떡으로 먹이시고 외롭고 소외된 자들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리고 그들이 고통 받을때에 주님이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당신의 온 생애는 그 불쌍한 인간들을 향한 사랑과 자비에 넘치는 생애였고 예수님의 귀하신 몸은 그 인간들의 생명을 위해서 제공된 소모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것 아무것도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사랑하셨고 그리고 자기의 생명을 다 드리며 섬기신 일생을 사셨습니다. 그렇게 고난과 시련의 일생을 가다가 마지막에 남은 것이라고는 자기의 육신밖에 없는데 이것을 하나님 앞에 바쳐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말합니다. 사랑이 여기에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한 화목재물로 주셨습니다. 이 백성들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교회에 안다니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고는 있지만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유대인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과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법도에 대해서 잘 배우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벳사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수 많은 사람들을 먹일 때 박수 갈채 보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을 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심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시는데도 구경하며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또 한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조금 긴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중에는 멀리 갈릴리로부터 내려온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도다 언덕으로 사형 당하러 올라 간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 앞에 모두 나왔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백성들이 예수님 뒤를 따라 간것과는 다른 태도로 따라 갔습니다.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백성들은 구경하며 따라 갔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여자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따라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 그것은 이 여자들의 마음속에는 백성들의 가슴에 없던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인격적인 사랑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피투성이가 된채 이끌려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경하며 따라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소리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이분은 이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나쁜일을 하신것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들은 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합니까? 이분이 오셔서 죽은 내 동생을 살려 주고 죄 가운데 빠져 있는 나를 용서해 주시고 귀신들린 나를 건져 주시고 질병 속에서 고통 받는 나를 해방 시켜 주시고 굶주린 나를 먹이고 목마른 나를 마시게 하셨습니다.
(찬송) 나를 위해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시니 누구의 죄값인가 어린양 보혈의 피 어이해 흘렸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을 누구의 죄값인가 예수 예수 나의 죄를 대속하신 주 마지막 피 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여자들은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 이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버림받은 비천한 죄인들 이었지만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보혈의 십자가를 지고 나타 나셨을 때에 고난 받으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이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사랑 하십니까? 회심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좋게 생각하는것 교회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습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를 위해 멸시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고난을 당하셨을까요? 최근에 우리 교회에서 4살, 5살된 아이들이 회심하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위해 지신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천천히 가르쳐 줄 때 불과 다섯 살 밖에 안된 아이들이 큰 소리로 울면서 예수님이 자기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회심한 사람은 3살, 4살 밖에 안되어도 그 안에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있습니다. 왜 나같은 인간을 위해서 흠없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을까?
(예화) 1904년에서 1906년 사이에 인도 카아시 지방에서 부흥이 일어났을 때 일 이었습니다. 선교사가 가 동네에 들어가 보니까 어른들은 다 예배하러가서 없고 조그만 아이들이 골목마다 모여서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다가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왜 우니? 엄마가 버려두고 예배당 가서 우니?” 아이들이 더 서럽게 울면서 그중에 6살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우리가 그래서 우는것이 아니에요.” “그럼 왜 우니?”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그렇게 많이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으니 그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기안에 예수 사랑이 없는 것에 대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회심했습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 보십시요? 정말 거듭 났습니까? 여러분이 나이가 어려도 정말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신 그 고난이 바로 나 같은 이 죄인이 지은 모든 죄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라고 하는 애통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찬송)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큰 은혜 받으셨나
깊이 그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까? 브라이도리온에서 피투성이가 된채 십자가를 지고 내동댕이 치듯이 골고다에 올라 가는 길에 예수님 끌려 나오셨을 때 여인들은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 한모금 마셔 드리고 싶어 했지만 악한 로마의 병정들이 그것을 허락했을리가 없습니다. 골고다 언덕이 가까워 오자 흐느끼던 여인들의 웃음 소리는 피어린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여인들이 그렇게 목놓아 울며 우리 예수님을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에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에수님은 그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병든자를 어루 만지고 주린자에게 보리떡을 먹이시던 물고기를 떼어 먹이시던 그분의 손에 굵은 못을 박았습니다. 갈릴리로 사마리아로 유대로 불쌍한 죄인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찿아 가시던 예수님의 그 발에 사람들은 못 박았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예수님을 그 십자가에 못 박는 소리가 들려 오지 않습니까?
(찬송) 망치 소리 내 마음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결국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 못 박히셔 우리 모든 죄를 위해 우리 대신 하나님 아버지의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한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렇게 죽은 예수 그리스도도 충분하지 않아서 간악한 병정들은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넣었고 그 창은 옆구리를 지나 허파를 뚫고 그리고 예수님의 심장을 터뜨렸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이던 제자 요한이 그분의 옆구리에 흐르는 물과 피를 보았다고 한 그것이 바로 이렇게 해서 흘러나온 물과 피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나온 그 모든 물과 피 쏟으신 예수님의 그 보혈 깨뜨려진 그 분의 옥채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막고 있던 이 죄의 담장은 무너지고 단절의 휘장은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핏길을 걸어서 아무 공로 없이 맨발로 그 찢어진 휘장 사이로 난 핏길을 걸어서 보좌 앞에 이르는 새롭고 산 핏길을 걸어서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고백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흉한 고난을 당하신 그 쓰라린 고난이 바로 내가 당하여야 할 그 고난을 대신해서 치루신 그 고난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은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한번 정직하게 생각해 보세요. 주님의 고난 때문에 가슴이 저미도록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여러분들은 구경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슬리퍼에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팝콘을 먹으면서 혹은 껌을 씹으면서 친구들과 농담을 하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이었음을 깊이 꺠닫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세상에서 하나님 사랑하지 않고 살았던 모든 것들을 회개하고 예수님 붙들고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서 열려진 하늘로부터 끊없는 양식을 공급 받으면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