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삶
녹취자: 조경훈
성도 여러분. 잘 지내셨습니까? 무더운 여름철이 이제 끝나 가는데 무섭게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해 피해를 입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마지막까지 비 피해가 없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에도 폭우가 온다는데 모두 안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공과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 8장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삶을 할 차례입니다.
성경 구절은 아니지만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자기 심판과 자기 처벌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을 거부하며 살던 마음과 생활을 돌이키고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며 최고인 것처럼 살아가게 하던 세상의 길과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8장 내용 자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니까 세상의 영광에 들떠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는 죽어있고 자기를 향해서는 살아있는 것’ 이것이 옛사람의 본질입니다. 이게 옛 본성이라면 반대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살아있고 세상을 향해서는 죽은 것’ 이게 새 본성입니다. 이 두 개가 이 안에서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다투고 싸웁니다. 이쪽으로 넘어가면 은혜의 지배가 되는 것이고 이쪽으로 넘어오면 죄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의 본질은 인간 안에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는 본성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두 본성이 서로 싸웁니다. ‘은혜 안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쯤 된 것이라면, ‘죄 아래 있다’라는 것은 이쯤 된 것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신자의 삶은 끊임없는 내적인 분투의 연속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라는 것은 구원받음으로써 하나님이 새롭게 주신 하늘 성품입니다. 팔복에 아주 잘 나와 있는 것처럼 은혜가 빚어낸 성품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은 여기에 누워있는데 누가 이 사람한테 욕을 해도 반응이 없을 것이고 죽은 자는 말이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죄에 대해서 뭔가 작동되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의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의 본성인 것입니다.
인간이 거듭나게 되고 이것 자체는 우리가 느낄 수 없는 것이지만 중생의 효과가 사람의 의식의 표면 위로 올라옵니다. 여기서 뭔가를 느낍니다. 그게 뭐냐 하면 죄에 대해서는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집니다. 누구에게? 그리스도께. 이렇게 회개와 믿음을 합쳐서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에 이르는 것은 한 번 이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될 때 사람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심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중생을 통해 신자 안에 심겨진 새 본성은 재창조된 하늘의 본성으로서 은혜로운 본성입니다. 몇 가지를 보여주는 것이 재창조입니다. 반대말은 첫 창조, 첫 번째 창조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땅에 본성은 죄인들도 가지고 있는 본성입니다. 두 번째 천적 본성이라는 것은 거듭남과 함께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은혜로운 본성입니다. 자연적인 본성과 대조를 이룹니다. 은혜로운 본성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 본성이 심겨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하는 정의와 사랑의 본성이 심겨집니다.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지키고 신실하게 사느냐? 그리고 얼마나 믿고 순종하느냐? 이런 거에 따라서 새 본성이 강화되기도 하고 혹은 약화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성화에 달린 것입니다. 이 사람을 보면 처음 순간에 온전한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절반쯤 잃어버렸습니다. 은혜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다시 이 사람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고 은혜를 받으면 점점 점점 이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겠습니다. 결국 옛사람의 성품은 새 본성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킵니다.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했을 때도 옛사람의 성품과 새로운 본성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살며시 보여준 것입니다.
그다음에 옛사람이 죽임을 당할 때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죽는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성향이 약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런 말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네 남편 한때 성질이 굉장했잖아? 그런데 요즘 다 죽었어. 그 말은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뜻이 아니라 옛날 성질에 비하면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약화됐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내가 진짜 참는다. 김남준이 다 죽었구나’라고 얘기하는 것도 본성과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도 보편법칙에 대한 놀라운 이해들이 있습니다.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사용합니다.
이게 옛사람의 죄의 성향인데 약화됩니다. 약화되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은혜의 성향이 약화된 것만큼 강화됩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죄가 죽는 것을 가리켜서 ‘mor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put to death’입니다. 죽게 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죄가 죽는 것입니다. 죄가 죽는 것만큼 반대말이 ‘vivification’입니다.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뭐가 살아나느냐? 은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죄가 죽으면 이런 식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죄가 죽으면 죽는 것만큼 빨간 색깔이 들어옵니다. 사랑이 들어오고 은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는 생활과 은혜를 계속 살리는 생활 이 두 가지는 두 개의 날개처럼 함께 갑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이 그러한 환경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죄를 끊임없이 죽일 수 있고 은혜를 계속 살릴 수 있는 환경에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새 본성이 살아나는데 마음과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 첫째는 ‘순명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생각만 하고 못 사는 이유는 악한 본성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렇게 못 사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부활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수없이 설명한 이야기지만 다시 한 번 설명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어느 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되면서 깨달아집니다. 자기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난번에 배운 자기 인식이 있고 자신을 정죄하고 자신을 처벌하게 됩니다. 그 때 처벌하는 방식이 자기를 때리고 형벌을 내리는 게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고난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자기 안에 있는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구나. 하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죽은 고난이 자신에게 영적으로 느껴지면서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기운이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완벽하게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하다 보면 자신의 죄 때문에 회개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양심의 작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런데 내가 아직까지도 이 죄를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마음 때문에 아파하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가 이천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영적으로 내 마음을 파고들어서 그 죽음이 현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만큼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게 부활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새 힘이 솟아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내가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확신이 생겨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마음의 틀이 회복됩니다. 예전에는 마음의 틀이 죄를 지향했습니다. 이것이 이런 십자가의 경험을 하면서 마음의 틀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구조 자체가 달라집니다. 옛날에 나의 자연적인 기질이 바뀐다는 게 아니라 나의 마음에 방향과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에 일어나는 변화이고 마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던 사람이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기 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배척합니다. 당연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사람은 자기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이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자기 뜻보다 더 큽니다. 이대로 이루어질 때 자신도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이 경험되면 마지막으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을까? 나를 왜 창조하셨을까? 나를 구속해주신 이유는 무슨 목적 때문일까? 이것을 깨달으면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첫째는 신자의 순종하는 삶을 항구화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깨트려져서 새 본성이 충만하게 강화가 되면 일시적인 순종의 삶을 살고 금방 불순종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성향을 가지고 끊임없이 순종하면서 일관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녀관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남자하고 계속 사귀어서 결혼을 골인을 할까? 아니면 갈아탈까?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왔다 갔다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 되겠구나.’하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면 마음이 확고하게 정해지는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자기 깨어짐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확고해지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순종의 삶이 일시적이지 않고 항구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두 번째로 자기가 깨어지고 창조목적으로 돌아가게 되면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주님만 생각하니까 주님을 닮아갑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아무리 많이 사랑해 주시고 은혜를 주셔도 자기가 깨트려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기대와 사람의 기대가 어긋납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변화된 신자와 더불어 충만한 교제를 나누실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도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생명 충만한 신앙입니다.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2004년에 이 책을 쓰면서 한참 이런 쪽으로 사유가 되던 때여서 나왔는데 철학적 사유를 통한 현자의 삶이라고 말을 쓴 이유가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고 다른 사람을 지으시고 세계를 지으신 이 모든 목적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내가 우주의 일부분으로, 세계의 한 일부분으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독립적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일반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지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신앙을 보편화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괴로움을 겪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사유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꼭 기독교인이 아니라 사람이기만 해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공감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인류사회에 대한 구도를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창조의 목적이 이 세상에 실현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교회와 사람과 남자와 여자와 모든 사람들이 각기 하나님이 정하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그것은 하나의 질서입니다. 그 질서 안에 이것들이 서로 연결을 이루고 있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깨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펼쳐서 인생 전체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깨닫게 해서 자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여기 보면 사람들이 각각 자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놓고 움직입니다. 이 그림을 가지고 설명이 안 되는 것은 사실 이런 식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선을 이렇게 각자 그립니다. 자기는 하나가 아니라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결국은 여기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엄청난 갈등들이 국제적으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단일한 하나의 초점에서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일을 하고 사람과 교제하거나 가르치고 밥을 먹고 이 사람은 반가워서 끌어안고 하는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깥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 안에서도 사람들이 다른 것들을 사랑하면 갈등이 일어날 것입니다. 갈등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해서 몇 사람들은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회개하면 다시 돌아오는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여기도 평화를 이루기도 쉽지 않지만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문제1) ‘옛사람이 죽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죽어있고 자신을 향해서는 살아있던 옛 성품이 새 사람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
문제2) 자기 깨어짐 안에서 ‘새 사람이 살아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옛사람의 성품은 새 본성과 끊임없이 갈등함
옛사람이 죽임당할 때 새 사람이 살아난다.
그 결과는 순명의 삶과 부활에 대한 현재적 경험이고 마음의 틀이 회복된다.
문제3) 자기 깨어짐을 통한 신자의 변화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자의 삶을 항구화하기 때문에
신자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변화된 신자와 충만한 교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문제4) 옛사람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시 살아나는 영적 변화가 신자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첫 번째는 진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입니다. 이것은 회개하고 충만한 은혜를 받았는데 언젠가는 식습니다. 그것을 잘 식지 않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누군가? 어떻게 창조되었고 어떻게 구원을 얻었으며 내가 옛 생활로 돌아가면 얼마나 불행해질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이런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보편적인 원칙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율적인 삶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창조의 목적의 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실현되는 것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다른 이웃의 인생에 있어서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신은 행복한 삶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