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뉜 마음의 원인을 알라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9-11)
녹취자 : 허혜숙
사계절 가운데 감사하지 않은 계절은 없지만 가을은 특별히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영혼의 침체를 벗어나서 열렬히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기에 너무 좋은 계절입니다. 소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시험에 관하여 제 6장으로 들어 가보겠습니다. 오늘 다루게 될 주제는 시험에 들게 되면 마음이 나뉘어지게 되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약 1장 9절에서 11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1;9-11) 하였습니다. 자, 신자가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신자의 마음에 크기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세상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지고 기도도 안 하고 말씀에 은혜도 못 받으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진짜 신앙생활을 잘하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겠지만 거의 흔적도 없이 남아버릴 것이고 만약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하면 세상 사랑이 점점 커져서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밖에 안 남을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가변적입니다. 그런데 시험의 때가 되면 이렇게 된 것 자체가 시험에 든 것인데 시험에 들게 되면 마음 자체가 둘로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 마음이어야지만 무엇을 알고 느끼고 결정하고 이렇게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을 마음이 찢어지니까 모든 작용들이 분산이 되고 여기에서 혼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었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찢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지. 정. 의의 작용에 있어서 끊임없이 분열과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야고보서 문맥에 들어가 보면 결국은 두 마음을 품는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갈라진 이유가 가난한 형제와 돈이 많은 형제들이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가난합니다. 여기에서 ‘낮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 적으로 볼 때 가난하고 별 볼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은 자기가 너무 비참한 마음이 나누어지게 되고 또 부한 형제는 돈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데 돈을 우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물에 소망을 두면서 삽니다. 이것은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했으니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마음이 있으니 비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찢어진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신의 비참함 때문에 마음이 갈라지고 부유한 형제는 자신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희망을 두고 살기에 마음이 갈라지고 이렇게 해서 결국은 두 마음을 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모두 시험에 든 상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도표를 보면 낮은 형제에게 먼저 충고합니다.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 그리고 부한 자에게는 낮아짐을 자랑하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낮은 형제는 이렇게 앉아서 고민을 합니다. 결국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세속주의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 앉던지 서 있든지 가든지 신경도 안 쓰는데 부자가 들어오면 그를 떠받들면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고 지도자들까지도 그를 높이고 영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볼 때 이 가난한 형제는 교회 밖에서는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차별을 당하고 교회 안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또 차별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밖에서도 마음을 둘 곳이 없고 교회 안에서도 마음을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오늘 야고보 선생은 부유한 사람을 책망하고 일방적으로 부유한 사람의 돈을 빼앗아서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형제는 자기가 얼마나 높은지를 생각하면서 자랑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것은 내가 비록 이렇게 연약한 사람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그리고 모든 지체들과 하나님이 엮어주셔서 나를 한 머리의 몸으로 만들어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감격하면서 네가 얼마나 존귀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거기 쓰여 진 단어가 힙쏘스인데 높음, 존엄성, 위엄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나를 위해서 재물로 주셔서 구속하시기까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셨으니 내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적으로 가난해서 영적으로 네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생각하면서 신앙적인 자존감, 영적인 자존감을 가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한 형제에 대해서는 이것이 바로 네가 생각하는 영광이다. 그런데 그것은 많은 돈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대접을 받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물론 돈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교회 밖에서는 당연히 대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교회에 왔다고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받던 그 대접을 교회에 와서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와서 대접을 받는 것이 전혀 감격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를 야고보 선생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가져서 부자가 된 것이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돈 때문에 굽신거리면서, 이렇게 사람이 아니라 돈 때문에 굽신거리면서 이 사람에게 영광 돌리는 방식으로 교회도 똑같이 한다면 세상의 가치관과 교회의 가치관은 차이가 없지 않냐?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죠? 교회가 여러분들이 부유하다는 것, 세상에서 많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 그런 것을 하찮게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영광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가치관이 다른 공동체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돈을 필요로 하고 그렇지만 그 돈 때문에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공동체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자랑할 것은 없지만 한 가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1월 21일에 장로, 권사, 안수집사를 뽑는데 열린 교회가 세워져서 장로를 선출하는데 재력을 고려한 적은 없습니다. 단지 십일조를 내느냐 안 내느냐 하는 것은 고려를 했지만 그 사람이 부유한 사람이냐 이런 것이 장로를 세울 때에 고려사항이 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목회자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은 사람들을 공연히 미워하거나 적대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는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그런 영광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성도의 영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사람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사람이면 돈 가지고 뭘 하겠습니까? 어차피 죄를 짓지 못할 것 아닙니까? 타락하지 못 할 것 아닙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은 자신을 위해 쓸모가 없습니다.
요즘 대장동 때문에 대난리입니다. 저는 그 광경을 이렇게 보면서 다른 나라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 죽을 때까지 먹는 소고기 양이 소 두 마리 반이랍니다. 인간이 필요한 것을 모두 나열하고 보면 사실 그렇게 엄청난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자식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런 부자들은 자식들까지도 잘 살게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교육시키고 그 애들도 벌어야 먹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보람입니다. 그러면 그 필요한 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개떼처럼 덤벼들어서 돈을 뜯어먹고 한 사람한테 1억이 안 되는 돈을 투자를 하고 1천억씩 가지고 가서 대박이 나게 하는 이것이 무슨 나라입니까? 무슨 나라의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되어있습니까? 그리고 땅 한 평에 2500만원씩 하던 땅을 원래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한테는 250만원 주고 빼앗아버리고 그 부가가치들은 원 땅 주인들에게는 하나도 안 주고 그 땅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개발업자들이 개떼처럼 덤벼들어서 뜯어먹고 자기들이 물고 뜯고 싸우고 심지어 거짓말하고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고 정치를 했다는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먹고 대법관을 했다는 사람이 그까짓 1500만원을 받고 거기에서 경영 컨설턴트를 해 줍니까? 서로 웃을 일입니다. 결국은 나라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의하고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법을 따라서 징벌하고 관련된 모든 정치인들과 법조인들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난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의 일탈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정을 져버리고 일탈을 할 때 백성들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까지 그렇게 산다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세상에 희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도표를 보십시오. 이렇게 물질을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면서 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가는데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행복해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재물의 유한함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싹이 나고 자라서 활짝 꽃이 피고 시들고 마지막에 사라집니다. 재물도 역시 많이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또 사라지지 않는다고 칩시다. 그러면 재물이 사라지지 않아도 자기가 사라집니다. 마지막에 뭐가 남겠습니까? 이건희 회장도 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은 다 쓰지도 못하고 남겨두고 사라지지 않습니까? 상속세 내느라고 모두들 열심히 주식도 팔고 한다던데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물질생활에 대해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니까 마냥 초연하게 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리스도인이 탐욕은 부리지 말아야 됩니다. 성도의 기본적인 신분은 이렇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께로부터 자기가 왔고 자신이 이런 풀의 꽃처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잠시 세상에 사는 기간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사는 기회로 삼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 1)‘낮은 형제’와 ‘부한 자’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당시의 교회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차별받고 부유한 사람은 대접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매우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 2) 신자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결국은 하나님 아닌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본문에서는 재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고 가난을 그렇게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최근에 어느 뉴스에서 봤는데 여러분 왕년에 홍콩의 미남배우였던 주윤발이라는 배우를 기억하십니까? 영웅본색 등 많은 영화를 찍은 엄청 유명한 배우입니다. 그 사람이 인터뷰하는 내용을 봤는데 가슴이 쿵 하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정도로 대스타가 되었으니까 대중들하고 섞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유명인들을 헤치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위험하기도 한데 그 사람은 그냥 털털하게 시민처럼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면 셀카도 같이 찍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중국을 비판하니까 중국에서 엄포를 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하면 중국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상영 못 할 줄 알아라, 그렇게 했더니 쿨하게 나 중국대륙에서 돈 안 벌어도 된다, 그러나 너희들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더니 중국에서 그 사람은 나오지 못하게끔 막았습니다. 개의치 않습니다. 이 사람이 그렇게 돈에 집착하지 않았을 텐데도 가지고 있는 재산이 8천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자기는 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하나와 아담한 집 하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니겠느냐? 인생이 무엇이겠느냐? 그 사람이 크리스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대 스타도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가슴에 쿵 하는 울림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너는 가난하게 살아라 그렇게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자 자기가 일한대로 대접을 받고 어떤 사람은 낮게 살고 어떤 사람은 덜하게 살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신앙적으로 보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재물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 3) 낮은 형제에게 무엇을 자랑하라고 합니까?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높음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돈이 없다고 해서 그렇게 비참한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삶의 한 양상이니까 뭘 그렇게 비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 4) 부한 자에게 무엇을 자랑하라고 말합니까? 그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기가 낮아진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지만 사실 그런 영광은 하나님이 그에게 만족하라고 주신 영광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런 것을 보면서 사실은 돈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높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비참한 인간이었는가 이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영광이 재물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에게 주신 물질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돕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올 가을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시험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가을은 시험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고 은혜의 부흥을 누려야 할 때입니다. 밖에 무르익고 있는 오곡과 많은 결실들을 보십시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아름다운 신앙의 결실을 맺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