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개관 OT
녹취자: 이경순
오늘 이 시간에는 한권의 책 전체를 한 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모바일 폰들을 가지고 계시니까? 이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시고, 그것이 안 되시는 분들은 교역자에게 프린트해 달라고 해서 구역원들과 나누어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계시면 됩니다.
우선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뉩니다. 1부에는 신앙에 있어서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에 대해 세 과에 걸쳐서 공부를 하고, 4장부터 10장까지 일곱 과는 신자와 기도생활을 이야기하면서 기도생활이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들이 기도생활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문제들을 공부하게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시면 우선 제일 먼저 다루는 것이 결국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핵심을 이야기하면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신앙을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광야에서 뱀이 지팡이 막대 끝에 매달린 것처럼 인자도 매달려야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구약의 백성들이 이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것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연결 지으십니다.
이 사건은 구약의 광야시대 때에 있었던 불 뱀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게 물렸습니다. 이 불 뱀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뱀이 불같이 붉은색이라서 불 뱀이라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뱀에 물렸을 때 열기와 통증이 독소를 통해서 번지는데 그 느낌이 불에 삼키는 것과 같다고 해서 불 뱀 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불 뱀을 보지 못했으니 알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러했습니다. 이는 당연히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독소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그때에 모세가 지팡이 끝에 구리 뱀을 매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은 살리라고 공포합니다. 그것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본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병원 앰뷸런스를 보면 뱀 표시가 있는데 성경에 나온 기사에 기초하는 것으로 ‘치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뱀이 치료를 한다기보다는 그렇게 불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 받을 길을 그런 식으로 여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 물렸을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세가 들었던 그 지팡이 끝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았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 뱀에 물려서 죽어 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계속 죽어갑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가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고 하셨기에 그냥 바라보거나 쳐다보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고 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만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리 뱀에서 무슨 신기한 능력이 나온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가장 훌륭한 표가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1과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이 훨씬 더 커지게 되고 그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것만큼 의지합니다. 이것이 1과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기도는 신앙의 뿌리다
두 번째는 기도는 신앙의 뿌리다. 나무가 서있다면 당연히 그 나무는 식물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나무높이에 맞먹는 뿌리가 퍼져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큰 나무가 바람이 많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안 흔들리는 게 아니라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에 안 흔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계산 가다보면 메타 세과이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있습니다. 종류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자이언트라고 부릅니다. 나무가 옆으로 쓰러지면 구멍을 파고 차가 다닐 정도가 되는 그 나무가 바로 이 나무입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110미터에서 120미터까지 자라고 대부분 수령이 3천년 정도 됩니다. 수령이 3천년까지 자랄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나무가 죽을 때에는 쓰러져서 죽습니다. 들쥐들이 와서 뿌리를 파먹거나 혹은 나무 밑둥에서 불이 나서 지탱을 못하고 쓰러집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쥐가 파먹었다고 어떻게 쓰러지나 싶었는데 나무의 키가 120미터 되면 뿌리도 120미터쯤 뻗어야 되는데 자이언트 세콰이어는 6미터 정도 밖에 못 내려간다고 합니다. 어른 9명이 손으로 잡아야지 겨우 그 밑동을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이고, 나무 밑동에서 어른 30명이 수건돌리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나무입니다. 그런 정도로 큰 나무인데 뿌리는 6미터밖에 못 뻗습니다. 그러니까 쥐들이 조금만 갉아먹어도 그 큰 나무가 소리를 내면서 쓰러집니다. 쓰러지면 아무도 일으켜 세울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보세요.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성도들을 보면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속으로 ‘3년 후에 다시 보자. 3년 뒤에도 그대가 그대로 거기에 서 있나 한번 보자.’ 합니다. 처음 목회 할 때에 이런 일들을 보고 엄청나게 신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말씀에 은혜를 많이 받고 정신이 새로워진 사람들이 그 깊이만큼 기도를 끈질기게 안 하면 견고함이 없습니다. 마치 빨리 자란 나무 같습니다. 이후로 환란이 오고 어려움이 오면 툭 쓰러집니다. 육신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지성이 신령하고 영원한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호기심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렇게 살아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새로운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지금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시대이지만 예전 우리 초등학교 때에는 외국에 나가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 가는 사람도 대부분 배타고 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책이 여행기입니다. <김찬삼 세계여행기>는 전 국민의 필독서였습니다. 거기에는 수십 개 국을 다닌 이야기를 하고 있고, 라디오에 나와서 방송을 하면 사람들이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나라에 대한 관광정보를 계속 얻는다고 해도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공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무리 많이 공부를 해도 현지를 제대로 여행하고 온 사람하고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니야, 그거 잘못되었어.’하면 끝입니다. 갔다 온 사람은 그것을 직접 보았고, 이 사람은 글로만 읽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것마다 직접 방문해서 확인하고 경험한다면 세계에 대한 지식은 아주 놀랍게 성장할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뿌리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을 강하게 한다
세 번째는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시는 것은 우리의 기도제목들을 몰라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하라고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기도시키실까요?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에 기도의 제목을 안고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고 신앙의 뿌리가 깊어질 뿐 아니라 우리 영혼 자체가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입니다. 처녀 때는 목소리도 작고 교양 있었는데 결혼하고 난후 엄마들은 귀먹은 사람도 없는데 같은 소리를 내도 떠나갈 듯이 크게 말합니다. 찻집에 들어가면 아줌마 몇 명 정도만 앉아 있어도 그들이 이 가게 전체를 전세 낸 줄 압니다. 도무지 시끄러워서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소리를 질러서 그렇답니다. 연세가 많이 드셔도 아이를 안 기르신 성도님들은 목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가는 귀를 먹기 전에는 안 그렇습니다. 그뿐입니까? 아이를 기르지 않는 여성은 40이 되어도 어깨가 항상 가느다랗습니다. 그런데 애들을 기른 부모들은 알통이 나옵니다. 특히 우리 결혼하지 않은 여전도사님들이 영아부에 가면 알통 전도사가 됩니다. 일 년만 거기서 섬기면 애들을 너무 많이 안아줘서 알통이 생깁니다. 아이를 안을 때 엄마가 이 아이를 열심히 안아서 내 근육을 키워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엄마도 없고, 애를 기르면서 야단을 치면 내 목청이 트이겠지 라고 생각하는 부모도 없습니다. 자식을 기르다보니까 자연스럽게 목청도 트이고 알통도 생기고 정신적인 강인함도 생겨납니다. 이와 똑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이로 인해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외부적 작용
이제 2부의 내용으로 넘어가는데 이 기도를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누어 살펴봅니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고, 신앙의 뿌리를 견고하게 하며, 영혼이 강해지는 기도생활을 하게 하시는데 이때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의 작용들, 외부적인 작용들이 어떤 것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말씀(W)입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 결국 기도는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마음 없이 드리는 천 마디의 기도보다는 깨닫고 드리는 한마디의 간절한 기도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잘 반영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모든 것을 부모에게 받으니 돈이 필요해도 부모에게 구해야 하고, 놀러가고 싶어도 부모가 허락해야 갈 수 있고, 뭘 갖고 싶어도 부모가 사줘야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아이가 상황에 맞게 이야기 하지 않을 때에는 부모에게서 결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성적이 떨어졌다고 혼이 나는 상황인데 겨울 스키 타러 가는 이야기를 하면 야단 맞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지금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를 보여주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기도 제목만 가지고 기도하는 아니라 말씀을 깨달으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를 배워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R)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기도를 가로막는 결국 죄입니다. 회개하면서 그것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안에 소화되지 않은 것들이 있으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소화제를 먹어서 빨리 해결을 하여 배변을 해버리든지 아니면 토해내든지 해야 시원해집니다. 마찬가지로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적성숙(M)입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와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성숙시키십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외부적으로 다양한 환경과 만나게 됩니다. 기도의 외적인 작용들입니다.
첫째가 순종(順)입니다. 기도가 힘 있게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나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다왔느냐가 기도를 좌우하고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의해서 삶이 결정됩니다. 사는 것이 기도를 결정하는 이유는 마음의 초점과 그 기도가 맞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려고 애쓰다가 온 사람에게는 가족구원을 위한 기도가 더 간절해집니다. 그리고 기도한 만큼 살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기도 속에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기적을 보면서 삽니다.
둘째는 고난(苦)입니다. 여기에는 굉장히 큰 신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꽃길만 걸은 사람들을 신앙적인 위인으로 만드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꽃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길이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한번 걸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드러내놓고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극장입니다. 고난의 극장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극복하면서 기도생활을 이어갈 것인가, 그리고 이런 고난을 당할 때 기도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은혜로 작용하는지를 다룹니다.
셋째는 성령(聖)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냉랭한 이유는 성령님이 함께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절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능력으로 불붙을 때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주님은 성령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능력 있게 하는데 그런 성령에 충만함이 필요한데 그러한 성령의 충만함을 인격적인 접근으로 구해야한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가장 좋은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줄을 믿고 그래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누가 떡을 달라는 자녀에게 돌을 생선을 달라면 자녀에게 전갈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하면서 결국은 하나님 앞에 삶 전체로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교회(敎)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변화되고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서 그래서 우리의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좁게 봐서 결국은 모든 기도의 제목이 자기의 문제해결에만 급급하지만 진짜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성령을 체험하고 말씀을 깨달으면 그 기도는 점점 더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물론이고 교회 선교지 세계 그리고 아직까지도 믿지 아니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백성들을 놓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개인의 문제에서 시작했던 그러한 기도의 출발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데 이렇게 이바지하도록 확장된 기도를 드려서 우리의 기도와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데 이바지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고 살아갈 때 신자는 잠시 살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를 이루는 도구가 되고 세상에서는 많은 환란과 시련이 있어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한권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