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녹취자 : 오희열
1번 읽겠습니다.
문제 1)로마서 3장 23절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도 그랬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저기에 있고 달리기를 해서 가라는데 못 가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여기서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뜻은 영어로 말하자면 “be short of”, “모자라다”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한 참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하나님 영광의 흔적입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인간에게 갖게 하신 당신의 영광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 영광이 있어서 인간이 참 아름답게 빛났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세 가지 상태가 있는데 첫째는 타락 전의 인간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교통을 통해서 생명과 사랑이 흘러나와서 인간이 참 하나님의 영광을 간직한 인간답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두 번째로 타락합니다. 인간이 이러한 참 생명과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살게 하는 것은 사랑과 생명인데 그것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은 그래도 그 흔적을 남겨 놓으십니다. 그래서 정말 죽고 싶은데 아이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엄마, 정말 살고 싶지 않은데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자식, 등등 하나님이 그런 생명과 사랑의 흔적들을 남겨두셨기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향한 사랑이나 공동체를 위한 헌신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진부하지 않고 마르지 않는 주제가 “사랑과 생명”입니다. 결국 모든 인간이 누구든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랑과 생명입니다. 이것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구원하신 인간은 그 마음에 사랑을 주셨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가운데 생명과 사랑을 다시 받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합니다. 신자의 경우, 이것이 성화의 정도에 비례한다는 현실적인 상황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진 뜻은 타락 전의 온전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동일한 상태에는 이를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진짜 하나님의 영광인데 피조물은 이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탁월한 지위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것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거룩한 사랑과 영적인 생명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을 그렇게 불행하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사람들을 그렇게 깔보고 무시하고 권력이 있다고 사람들을 막 짓밟는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그런 외적인 것들이 있어도 이런 거룩한 사랑과 영적인 생명력이 상실될 때 우리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문제 2)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인간이 겪게 된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인간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자,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충만한 사랑과 생명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결국 사람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없고 뿐만 아니라 지식을 가지고도 이것을 뛰어 넘을 수가 없습니다. 또 돈을 가지고도 이것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이 생명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을 목회하다 보면, 여러분도 순장이니까 경험할 것입니다. 아무리 쏟아 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아주고 이해해 주어도 그것을 고마운 줄도 모르거니와 자기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섬겨본 적이 없으면서도 무한한 섬김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어디에서 가능할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에 나가서 그렇게 오래 참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준에 맞지 않고 공동체에 불편을 준다고 생각되면 사람들이 돌려세우는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이것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의 입니다. 이 “하나님의 새로운 의가 나타났으니”(롬 3장)에서 말씀하시는 의는 믿음을 말미암아 주어지는 의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래 주셨던 그 영광의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것인데, 이것은 인간의 선행이나 가문이나 혈통이나 문벌 등을 보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정말 참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복음이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3번 읽겠습니다.
문제 3)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량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영혼이 가진 탁월한 특성을 에베소서 4장 24절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장 24절을 우리 모두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이야기하는 의는 올바른 의로움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지식,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의 구별됨 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을 본받아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사람, 새 사람은 성경에 많이 나오는 표현입니다. 옛 사람은 인간이 이렇게 있는데 죄로 물들었던 인간입니다. 이것이 옛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속죄함을 얻은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인생을 어떤 길로 걸어가야 할 지 모릅니다. 새 사람은 그것을 안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새 사람입니다.
4번 읽겠습니다.
문제4) 구속(속량)과 속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십자가에 의한 구원에 대입하여 설명해 봅시다.
구원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모델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속량과 속전의 모델입니다. 이것은 로마시대에 신약성경이 써졌기 때문에 배경이 같습니다. 노예가 있습니다. 사람이 노예를 사면 자기 것이 됩니다. 그 노예가 해방이 되더라도 노예가 낳은 자식은 노예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 됩니다. 이런 노예들이 결박되어 있습니다. 노예들은 다섯 명인데 아빠, 엄마, 그리고 세 명의 자식들이 모두 노예 시장에 팔려온 것입니다. 이 노예들은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한 집으로 팔려가기를 원하는데 노예들의 주인은 따로따로라도 빨리 팔아버리려고 합니다. 그때 인자한 사람이 나타나서 이 노예 가족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면서 대신 돈을 지불하고 모두 사갑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옷을 입히고 저녁을 잘 먹여서 재워주고 다음날 아침에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노예가 필요가 없다. 너희들은 자유인의 증서를 써 줄 테니 가서 자유롭게 살아라.” 그때 이 노예를 풀어주기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 주인의 행동을 “속량”이라고 하고 속량을 위해서 지불된 돈을 “속전”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그것을 지불해서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의 기독론적인 의미는 이렇게 사탄에 의해서 세상과 우상, 정욕, 자랑에 노예가 되어 매여 살던 인간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 대신 속전을 지불해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의 값이고 이렇게 하신 행동을 우리는 속량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속죄의 개념이 설명되는 것입니다. 속죄를 통해서 우리가 구속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 5) 십자가는 무엇으로부터의 구속인지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봅시다.
구속이라는 것을 한자로 쓰면 “救贖”, 속죄의 결과가 구속입니다. 죄를 지어서 받는 구속과 헛갈리시면 안 됩니다.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그러면 그 구속은 무엇으로부터의 구속이겠습니까? 율법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 정당했는데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를 이루심으로 믿는 우리들이 거기로부터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구속입니다. 대신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해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죄로부터의 구속입니다. 세 번째는 죄의 결과로부터 구속입니다. 죄의 결과 무엇입니까? 비참입니다. 이 비참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저주로서의 율법이 있는데 죄가 무엇인가, 죄의 형벌이 무엇인지를 율법은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모두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 율법을 어기게 됩니다. 특히 십계명을 어깁니다. 그래서 그런 율법을 우리가 어겼기 때문에 그 율법을 가지고 우리가 정죄를 당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그런 처지에서 우리를 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은 죄, 그것에 대해서 정죄 받을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 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제물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속은 두 개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신분의 자유와 상태의 자유입니다. 상태의 자유는 마음과 영혼에 관련된 것입니다. 신분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예전에는 신분이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이었다가 이 사람이 변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두 번째는 예전에는 마음과 상태가 얽매임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는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부터의 구속을 통해서 누리는 인간의 행복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죄가 가져온 비참함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질병과 결핍, 죽음, 현실적인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것들로부터 건져주시는가? 물론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도 질병과 결핍들을 여전히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찾아내게 되면 잠시 이 세상을 살면서 부당하게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악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에 내가 잘못해서 죽임을 당해도 그것들이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이 인생의 과정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훨씬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관계와 악한 성향으로부터 하나님이 자유를 주십니다.
문제 6) 본문에서 십자가의 구원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으로 세계를 창조하셔서 없었던 것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구원의 역사를 베푸심으로 인간이 재창조된 것이 구원입니다. 끊어졌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이 다시 공급되고 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제2의 창조”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이번 주 기도제목, 세 가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랑의 감화를 받도록, 은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를 자유케하기 위해 주신 은혜를 귀중한 것을 받는 성도들이 되도록, 이것은 자유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기뻐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신앙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영혼을 섬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습니다. 조금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안 할 수 있지만 많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영혼을 섬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도록, 우리가 자유를 소중히 여기도록, 또 새해에 영혼을 가르칠 교사를 보내주시도록, 이 세 가지를 위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