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령의 조명
녹취자: 이새봄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더우십니까?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장마 끝에 뜨거운 더위가 계속되고 있고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들이 해외에서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무더운 여름철일수록 우리는 신앙 안에서 여유를 갖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 오늘 우리가 공부할 것은 <제4장 성령의 조명>입니다. 이제 어거스틴의 한 어록이 하나 나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까? 시작. “우리가 낮인 동안에 즉 우리가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참빛이신 그의 말씀으로 깊이 알아 우리가 조명되도록, 또 어둠이 우리를 붙잡지 못하도록 그렇게 행하자.”
‘조명’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조명’은 그럼 뭐가 생각납니까? 네, 영화 촬영할 때 배우들은 연기를 하고 멀리서 조명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빛을 찬란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영상이 잘 담기도록 그렇게 돕는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연기라도 조명이 없다면 빛날 수 없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역시 성령의 조명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조명이 없더라면 못 깨달았을 것을 조명 때문에 깨닫게 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한번 보시겠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죄에 대한 사랑이 깨어지는 것이고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자기 깨어짐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깨어짐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한번 도표로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제일 먼저 성령의 조명이 있습니다. 이 조명은 인간의 이성에, 인간의 지성에 비치는 조명입니다. 지성이 이성이 뭐가 다르냐 그러면은 이 지성이 더 넓습니다. 지성은 이렇게 이성과 그리고 오성으로 이렇게 됩니다. 이게 오성인데 이거는 이제 이치적으로 뭔가를 깨닫는 것이고 오성은 인간의 정신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초월적인 것을 깨닫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건 이제 믿음 같은 것들이 오성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이걸 모두 합쳐서, 이거를 가리켜서 우리들이 지성이라고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이렇게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조명이라는 게 뭐냐 하면, 이 지성을 성령께서 이렇게 빛을 비추십니다. 이렇게 그래서 이 빛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못 보았을 것을 보게끔 해주시는 겁니다. 알게끔 해주시는 겁니다. 그럴 거 아닙니까? 방이 이렇게 있는데 이게 캄캄하게 어둡습니다. 우리 아무것도 볼 수 없잖습니까? 근데 여기 이렇게 한 구석에 빛이 비칩니다. 여기 뭔가 물체가 드러나겠습니다. 이렇게 빛을 비추는 것을 가리켜서 조명이라고 부른다 이랬습니다. 조명, 똑같습니다. 우리가 쓰는 조명 기계, 뭐 이런 거와 똑같습니다. 조명입니다. 예, 성령의 조명이 있게 되면, 예전에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아무거나 비춰주는 게 조명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도록 만들어 주는 게 조명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죄에 대한 확신이 생겨나게 됩니다. 죄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게 확신이라는 건 뭐냐 하면 자기가 유죄다라고 하는 컨빅션(conviction)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아 이거는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다’라는 자기부인이 생깁니다. ‘장가간다’는 뜻이 아니라 부인이 생깁니다. 그다음에 이제 ‘나는 잘못했구나’라는 걸 깨달으면서 자기심판과 처벌이 뒤따르게 됩니다. 당연히 여기는 고통이 있게 되겠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고통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다, 이게 여섯 번째입니다. 다시 사는 겁니다. 이거는 이제 죄와 자기 의에 대해서 죽는 것이고, 그 다음 이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그의 의에 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것, 그러니까 이거는 죄의 죽임이고 이거는 은혜 살림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이건 죄죽임이고 이거는 은혜 살림. 죄 죽는 곳에 은혜가 살아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제 삶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 겁니다. 이게 이 책 전체의 구성이기도 합니다.
네, 한번 보겠습니다. ‘조명’,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입니다. 제일 중요한 거는 ‘성령의 도움으로’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못할 텐데, 근데 이것에 의해서 이성적 기능에 의해 혹은 지성적 기능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 말씀입니다. 말씀을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의 조명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여러분 그런 적 있지 않습니까? 아 늘 듣던 말씀인데 어느 날 교회 가서 들으니까 이게 찬란한 빛처럼 느껴지면서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데 그게 너무 낯선 겁니다. 그리고 그게 나라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픈 겁니다. 그래서 회개하신 적 있습니까? 그런 거를 가리켜서 조명이라고 부른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근데 늘 읽던 성경이었는데 왠지 그날 읽으니까 막 놀라운 깨달음들이 주어지면서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더라, 이런 것들은 성령의 조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설교자는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고, 또 말씀을 훌륭하게 전해도 그것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양쪽 다 조명이 없을 때 참 답답하겠습니다. 네, 또 그다음 보겠습니다.
자, 이제 하나님이 계신데 이제 그건 본성의 빛입니다. 이건 뭐냐 하면 거듭나지 않은 자연 이성의 논리라 이런 뜻입니다. 이거 가지고는 하나님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자연 이상의 논리라는 게 뭡니까? 누가 갖다 놓으면 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누가 갖다 두지 않았으면 없는 것,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 그 하던 이야기들 가운데 그런 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누가 만들었어?”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럼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 “하나님은 원래 있는 분이야.” “그런 게 어딨어?” “어?” “만든 사람이 없이 있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어?” “그러면 이런 모든 세상의 문명을 인간이 만들었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만들었을 거고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을까?” 만약에 누가 만드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끝까지 올라가면 결국은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계시는 분이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자연 이성의 논리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될 때에 이제 영혼은 어둡고 지성은 눈이 멀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 다가 되는 겁니다.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먹고 입고 쓰고 마시고 놀러 다니고 그것 이상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러던 사람에게, 이렇게 여기까지만 아는 겁니다. 이렇게 이만큼만. 근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훅하고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뭐냐하면 올바른 인식이 생겨나는 겁니다. 무엇을 통해서 가능합니까? 성령의 조명이 있으니까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예를 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가능합니까? 그러니까 사랑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누구시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다음에 이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겨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는 겁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까 그 다음에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게 깨어짐이 일어나는 겁니다. 무슨 깨어짐이 일어나냐 하면 죄에 대한 사랑, 이게 결국 자기사랑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 의를 신뢰하는 것. 그러니까 자기가 충분히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깨어지는 겁니다.
영혼에는 이중의 어두움이 있습니다. 어두움이 있는데 첫째가 객관적인 어두움과 주관적인 어두움입니다. 그래서 이 객관적인 어두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이게 결국은 객관적인 어두움입니다. 이거는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자기가 넓은 의미에서 보면은 그냥 무지에 머물러 있기로 선택한 거지만, 좁은 의미에서 보면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몰라서. 이게 객관적인 어두움입니다. 근데 이제 더 큰 문제는 주관적인 어두움입니다. 주관적인 어두움은 뭐냐면 자기가 선택한 겁니다. 이게 죄를 짓고 그렇게 해서 결국 마음속에 죄된 경향성이 생기니까, 그 다음에 여기에 보면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하나도 없잖습니까? 이 사랑 없는 것이 마지막에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결국은 이 아무것도 그 올바른 것을 생각할 수 없게끔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과 생각은 두 개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생각을 많이 하면 결국은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뭐 너무 당연하잖습니까? 그래서 많이 생각하면 그 물건을 꼭 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많이 생각하면 그것이 사랑으로 바뀌어져 가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령의 조명이 왜 필요한가? 첫째는 객관적인 어두움 때문에. 객관적인 어두움은 이거는 공부를 하면 됩니다. 공부를 하고 탐구를 하면 됩니다. 근데 이제 주관적인 어두움은 이거는 물리치기가 어렵습니다. 이 죄에서 돌이켜야 됩니다. 근데 이거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조명을 해주시는 겁니다. 조명을 해주는 거, 이것도 당연히 조명이 필요합니다. 조명해 주시면 성경 공부가 잘 되는 겁니다. 조명해 주실 때, 그때 이제 이 주관적인 어둠이 물러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어둡던 우리의 마음에 말씀으로 말미암아 밝은 빛이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 후에도 계속되는 조명의 작용입니다. 자기 밖의 초자연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혼의 상태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죄와 죄의 비참함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다음에 죄를 혐오하게 됩니다. 지성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게 다 불가능했던 것들입니다. 자기 밖의 초자연적인 진리? 그거 못합니다. 영혼의 상태를 파악한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죄와 죄의 비참함을 인식을 못합니다. 그래서 계속 죄 가운데 있습니다. 혐오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사랑합니다. 지성을 통해서 믿음을 못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제 조명하심으로써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게 이제 중생하기 전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중생한 후 신자의 성화의 과정에서도 이런 성령의 작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말씀입니다.
자, ‘영광’. 조명을 통해서 우리는 영광을 보게 되는데 ‘영광’이 무슨 뜻이냐 그겁니다. 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제 여기 조명과 관련해서는 이게 성경에서 히브리어에서는 이제 ‘카보드(דובכ)’라고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이제 신약에서는 ‘독사(δόξα)’라고 이렇게 합니다. 이제 이건 뭐냐면 ‘무겁다’ 이런 뜻입니다. 중요하다. 그래서 물질적인 소유, 신분 혹은 무형의 장점 때문에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만드는 것, 그거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가진 존재가 중요하게 대우를 받는 효과, 이거를 이야기합니다. 영광의 의미가 그런 겁니다. 영광을 받으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안 보이고 그 사람만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그게 영광입니다.
그 복음의 영광은 뭐냐 하면 이런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성품을 이 복음을 통해 드러내는 겁니다. 이 복음이 뭡니까? 구원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찬란하게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그걸 복음의 영광이라고 부릅니다. 그것과 함께 이것을 만약에 우리에게 적용하게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 힘. 그러니까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을 사람들이 발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는 어떤 힘, 그것이 복음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영광은 하나님이 구원 계획을 통해 드러나고 또 성도들 안에 가지고 있는 복음을 통해서 영광이 드러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영광이 이제 가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제 이것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삶을 살다가 조명을 받게 되면 지성을 압도하는 빛이 비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영광의 빛이 비치게 되고 복음의 영광은 지성을 압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찬란하게 빛이 들어와서, 이렇게 빛이 이렇게 들어와서 뭔가를 발견하게 되잖습니까? 여기서 무엇인가를. 그러면 당연히 이건 찬란하게 빛납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딴 데 정신 팔고 살다가 이거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여기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게. 결국은 이것이 지성을 압도하는 어떤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되는 겁니다. 그때에 이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씨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을 찬찬히 읽어보십시오. 이게 전혀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게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지하시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것입니다. 내 마음에. 예전에는 자신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는데 하나님이 내 안에 찾아오실 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참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렇게 해놓고 나면 그다음에 이제 뭐가 문제입니까? 이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근데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깨어졌던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겠습니다. 그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핵심적인 원동력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지식.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뭐냐 그러면 이건 외우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지식이고 그리고 두 번째는 성품의 시행 방식에 대한 지식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있고 그 다음에 성품이 시행되는 방식.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성품이 사랑이 있잖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사실은 반드시 그 사랑이 어떻게 내게 실행되었는가라는 지식과 반드시 연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사건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겁니다. 뭔가 나와 나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이렇게 얘기했잖습니까? “보라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주사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하나님의 자녀라 부름을 받게 하셨는가” 하잖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냐면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오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시행된 겁니다. 시행. 실시된 겁니다. 예.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신 겁니다. 그러면 결국은 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의 시행 방식이다, 이건 공식처럼 외우고 계십시오. 따라 해보십시오. 시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 성품의 시행 방식에 대한 지식이다.”
한 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 깨달음이 어떻게 왔냐 하면, 내가 그렇게 돈이 없어서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런 시행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게 나에게 경험이 된 겁니다. 근데 그것이 나에게 영적으로 감동을 줍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됐는데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도 하나님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동을 받는 겁니다. 뭐에 대한 깨달음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시행 방식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감동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다음, 이제 그렇게 되면 그 모든 좋은 것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다음에 어떻게 되냐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집니다.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셨구나’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깨달음이 있으니까 그 경험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예전엔 볼 수 없었던 진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시편을 읽습니다. 그러면 초등학생도 읽겠습니다. 읽겠는데, 뭐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그 애들에게 뭐 여섯 일곱살 먹은 아이들에게 원수가 누가 있겠습니까? 원수가 뭐 맨날 싸우는 누나 아니면 자기 동생 그 정도밖에 더 되겠습니까?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유리하는 나그네가 되었나이다’, 아이들이 뭐 그런 거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근데 이제 산전수전 겪으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짜 원수들에게 배신도 당해보고, 또 자기가 그 한 인간으로서의 철저한 고독을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그 고독의 눈물을 흘려보면서 나그네된 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걸 깨닫게 되잖습니까? 근데 그렇게 하면서 이제 그 성경이 가슴에 다가오게 되잖습니까? 경험한 깊이만큼 성경을 보게 되고 성경을 깨달은 것 만큼 경험을 해석하게 되는 겁니다. 이해되십니까?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이제 지성과 영혼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있는데 사물을 인식하고 거기서 획득한 지식들을 연결하고 추론하는 지적인 기능입니다. 근데 총명은 변전하고 있는, 이게 ‘변전’이 무슨 뜻입니까? 계속 변화되면서 굴러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양을 계속 바꾸면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사물과 일에 대하여 진짜로 있는 것을 직관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다시 말해서 시간과 공간에 묶이게 되고 이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지식입니다. 초월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영혼과 지성은 이렇게 놀라운 관계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인데 이 죄가 이게 결국은 이게 뭐라 그랬습니까? 주관적 어두움이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결국은 총명을 자꾸 약화시켜 흐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욕망에 사로잡히고 죄를 짓게 되면 정신이 흐려집니다. 찬송가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정결한 마음 그곳에서 신령한 빛 비추나니” 그러고 나오잖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이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조명과 인간의 책임. 죄인의 마음을 비추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만 그러나 그것을 통해 참된 자기 깨어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입니다. 그리고 조명도 노는 사람에게 조명을 해주시는 게 아니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렇게 조명이 오게 되면 그 다음에 인간이 뭐가 책임이 있냐 하면 조명된 지식의 파지, 조명된 지식이 사라지기 쉬우니까 그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굳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조명된 그 지식을 가지고 이상의 추론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비참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면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거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면 조명된 사람이나 안 된 사람이나 차이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돼지가 뜨물통을 보면서 ‘아 여기 더러운 뜨물’, 더럽다기보다 자기가 먹는 거니까 ‘아 여기는 뜨물통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가서 누워버립니다. 더러운 것을 흠뻑 뒤집어썼습니다. 주인이 꺼내주어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근데 다시 그 더러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눕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으며, 야고보의 표현대로라면은 거울을 보고 뭐가 묻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계속해서 그대로 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문제 1번. 자기 깨어짐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까? 조명, 죄에 대한 확신, 자기부인, 자기심판과 처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삼, 그리스도를 따름.
2번. 성령의 조명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합니까? 성령의 도움으로 이성적인 기능에 의해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 넓게 보면 이제 지성적인 기능입니다. 그다음에 필요한 이유는 성령의 조명 없이는 누구도 죄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다음에 그리스도보다 자기를 더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3번. 드리워진 두 가지 어둠은 객관적인 어두움, 이건 그냥 배우지 못한 겁니다. 주관적인 어두움, 죄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4번. 조명을 통해 복음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의 경험, 곧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게 하는 영광의 빛에 대한 경험이다.
5번. 깨어짐에 이르기 위해 조명뿐 아니라 인간의 의지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두 가지가 무엇입니까? 조명된 지식을 굳게 붙들고 계속 생각하는 것, 조명된 지식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추론을 해서 내가 어떻게 믿고 살아야 될 것인가를 결론을 내리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들에게 희망차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