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는 나의 하나님
녹취자 : 오희열
문제 1번 읽겠습니다.
문제 1)하나님께서는 우주의 가장 거대한 별에게도, 어마어마한 시간을 견디어 온 그 무엇에게도 맡기지 않은 일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사람과 사람이 갖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고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너무 유명한 얘기지만 하버드 대학에서 실시했던 “행복 리서치”가 있었습니다. 설교 시간에도 한 번 이야기했는데 하버드 졸업생들 860여명을 대상으로 불행한 사람과 행복해진 사람들이 어떤 요인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도달할 결론이 돈이 아니고 지위가 아니고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피투성이가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그렇게 피 흘리게 만드는 것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돈? 관계가 잘되면 돈도 왔다 갔다 합니다. 자기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도 빌려 줍니다. 관계가 깨어지면 그것도 안 옵니다. 물론 돈이 없는 사람들 모두 관계가 망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과 관계를 가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인생에 남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진정한 삶입니다.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 모르는 것입니다.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표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더구나 치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영혼을 주셨습니다.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관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와 가장 유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고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자식을 낳습니다. 그러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이 사랑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인류가 번성하였을 때 그 모든 인류가 그렇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가 보면 제일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족관계들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의 성패는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사느냐 인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모든 사람들은 불행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오래전에 읽은 자료를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리학과 실존철학의 관계를 규명한 것입니다. 실존주의는 대충 무엇인지 아실 것입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십시오. 그렇게 극단적인 모든 신과 인간의 관계를 끊고 인간을 철저하게 외톨박이요 우연성의 존재라고 규정을 했던 실존주의 철학자들 가운데 3/4 정도는 결손가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무에게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하면서 도대체 나와 네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근본적으로 회의를 품은 시기를 거치면서 그런 사유들이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구체적인 통계까지 나와 있는 책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아서 며칠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었고 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한 사람이 자라는 환경이 그 사람의 사상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입니다. 히틀러 같은 사람도 열여섯 살 때 쯤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여자를 유대인이 강탈했고 돈과 힘으로 짓누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여기가 바로 미래의 우리 자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서 자라야 할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더 할 얘기가 많지만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번 읽겠습니다.
문제 2)성경이 모든 피조물 중 최고의 작품인 인간을 양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특히 이스라엘을 양에 비유하십니다. 그런데 말씀드렸지만 양은 사실 우리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는 매우 긍정적이기만 한 짐승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양띠입니다. 여기 양띠 많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문맥에서 양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양에 비유하시는 이유는 양은 인간의 돌봄을 받으며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양에 비유하시면서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인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사는 것은 개가 사는 것보다 힘들 때가 많은 것입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합니다. 잘 먹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담벼락 아래에서 배를 쫙 깔고 누우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우리 인간에게서는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그렇게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그렇게 고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오히려 혼자 살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천재들 중에는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정신을 꺼야 행복합니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가 너무 아는 게 많으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뭔가 좀 몰라야 합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것도 좀 주워 먹이고 위생관념도 조금 부족하고 뭐 사달라고 하면 사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가끔 속아주기도 하고 그래야 아이들이 불행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너무 탁월한 교육자여서 아이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으면 아이는 불행한 것입니다. 가끔 거짓말도 좀 해서 한 만원 더 받아가고 그럴 수 있어야 아이들이 행복하고 사회성도 자라는데 학교에 뭐 가져오라고 하면 “그걸 학교에서 왜 가져오라고 해? 영수증 가져와봐!” 하며 거울같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모르는 척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천재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고등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민들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이유는 우리들이 느끼는 행복의 이유와 좀 다를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수학의 난제를 풀었을 때 희열에 복받치고,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면 정말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람들로 보이면서 대화가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약간 괴팍하고 기이한 성격을 보이는 것도 우리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재는 아니지만 그런 천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회가 발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돼지보다 불만족할 때가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을 다스리면서도 인간은 하나님을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정신세계의 복잡성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면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작은 체액하나가 분비되지 않을 때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이상상태에 접어들게 되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고등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해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3번 읽겠습니다.
문제 3)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무한한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을야기한 두 가지 요소에 대해서 설명해 봅시다.
우선 우리가 앞에서 배운 대로 보자면 두 가지입니다. 존재적 격차, 그는 무한하시고 우리는 유한하고,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고, 그리고 도덕적 격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사랑은 비교될 수 없는 완전한 사랑이고 우리는 낮은 사랑이고 불완전한 사랑이고 사랑하지만 이 사랑의 방향이 수시로 빗나갈 때가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발견해야 합니다. 더욱이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 안에 인간은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경험하는 빛이 있는 빛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들리는 것이 있는 모든 소리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감지하는 빛이 있는 모든 빛의 전부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고 나와서 썰렁하게 “이게 뭐지?”했답니다. 너무나 우리에게 익숙해진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만날 수가 있는지에 의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열고 보면 이해 못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거기에 묶여 있는 우리가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4번 읽겠습니다.
문제 4)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본문에서 이 복음이 말 그래도 기쁜 소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여러분, 기쁜 소식이 어떤 것입니까?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이 와서 하는 말이, “우리 회사가 금년에 대박을 쳐서 내일 회사에서 1200% 보너스를 쏴 준대!” 하면 아내인 여러분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1200%. “좋아요.”는 그저 100% 줄때 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대만에 갔더니 한참 경기가 좋을 때 어떤 회사에서 2300%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계산을 해보니까 답이 안 나옵니다. 한 300만원 받는 사람에게 12월에 7000만원을 쏴 주는 것입니다. 그런 회사 다니시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없습니까? 그런게 기쁜 소식 아니겠습니까? 남편이 맨날 말단에 있었는데 승진했다거나 하면 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대학을 갈까 말까 했는데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처럼 그렇게 웃으시면 기적을 보기 힘듭니다.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죄의 권세에 이렇게 매여 있습니다. 매여 사는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그것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죄에 매여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죄에 매여 산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가져다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과 사랑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사랑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여기 너무 과장해서 그림을 그려서 해골까지 놓았는데 사실 이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기력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TV에서 드라마를 보시면 막장드라마가 전개됩니다. 아귀다툼을 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도 잠깐 뉴스를 보니까 아시아나 항공기 조종실에서 기장과 부기장이 멱살을 잡고 대판걸이 싸우는 바람에 씩씩 거리면서 비행기를 운전했고 그래서 비행기 이륙도 늦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조종사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웠는지 궁금하지만 그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생명과 사랑의 부족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힘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범죄 한 다음에 인간이 겪어야 했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이렇게 인간에게 부어지던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의 단절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타락하면서 미친 듯이 물질주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물론 물질의 자원, 지상의 자원과 천상의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도 과일을 먹었습니다. 천상의 자원과 지상의 자원이 모두 필요합니다. 이것을 공정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데 영적인 자원은 이미 끊어졌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미친 듯이 육적인 자원에 탐닉하게 되고 그 탐닉을 하면서 이 지상적인 자원의 크기에 의해서 인간에게 주종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지상적인 자원을 끌어 모으는 것이 사람을 지배하고 짓밟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박대통령의 소신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권력을 국민이 모든 나라를 질서 있게 다스리라고 맡겼는데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그렇게 사용하라고 백성들이 맡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사람을 지배하던 사람들의 결과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줍니다.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자원은 그런 식으로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물질을 모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사는 데 기여하게 해야지, 그 자원들이 누군가를 종으로 만들고 그들을 짓밟고 지배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은 이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이런 생명과 사랑이 단절된 가운데,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자원들이 모두 끊어진 상태에서 이 지상의 자원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그 자원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보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에 가는 기차를 개발하는 연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부산에서 1부 예배 설교를 하고 올라와서 2부 예배를 해도 되는 것입니다. 열린교회를 부산에 하나 개척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뭔가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롭고 고통 받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아파하는 이런 것들을 빠른 교통수단이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렇게 물질문명에 매몰되면서 사람들의 관계가 더 끊어지고 서로 외로운 존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가족과는 대화를 나눌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꾸 말을 해도 대답을 안 하더랍니다. 하도 답답해서 핸드폰을 꺼내서 “너 왜 대답 안 하냐?” 하고 문자를 했더니 아들이 그 답을 문자로 보내더랍니다. “아빠, 내가 기분이 좀 나빠. 말할 기분이 아니야.” 아니,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면 되지 문자를 해야만 답을 합니까? 이런 것들이 오늘날 인간관계에 단절 현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문명은 너무 찰싹 붙어서 모든 것을 빨아먹고 거기에 붙어서 모든 것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메노나이트(Mennonites)처럼 모든 것을 단절하고 원시시대처럼 살아가는 것도 안 되겠지만 일정한 거리를 가지면서, 자기 자신을 상실할 정도까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생명과 사랑이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생명과 사랑을 교회에 부어주시고 교회 속에서 한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이 교회에 접붙여지면서 이 생명과 사랑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현실과 마주설 수 있는 용기와 힘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제입니다. 읽겠습니다.
문제5)인격적인 신앙은 지성의 설복과 의지의 감화로 구성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지성의 설복과 의지의 감화를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 이 둘을 통합시켜 인격적인 승복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성으로 설복하고 의지에 감화를 주십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는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지성은 설복되고 의지는 감화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 기도제목입니다.
조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거룩함.
순원들이 은혜를 받도록, 구역원들의 은혜.
구역원들이 하나되도록, 하나됨.
세 가지를 위해서 같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