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시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녹취자: 남궁지선
가을이 이제 깊어가고 어쩌면 내일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습니다. 어느덧 시험에 관하여 12장중 벌써 8장에 들어서게 되었고 교역자들과 출판실은 지금 다음 교제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과공부 하나 하는 것도 거저 되는 것이 없이 누군가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위도식하면서 사는 삶이 참 부끄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는 시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주제 성경 구절이 다루고 있는 본문이 1장 13절이기 때문에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고 되어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가? 오늘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시험하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을 받지도 않으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 보면 우리 지난 주일날 다뤘던 본문이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렇게 나오거든요? 성경에서 이렇게 모순된 것이 나오는 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궁금한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계시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거죠. 계시구조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데 결국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달이 되잖아요. 물론 게시는 기록보다 훨씬 더 커요. 그래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도 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이상을 보이시고 선지자에게 전할 말도 주시고 이러잖아요.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허공중에 다 사라져 버렸고 그것을 기록한 성경만이 남아있어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이죠. 이단의 특징은 이 말씀 말고 또 다른 말씀이 있다 혹은 더 높은 권위의 말씀이 있다든지 아니면 동등한 권위를 가진 다른 말씀이 있다든지 이렇게 주장을 하는 것이 이단의 특징이에요.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잘 들어보세요. 성경이 있잖아요. 성경에서 이렇게 추출되어서 여기에서 해석의 원리가 나와야 되요. 이 해석의 원리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을 하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결과물인 성경에 대한 해석이 나와요. 그러면 성경과 해석 사이에 일치가 있구요. 성경과 해석 원리사이에 일치가 있구요. 이 원리로 성경을 해석하니까 성경과 해석 사이에 일치가 있는거죠. 그래서 이게 A와 B라면 B는 A를 더 풍부하게 해석을 해주는 거죠.
그런데 이단의 주장에 따르면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또 다른 말씀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서 이 두 개를 합쳐서 여기다가 또 다른 해석의 원리는 만들어내요. 그쵸? 그리고 이거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을 해요. 그래서 그 해석의 결과가 여기 이렇게 나와요. 그럼 무슨 문제가 나오겠죠? 어떤 문제가 나올까요? 자 성경 안에서만 해석의 원리를 끌어 냈을 때와, 성경과 성경 아닌 것들에서 해석의 의미를 함께 끌어냈을 때에는 그렇게 하고는 성경을 해석을 할 때에 이것 사이에 차이가 벌어지게 되겠죠. 이해되시죠? 그래서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성경에서 성경의 해석의 원리를 찾아내고 그 해석의 원리대로 그 성경을 해석 했을 때에 1과 2와 3이 나란히 이렇게 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는 원저자는 하나님이고 기록한 사람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목적은 하나님 보시려고 만든 성경이 아니라 사람에게 읽게 하려고 만든 성경이에요. 그래서 이 성경 계시구조 안에는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의 관점이 같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은 본질을 보여주고요. 인간의 관점은 현상을 보여줘요. 그러면 지난주 설교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가 아침에 해가 떠서 서쪽으로 진다. 동요에 보면 아침에 해가 세수를 하고나서 달려가다가 잠자리에 들어간다. 이렇게 표현을 하잖아요. 그게 사실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잖아요. 왜냐면 해가 도는 게 아니라 해는 언제나 거기 있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거죠.. 그러니까 이렇게 자전을 하면 태양 있는 쪽이 낮이 되고 돌면 밤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들이 이야기 할 때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고 이야기 하지 지구가 반 바퀴 돌았다고 얘기하지 않잖아요. 지구가 반 바퀴 돌았다는 것이 본질적인 설명이라면 해가 졌다는 것은 현상적인 설명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시험을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시험이라는 말 자체가 뭘 잘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시험 치기 전까지는 실력이 얼마인지 몰라요. 그런데 점수를 내보면 ‘얘 공부 안했구나. 얘 공부 잘하는 구나.’ 그러고 판단이 서잖아요.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전지하신 하나님이 시험을 해서 뭔가를 모르던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없겠죠. 그러니까 본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야고보의 이야기가 맞는 거죠. 그럼 창세기에 있는 건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그거는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느낀 바를 인간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삭을 100세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는데, 아브라함이 노력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주셨잖아요. 그 아이는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거예요. 하나님이 도로 가져가셔도 아브라함은 할 말이 없죠. 그런데 인간이니까 ,그 아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대충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열세살은 됐을것이고 그리고 아마 열입곱살 그 정도는 되었을거라 여겨져요. 왜? 자기를 다 태울 수 있을 정도 양의 장작을 지고 가는 거니까 그러면 그 아이를 데려가도 아브라함은 그 아이에 대해서 아무 권리가 없는 거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자체가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두 가져가셔도 결국 신앙적인 고백은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오 취하시는 이도 하나님 이시다. 우리는 가부간에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다 라는 욥과 비슷한 고백이 나오는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겠죠? 이해 못 할 이유가 없어요. 그래서 문제가 뭐냐하면, 인간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관점을 인간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두 가지 관점이 같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읽으시면 두 개의 모순되는 시험에 관한 진술이 결코 충돌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여기에 나오는 영감은 하나님이 기록자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이것을 기록하게 할 것 아니에요. 이사람이 쓸 거 아니에요. 말씀이 A였는데 이 사람이 기록을 해요 똑같이 A가 되야 하는 데 일반적으로 보면 이렇게 안돼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 보면 말 전달 게임 같은 거 있잖아요. 한 20명씩 30명씩 모아놓고 작은 소리로 ‘선생님이 너 오래.’ 그럼 그 다음아이가 ‘선생님이 너 오래’ 이렇게 전달하다보면 저 뒤에 가서는 ‘생선이 다 구워졌대’ 이런 결과가 나오잖아요. 커뮤니케이션의 오류잖아요. 그런데 만약이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을 정확하게 주셨어도 여기서 전달되는 통로인 이 사람에게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A가 나오는 게 아니라 A다시가 나올꺼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은 이것만 보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잖아요. .
그래서 영감의 교리는 하나님이 성경의 원본을 기록하게 하셨을 때 이 사람에게 성령으로 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화 시키셔서 일체의 인간의 오류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순전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도록 하나님이 이 사람을 특별히 감동하셨다. 이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이것은 똑같은 A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이것을 영감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가 시험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객관적으로 시험을 대면하고 있다 그건 시험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봅십시다. 여기 누가 5만원 짜리 100매씩 묶은 돈을 열 다발을 갖다 놨어요. 큰 묶음이 5000만원이겠죠. 나는 원래 남한테 신세지는 것도 싫어하고 남의 돈을 탐하는 일도 없어요. 여기에 5000만원이 놓여있고 이 방에 아무도 없어요. 나는 전혀 유혹을 받지 않아요. 이것 시험에 든게 아니에요. 시험을 만났다라고 할 때는 이미 객관적으로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시험은 그렇지 않아도 내가 돈 쓸데가 많은데 이게 무슨 돈일까? 그러고 열 개중에서 한 개만 슬쩍 가져가도 표가 안 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상태가 시험을 받는 상태에요. 그러니까 도표로 돌아가면 부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꾀임을 받거나 유혹받고 있는 상태가 시험을 받을 때 라고 하는 거죠. 똑같은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을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시험을 안 받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거죠. 그래서 다시 둘로 나뉘는데 이런 거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죄로 뚝 떨어지는 거예요. 갑자기 그리고 시험을 만나게 돼서 죄에 뚝 떨어지는 거예요. 이거는 죄에 이끌린 시험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교통사고가 나서 발목이 부러졌어요. 그리고 너무 화나고 가슴 아픈 일을 당했어요. 혹은 도둑을 맞게 되었어요. 이런 거는 사실은 자기가 잘못해서 자기가 죄를 지어서 교통사고가 난 건 아니잖아요. 심장에 갑자기 위협이 오게 된 것도 자기가 죄를 지어서 그런 거는 아니잖아요. 도둑을 맞은 것도 마찬가지고 이런 것들은 죄와 상관이 없는 시험이에요 예를 들어 이 사람이 교통사고를 이렇게 당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편안해요.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마음이 요동치지 않아요. 좀 아프고 병원에 입원하는 건 불편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마음에 평정을 누려요. 이거는 시험에 든 게 아니죠. 그런데 도둑을 맞았어요. 이건 자기 잘못이 아니잖아요. 지키는 사람 열 명이 한 명 도둑을 못 막는 다면서요. 어쨌든 들어와서 이렇게 훔쳐가지고 가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이 저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이게 뭐야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거야 왜 우리집만 도둑을 맞게 하셔?’ 그러고 신앙에서 미끌어지는 거예요. 그럼 죄에 이끌리지 않는 시험도 이 사람에게는 죄에 이끌리는 시험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이라는게 처음부터 다른 기원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상황인데 어떻게 믿음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험이 죄로 가는 시험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오히려 그 죄에서 떠나는 시험이 될 수도 있고 더 정결해지는 시험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절망을 하게 됩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결국은 희망이 끊어지는 거잖아요. 희망이 끊어지는 건데 결국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희망이에요. 절망한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희망은 믿음의 열매에요 .사랑의 열매에요.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람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러잖아요? 결국은 믿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믿음과 사랑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설교시간에 여러 번 말씀 드렸잖아요? 사랑을 받는 사람은 절망할 수 있어도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항상 희망이 있다. 왜? 사랑 곁에 항상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넘치도록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그에게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은 이 절망을 아주 큰 죄로 봐요.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을 죽음에 이르는 유일한 병이라고 본거죠. 절망이. 그래서 가끔 말이죠.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확 밀려오지 않으세요? 그리고 아무것도 살아야 할 의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발견하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때가 정말 기도가 필요할 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해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거의 하나님 잊고 살다가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그게 크게 몇 가지로 나뉘는데 제일 먼저 중요한 거는 현실을 수용하는 거예요.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남 하고 비교하면 안 돼요. 그리고 두 번째가 의미를 찾는 거예요. 그리고 의미를 발견하면 감사의 제목을 찾게 되는 거예요. 감사의 제목을 찾고 다른 사람과 공감해 줘야 되는 거죠.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공격하면 안 돼요. ‘얼마나 힘드냐’ 조용히 그것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받아들이는 것 현실을 수용하는 것, 의미를 찾는 것 그럼 여기서 감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는 거예요 마지막에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하게 되는 거죠. 어떤 일이라도 당신을 의지하겠습니다. 의미를 찾는 것, 어떤 일이라도 의미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거든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의미를 찾고나면 내가 받는 시험과 괴로움이 저절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게 되는거죠. 그러면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되는거예요. 여기에서 보면 이 사람은 이것 중 아무것도 안 이루어진 거예요. 이게 불신앙이에요. 미움이라는 건, 온통 자기 뜻대로 안 됐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되는 것이에요. 절망과 원망은 항상 손잡고 나타나는 친구에요.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미움과 원망이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거죠. 놀라운 게요. 시험에 든 사람 옆에 있는 사람은 둘 중 하나에요. 시험 든 사람을 변화시키든지 자기도 같은 시험에 들든지 아주 놀라워요. 그래서 부패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대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 곁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염이 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친구를 가까이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은 시험당한 자들을 위로하세요. 크게 세 가지인데 시험의 상황을 끝내셔요. 그러면은 우리의 고통과 많은 것들이 사라지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시험의 상황을 끝내세요. 그 끝내시는 방식이 뭐냐 하면 의미를 깨닫고 나의 어떤 부족한 점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시험을 주시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자기를 고치면 하나님이 그 시험을 계속 주실 이유가 없는 거죠. 두 번째는 성도와의 교제에요. 이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게 될 때 눈이 뜨여지게 되는 거죠. 그리고 자신을 자신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은혜 받은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게 되는 거죠. 감사의 제목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런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정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성도의 교제가 너무 중요해요.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그거는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시는 아주 고귀한 선물이에요 놀라운 선물이에요. 이렇게 오래도록 교회를 못 나왔잖아요. 이거 정말 정상 아니거든요. 정말 정상 아니에요. 하나님이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 키질을 하시는 거예요. 키 아시죠? 옛날에 우리 할머니도 가끔 쓰셨는데. 키에 곡식하고 쭉정이하고 겨 이런 것들을 담아요. 위 아래로 흔들면 공중으로 확 올라가잖아요.이거를 흔들면 내리면서 바람이 일어요. 쭉정이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아요. 몇 번 하고나면 하얀 쌀만 남아요. 그렇게 하나님이 한 번 터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펜데믹을 통해서 많이 미끌어져서 신앙을 까먹은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을거예요. 통계에 의하면 15%가 줄었니 어떻고 얘기하는데 그러나 오히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은혜생활 살 했던 사람들은 감격하면서 이제 이번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을까요? 성도와의 교제가 얼마나 그리운 것인가를 깊이 깨달아야죠. 그리고 세 번째 영혼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시험 속에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자 문제로 들어갑니다.
문제 1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명제와 시험하신다는 명제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요?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 시험하신다는 것은 인간의 관점이다. 두 관점을 오가면서 성경이 기록되었다.
문제2 “시험을 받을 때” 라는 의미는 무엇이며, 시험과 범죄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시험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부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꾀임을 당하거나 유혹을 받고 있는 상태다. 두 번째 죄에 이끌려 시작된 시험과는 무관하게 시작된 시험 이런 것들은 범죄와 관련이 없는 거죠.
문제3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미움, 무슨 미움? 하나님이 내 원하는 대로 안 해주셨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미움이이요. 하나님이 선이시고 행복이신데 그 하나님을 미워하면서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요? 이룰 수 없겠죠. 여기서 모순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동물은 동물 아닌 게 섞여있지 않아요. 그래서 개는 개죠. 그런데 인간에게는 인간 아닌 동물적인 것들이 섞여 있어요. 그래서 일생의 과업이 참 인간이 아닌 것 좁게는 참으로 내가 아닌 것을 어떻게 비우고 내가 진정한 사람 참된 나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숙제인 거죠. 그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과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문제 4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로하는 방법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상황을 끝내심, 성도와의 따뜻한 교제, 영혼에 은혜를 주심
이상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위드코로나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직 도저히 교회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것 이고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셔야 되겠죠. 마음의 각오를 단단하게 하시고 마스크 쓰시고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다시 새 힘을 얻고 부지런히 백신 맞으시고 정상적인 교회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