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어느 사형수의 노래
–마음에 노래가 있는 예배입니까?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출 15:1)
녹취자: 허혜숙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그랬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보겠습니다. 자 찬송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올리는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는 노래입니다. 거기에 신앙고백을 담고 그렇게 교회가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면 하나님은 그 찬양을 받으시고 교회에 기쁨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찬송입니다. 때가 언제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홍해를 건너던 때였습니다. 앞에는 엄청난 바다가 놓여있고 뒤에서는 바로 왕이 보낸 추격 군들이 따라오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모세가 벌써 원망을 듣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디 죽을 데가 없어서 이리로 끌고 와서 죽게 하느냐? 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기도합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바람이 불어서 결국은 물이 갈라지고 그 사이를 건너게 됩니다. 그 때 이런 광경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때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하면서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커다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나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결국 찬양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경험, 그 경험 속에서 이 찬양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고백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사람들이 찬송을 안 부르려고 하는 것은 그가 일주일 동안 살았던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충만하게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욕구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에 찬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찬양은 내적인 고백입니다.
자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묵상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뭘 묵상하는 것일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다트 엘로힘’ 이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두 가지로 구성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 혹은 신학적으로 속성에 대한 지식, 두 번째는 속성의 시행방식 라틴어로 ‘오두스 오패란 디’라고 하는데 어떤 속성(성품)이 있는데 성품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역사하는 방식, 그에 대한 지식, 두 가지 이외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지식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입니다. 이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성품과 속성에 대한 지식, 그 다음 그 성품이나 속성이 시행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 이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알고 나서 그 다음에 자기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품에 대한 지식이 생겨나면 생겨나는 즉시 자기 자신의 삶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식을 가지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행하신 위대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반복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효과가 없는 사람에게는 찬송이 아무 효과가 없지만 그러나 진짜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찬양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알려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 그 다음을 보겠습니다. 자 찬양입니다. 마음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런데 이 찬양을 통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찬양의 목적이 마음을 여는데 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찬양은 여기에서 이런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든 아니면 열린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든 모두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그런데 실제로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찬양하다 보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자기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이가 들면 발에 각질이 쌓입니다. 내버려두면 각질이 쌓여서 살 갓이 찢어집니다. 그것이 염증이 생기면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 관리를 해 줘야 합니다. 굳어진 살에 샌드페이퍼 같은 것으로 굳은살을 문질러서 제거해 주고 크림을 수시로 발라줘야 합니다. 그래서 아기 피부처럼 잘 유지를 해 줘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면서 각질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들을 찬양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이 각질들이 떨어져나가고 마음의 정신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정서와 마음이 일치되어서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인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욕을 이 찬송 속에서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찬양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요즘은 찬양을 해도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주일 동안 거의 찬송을 못 했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찬양을 못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장 난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깊은 찬양이 우러나오는 그런 고백 속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노래 없이 못 삽니다. 우리는 찬양이 생활화 되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이 찬양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영혼에 놀라운 순발력을 줍니다. 그래서 마음이 건조하고 힘겨울 때 조용히 주님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찬양을 부르면 이 마음속에서 거룩한 정서가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찬양을 한 번 틀어 놔 보십시오. 사실 성가가 음악성은 좀 떨어집니다. 그것은 조금 불만인데 그래도 들어가 보면 아주 좋은 교회 음악들이 있습니다. 그런 음악들을 들으면서 마음에 거룩한 정서를 고양하면서 살 때 그 때 우리에게도 훨씬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을 창조할까? 자 148편 3절부터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 148:3-5) 아멘. 성경에서 특히 시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압도적인 것은 창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창조와 구속이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이런 것들이 다 찬양의 제목이 되는데 창조가 가장 큰 찬양의 이유가 되는 것은 모든 만물과 찬양하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셨으면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있을 수 없으면 당연히 찬송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아름다운 세계가 다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결국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의존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조가 우리의 예배시간에 부르는 찬송의 아주 중요한 제목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선택하심 이것은 구원입니다. 시편 135편 3절과 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였음이로다”(시 135:3-4) 아멘.
이것은 선택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개념과 연결이 된 것입니다. 창조 그 다음에 선택,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 이스라엘 안에 내가 있고 나를 선택하시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당신의 소유로 삼으셔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관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똑같이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결국은 에드워즈,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아들에게 부어지고 아들의 사랑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부인 교회에 부어지고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교회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로서 살아가게 하신 이것에 대한 근거인 선택 이것을 하나님 앞에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에 대한 찬송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도 여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선택에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선택한 것도 은총인데 그 선택이 성취되어서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죄의 결박에서 나를 끊어주시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주시고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만들어주신 것, 구원입니다.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사랑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받을 때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성화에도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예배시간에 올리는 아주 중요한 찬송의 제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하는 것을 예배 자들이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는 어떻습니까? 정신없이 세상에 파묻혀서 정신없이 살다가 예배드리면서 아,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구나, 그리고 이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 자, 두 개나 나왔는데 한 번 출애굽기 15장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 15;2)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구원하셨을 뿐 만 아니라 인도하시고 보호까지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이렇게 인도하고 보호하심으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은혜로서 항상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은혜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지난 한 주 동안도 우리를 지켜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런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영적인 의미를 깨달으면서 수시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고 감격하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셔도 그것이 은혜인지도 모르고 망령되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와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그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격할수록 예배드리고 난 후의 나의 삶이 남은 생애가 하나님을 위하는 삶이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개가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창조, 그 다음에 선택, 구원, 그 다음 은혜입니다. 시편을 통해서 중요한 찬송 제목을 순서대로 뽑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은 노래할 때가 아닙니다. 생각해야 할 때이고 설교해야 할 때이며 죄를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악을 향한 진노와 죄악들을 외쳐야 할 때입니다. 노래할 때는 나중에 찾아올 것입니다. 부흥이 임하고 하늘의 창이 열리며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그 때가 노래할 때입니다.’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미 로이드 존스 목사님 당시에 이것이 경건하게 예배당에서 부르는 찬양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때부터 찬양의 붐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새로운 방식의 예배가 도입되고 열렬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 때 순복음에서 있었던 열광적인 찬양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에는 현대음악들이 들어오면서 소위 말하는 크리스찬 컨템포라리 뮤직이라고 해서 CCM이 들어옵니다. 그런 것들을 구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찬양을 해라 열렬히 찬양하면 은혜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찬앙할 이유는 찬양함으로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음으로서 놀라운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러면 결국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심으로 노래할 때가 온다.’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그 분이 웨일즈 출신입니다. 제가 웨일즈에 갔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에반스 같은 사람에 의해서 일어났던 엄청난 부흥이 웨일즈를 강타하고 지나갔습니다.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재미있는 것은 웨일즈의 부흥이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평양의 대 부흥과 연관이 있다라고 하는 논문들이 많이 발표가 됐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웨일즈의 부흥을 보고 그 소식을 들은 선교사와 현지 사람들이 그 부흥의 소식을 들으면서 곳곳에서 열렬히 기도하게 되었는데 그 때 그 장소 중의 하나가 인도의 카아시 지방에서의 선교현장 이었습니다. 그래서 웨일즈의 부흥을 보면서 사모함을 가지고 간절히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도 웨일즈와 같은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는데 그 때 부흥이 일어나던 현장에 존스턴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중국 선교사였는데 그것을 보고 중국으로 오고 조선에 있는 선교사들을 모아서 웨일즈의 부흥과 카시의 부흥의 현장을 소개하면서 거기에서 들었던 사람들이 ‘이 조선에도 이런 부흥이 일어나는 것 외에 대안이 없구나.’ 라고 하는 간절한 마음을 품습니다. 그 때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함경도 쪽에 파송 받았던 감리교의 선교사인 하디입니다. 그리고 그런 영향을 받으면서 평양의 사역자들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이 같은 소망을 품고 특별기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사이를 온전히 기도에 몰입을 합니다. 그러면서 평양 대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일즈에서 부흥이 일어났던 것이 1902년에서 1904년 사이이고 카시 지방에서 부흥이 그것보다 약간 늦게 1904년에서 1906년 사이에 일어나고 평양 대 부흥이 1907년도에 일어납니다. 기록들을 한 번 살펴본 적이 있는데 놀랍습니다.
웨일즈를 갔는데 크리스마스 에반스가 설교하던 교회가 아직까지 있고 얼마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는지 온 동네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그 팀들이 미국의 초청을 받아서 수시로 거기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거기에 연세가 많이 드신 장로님이 있는데 내가 물어봤습니다. 부흥이 일어나서 오래 갔느냐고 물으니까 오래 안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왜 그렇게 오래 안 갔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에반스 같은 사람은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인데 전문적으로 신학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열정적이고 열렬하게 하신 것은 사실이었는데 우리는 그 때 말씀이 너무 약했다고 했습니다. 말씀에 의한 부흥이 아니라 찬양에 의한 부흥이었고 사람들이 모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찬양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진리의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고 변화시켜서 놀라운 역사들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말씀의 부흥이 일어날 때 그 때에 진정으로 사회를 바꿔놓고 일시적인 감흥이 아니라 사상을 바꿔놓고 하는 근본적인 변화들이 말씀이나 지식의 토대 위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웨일즈 지역을 순례하면서 부흥의 역사와 그 위에 청교도들의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의 역사를 보면 여러분들은 엄청나게 많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어쨌든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찬양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그 다음에 은혜가 있고 찬양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좀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하는데 써서 근본적인 영적인 변화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아서 모든 교회와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세계 창조로부터 시작해서 창조, 선택, 구원, 은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세계와 모든 인류의 질서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런 세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맨 앞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은 찬양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경배와 찬송을 드리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문제 1) ‘찬양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찬양의 조건은 무엇입니까?(184)
온 교인이 함께 찬송 함. 회중찬송. 한 개인이 부르는 것도 좋지만 온 교인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함 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열납하심.
문제 2)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찬양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찬양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찬양할 이유가 있을 때에 찬양다운 찬양이 나옴.
문제 3) 찬양하기 전에 묵상해야 할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품 혹은 속성 / 행하신 위대한 일들
문제 4) 바른 찬양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해야 함. /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길 간구해야 함. 그 때 찬양은 말씀에 대한 많은 깨달음들을 상기시켜주고 결국은 그 진리의 영향으로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찬양 속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문제 5)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네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창조, 선택, 구원,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