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개미의 전설
“게으름뱅이여 개미에게 가라 그것이 행하는 방식들을 보라 그리고 지혜롭게 되라”(잠 6:6)
녹취자 : 이재호
성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완연한 여름으로 접어드는 것 같은 때입니다. 종종 소나기도 쏟아지고 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의 마음을 특별히 잘 다스려야 할 시기입니다. 짜증내지 말고 말 한마디도 친절하게 하면서 이 여름을 잘 지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게으름 제3과 개미의 전설 이야기입니다. 우리 본문을 잠언 6장6절 말씀인데 같이 일어볼까요? “게으름뱅이여 개미에게 가라 그것이 행하는 방식들을 보라 그리고 지혜롭게 되라” 지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질문을 받고 한 번 대답해 볼까요?
질문) 진리를 통해 인생의 질서를 깨닫는 것의 중요성과 그럼으로 인해 부지런하게 사는 것에 대해 느낀 바를 말해 봅시다.
우리가 게을러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생각의 혼란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음에 열정이 없기 때문에 게을러 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게을러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대신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게을러집니다. 해야 할 일인데 하고 싶지 않으면 이때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말씀과 우리를 부지런하게 살게 하는 것이 무슨 관계에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 생각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사물들의 질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에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회개와 감사가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은 그 말씀대로 못 살았기 때문에 회개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그 말씀대로 살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합니다. 게으른 사람에게 감격이 있습니까? 무슨 감격이 있습니까? 게으름에는 감격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말씀을 깨닫고 나면 마음에 열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세운 이 삶의 질서가 잘못됐구나? 이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구나?’ 하나님이 질서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의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진짜 못할 것 같았는 데 은혜를 받으니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은혜를 받으니까 사업으로 바쁜데도 주일을 지킬 수 있고 은혜를 받으니까 기도하러 교회에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받는 것, 이것이 게으름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질문) 대적자들에게 비난받을 때 모세가 그처럼 온유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지도자로서 자기를 따른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은 참 괴로운 일입니다. 또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모세에게 이 사건은 굉장히 힘든 사건이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주모자들이 자기의 핏줄이었으니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마음이 요동치 않았습니다. 온유했습니다. 그 온유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평화에서 오는 온유함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와 생각이 달라서 비난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책잡힐 것이 없다’는 마음에서 오는 여유, 거기에서 오는 온유함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충성되게 살았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 구스 여인은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구스는 지금의 에티오피아입니다. 그럼 틀림없이 흑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선민의식으로 볼 때에 편견이었 던 것입니다. 그런 편견으로 모세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펼쳐보겠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개미가 한 마리 기어 다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개미에게 배우라고 합니다. 그 명령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개미에게로 가라,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행하는 방식이라고 나옵니다. 개미에게 가라, 그리고 개미가 일을 하는 것,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를 보라, 마지막에 보는 목표는 네 자신이 거기서 지혜를 얻고 배워서 개미를 보지 않았더라면 무지했을 어떤 삶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어라, 하는 것이 말씀의 골자입니다.
자, 진화한 마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게을렀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랬기 때문에 종족을 보존하고 퍼뜨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필리핀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열심히 사역하시는 분인데 일꾼들을 데리고 교회 일을 하는데 복장이 터진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화장실 하나를 짓는데 세 사람이서 삼일째 짓는데 아직까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일 하는 것을 보니까 삽 뜨고 삽 뜨고 그늘에 가서 쉬고 벽돌 몇 개 놓고는 그늘에 가서 쉬고 낮에는 또 밥 먹고 한참 자고 이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게으른가? 제가 나중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처럼 저렇게 공사판에서 열심히 하다가는 이 뜨거운 나라에서는 아마 사람이 죽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 맞게끔 인간의 느릿느릿한 행동양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한 마음에서 언급한 내용을 우리는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 면만을 보여준 것이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 않느냐’ 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게으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게으르기 때문에 종족을 보존하고 퍼뜨리는 데에 방해가 되고 그리고 오히려 게을렀기 때문에 에너지를 절약하지 못한 측면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탐구를 해야지 인생의 지혜가 생기는 데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을 덜컥 만나요. 거기서 엄청난 과외비를 지불하면서 평평한 진리를 배웁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면 살 때에는 도대체 여기에 무슨 질서가 있는 가라고 하는 것을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세상을 사랑한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인간의 마음이 사랑하는 데, 이 질서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고 모레 다릅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안정된 삶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나면 질서를 알게 됩니다. 어떤 것이 어떤 존재가 제일 위에 있고 어떤 존재가 그 아래에 있으면 어떤 존재가 상위에 있고 하위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 존재를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곳은 가장 상위의 가치를 그 다음에 하위의 가치를 가지면서 존재와 가치에 대한 질서를 분명히 하면서 이해가 생겨나게 됩니다. 살아갈 때에는 이 존재와 가치의 질서를 따라서 여기에 알맞게끔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곳은 많이 사랑하고 그 다음 것은 거기에 언제든지 굴복할 수 있는 작은 정도로 살아가고 이렇게 하면서 질서가 잡혀서 언제든지 상위에 있는 것을 위해서 하위에 있는 것을 양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 때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삶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 불신자 시절입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온 우주에서 자기가 이 중심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기가 가장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중심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가치입니다. 이것이 만약에 존재라면 이것은 세상 행복입니다. 가치입니다. 모든 것들 제일 꼭대기에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하나님도 이 일을 위해 이바지할 때 내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나라고 하는 이 존재가 과연 믿을 만한 존재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을 합니다. 회개를 하는데 자기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서 알고 느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알고는 지성이고 느끼고는 감정이고 결단하는 것은 의지입니다. 그러면 왜 잘못했습니까? 왜 죄를 지었습니까? 누가 시킨 것입니까? 마지막에는 그 책임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를 우주 질서의 중간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의 제일 꼭대기에다 올려 놓을 수 있겠습니까? 내일이면 ‘이것이 잘못이다’ 라고 생각하고 회개할지도 모르는데 ‘과연 이만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존재이냐?’ 이 이야기입니다. 불신자일 때 우리들이 이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 삶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살 수가 없어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되어서 다시 이런 식의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은 자기 걸어온 길에 대한 이율배반이고 모순입니다.
자, 신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우주가 모두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혀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렇게 상호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 모든 것들 가운데에 어디엔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결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 중심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과 똑같이 그렇게 중심이 아닌 어디엔가 나는 위치해 있고 그래서 이 별이 비록 크기는 비록 작지만 거기에 빛나고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세계 전체를 아름답게 만든다는 데에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갖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조금도 섭섭하거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땅 아래로 펼쳐본다면 여기에 큰 별, 작은 별, 색깔과 크기가 다른 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하나님이 여기에 계십니다.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밝고 큰 별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전히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은혜의 교통을 나누신다는 점에서 거기서 나의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우리는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그 위치가 문제가 아니라 그 하나님과 갖는 관계가 문제다’ 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서 겸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서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최고의 존재이시고 그리고 최고의 가치이시기 때문에 이 하나님 자신이 행복이시기 때문에 나는 이 중 어디에 있든지 내가 하나님과 하나된 가운데 합일과 연합을 이루는 가운데 내가 행복으로 상승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을 물리치고 내가 올라감으로써 행복해지는 자리가 아니라 원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그분과 하나가 될 때 그 때에 나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때문에 행복해지리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신자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고 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게으름이라는 것이 차지할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쉬는 것도 의미를 위해서 쉬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충성스럽게 사는 사람들만이 일체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 지칭이 있습니다.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여기서 이야기하는 성실함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사랑으로 꽉 차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해 줘도 진심으로 해줍니다. 부지런함은 손과 발이 지체가 쉼없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실함이 정신에 속하는 것이라면 부지런함은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일체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충성되다고 부르고, 그 충성스럽게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걸고 살아가는 그 사람의 마음에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특별한 교제를 허락하십니다. 당연히 이것은 영적인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교제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하늘의 신령한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의 기쁨과 은혜와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사람은 삶이 보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의 기도가 힘이 있겠습니까? 충성스러운 자가 하는 기도가 힘이 있겠습니까? 게으른 자가 하는 기도가 진실하겠습니까? 충성스러운 자가 하는 기도가 진실하겠습니까? 게으른 자가 많은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충성스러운 자가 많은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이것을 이미 모세와 아론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와 대면하여 말하였다. 그런 점에서 충성스러운 모세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비밀스러운 은혜의 교제가 있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신령한 삶을 사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게으름을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현재는 우리가 압니다. 당연히 현재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압니다. 당연히 우리의 쓸 것을 잘 조달할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굉장히 우리는 훌륭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구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모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상을 깨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현재 쓸 것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특별하게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 경제적으로 준비해야 되고, 또 지식적으로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지식적으로도 준비되어야 하고 영적으로 준비되어야 되고 삶을 살아가는 기술에 있어서도 준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미래를 위해서 준비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수영 못하는 사람이라면 물에 빠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살아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에 성수대교 무너졌을 때 그 때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는데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은 버스에서 뚫고 나와서 헤엄쳐서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날 수 있었냐’ 하니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매일 아침마다 수영을 배우러 다닌 것이 나의 목숨을 살려주었습니다.’ 언제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지식이나 모든 것을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되겠지만 불확실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서 경제나 지식이나 영적인 상태가 모든 것들을 미리 준비하면서 살아갈 때에 그 때 우리의 인생은 당황하지 않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앙에 있어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자,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이 사람이 신이 나서 가고 있습니다. 길이 아니라 물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성령충만하게 살아가는데 살아온 이 인생의 날들이 흐르는 물과 같은 것입니다. 흐르는 물처럼 인생을 사니까 물이 흐르면서 풀이 생기고 나무들이 생겨나고 작은 동물들이 다니고 나무에 열매들이 맺히고 생태계가 형성이 되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새들이 날아다니고 이렇게 해서 한 촌락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겨우 자신이나 먹고 살고 자신이나 만족하며 사는 인생이라고 하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초라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고 은혜의 삶을 삽니다. 그러면 이렇게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많은 것들이 덕을 봅니다. 그래서 강물처럼 은혜를 받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면서 모든 것들의 생명을 더해주는 그런 도구가 되어서 살아간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그러면 이 사람이 이렇게 인생을 지나가는 그 곳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볼 때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 아까운 사람, 그가 있어서 우리 이웃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리스도인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서 이런 혜택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지런히 살아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교회가 이제 교역자들이 모두 모여서 늘 기도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밤이면 기도하러 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기도해서 이렇게 강물처럼 흘러가는 충만한 믿음의 삶을 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