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열매 있어 아름다운 동산
녹취자: 백지영
제2장입니다. 본문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에서 주변의 상황을 설명하십니다. 1번 읽어보겠습니다.
1. 솔로몬이 사랑하는 여인을 “나의 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제 지금 문화하고는 좀 다르지요. 성경에서는 이런 근친혼이 많이 금지되고 있었지만 그러나 고대국가에서는 근친혼들이 굉장히 유행하고 또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는 방법이기도 했는데, 여기서 ‘나의 누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런 근친애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고 혈육의 끈끈한 정과 연인의 애틋한 사랑을 함께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점층법으로 그래서 잠근 동산이 좀 큰 범위이고, 큰 범위에서 그 다음 덮은 우물 이렇게 작은 개념으로, 그 다음에 더 작은 개념으로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집중해 가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보면 잠갔다는 것, 그 다음에 덮었다는 것, 그 다음에 봉했다는 것, 서로 같은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배타적인 성격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본문에서 여러 가지 과실과 나무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장소는 어디이며,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여기 많은 이름들이 나오는데 사실은 그게 무엇인지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까 나열된 많은 것 중에서 침향이라든지 여러 가지 어느 것들은 알려졌지만 어느 것들은 사실은 지금은 잘 추적이 되지 않는 그러한 열매와 약초와 그런 것들인데, 그림으로 그려서 정답부터 보자면, 결국은 이러한 동산과 우물과 샘이 있고 여기에서 계속 물이 흘러나오면서 이 주변이 아주 생태계가 잘 형성이 되어서 그래서 이 동산을 더욱 빛나게 하는, 값어치 있게 만드는 많은 약초와 이런 귀한 꽃들이 자라나고 있는,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하나의 비유라고 보고,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이런 사랑의 관계가 성립될 때에 그때에도 똑같이 이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렇게 샘가에 많은 식물들이 나고 값진 것들이 맺혀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이런 것들이 맺혀진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랑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열매들이 생겨나게 된다고 하는 이런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믿음주의와 성경의 대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주의는 빌리비즘(Believism이라고 하는데, ‘믿는 즉시 천당을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 그리고 ‘믿기만 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결국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구원이 가지고 있는 두 측면(칭의, 성화) 중 즉각적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측면을 제시합니다. 나머지 한 측면은 점진적으로 그 구원을 완성해 간다는 측면인데, 사실은 이 두 가지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다른 측면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점진적인 구원이 없다면 사실은 즉각적인 구원을 말할 수 없고, 즉각적인 구원이 없다면 점진적인 구원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두 개는 동전의 양면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면 성화되어 갈 것이고, 성화되어 가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입증한다는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화의 구원을 무시하고 즉각적인 구원의 측면만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느냐? 즉각적인 구원과 함께 점진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만나서 사랑에 빠졌지만 그 사랑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깊어지고, 그 사랑이 깊어지면서 사랑의 열매들이 생기게 되는 것처럼, 그것을 동산의 비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역시 거룩한 삶의 진보를 이룰 때 신령한 생활과 도덕적인 삶의 공통적인 진보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신령한 생활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이고, 도덕적인 삶도 역시 그 사랑이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성화의 기쁨이 있을 때 이것은 주님과 함께 나누는 거룩하고 생명적인 사랑의 교제이고, 이것이 있을 때에 그의 인격과 그리고 삶 속에는 열매를 맺히게 됩니다. 그 열매를 보면서 사람들이 그 나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열매가 많으면 요한복음 15장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하는 기도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무엇을 설명하다 이리로 넘어 갔느냐 하면, 그렇게 은밀한 교제를 강조하면서 여기에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골방에서 문을 닫고’ 하는 그 기도의 가르침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문을 닫고 하는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 앞에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홀로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그 자체가 배타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듯이, 기도할 때에 그 기도와 기도하는 사람이 열납되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 한 분을 바라보는 독점적인 신앙 속에서 그 기도는 가장 깊은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의 문이 열려져 있으면 근심과 유혹, 쾌락, 세상에 대한 그리움, 갈망 이런 것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둘이 만나야 만난 것이지 수많은 대중 속에서 만난 것은 만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의 문을 닫을 때 여기에서 하나님과 이 기도하는 사람 사이에 아주 친밀한 교제의 조건이 수립이 되는 것입니다. 남녀 간에 나누는 밀어를 공공장소에서 모든 사람이 듣게끔 마이크로 떠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배타적인 친밀성이 있을 때에 가능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6장 6절에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하며 ‘은밀한’, ‘은밀한’을 두 번이나 강조하십니다. 그게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동산에 맺힌 열매는 동산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결국은 동산은 부수어버리고 주택을 지으려면 그 지상에 있는 사물들이 별로 토지가격을 결정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동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면 그 동산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여러분, 그것 아십니까? 부동산법에 부동산을 거래할 때 여기에 심겨져 있는 나무는 그 거래금액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별도로 계약을 해야 됩니다. 계약 조건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 것 없이 계약되었으면 나무는 원래 주인이 캐가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게 법인데,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같은 곳에 있는 산인데 한 산은 그냥 악산일 뿐이고 한 산에는 아주 값진 목재와 특히 약초가 많이 자라고 있다면 그러면 약초 같은 것을 캐서 팔려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것 아닙니까?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그냥 민둥산이 값이 나가겠습니까, 아니면 산삼이 숱하게 자라고 있는 그 산이 값이 더 나가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고 은혜를 많이 받은 다음에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으면 맺을수록 그 열매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이 입증되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린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이러한 나무가 있습니다. 동산에서 나무들이 자랍니다. 주인이 이 나무를 사랑하고 숲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주인에게는 이 동산이 더욱 소중한 동산이 될 것입니다. 두말한 필요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게 그리스도고 그리고 이것을 교회라고 한다면, 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충만한 사랑이 이루어짐으로서 이러한 인격적인 열매와 삶의 열매를 통해서 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깊은 교제가 이렇게 열매로 드러난다면 하나님께는 이 교회가 더 사랑스러운 교회가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교회를 차별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개인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그 사람은 그 열매를 맺었다는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런 열매를 가능하게 해 주신 하나님과의 행복한 교통 안에서 더욱 하나님이 자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충만히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개인의 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사랑을 안 받을 때가 없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잘 믿고 잘 살 때에 하나님의 더 많은 사랑을 개인적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교회적으로 확장시켜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깊은 사랑의 실제적인 연합을 통해서 그 지체들이 인격에 있어서 삶에 있어서 주님이 이들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주님이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많은 열매를 드러내 보여줄 수 있을 때에 이때 하나님의 더 깊은 사랑을 교회는 경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5.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본문에 입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동산이 열렸고 우물은 덮개가 벗겨져있고 샘은 아무나 가서 마실 수 있고 오물을 버릴 수가 있고 사람들에게 짓밟혔다면 그런 아름다운 화초와 약초들이 그렇게 무성하게 자랄 수가 있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산림을 보호하는 것은 일단 못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못 들어가게 하고 한 3년만 울타리를 쳐놓으면 웬만한 자연은 다 복원이 됩니다. 결국은 사람이 해치기 때문에 자연에 손상이 오는 것입니다. 놔두면 다시 복원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 동산도 그렇게 보호되었기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처럼, 결국은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내면적인 연합의 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샘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인데 그 샘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거기에서 나와서 우리의 전 본성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에 흘러넘쳐서 결국은 우리가 죄인이었던 시절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은 미움에서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불경건에서 경건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세속적인 사랑에서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들어가는 그런 변화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순결한 마음을 지키는 것 없이는 그런 열매가 맺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경건의 비밀은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랑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마음에서, 보호된 마음에서 사랑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보겠습니다. 결국 마지막 결론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모든 것보다 너의 마음을 지켜라” 잠언 4장 23절의 말씀입니다. 결국은 마음이 주님께만 바쳐져서 순결한 상태를 유지할 때 우리는 그렇게 봉한 샘, 덮은 우물, 잠근 동산처럼 그렇게 많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맺을 수 있는데 결국은 경건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못되고 정말 성격이 이상한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렇게 보호된 마음, 잘 지켜지지 않은 마음이 되어서 마음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서 공과공부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