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제13장 복음이 죄 죽임의 동기와
격려를 주기 때문에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녹취자 : 오지윤
안녕하십니까? 성도여러분, 벌써 봄이 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30도, 33도씩 올라가는 지역이 있다고 하니까, 대단한 더위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죄와 은혜의 지배가 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죄가 신자를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 그 중에서 특히 복음이 죄 죽임의 동기와 격려를 주기 때문에의 부분을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눔 질문입니다. 누구나 연약할 때가 있으면 강할 때도 있습니다. 연약하지만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죄와의 싸움에서 이긴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지체들과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성도1 : 사업을 20년 가까이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있었지만,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불신이라는 쓴 상처를 경험하고 마음속에는 온통 분노와 복수심에 사로잡혀서 앞으로 단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십자가를 바라보며 저 역시도 하나님을 수없이 배신한 사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저를 배신했던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복수하려고 했던 우리의 썩은 마음들로부터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도2 :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저의 마음에는 미움이 가득 차고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고,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움과 용서에 관한 말씀을 들으며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항상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으며 기도하였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났습니다. 나의 미움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살아갈 수 없는 힘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성도3 :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로마서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고참에게 한 작은 실수 때문에 일주일 동안 반성문을 써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제 마음이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고 고참에 대한 미움이 가득했을 텐데, 그 당시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제가 일주일 동안 기쁘고 즐겁게,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반성문을 썼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대부분 오늘은 유혹보다는 미워하는 마음, 복수심 같은 마음들을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내려놓았던 경험이었습니다. 죄가 아주 힘있게 역사하는 증거가 미움, 복수심, 증오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십자가에 대한 은혜 때문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은혜의 힘이 죄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수심과 미움 때문에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능력이 복음 아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을 가지고 그러면 모든 것이 저절로 끝난다는 그러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구원파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성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충청도 쪽에 구원파에 속한 사람들이 죄와 은혜의 지배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대부분 교회의 목사들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이 어두워서 이렇게 보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김남준 목사는 확실히 구원받은 사람인 것 같다는 결론이 있었고, 두 번째 결론은 거기서 탈출해서 나온 사람의 증언이니까 거의 사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구원받고 자기들이 계속 죄를 짓고, 심지어 구원받아서 지금까지 헌신한 사람들이 교회를 안 나가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가, 그 끊어진 고리가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책에서 모두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 그중에 몇 가정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그중 한 가정이 우리 교회에 등록해서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성화를 안 가르칩니다. 구원받아서 그 순간은 대단했지만, 그다음에는 어떻게 죄와 싸워서 이겨야 될지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면, 죄와의 싸움에서 구원받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끊임없는 동기부여와 성령의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인은,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성경 시종일관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를 연약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강하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님 때문에 강한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습니다. 레위기 18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집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어겨라 사람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면 그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렇게 됩니다. 율법을 지키면 살리라, 여기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영혼과 마음까지 함께 생명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림에 보면 율법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죄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보면 볼수록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죄라는 사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닫게 합니다. 그것까지만 할 뿐이지, 그것을 율법의 도움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의 지배 아래 있을 때는 선한 일을 하겠다고 수없이 결심하는데, 그때 결심은 매우 진지하고 단호한데, 시간이 흘러가 보면 계속 거기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다음에는 두려움과 낙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도저히 죄를 이길 수 없구나, 죄는 내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다는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죄의 위압감이 죄가 노리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두려움 속에서 그 사람을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조금 더 보겠습니다. 율법에 집착하게 될 때, 그 율법은 죄를 이길 효과적인, 실효적인, 진짜로 죄를 이길 수 있는 동기와 격려를 주지 못합니다. 율법은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죄를 이길 수 있는 유효한 동기는 아닙니다. 율법을 가지고 싸울 때는 대게 어떠한 잘못된 동기를 갖게 되는데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짓지 않으려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죄를 안 짓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복음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주가 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으면 나에게 이러한 불명예가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된 것이 되면, 죄를 짓지 않았을 때 떠오르는 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내가 이겼다는 게 떠오르지 않고, 내가 죄를 이겼다는 자기 의가 생겨나게 됩니다. 당연히 자신의 명예에 대해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동기 자체가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 되면 안 됩니다. 그다음은 두려움입니다. 그 죄를 짓지 않으면 내가 당하게 될 어떤 일들에 대해서 깊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특히 사회가 구조적으로 악하게 되어있을 경우에는, 그러한 부정에 저항할 때 사회적으로 당연히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른 것을 그르다고 지적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들 때문에 자기도 휩쓸려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르지 않은 방법이고, 올바른 방법은 율법이 아닌 복음이 역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으로 죄와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 동기가 된 것이고, 이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입니다. 그렇게 될 때 이렇게 싸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을 향하여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죄에 넘어져서 실패하게 되면, 깊은 정죄 의식에 빠져서 절망하게 되고, 죄에 대해서 승리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부심이 생기는 것만큼, 그 사람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명료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다음 보겠습니다. 결국, 율법으로 죄와 싸워서 이기려고 애를 쓰는데, 못하게 됩니다. 못하게 되면 인간이 율법에 의해서 죄와 싸우다가 실패하게 되면 반감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감입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마음이 더 딱딱해져서 죄로 돌아가게 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한 예를 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쇠를 다룰 때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쇠를 완전히 액체 상태로 녹여서 다이캐스트에다, 주물 틀에 쇳물을 부어서 붕어빵을 만들듯이 부품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고, 불에 달궈서 물렁물렁하게 만든 시뻘건 쇠를 망치로 두들겨서 철판으로 칼도 만들고, 송곳도 만들고, 쇠스랑도 만듭니다. 대장장이는 눈 부신 빛이 나도록 달궈진 철을 놓고 아주 빠른 속도로 망치질을 해서, 원하는 형태의 제품을 만듭니다. 모루 위에 놓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시뻘겋게 달았을 때 두드리라. 식고 난 후에는 두드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에드워즈가 들은 예가, 그렇게 해서 뜨거워졌을 때 두드려서 원하는 대로 우리의 마음을 만들고, 삶과 인격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시기를 놓치고 나면 쇠가 굳어지는 것처럼, 신자의 마음도 그렇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예배에 은혜를 받든지, 사경회에 은혜를 받든지, 곤고한 이를 만나서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든지, 어쨌든 은혜를 받지 않습니까? 그때가 말씀을 많이 섭취해서, 말씀을 망치질 삼아서, 시편에 나오는 것처럼 방망이 삼아서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빗어야 할 적절한 시기입니다. 그런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때 말씀을 듬뿍 섭취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듬으면서 고쳐야 됩니다. 그러면 아주 놀라운 인생이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이전의 죄로 돌아가게 됩니다. 돼지가 씻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두 사람은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올바르게, 로마서 12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선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온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가다가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미신적인 맹종과 실천입니다. 신앙에 지식이 없고, 그 신앙이 인격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예전에는 죄의 종이었는데, 이번에는 종교의 종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젊었을 때 섬기던 교회인데, 아주 예쁘장하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성인데, 교회에 와서 등록하자마자 목사님께 부탁해서 교회의 화장실 청소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교회 봉사에 대해서 자발적인 시절이긴 했는데, 그렇게 자기가 콕 집어서 화장실은 제가 맡아놓고 청소하겠습니다. 참 기이하지 않습니까? 그때 저는 교회 마당에 있는 아주 허름한 방 한 칸에 곁방 들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도사이지만 화장실 청소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아내도 많이 하고, 나도 하고, 교인들도 봉사했었습니다. 자매님이 열심히 와서 청소하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궁금했습니다. 젊은 여성이 화장실을 청소한 것이 기이해서, '집사님, 어떻게 그렇게 화장실을 청소하겠다고 자원하셨습니까?' 그랬더니,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러 해 전에 교회에 부흥강사가 와서, 자기 다니던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은 화장실을 청소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건강을 주신다고 했답니다. 우리는 신학적으로 동의가 안 됩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과 건강을 주시는 것 사이에 무슨 인과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그것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잘못된 태도라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인과관계에 대한 맹종이 상당히 미신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청소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개가 여전히, 자기가 이렇게 건강한 이유는 아직 젊으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화장실 청소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건강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미신적인 맹종과 실천입니다. 그것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 안에 있는 것이 그 신앙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것이 사라질 때 이러한 미신적인 맹종과 실천이, 우리를 죄를 이기게 해주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훔친 적도 없고, 폭행을 한 적도 없고, 이성의 유혹에 빠진 적도 없고, 등등하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이 왕관을 쓰고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났으니 요한이라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기로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혹은 간증을 다 듣고 나서 그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보이는 그러한 설교, 그러한 간증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았는지를 자랑하는 사람들, 실제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죄에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다음 나눔 질문입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시편에 나오는데, 기도와 자신이 죄를 이길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이 어떡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압니다. 그러한 경험을 해봤던 지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성도 1 : 매주 전도를 했지만, 아웃리치를 앞두고 핍박하던 분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강한 두려움과 부담감으로 그냥 포기할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했을 때,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는 말씀을 붙들게 되었고, 핍박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그들이 복음이 필요한 영혼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2 :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고 어려운 문제들, 그리고 선택의 순간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를 해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금요기도회 때 같이 찬양 부르고, 말씀 듣고, 다른 환우들, 어려운 분들 모두가 교회 하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 개인기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힘을 얻고, 하나님의 크신 비전을 따라가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기도를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 어려운 순간들을 이기게 하신 것들, 견디게 하신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 같습니다.
성도3 : 제가 기도를 통해서 제 자신이 강해지는 경험을 한 것은 제 딸아이의 배우자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극심한 혼돈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먼저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엄청난 양의 회개의 눈물을 통하여서 제 마음을 식혀주셨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제 기도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셨습니다.
확실히 기도할 때 우리가 영혼이 강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렇게 영혼이 강해지면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더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받아도, 기도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종이 앞에 칼을 놓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은 그것을 두 손으로 붙드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든 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기도 생활이 더욱더 뜨거워져야 된다고 봅니다.
은혜가 주는 죄 죽임의 동기와 격려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그 피가 결국은 복음입니다. 복음의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때 우리는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되고, 당연히 그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들을 놀랍게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다른 면들입니다.
사랑을 이렇게 다이아몬드에 비교한다면, 햇빛이 이렇게 비치면 여기가 반짝이고, 저쪽에서 비치면 저기가 반짝일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러한 다양한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크게 네 가지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첫째는, 은혜 아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공급받으면서 죄와 싸울 때 받는 위로가 있는데, 영적인 소생입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확신과 주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확고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분명히 죄를 지었고, 여전히 죄가 있어서 그 죄와 싸우고 있는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죄보다 더 큰 사랑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게 죄와 싸우면서도 은혜가 주어질 때, 내가 지은 죄가 큰데도 그 죄보다 더 큰 사랑의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령의 즉각적인 도우심입니다. 매번 쓰러질 것 같은데, 은혜 안에서 죄와 싸우면 놀랍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켜서 우리를 실제적으로 도와주십니다. 그 순간을 어느 집사님이 이야기했듯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미움을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혀끝에서 쓴 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복수하면 진짜 살 것 같고, 복수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그러한 마음이 드는데도 은혜 아래서 죄와 싸우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즉각적으로 도와주셔서 그 마음들을 바꿔놓아 주십니다.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네 가지 영적인 소생, 은혜 아래서 죄와 싸울 때 받는 위로가 있는데, 영적인 소생, 사랑에 대한 확신, 성령의 도우심, 승리에 대한 확신 이러한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리하겠습니다.
죄를 이길 힘을 주시는데도 왜 격려와 동기가 필요합니까?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죄를 이길 격려와 동기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두려워하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만드셔서, 하나님 사랑 안에서 순종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 죽음에 필요한 동기와 격려를 주지 못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마틴 루터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미 책에 다 나오니까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끊임없이 자기가 금식도 하고, 고행도 하면서 이겨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율법은 죄를 보여주지만, 보여줄 뿐이지 그것을 이길 힘은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사단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죄를 보여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향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입니다. 그 죄를 보면서 좌절하여 죄와 싸울 힘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사단입니다.
3번, 잘못된 방법으로 죄와 싸운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잘못된 동기,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잘못된 목표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감기가 들렸습니다. 온몸에 열이 나고, 콧물이 쏟아집니다. 어떻게든 콧물이 안 나오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해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근원적인 치료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못된 방식으로 싸우게 되고, 그 결과는 결코 영적인 승리가 아닙니다.
네 번째, 죄와 싸우다 실패할 때 신자에게 나타난 세 가지 반응, 마음이 예전보다 굳어지면서 옛날 죄로 돌아감, 미신적인 맹종과 실천 혹은 자기 의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의 원리로 돌아가 죄와 싸우면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가 공급하는 죄 죽임의 동기와 격려는 무엇입니까? 생명, 기쁨, 용기, 인내할 힘, 이러한 것들을 주셔서 이 죄를 충분히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고, 죄를 이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6번, 신자가 은혜 아래서 죄와 싸울 때 받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영혼이 소생함, 하나님께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갖게 됨, 성령의 즉각적인 도우심, 승리할 것을 굳게 믿게 되는 것, 이것이 은혜 아래서 죄와 싸울 때 받는 위로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에 지면서 사는 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한 번 싸우고 나서 이기고 나면 용기가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고 성경적인 원리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한 번 싸워서 이기고 나면 정말로 죄가 별거 아니구나, 우리 운명이 죄에 지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말씀과 함께 은혜로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