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속과 회복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녹취자: 변상윤
8장 구속과 회복입니다. 이제 어려운 주제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한 절을, 로마서 3장 26절 읽을 테니까 여러분들은 12절을 읽으십시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영접하는 자 곹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구원의 실재가 무엇이냐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삼각형으로 이해를 하면 아주 좋습니다. 우리가 책을 10권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외우는 것이 굉장히 좋고 100권을 제대로 읽으려면 사실은 한 권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골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백 권 읽은 것들이 다 생각이 나면서 거기 가서 살이 달라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관해서 구원이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할 때 사람마다 그때마다 다양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실재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 결국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변화가 왔나 그것입니다. 그것을 삼각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칭의라고 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죠? 그 다음에 불화하던 사이가 화목하게 됐으니까 화목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녀가 되었다고 그러는데 양자라고 부릅니다. 양자 혹은 수양이라고도 부릅니다. 수양을 이렇게(收養) 씁니다. 입양한다고 할 때 그렇게 입양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양자 아시죠? 남의 집 자식인데 자기 집안으로 데려오는 것이 양자입니다. 크게 구원의 실재는 칭의, 화목, 양자 이 삼각형을 외우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의 실재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법적으로는 의롭게 되는 것이고, 칭의, 그다음에 신분에 있어서는 양자가 되는 것이고 실재적으로는 화목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삼각형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제일 먼저 이 왼쪽 그림에 있는 시계 방향으로 여기서부터 이렇게 설명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화목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맨 위에 구절을 읽어봅시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다음에 두 번째도 같이 읽어봅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화목을 이야기하기 전에 무엇을 먼저 이야기했냐면 화목하게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이 관계가 이렇게 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불화라고 부릅니다. 그 관계가 깨어진 것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부부 싸움해본 사람은 너무 잘 압니다. 한번 대판거리 싸우고 나서 이대로 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혼할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고 어떻게든지 이것을 좀 풀어야 되겠는데 원하기는 저쪽에서 먼저 "여보 내가 그날 정말 미안했어." 이러고 싶은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대략 난감합니다. 그렇죠? 그냥 어느 한쪽이 져줘야 되는데 어쨌든 그것은 그때 여러분들 마음이고 어쨌든 불화가 무엇인지 이제 알게 됩니다. 그렇죠?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우리가 아내나 남편과 싸워봐야 사실 그렇게 많이 불편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밥 안 차려주면 가서 해장국 집에 가서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렇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 불화로 말미암아 결국은 죄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죄이고, 결국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이 모든 관계가 다 파괴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은 고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완전히 다 포위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원수, 사람도 원수, 자기 자신도 자기 자신을 용납을 못해, 자연도 자기를 대적하는 세력이 된 것입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마지막 결과물이 고립입니다. 고립. 이런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이 화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이 모든 방면의 것들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화목에 대한, 소위 이야기 하는 이니시에이티브, 주도권입니다, 주도권을 인간이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는데도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 줄 모르니까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이때 사랑이 진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진짜 원조 사랑이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거다,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냐 하면 화목 제물로 아들을 보내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적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위에 진노를 쏟아부으신 것입니다. 이러면서 소위 유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화와 속상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화목은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속을 통해서 이루어진 화목은 성화를 통해서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자녀의 참척의 문제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굉장히 불편해하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불편해할 것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해서, 사실에 입각해서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끊임없는 성화 생활을 함으로써 처음의 자녀의 영혼에 대한 그런 사랑들을 유지해야 되듯이 하나님과의 화목도 그렇게 해서 유지되어야 하고 범사에 순종하며 살려는 신령한 소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칭의입니다. 칭의는 법정적인 것입니다. 죄인인데 사면을 통해서 더 이상 이 사람이 문제가 없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백화점에 가면 100만 원 써붙여 놓고 빨간 줄로 찍찍 긋고 70만 원 이렇게 써놓은 것이 있습니다. 무효가 된 것이 빨간 줄 그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이것이 옛날에 100만 원이었다는 표가 납니다. 그런데 이 칭의에는 그런 표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이 사람은 의롭다 이렇게 칭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의롭다고 하는 것, 이것만 설명하려고 해도 몇 시간을 설명해야 하지만 그 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염려에 관하여」에서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꽤 길게 할애를 해서. 그리고 그것이 사랑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가서 다시 한 번 복습을 해보십시요. 여러분 구역원들에게 잘 가르쳐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의가 있는데 이 의롭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다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속성적인 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로서의 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혹은 공의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공의라고도 하는데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은 당신이 올바르다고 세워놓은 그것을 그대로 이루시려는 속성을 가지고 계셔서 휘지 않는 법으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사람들이 그것을 어기면 스스로 거기에 그 법에 부딪혀서 사람들이 다치는 것입니다. 굳이 하나님이 후려 패지 않으셔도 법을 만들어 놓고 그 법에서 멀어지면 사람들이 다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 몸도 마찬가지인데 그런 원칙이 있습니다. 적정량을 먹고 적정량의 운동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서의 법칙을 깨뜨리고 전혀 운동 안 하고 마구 퍼먹고 자고 싶은데 자고 안 자고 싶은데 밤 새워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이렇게 하면 사람의 몸이 건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굳이 후려치셔서가 아니라, 증벌을 내리셔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이 있듯이 도덕의 법칙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도 그래도 양심의 빛을 따라서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교적 마음이 편하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다음에 율법적 의인 율법을 지킴으로써 얻는 의입니다. 이것은 이미 인간에게 성취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어서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에 복음적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획득된 믿음으로 획득되는 의인데 이것은 가능하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칭의를 내리실 때 그럼 무엇을 칭의를 하시는 것입니까? 따라 읽읍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의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언입니다. 이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공짜이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한쪽의 측면에서 보면 용서해 주시고, 한쪽의 측면에서는 당연히 여기 우리 죄인이었습니다, 그렇죠? 죄인을 아들로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칭의가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칭의, 용서를 통해서 화목을 이루니까 의롭다, 용서를 해준다는 것은 어디까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내가 이 T제로라는 시점에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T제로) 여기는 현재고 (T제로 이전) 여기는 과거겠습니다. 그렇죠? (T제로 이후) 여기는 미래일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용서해 주셨다라고 하는 의미가 여기 (현재인) A도 아니고, (과거인) AB도 아니고, (미래인) AC도 아닙니다. A, B, C,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것들을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굳이 회개하지 않았어도,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우리가 지은 죄를 모두 기억합니까? 기억하는 죄를 모두 회개합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사람은 의롭다, 더 이상 이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에 대해 거론하지 말라, 이 사람은 이제 죄가 없는 것으로 친다"라는 것이 칭의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칭의를 받은 사람은 다시는 정죄의 형벌이 없는데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들이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지은 죄가 이미 용서받은 죄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아무런 간섭 없이 내버려 두면 어떤 결과가 오겠습니까?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니까, 칭의 되었으니까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칭의 방종주의를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논쟁이 많습니다. 한국 교회가 칭의 때문에 망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칭의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칭의를 바르게 가르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면, 용서를 받았으면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용서받은 사람의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현재적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두 가지입니다. 나의 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대비, 나의 악함과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대비, 그리고 나의 범죄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대비가 그것입니다. 그 의식 속에서 살 때 그때 자기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칭의를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칭의를 좀 더 설명하자면 이렇게 철장 속에 갇혀 있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칭의의 근거가 나 자신이라면 이것은 확고하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자신이 수시로 흔들리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칭의의 근거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심지어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를 우리가 전가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시니까 이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입니다. 이 칭의의 효력은 믿음을 통해서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을 통해 획득한 완전한 의인데 그 칭의가 나에게 효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믿음을 통해 그 칭의가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결국은 이렇게 의롭다 칭함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크게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나는데 첫째는 신분과 두 번째는 상태의 변화입니다. 신분은 진노의 자식,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는 것입니다. 상태는 죄에 얽매였던 자가 자유를 얻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죄로 돌아가면 다시 부자유해지는 것입니다.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고 은혜 안에 칭의와 함께 하나님이 하늘 자원을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부어주시는 은혜 안에서 살아가면 죄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할 때 그것이 완전한 자유입니다. 사실은 자기가 죽은 것이 자기 포기가 아니라 아주 참된 자기가 완벽하게 사는 비결이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라고 할 때 그것은 자기가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실재적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연합의 이유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너무너무 사랑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떠나보내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살아 있고 그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도 굳이 내가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을 초월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인간도 그런데 하물며 그 대상이 하나님인 경우에야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의 자녀됨을 읽어봅시다. 자녀됨이란?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기초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네 가지 특권이 주어집니다. 자유가 주어지고 그다음에 명분이 주어집니다. 명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입니다. 그리고 담대함이 주어집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임마누엘 사상에서 오는 담대함입니다. 놀랍게 존 오웬은 하나님의 자녀됨의 특권 중 하나를 신기하게 야단맞는 것을 들었습니다. 징계를 받는 것을. 그래서 히브리서에 나오지 않습니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니" 그래서 내놓은 자식입니다. 굳이 징계하지 않습니다. 징계를 받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라고 분류를 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참 놀랐습니다. 역시 청교도 신학자가 이런 매력이 있구나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받는 놀라운 특권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악한 길로 갈 때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셨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리실 수 있는 징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로마서 1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냥 하나님이 내버려 두셔서 마지막에 심판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 외워볼까요? 자유, 명분, 담대함, 징계. 그것을 머릿속에 외우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특권이 무엇인가?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묵상하면서 계속해서 구원의 놀라운 특권들을 생각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 자원을 회복하게 됩니다. 영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또 이것은 영적인 생명이기도 합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 그것을 누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당신의 영생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자원입니다. 땅에 속한 자원으로는 육체를 살리고 하늘에 속한 자원으로는 진리와 은혜, 사랑 같은 것으로서 우리의 영혼이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문제 1) 성경에 묘사하는 구원의 실재 세가지는 무엇입니까? 칭의, 화목, 자녀됨.
문제 2)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이며 필요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적대적이고 소원한 관계가 청산되었다. 뜨거운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거리감과 적대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화목이 필요하다
문제 3) '의'의 세 가지 의미는 무엇이며 칭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속성적 의, 율법적 의, 복음적 의.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그분의 거룩하심 때문에 그분 앞에서 심판받고 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롭다고 먼저 하나님이 칭해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칭의는 일종의 면죄부입니다. 판결을 받으면, 의롭다 무죄라고 판결을 받으면 이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해서 한 번 다스려진 것은 번복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 4. 자녀됨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부여된 특권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됨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기초로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삼. 네 가지는 자유, 명분, 담대함, 징계
문제 5. 하늘 자원의 핵심인 영생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봅시다.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아무 길이 보이지 않고 낙심하는데 기도를 간절히 하면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마음속에 놀라운 평강이 밀려오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오는 이런 것들이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 은혜, 사랑, 은혜 체험 다양한 말로 이야기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늘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번 한 주도 그렇게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