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심은
녹취자 : 오희열
1과 2과에서는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살펴보았다면 3과에서는 그 포커스가 인간으로 넘어옵니다.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문제 1번, 읽겠습니다.
문제1)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드신 것은 인간에게 기대하신 삶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목적 없이 만든 것은 없습니다. A를 만들려다가 잘못해서 B가 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인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수집에서 국수를 치대는 아저씨가 정신줄을 놓다가 거기에 어떤 원료를 잘못 배합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수를 뽑아서 말리고 났더니 고무줄처럼 질긴 국수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못 쓸 것 같아서 삶아서 먹어보니까 못 먹을 것 같아서 이웃에게 나눠주었더니 사람들이 고추장도 넣고 후춧가루도 넣고 이것저것 무쳤더니 쫄면이 된 것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떡볶이가 우리나라에 나온 것이 한 6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당동에 있던 할머니가 흰떡을 꺼내서 볶아서 파는데 잘못해서 고추장 독에 빠졌습니다. 그것을 물로 씻어내자니 고추장이 너무 아까워서 그대로 볶아보았는데 그게 떡볶이가 된 것입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심장병에 도움을 주는 약을 만들었는데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서 온 동네에 나누어 주었더니 효과가 없다는 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약을 모두 회수하라고 했는데 약이 파란 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회수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발기부전 치료제로 최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비아그라인데 비아그라 파란 알약 하나로 1년에 2조원을 벌고 있다고 하니까 그 로열티가 50년인지 10년인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상상을 할 수 없습니다. 그 한 알의 원가는 제가 보기에 2원, 3원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1만 원씩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이 실수를 해서 A라는 목적을 향해서 만들었는데 B가 툭 튀어나올 수 있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물건 가운데 목적이 없이 괜히 만들어진 물건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예술작품은 목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은 보고 뭔가를 생각하고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제가 충고하고 싶은 얘기가, 남편이 꽃을 사다주면 그것은 사실 큰마음을 먹고 사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핀잔을 줍니다. “꽃을 뭐 하러 사오느냐 돈 아깝게, 먹지도 못하는 것을…” 꼭 뒤에 “먹지도 못하는 것”이라고 붙입니다. 아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이야기를 합니까? 한 15년 전에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그냥 마음이 애틋해서 꽃 파는 트럭이 와 있기에 장미꽃 한 서너 다발만 달라고 했더니 이 친구가 실실 웃으면서 “아저씨, 뭘 잘못했어요?” 합니다. 그렇게 살지 맙시다. 꽃은 무슨 생산품이 아니라 보고 즐거워하는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언젠가 한 번 깊은 산 속을 차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거기는 진짜 사람이 가지도 않는 곳이었습니다. 거기 피어있는 들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들은 왜 태어났을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꽃이 피고 잎이 피어도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을 텐데…’ 그런데 내가 가니까 꽃들이 막 손을 흔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큰 깨달음이 팍! 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이 보신다!’ 이 생각을 하니까 참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가!’, ‘그 깊은 산속에 피고 지는 꽃들이 있는 것, 인간에 의해 촬영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가! 아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낱 오늘 피었다가 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목적이 있으셔서 만드셨고 머리가 그렇게 탁월하지 못한 인간도 물건을 만들 때 어떤 목적이 있어서 만들었다면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하면서 구원해 주실 인간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이 뜻과 목적이 없이 사람을 만드셨을 리가 있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십니다. 창조입니다. 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있을 것이고,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면 좋겠다.’하는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이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가 있어서 생겨나게 하셨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장애인이나 그런 사람을 보면서도 항상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목적이 있어서 다 만드신 것입니다. 여기는 A였지만 B로 바꿔놓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만드신 목적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고 인류사회의 조화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향해서 어떤 뜻이 계셔서 인간을 만드셨지 않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세계가 있습니다. 이 세계를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듯이 인간들이 자연세계를 파괴합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것입니다. 환경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원을 낭비하는 일들에 대해서 생태학적인 면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시길,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세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이것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겠는가 하는 것을 함께 생각하며 살도록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크게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이것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 방황하고 고통을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것에 대한 가장 최종적인 답을 인간에게 주는 종교라는 점에서 깊은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세상 속에는 인류와 자연세계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하셔서 인간을 여기에 살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은 인간이 막 짓밟으면서 자기 행복을 위해서 소모품처럼 쓰라고만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은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산속에 있는 들풀, 그게 거기 피어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자연 사물들은 인간이 이득을 얻기 위해서 막 짓밟고 파괴해도 좋은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과 함께 공생하면서 똑같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동지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들을 행복하게 여기고 잘 가꾸면서 자기 자신도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그러한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고 우리들은 자녀들을 그런 식으로 자연에 대해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MB정권에서 추진했던 4대강 개발이라든지 소수의 재벌들을 위해서 자연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법률을 완화하면서 엄청난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익이 국민전체로 돌아가지 않고 소수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 나쁜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린 화이트(Lynn White Jr.)라는 사람이 1960년대에 아주 중요한 논문을 하나 발표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시면 그 사람이 발표한 논문(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이 나옵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지구가 오염되고 황폐하게 된 것은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가부장적인 자세로 이 자연에 접근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2차 산업의 발달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유물이기 때문에 얼마든 파괴하고 정복하면서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을 유포시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 논문을 저도 읽어보았는데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상당부분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런 점에서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도덕적인 뜻들을 구현하고 여기에는 자연적인 뜻들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에 어마어마한 식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것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제 한 번 신문에서 읽었는데 햄버거 가게에서 사용하는 닭고기들, 이런 것들이 거의 닭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 털을 뽑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통을 주고 좁은 장소에 모아 놓고 살찌는 사료, 사람들이 좋아하는 앞 가슴살을 키우기 위해서 조작된 사료를 먹여서, 60일이 되어야 정상발육이 되는 병아리가 45일 만에 가슴만 너무 커져서 계속 앞으로 고꾸라지는 닭을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 식품으로 제공되는 짐승이나 식물들도 행복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좀 자유롭고 닭답게 살다가 죽은 닭을 먹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도축되기 직전까지는 닭이 나름대로 자유를 누리고 품위를 가지고 지내야지, 24시간 불을 켜 놓고 알 잘 낳는 약을 먹여서 계란을 빼내는, 그렇게 생산되는 제품들이 좋을까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100% 피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물보호 단체나 환경단체들의 이야기를 100% 신뢰할 수는 없고, 거기에도 정치적인 것이 많이 들어갑니다. 가끔 도발적인 책이 나옵니다. 우유를 먹으면 안 된다, 우유가 좋다고 선전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재벌들의 기획에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소수의 의견들도 참고하면서 문제점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우리가 여기에 있음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자연세계도 뭔가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2번을 읽겠습니다.
문제 2)인간의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목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여기 그림을 보시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이 사람을 정말 사람답게 살게 하는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깨집니다. 여기 시커멓게 나옵니다. 깨지니까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지런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제각각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세계와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 매우 무질서한 상태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 끔찍한 이야기들입니다.
언제 한 번 인터넷에서 중국의 사형수들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중국의 여자들 중에 예쁜 사람들만 모아 두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거기서는 공개를 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예쁘장한 여성입니다. 여염집 아낙네들 같고 대학생들 같습니다. 그런데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적인 죄를 지은 것입니다. 정말 그런 끔찍한 죄를 지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런 무질서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 우리가 태어납니다. 어려서부터 이런 무질서를 보면서 도대체 이 안에 무슨 질서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고 또 잘못된 질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이 답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이미 회복되었고 앞으로도 성화를 통해서 회복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이 아까는 구현되지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일지 생각을 하고 자기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서 이렇게 하나님의 그 뜻을 구현하면서 살아갈 착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질서 정연해지고 글씨도 질서 정연해지고 이렇게 모든 것이 질서 정연해지게 됩니다. 그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이렇게 회복된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세상에 전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제 3)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하신 것은 “선한 일을 위하여”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한 일’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에서 한 번 설명한 것인데 히브리말로 토브()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그냥 “좋다”, “good”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해서 메오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선하다”, 그리고 “좋았더라”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선했더라.” 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유괴범이 아이를 꼬입니다. “아저씨를 따라와라. 사탕 사줄게.”, 아이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꼬이니까 아이가 말을 듣습니다. “착하지, 착하지, 넌 참 착하구나.”하며 데리고 갑니다. 이 아이를 유괴하고자하는 자신의 세운 목적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면 그게 마음에 들기 때문에 착하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의도, 이것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입니다. 선함은 그렇게 선한 목적을 올바르게 향하고 있는 조건이나 상태, 이것이 선함입니다. 그래서 “선”은 하나님이 고유한 선의 근거이시고 선 자체이시지만 그것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은 “선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에베소서 2장 10절, 아주 중요한 성경구절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선한 일들” 이라고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 혹은 그것을 위한 인간의 섬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단수로 되어있는데, 우리말은 단복수를 그렇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원래 희랍어 성경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 4)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진정한 효용은 죄로 인해 망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아키텍쳐”(architecture)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건축”을 말합니다. 희랍어의 두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아르케(arche)”라는 단어와 “텍쳐”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아르케”는 “원리, 근원, 원천” 이런 뜻입니다. 그리고 “테크네(techne)”는 “기술, 기예”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교육관 수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장로님들이 신경을 많이 쓰고 고생을 하시는데 어쨌든 하나님이 잘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집 하나에 사람이 살려면 콘크리트 공사도 누군가는 해야 할 것이고 문짝도 달아야 하고 전기 공사도 해야 하고 불도 들어와야 하고 물도 들어와야 하고 창문도 매달아야 하고 벽은 조직적으로 하나 하나 벽돌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벽돌공은 벽돌을 쌓을 뿐이고 창문하는 사람은 창문을 가져와서 매달 줄은 알지만 수도는 모릅니다. 전기 기술자가 콘크리트는 못합니다. 이렇게 자기 것 밖에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용해서, 이 기술을 결합해서 사람이 살만한 집을 지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건축가입니다. 그래서 건축가가 수도나 각종 일들을 다 할 줄은 몰라도 이것을 어떻게 결합해야만 최고로 아름답고 좋은 집이 될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테크네 통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기술입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있습니다. 사람은 돈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여러분 남편에게서 지금 문자로 “올 12월 19일부로 연말 보너스 600%가 입금됩니다.” 하면 싫어할 자매가 누가 있겠습니까?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그리고 지식도 있습니다. 총도 있을 것이고, 훈장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왜 좋은가?” 라고 할 때, “그냥 맘대로 쓸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면 안 되고, “훈장이 왜 좋은데?”,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주니까.”, “총이 왜 좋은데?”, “내가 원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이렇게 답을 하면 빵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 자기가 걸어가도록 지정된 인생의 길과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건 하나를 사도 사용설명서가 붙어 있습니다. 사용설명서를 잘 읽지 않고 사용을 하면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그래도 1년 안에 망가뜨리면 교환을 잘 해주는데 쓰지도 않고 있다가 뭔가 한 번 한다고 하다가 안 되서 주먹으로 때리다가 망가지면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중한 물건일수록 우리가 막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술자 이외에 온 교인이 와서 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피아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싼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막 두드리길 원하지는 않습니다. 피아노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피아노를 만져야 합니다. 저도 아직 한 번도 두드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피아노나 값비싼 가전제품은 잘못 사용하면 그게 망가질 뿐이지만 인생을 잘못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생사용설명서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설명서대로 인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망가지기도 하고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닙니다. 남의 인생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나라의 돌아가는 일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질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넘어가겠습니다.
문제 5)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은혜를 주십니다. 선한 일과 은혜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해 봅시다.
여기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상이 망가져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들은 똑바로 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은 망가져 있고 그럴 것입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의 그것으로부터는 상당히 멀어진 상태일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것이 올바른 상태인지도 잘 모릅니다. 혹시 이것을 “아, 그렇구나!” 하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 아닌 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의 목적으로 알면서 살다가 복음으로 깨달음을 얻어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정하신 인생의 올바른 목적을, 온 인류를 향해 주시는 세계의 목적, 그 안에서 깨달은 사람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감화를 시키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덕을 입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뜻과 질서들을 여기에 구현해서 이 사람들을 똑바로 세우고 자연의 이 모든 세계들을 올바른 질서 속에 다시 돌아가 단정한 세상이 되어서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이 행복해지고 또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무질서한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계시는 뜻입니다.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부분을 우리 모두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사랑의 감화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으로 인간을 감화하시면 인간의 마음속에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생겨나고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삽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는 없지만 자기가 하는 이 선한 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세계를 향해 품고 계신 선한 뜻을 이룰 수 있게 되는 일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악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이 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행한 것이고 이런 선한 일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이 외적인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엘리야가 떡과 물을 먹었습니다. 얼마나 깊은 감동이었겠습니까?
저는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가 없다가 7년 만에 아이를 낳고 정말 가난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수술비가 안 들어가게 하려고 24시간을 진통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서 제왕절개를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가족들 중에서도 도와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병원비 걱정을 하며 그 허름한 병원에 앉아 있는데 그 당시에 집사님 한 분이 찾아오셔서 “전도사님, 이렇게 늦게나마 아들이 태어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하시며 진심으로 축하를 했습니다. 그 집은 남편이 외국에 가서 일도 하고 여유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봉투 하나를 놓고 갔습니다. 그분이 가시고 나서 너무 궁금해서 그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데 4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나에게는 그냥 돈이 아니라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구나! 이 곤궁한 중에도 저 분을 통해서 나를 위로해주시는구나!’ 했습니다. 한 20여년이 지난 후에 서울여대에서 저를 초청했습니다. 가보니까 그 때있던 교회가 지나던 길에 있어서 두 시간쯤 일찍 출발해서 교회에 들어보니까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사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전도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목사가 되었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OO집사님을 꼭 좀 만나고 가게 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 돈을 돌려주면 받겠습니까? 안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4만 원짜리 오렌지를 한 박스 사서 갔습니다. 더 보태주지 그랬냐고 하시겠지만 물론 더 보탤 수는 있었는데 더 이상 그 동네에서 살 것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져가서 20년 만에 만나니까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전도사였던 사람이 유명해져서 자기 집을 직접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차를 한 잔 주는데 부엌에서 튀김을 하고 난리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했더니, “중등부에서 수련회를 하는데 봉사하는 것입니다.” 합니다. 오지랖 넓고 봉사하기 좋아하는 성품은 여전하셨습니다. 거기서 그분을 뵙고 20년 전의 이야기를 했더니 이 분은 새카맣게 잊어버리셨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20년 동안 거짓말 안 하고 한 달에 한 번쯤은 집사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기도했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고 오렌지 한 박스를 드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렇게 이 세상에 살 도움이 모두 끊어진 것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을 올바르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내적인 능력도 주십니다. 선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과 능력, 지혜도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