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리스도를 따름
녹취자: 김재혁
안녕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 드디어 자기 깨어짐 마지막 장을 우리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봄에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 가을에 끝나는 것 같습니다. 자 우리 9장 한번 보겠습니다. 어거스틴의 아주 유명한 말이죠. 카리타스 노비트 베리타템(caritas novit veritatem)이라는 말인데 우리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지순의 사랑이 진리를 깨닫는다” “지순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한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리스도를 마지막으로 자기 깨어짐이 모두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제 어떻게 하시는지 우리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부주의함을 고치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이 있고 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가 있을 거 아닙니까. 자신의 잘못으로 말미암아서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고 또 자신은 고통받게 되었다는 기억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거를 보면서 이제 자신이 어느 점에서 부주의한 지점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처음서부터 사람이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걸어가다가 미끄러질 때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미끄러지는 지점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런 것들이 미끄러지는 지점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부주의함입니다. 그때 잘 살펴서 갔으면 그런 큰 어려움을 안 만났을 텐데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부주의함을 고치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부주의함이라고 하는 것은 경외심의 결핍입니다. 우리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아주 우리가 많이 존경하는 사람 앞에서는 물 한 잔도 옮길 때 조심 조심조심 옮기지만 내가 무시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렇게나 행동합니다. 그러니까 또 잘못했을 때 이렇게 물잔을 떨어뜨렸다 할 때 내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 물잔을 쏟아뜨린 것과 내가 너무너무 존경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분 앞에서 그 물을 쏟은 것과 이게 감정이 똑같지 않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부주의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결핍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도표로 돌아가시면 그래서 이제 죄는 두 가지 방면에서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우리에게 부주의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는 강압입니다. 강압이 뭐냐 하면 죄가 가지는 강압입니다. 우리에게 죄를 사랑하는 본성이 있으면 그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도록 그렇게 우리에게 푸시하는 것입니다. 미는 것입니다. 포스라고 하는데 강압이 힘을 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속임입니다. 디스트(deceit)인데 그러니까 죄는 아주 그 포지티브(fugitive)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이렇게 잡으려고 그래도 끊임없이 숨고 도망치는 그런 속이는 성질이 그 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속인다기보다는 죄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가 그 죄를 사랑하게 될 때 이 죄는 그렇게 이미 속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쉽게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자꾸 속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럽니다. 자기가 마음에 끌려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다음에 그 일이 옳지 않다는 정보들이 잘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이건희 회장이 살아계셨을 때 그때 자동차를 삼성에서 만든 적 있습니다. 저도 한 번 탄 적이 있는데. 그런데 너무너무 자동차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결국은 나중에 다 정리했습니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사채를 거의 2조 가까이 거기에다가 그 쏟아부었고 결국은 청산을 했는데. 그때 이건희 회장이 그러더랍니다. 도대체 어느 놈이 나보고 자동차 사업을 해도 된다고 그랬는지 당장 나오라고. 그러니까 그 경영의 귀재인 분도 일단 자기가 그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깊이 빠지게 되니까 그 다음에 그 사태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속임도 그와 유사한 것입니다. 아주 욕망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도표로 돌아가 보시면 이제 이렇게 죄의 강압과 속임으로 이제 결국 우리들은 그 죄를 짓게 되는데. 그런데 이제 그러면 그 강압이라는 게 결국 우리 자신이 뭔가를 하고 싶은 그 욕망이고 그 욕망은 죄 된 성향에서 오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이길 것이냐면 그 은혜의 힘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보면 이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런 사람 안에 있는 은혜의 힘으로 죄의 강압을 이기는 것입니다. 신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 은혜를 받고 마음이 하나님 사랑하게 되면 전혀 이길 수 없었던 유혹이나 죄에 대한 강압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속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교리를 아는 지성이 필요하고 죄의 작용에 대한 주의 깊음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을 통해서 이제 부주의함은 다시 주의 깊음으로 바뀌게 되고 그 다음에 죄에 대해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은혜의 힘으로 이기고 속이는 작용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새롭게 얻는 유익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것이 내 안에 있었구나.’ 하는 죄에 대한 인식을 하고 죄가 어떻게 자기를 속이는지를 깊이 깨달으면서 그 부주의함을 고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 다음에 이제 자기가 자기 깨어짐이 있고 나면 그다음에 자기를 의지하지 않게 되어 여기에서 의지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자기 의지 이걸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렇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하면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깊이 자기가 그 고통을 받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때 자기를 의지하면서 하나님 대신 자기를 의지하면서 산 마지막 결과가 너무 쓰라린 그 패배고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그 죄의 속임과 강압을 통해서 그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고 나면 이제 자기를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의 그 표현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기도. 이것이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고 나면 닫혔던 기도의 세계가 확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를 주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하는 일 없이는 자기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이 있을 때 기도는 열렬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는 간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자기 깨어짐이 있기 이전에 은혜의 상태로 미끄러지기 전에 은혜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는 죄를 짓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 속에서 우리의 그 죄를 사용하셔서 그래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숙하기 위해서 죄를 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기왕에 우리들이 미끄러지고 또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다시 그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때 하나님은 결국 그런 유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를 간음한 사건은 절대로 잘한 사건이 아닌데 어쨌든 그 사건을 통해서 깊은 자기 깨어짐을 경험하게 되고 그러면서 결국은 그런 죄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깨닫지 못했을 그런 하나님의 깊은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 통찰하고 죄인들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이에 대해서 존 오웬이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함의 계명은 결코 그 계명 안에 있는 우리를 억압하는 능력이나 권위의 효과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계명이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일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이라는 소산이라는 사실 때문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무서워서 그 계명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그 아주 놀라운 무한한 지혜와 선하심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 결국 우리가 행복하지 못할 것을 명령하시지 않으신다. 그것이 가장 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거를 믿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고 계명에 순종하는 동기가 돼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을 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순종함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증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삼위일체론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것은 어거스틴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그린 읽으면서 제가 만들어낸 그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개의 고리가 이렇게 엮여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하나님의 어떤 진리를 어떤 진리를 깨달은 것이라면 이거는 우리의 총체적인 어떤 삶을 그러니까 우리의 삶을 여기에다 거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래서 어떤 진리를 깨닫고 나면 그게 자기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자신의 삶이나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여기에 자신의 삶을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치열하게 자기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세상에 아무리 아름다운 진리라도 결국은 그 진리에 대해서 그냥 이해할 뿐이지 어떤 그 이성적으로 이 진리를 알 뿐이지 자신의 삶 자체를 바꿔놓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 이야기하면 이런 게 됩니다. 이게 양적으로 많은 진리를 이 사람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진짜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작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를 자기에게 적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때 자신의 마음이 불붙으면서 저 말씀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하고 어떻게 저걸 붙들고 살아야 되겠는가 하는 절실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깨어지고 나면 그다음에 하나님을 더욱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전에는 자기의 그 자아를 위해서 살았는데 이렇게 깨뜨려지고 나면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을 위해서는 게을렀던 사람들이 이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주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더 견고해 이제 견고할 때, 그때 이제 자기 깨어짐의 고통을 이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죄인들에게는 진리의 말씀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 말씀이 자신의 양심을 찌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그 자기 깨어짐의 고통을 감당하게 하는 게 있는데 이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어떤 믿음이냐 하면 그리스도께 자기가 깨뜨려지는 그 자기 깨어짐의 고통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죽음으로 투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맨 처음에 고통을 느낀 건 자기 자신인데 그다음에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으로 자신에게 투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 일체를 이룹니다. 그래서 결국은 에 자신이 고통을 받으면서 이거를 견딜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렇게 자기가 당하는 그 고통을 그리스도 예수께 투영함으로써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의 고통이 자신에게 실재화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고통이 크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이 경험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게 사실은 믿음이란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럴 때 결국은 이렇게 죽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 속에서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자아 그런데 어떤 자아냐 하면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는 자아입니다. 이것이 계속 죽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다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고 다시 사신 것처럼 자기 안에서 이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의 체험을 통해서 그다음에 그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경험으로 자기 안에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2장 20절에서 말한 것도 그 내용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것은 이제 그리스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는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 아니오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부활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은 자기 깨어짐이 죽음이라면 그 자기 깨어짐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소생되는 것이 부활의 경험입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결국 그리스도인은 성숙으로 그리고 팔복의 사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그거를 자기 깨어짐을 통해 깊이 경험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그 자기 깨어짐의 고통을 이기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사랑한 신자가 회심할 때 그리고 회심의 은혜를 보존하고 있을 때 크게 세 가지 감각이 그 활발해지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각, 용서에 대한 감각,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감각입니다. 이것이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다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용서해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의지의 올곧음입니다. 그래서 이제 올곧음은 믿음을 토대로 생겨나는 신자의 내면의 작용으로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믿음을 토대로 생겨나는 신자의 내면의 작용으로서 어찌하든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께만 붙어 있으려는 꾸밈이 없는 의지의 결단”입니다. 이것이 이제 제가 정의를 내리는 신앙에 있어서 올곧음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이렇게 그 죄에 대한 고통을 느껴도 의지의 올곧음이 없으면 결국은 자기 깨어짐을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의지와 아주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면서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올바른 의지를 가지고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게 이제 선한 의지가 한 번만 발동되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우리 안에 지속돼야 합니다. 제가 요즘에 설교하는 “신앙은 희망으로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라고 할 때, 끊임없이 그 자신을 절망적인 위치에 있는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거 그걸 포기하지 않는 것은 선한 의지입니다. 올곧음은 신자의 책임입니다. 이게 누구의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성경에 이런 풍부한 증거가 있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계속 있을 때만 이 올곧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깨지게 되면 결국은 죄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자기 의에 대한 신뢰를 버리게 되게 처음에 나온 그 지점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때 어떻게 돼 그때 비로소 참된 헌신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입니까. 죄에 대한 사랑, 그다음에 자기 의에 대한 신뢰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향해 올바르게 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이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이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1. 자기 깨어짐에 이른 신자는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는데 네 가지 변화는 무엇입니까? 첫째 부주의함을 고침 그리스도를 의지함 순종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감 하나님을 더욱 섬기고자 함
죄의 속임과 강압은 무엇에 의해 조절 극복될 수 있습니까? 은혜의 힘입니다. 복음 교리를 아는 지성에 의해서 해결이 되는데 이것은 이제 주관적인 경험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죄의 작용을 아주 실천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 깨어짐이 하나님의 지혜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혼의 전일성을 상실하게 하는 부패성과 지순에 은혜져서 부패할 마음을 쇄신시키시는 것입니다. 자기 깨어짐을 통해서 그래서 결국은 다시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 수 있도록 부합하게 하시는데 이게 결국 우리를 구속하신 목적과 똑같은 것입니다.
4번 자기 깨어짐의 고통을 감당하게 하는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사랑 의지의 올곧음이라 했습니다.
신자가 항상 자기 깨어짐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 그분을 섬기기 위함이다 그러한 삶으로 창조 세계를 고치는 도구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자기 깨어짐을 마치게 되어서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 공과인 팔복을 지난 한 달 동안 씨름을 해서 이제 어제 책을 완성을 했습니다.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는데 팔복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다시 한 번 깊이 만나게 되기를 열망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에 있을 사경회를 위해서 여러분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