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제4장_죄가 지배력을 확보하는 방법 : 속임과 강압 (1)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녹취자: 백지영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태풍이 불지 않아서 산에는 아직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코로나는 조금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정부가 우리에게 준 자유에 비하면 잘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더더욱 생활 방역에 유의해서 더 이상 코로나가 확산되지 않도록 서로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저희들이 죄와 은혜의 지배 제 4장, 죄가 지배력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기초 본문이지만 로마서 6장 14절을 우리 함께 읽고 진도를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
자, 그러면 죄가 자기의 지배력을 넓혀가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강압이고 또 하나는 속임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속임은 지성과 관련된 것이고 요것은 의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렇게 속임을 의지라고 연결해 놓았는데, 아마도 이 의지와 지성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결국은 죄를 산출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보면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속이는 것입니다. 존오웬은 이것은 deceit라고 이야기하는데, 속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공부한 바와 같이 일단 죄가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그 죄는 마치 균이 들어오게 되면 균이 우리의 몸 온 구석에 퍼지게 되듯이 지성의 기능에도 스며들어서 지성의 인식하는 기능에 간섭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만약에 전쟁이 시작되면 그러면 제일 먼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옛날 같으면 전쟁이 시작되면 폭격기들이 뜨고, 그 다음에 폭격기들이 아주 높은 곳에 떠서 대공포화망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폭격을 가하고, 그리고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뜨고 그리고 초토화시킨 다음에 상륙하는 해병이나 육군이 돌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첨단무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뜨는 비행기가 그라울러기라고 합니다. 미군의 경우. 그라울러기는 첨단 레이더시스템, 전파 시스템들을 망가뜨리는 비행기입니다. 엄청나게 비쌉니다. 그 그라울러기가 떠서 특수한 전파를 쏴서 적의 첨단 장비들의 전자계통을 망가뜨립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레이더고 뭐고 다 무용지물이 되겠지요. 그 다음에 폭격기들이 들어서고, 폭격기가 초토화시킨 다음에 전투기들이 들어서서, 그래서 방어를 하는 전투기들을 격추시키고 그 다음에 원하는 곳에 공격을 가합니다. 당연히 그 이전에는 미사일의 공격이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죄는 딱 들어오면 제일먼저 우리의 지성에 관여해서 우리의 정신작용이 죄에 속아 넘어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가 융성하기 좋은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지성에 개입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강압은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자, 여러분, 둑을 쌓아놓고 댐을 쌓았는데 물이 꽉 찹니다. 그런데 공사가 부실해졌습니다. 그러면 물이 더 많이 꽉 차게 되면 둑이 터지게 될 것입니다. 터지게 되면 물이 넘치게 되겠지요? 그래서 물난리가 나지 않겠습니까? 버티고 있지만, 그러나 죄는 계속해서 수압을 높이면서 욕망을 증대시켜서 어느 한 순간에 둑이 터지듯이 확 터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여기에 이렇게 단정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람 속에서 죄에 대한 것들이 점점 증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이것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데, 이게 바로 실질적으로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실행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를 이렇게 한번 산출하고 나면, 그 다음에 이 산출한 죄는 다시 속임을 강화시키고 강압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두 번째로 이렇게 와서 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강화가 되어서 계속해서 도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결국은 죄에 저항할 수 있는 지성의 감시와 의지의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죄가 우리 마음에서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여건들이 형성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양심으로 감지할 수도 없고, 혹시 감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의지와는 그것과 싸울 수 없는 힘이 없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존 오웬의 유명한 책 '내재하는 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일을 하신다. 첫째 섭리를 통해 죄 짓는 힘을 막으시고, 둘째 은혜를 통해 범죄 하려는 의지를 바꾸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죄의 산물에 대해 외부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은혜는 의지에 대해 내적인 효과로 나타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외부적인 섭리를 통해서 죄를 짓는 것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막으시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조두순 기사가 나고 거기에 CCTV를 많이 설치했다고 하는데 전문가가 가서 현장을 다 돌아보니까 다 쓸데없는 방식으로 설치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즉 대로변에 잔뜩 CCTV를 설치했는데, 그런 성범죄들은 대로변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작은 골목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작은 골목은 여전히 사각지대가 너무 많더라는 것입니다.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현에 선거가 있었는데 거기에 나온 사람이 아주 단순한 공약을 걸었다고 합니다. "저를 만약에 당선시켜주시면 이 지역의 보안등의 밝기를 두 배로 높여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과연 당선이 됐습니다. 그래서 일 년 후에 통계를 내보니까 정확하게 가로등 수를 2배를 늘렸더니 50프로 야간범죄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확실하게 하나님이 섭리로 막으시는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통해서 막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막게 될 때 어떤 상황이 생기느냐 하면, 죄를 짓기 위해서 보다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돈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찾아냈고 돈 통에 5억이나 되는 현금이 들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돈 통이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아무리 남의 돈을 훔칠 욕구가 강하더라도 에베레스트까지 올라가서 그 돈을 훔쳐올까요?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수백 명밖에 안됩니다. 알피니스트들이. 그러니까 어떻게 올라가겠습니까? 저도 한번 거기 올라가보는 게 소원인데, 언제 한번 신문기사를 보니까 조금만 등산 훈련을 한 사람이면 아예 산소기를 씌워서 업어서라도 정상에다 놓고 국기를 들고 사진을 찍게 해 준다고, 그런데 그 돈이 거의 2억 오천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사람이 오억의 현금을 가져오기 위해서 과연 그렇게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훈련과 비용을 들여서 또 거기에 진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과연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합니다. 차라리 오억을 찾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올라가기보다는 차라리 오백만원을 강탈하기 위해서 골목에서 강도질을 하는 게 훨씬 쉽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탈세를 하고 부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최근에 어마어마한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국민적인 이슈가 되고 신문을 도배질을 합니다. 그러면서 줄줄이 그렇게 부정으로 세금을 안내고 혹은 재정적인 부정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됐습니다. 그럴 경우에 감히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 바로 앞에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져서 특별수사기간에 돌입하고, 그 다음에 검찰과 언론을 비롯해서 관료들이 모두 다 총동원되어서 이런 범죄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온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다면, 감히 그런 범죄를 꿈꿀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외부적인 섭리를 가지고 하나님이 수많은 인간들의 죄를 막으시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만큼이나마 나라가 아비규환 속에서 살지 않고 어느 정도 질서가 유지된다는 이야기를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해될 수 있지요? 이해 못할 게 없습니다.
두 번째 보면, 그 다음에 외부적인 행동이 아니라 내적인 효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외부적인 행동이 있고 내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자, 외부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이렇게. 그런데 하나는 내적인 효과입니다. 내적인 효과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변화되어서 그 은혜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은혜입니다. 선한 의지의 힘입니다.
그러면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결국 사람이 이렇게 마음속에 어떤 죄를 지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의 싹이 이렇게 나 있다고 칩시다. 어떤 죄를 짓고자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떠오른 죄에 대한 모든 생각이 죄를 산출해내지는 못합니다. 죄를 산출해 내려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첫째는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속되어야 됩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오늘 강도짓을 하자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강도짓 하러 가다가 "아, 내가 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짧은 인생에. 다 허무한 일이지."하고 돌아오게 되면 죄가 성립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그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가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죄를 지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막상 갔습니다. 그리고 "손들어." 하고 칼을 내밀었는데 저 사람이 "웃기네. 너 뭐야?" 이렇게 하고 대들 때, "죄송합니다." 그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면,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를 계속 지속하고 있고 충분히 죄를 지을 수 있는 힘이 비축이 되면 그 다음에 실제로 죄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범죄가 성립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를 한 것은 다시 인간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쳐서, 그래서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시키고 업 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죄를 지을 수 있는 힘을 업 시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같은 죄를 저지를 때 훨씬 더 덜 제약을 받으면서 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만약에 내버려두시면 이 세상이 거의 동물의 세계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섭리 속에서 막으십니다. 그래서 그 죄를 행하지 못하는 환경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금융범죄를 계속 하려고 하는데 계속 국회에서 법을 꼼꼼하게 만들어서, 그래서 엄격하게 처벌을 할 수 있게 만들어서, 그래서 죄를 지으려는 사람이 실지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위험이 훨씬 크고 대가가 크다고 생각될 때 감히 그렇게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면 잘 보십시오.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가 계속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수 있는 힘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를 짓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그래서 결국은 순종하는 삶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이 섭리는 우리 마음대로 안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공무원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상급부서에서 불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무슨 보직을 맡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저는 돈을 다루는 보직, 그리고 남한테 청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보직은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그게 그 당시로서는 꿀 보직이었습니다. 그런 업무를 하는 사람이 다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예를 들어서 인사담당이다 그러면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 사람들은 대접도 받고 잘 보이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봉투를 가져다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예를 들어 계약을 담당하는 사람, 물건을 구입하고 납품받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런 데에서는 청탁을 받을 기회도 많고 심지어 봉투가 오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나는 그런 보직을 맡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그것도 아주 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가서 오히려 어떻게 공무원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더 잘 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가야 되겠지요. 매주 매주 누군가에게 상납을 하고 이러는 구조 속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 만약에 그것을 나는 법대로 해야 되겠으니까 못하겠다고 할 때,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런 환경 속에 나를 두고 싶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자기가 선택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죄를 이길 수 있는 힘들이 우리에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사랑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개의 격언이 있는 것입니다. "죄는 죽이고 은혜는 살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자,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계속해서 빛을 받을 때, 이렇게 될 때에 그의 지성은 밝게 빛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훌륭한 판단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속임을 타파하는 방법이라 이것입니다. 그런데 진리에서 멀어집니다. 그러면 속임에 넘어가기가 그만큼 쉬운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이렇게 밝은 불빛 아래서는 우리가 볼펜인지 만년필인지, 혹은 티슈인지 휴지인지, 젓가락인지 지휘봉인지 잘 분간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캄캄해서 어두워지게 되면 두 가지 사물을 구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집니다. 마찬가지로 은혜의 진리의 빛에서 멀어지면 그만큼 속임에 빠지기가 쉬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면, 은혜는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 심(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니까 결국은 자기 혹은 죄에 대한 사랑으로 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죄에 저항할 수 있는 함이 강한데서 약하게 되고, 여기에는 밝은 데서 어두움으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있을 때는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유혹이었는데 은혜가 떨어지고 나니까 도저히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안하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이리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만한 진리의 빛과 충만한 은혜 속에서 거할 때, 죄에게 속지 않고 그 다음에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함께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일매일 경건생활을 잘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죄의 역사 중에서 먼저 속임을 보겠습니다. 죄는 궁극적인 목표를 숨깁니다. 궁극적인 목표를 다 알려주면 무서워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궁극적인 목표를 숨깁니다. 죄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일까요?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에 멀어져서 죄를 짓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창조의 목적에 거슬러서 사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숨기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하느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이 용서를 아주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리고 오히려 죄를 많이 지어도 하나님이 너무 사랑이 크시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또 한편으로는 이게 중요한 것인데, 소극적으로는 용서에 대한 자의적인 적용을, 적극적으로는 범죄에 대한 기대감을 한없이 업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그 정도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부터 멀어지고 나면 그러면 이 사람에게는 범죄에 대한 기대가 한없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어느 정도냐 하면 ‘눈이 멀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정신이 비상하게 그 한 가지 죄에 대해서 꽂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를 짓지 않고는 인생에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그리고 이 죄만 지으면 어마어마하게 행복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만족의 기대가 상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심리 속에서 보다 더 많은 죄를 짓기 위해서, 혹은 죄를 지은 후에 치러야 할 많은 희생들에 대해서 기꺼이 그것을 지불할 수 있는 용의가, 지불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모두 죄의 속이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예방하는 길은, 진리의 빛이 있고 이 진리의 빛을 충만하게 받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 사람 마음속에는 충만한 진리의 빛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때에 아주 명정한 지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너와 나밖에 없으니까 죄를 짓자", 이 여자는 간음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만족에 대한 기대가 최고치에 도달한 것이지요, 그때에 요셉이 뭐라고 합니까?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범죄하리요." 진리의 빛이 있으니까 그렇게 죄를 지음으로 얻을 것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이해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죄이고 결국은 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내가 그럴 수 있으리요." 이 감각을 가지면서 결국은 영적인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으로서 죄의 속임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시지요? 그러니까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영혼에서는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죄가 산출되고, 또 그 죄를 극복하고 이기고 하는 일들이 수없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왜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는지, 왜 그렇게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지, 그리고 은혜를 받지 않으면 결코 우리가 살 수 없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강압입니다.
강압은 이렇게 마음의 집착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의 욕구를 유지하려고 하는 힘, 죄의 실행을 지속하려는 힘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죄를 짓고자 하는 욕구는 의지입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의지를 존속하는 것입니다. 존속하려니까 당연히 이것은 무언가 밀어붙여서 계속해서 존속하게끔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어떤 밀어붙여야 하는 힘들을 우리에게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마음이 존속할 것 아닙니까? 존속해야지만 죄가 열매로 맺을 것 아닙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한번 실행한 그 죄를 계속해서 행하려는 습관적인 것입니다. 습관의 힘입니다. 단 하루라도 그런 죄를 짓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집착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보면 나의 생각으로는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하면서도, 자기 생각으로는 그렇게 하는데 마음으로는 그것을 너무나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입니다. 그 다음에 죄의 실행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책감의 도피기제,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직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도 않고 그때 한없이 외로워집니다. 두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그 다음에 하나의 도피적인 수단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실행의 거절, 이게 뭐냐 하면, 죄를 계속 짓습니다. 그런데 그 죄를 짓기를 그만 둘 때 그때 자신에게 일어나는 아주 엄혹한 심판의 감정 이런 것들이 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런 두려움 같은 것들이 강한 힘으로 작용을 해서 결국은 죄를 짓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을 때, 저 사람은 근본부터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비슷한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보호를 받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자기 자신의 무게로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강압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1)
‘선’, ‘토칼론’인데 영적인 선입니다. 영적인 선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데서 오는 선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선악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런 선악을 이야기할 때 그 선은 영적인 선이 아닙니다. 그냥 도덕적인 선입니다. 그 다음에 악은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행하는 악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상정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결국은 이런 영적인 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있다', '타라케이타이'라고 되어 있는데, '무엇 무엇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도 바울의 자전적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놓고 의견이 갈립니다. 그래서 헤르만 리델보스 같은 신학자들은 이것은 사도바울이 비중생자였던 시절에 고백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고, 그 다음에 대부분의 존 오웬, 플라벨, 에드워즈, 마틴 루터 같은 사람들은 중생했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 안에 있지 못하고 자기 안에 죄와 욕망이 융성했을 때에 경험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이 ‘어마어마한 죄에 빠졌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에 대한 인식에 워낙 뛰어나면 죄에 대한 인식도 함께 탁월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경건하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죄가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굉장히 큰 힘으로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실 수 있지요? 존 머리 같은 경우는 단순한 중생자가 아니라 고도의 성화단계에 있는 사람, 제가 마지막으로 드린 설명입니다,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을 느끼는 게 수십만 명의 한두 명의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부족을 알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장 21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이것은 의지이지요,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화자(話者)는 중생자입니다. 죄의 소욕을 거스르고자 할 때 신자가 겪는 죄의 객관화현상에 대한 경험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멀리 떠납니다. 왼쪽 그림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멀리 떠나서 자기 스스로 죄를 짓고 죄와 친숙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죄와 자신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구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의 빛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때에 자기와 하나가 되어서 구분이 안 되었던 죄가 사실은 따로 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잖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무슨 죄가 있어?" 그리고 왔는데,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보니까 자기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위의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를 칭찬해도 자기가 정말 불결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진저리치면서 죄를 회개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죄의 객관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문제 1번입니다. 죄가 신자의 마음 안에 들어와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두 가지 무기는 무엇입니까? 그 무기가 효과를 잘 발휘하게 되는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첫째, 속임과 강압입니다.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이 속임은 지성과 관련된 것이고, 이 강압은 의지와 관련된 것이다. 영적인 어두움은 결국은 지성적인 무지를 가져다주고 이것 때문에 인간이 죄에 잘 속게 된다, 약함은 죄를 거스르고 대항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힘이 약화됨으로써 죄에 굴복하게 된다 이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많이 깨달으면 당연히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영적인 밝음이 오게 되겠지요, 지성은 무지가 아니라 아주 놀라운 지식 안에 거하게 되겠지요. 마음은 약해지지 않고 강해져서 죄를 물리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만약에 우리의 몸에 면역력이 충만하게 있을 때는 균 속에서도 생활하면서도 넉넉히 이깁니다. 그런데 면역력이 바닥이 됐을 때 그때는 심각한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만한 세균이 침투해야지 사람이 병에 드는가 그런 정확한 공식은 없습니다. 면역력이 제로인 사람에게는 살짝 들어간 균으로도 치명적인 패혈증 같은 질병을 가져와서 48시간 안에 사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파키스탄이나 혹은 중동지방의 서부 쪽에 있는 사람들, 저도 파키스탄에 가보았는데 우리나라 60년대 말 비슷합니다. 아침이면 온 도시가 고층건물도 거의 없는데 매캐한 연기로 둘러싸이는데 그게 타이어 태우는 냄새입니다. 플라스틱 타는 냄새입니다. 그런 것을 불태워서 난방으로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를 자기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이기고 항체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거의 멸균 상태에 사는 위생적인 국가에 있는 사람들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면역력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몸에.
그 다음에 2번 문제 마지막입니다. 죄가 신자를 속이는 세 가지 방식은 무엇입니까?
첫째,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숨기는 것입니다. 왜? 그것을 다 이야기해버리면 무서워서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용서를 자의적으로 적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고 가슴 아프게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인데, 아예 미리 쉽게 용서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지으려고 하는 자신의 마음에 오히려 격려를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것이라고 사도바울이 맹공격했던 신앙생활의 자세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범죄 함으로 얻는 즐거움에 대해 과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굉장히 큰 기대감을 갖는데, 사실은 그게 이미 우리의 정서를 지성과 정서를 죄가 속이기 때문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실제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 열심히 공부하셨는데 우리 들어온 것 보겠습니다. 많이들 들어오셨네요. "보디발의 아내 말씀이시지요." 예, 맞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왜 기도해야 하는지 은혜생활을 해야 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은혜 생활을 잘 하면 아주 훌륭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매일매일 은혜 받으면서 사는 이것은 우리가 죄에 대한 저항력을 이기고 작은 죄들을 물리쳐서 더 큰 것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병원에 갔는데 예를 들어서 의사가 "좀 이상한데요. CT를 찍어봅시다." 했는데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돌아가실 수도 있지만 또 수술하고 그러는데 힘들고 돈도 들어가는데 한 3년 두고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습니까?" "괜찮을 수도 있지만 죽을 수도 있지요." 그럴 때, "네, 그러면 3년 후에 보겠습니다. 수술하는 거 귀찮고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약속이 있어요." 이럴 사람이 있겠습니까? 당장 떼 달라고 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밝은 지성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으면서 우리들이 매일 매일 자신의 영혼을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앙 생활하는 누구에게나 어렴풋이 느끼고 생각하던 것들을 명료하게 짚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르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아는 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런 환경이 죄가 들어오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지금도 굉장히 싫어할 것입니다. 밝은 서치라이트를 자신에게 비추고 있으니까. 이번 한 주도 행복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