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깨어짐(2022.07.12._온라인구역공과)
3. 자기 의
녹취자: 김재혁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치지지 않으십니까. 이럴 때일수록 원기를 보충하고 여름을 잘 이길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셔야 됩니다. 아울러 우리의 영혼도 잘 관리해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자기 깨어짐 제3장 자기 의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표지에 나와 있는 자기 의가 무엇인지를 기록한 내용을 한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자기를 의롭다 믿는 정신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으로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경향성입니다. 이 정신은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자기를 정당화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죄와 자기 의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자기 깨어짐에서 말하는 자기 의가 무엇인가 하죠. 의, 의, 의에 대한 어떤 성경 신학적인 그 의미는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상태나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간 마음의 상태나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있는데 이렇게 빗나갑니다. 이렇게 이렇게 빗나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제 죄라고 합니다. 그 죄를 그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렇게 과녁을 빗나갔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뭔가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데서부터 어긋난 것 이것이 결국은 죄입니다. 죄. 이렇게 놓고 보면 자기 의가 무엇이냐 하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자기를 높게 생각하는 경향성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자기 의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정신입니다. 이런 자기 의에 빠지게 되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죄를 가볍게 여기고 그다음에 자기를 정당화하게 됩니다.
그다음 보겠습니다. 이게 자기 의는 이제 소극적인 면에서의 자기 의를 볼 수 있고 또 적극적인 면에서의 자기 의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소극적인 의미에서 자기 의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자기가 뭘 잘못한 게 있느냐 다시 말해서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별로 필요 없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나 정도면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차이가 뭐냐 하면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지 않는 것을 가리키고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용납될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자기가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이 교만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나와서 이제 이렇게 이렇게 뻗어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그래서 이제 이 교만이라는 그러니까 교만이라는 이 하나의 뿌리에서 이제 이런 생각들이 다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결국은 이것을 이제 죄의 근원이라고 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교만. 쉽습니다. 그렇죠.
그다음 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의는 무엇인가? 먼저 이제 이 의를 우리 거로 보지 않고 하나님 속성으로서의 의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 속성은 뭐냐 하면 어떤 사물이 있는데 사물이 어떤 성질이 있을 때, 성질이 그런데 이 성질을 빼버리고 나면 그러면 성질을 빼버리고 나면 그러면 A가 될 수 없는 것 이것이 속성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속성은 A라는 사물 속에 있는 어떤 특성인데 이 특성이 이 특성을 빼버리고 나면 이 사물이 될 수 없는 것.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속성들이 있습니다. 그 속성들 중에 의가 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거룩함에 도전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시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거룩함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거나 막으셔서 못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의 속성적인 의입니다.
그럼 이것을 이제 이것을 이렇게 인간에게 적용할 때 그때에 이제 인간에게는 크게 두 가지 의인데 하나는 ‘율법적인 의’입니다. 그래서 이거는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얻는 의입니다. 이것은 의로워지는 자원을 자신 안에 둡니다.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복음적인 의’가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 의이고 의로워지는 자원을 그리스도에게 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것은 어떤 의입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의를 획득하십니다. 여기까지 여기까지는, 여기까지는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성부와 성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주심으로써 이게 복음적인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으로서는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이 복음적인 의로서 우리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자기 자신이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얻는 의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이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시는 거라 이것입니다.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의는 율법적인 의가 아니라 복음적인 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복음적인 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받아들여진 사람들은 이제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순서가. 이해하실 수 있겠죠. 그다음 보겠습니다.
자기 의가 왜 나쁜가? 이것은 이것은 그냥 나쁘다는 뜻입니다. 왜 나쁜가? 의롭게 사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을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왜 나쁜가 이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의존을 떠난 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마음으로 이룩한 의입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이. 두 번째는 하나님 사랑에 종속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지순한 사랑을 상실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그래서 이 자기 의는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인 사랑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다시 뭐냐하면 하나님의 그냥 지순한 사랑만이 온전한 순종을 가져오는데 자기 의에는 이런 아름답고 온전한 순종이 결핍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난 의, 신자의 영적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자기 의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이 작용이 없거나 결핍됩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의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 의에 대한 신뢰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룰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구원받지 않은 사람 굳이 성경이나 신앙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 없이도 온 인류가 잘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 뜻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을 기반으로 하는 의로는 하나님의 선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그렇게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된다 이런 의미입니다.
자 그 다음 보겠습니다. 자기의와 거룩한 삶에 대한 지성적인 혼란입니다. 자 이렇게 봅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그리스도와 거룩한 생활의 관계에 대한 무지, 무지입니다. 무지입니다. 그런 무지가 결국은 뭘 가져오냐면 의로운 삶의 무용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율법 폐기론적인 태도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할 때에는 자기 힘으로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려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이룬 그 의를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거죠. 이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제 무지해서 ‘내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또 그 나의 인간의 의는 아무 쓸모가 없다’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하면서 그러면서 ‘우리가 굳이 의롭게 살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시니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며 살아도 된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은 구원 받을 때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그리스도의 의와 그 구원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것을 모르는 그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게 된 근거입니다. 유일한 근거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고 올바른 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 구원 받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을,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써 죄인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게 된 근거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렇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게 너무 당연합니다. 그것이 의로운 삶입니다. 그러면 그때 어떻게 의로운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지침을 뭐가 제공해 주겠습니까? 율법이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이렇게 올바로 살면 살수록 더 많이 은혜를 받으면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는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이외에는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의가 없다. 그래서 구원받은 후에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받으면 사랑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진다. 이때의 지침이 율법이다. 그렇게 순종할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앞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를 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의로운 삶은 거룩한 내적 은혜의 외출적 열매이며 바깥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또 하나님은 이 열매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거룩한 내적인 은혜가 있고 이것이 이제 이렇게 결실을 하게 되어 의로운 삶으로. 그러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11절을 같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아멘.
자 오늘은 비교적 공과가 아주 쉬웠습니다. 그렇죠? 짧고, 자기 깨어짐에서 말하는 자기의란 무엇인지 소극적 자기 의와 적극적 자기 의를 설명해 봅시다. 자기의.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신뢰, 자신을 의롭다고 믿는 정신입니다. 소극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 의존 없이 살 수 있다는 생각, 하나님 앞에 넉넉히 받아들여질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소극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하나님 없이 충분히 살 수 있어. 그다음에 적극적인 의미는 나만큼 살면 되지 이런 생각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이것이 깨뜨려짐으로써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변화 받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2번. 자기 의를 신뢰하는 정신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봅시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3번.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필요한 의의를 얻는 두 가지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율법적 의예요. 만약에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죄를 지은 다음에는 인간이 그렇게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복음적 의를 통해서 우리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얻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늘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4번. 자기 의가 악덕스러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 대한 절대 의존을 떠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의존.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에 종속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세 번째 순종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네 번째 생명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의존, 종속 그다음에. 의존, 사랑, 순종, 생명에 사랑 없고 순종 없고 생명 없기 때문에 자기 의가 나쁜 것이다. 이렇게 그것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나쁜 것이다. 또 그것으로서 자신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나쁜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5번.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의로운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이 드러나시도록.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구나라는 것을 사람이 알게 되도록 의의 열매가 풍성한 삶을, 의의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공부 어떠셨습니까?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죠? 자기 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기도를 게을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가 잘 될 때 여러분 기억해보십시오. 마음에 물같이 녹으면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기억나시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매달려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의 신앙의 관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를 비춰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가 하는 사실을 깊이 깨달으면서 이제 회계하고 회계하면 회계할수록 예수밖에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들의 진정한 신앙의 새 힘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번 한 주간 하나님 많이 의지하시면서 특별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지금 우리가 특별 작정 기도 기간 중이죠. 아직 작정 못하신 분들 작정하시고 하나님 앞에 열렬히 기도하셔서 은혜로운 생활 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