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 십자가(갈6:7-14)(1993.12.12)설립예배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설립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이 교회가 서는 설립예배라고 하는 사실보다는 오늘 주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사실이 교회가 선 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오늘 사도 바울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언제나 스스로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그러나 인생의 가장 본질적이고 그리고 근본적인 것들을, 희한한 질문들을 회피하며 살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질문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향한 궁극적인 질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생하게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속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속고 남에게도 속고 스스로의 생각에도 속으면서 살아가기 쉬운 존재인지 모릅니다.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그러므로 너는 먼저 스스로 속이지를 말라 우리의 인생이 가는 길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계속 매일 매일을 살아갈 때 그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결국은 무엇인가 하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거나,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함에 있어서 거기에 또한 대답함에 있어서 너 스스로, 우리 스스로 거기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실을 사도는 먼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늘 속기 쉬운 것이 바로 이러한 인생인 것입니다. 자기는 뭔가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뭔가 인생을 훌륭하고 가치있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속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속이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라” 어떻게 우리들이 인생의 문제에 자기 자신도 속으면서 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한참 산 이후에 아! 내 인생은 속았다! 나는 헛살았다! 그런 생각을 하죠.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스스로 속이지 말라 너희 인생에 대한 대답, 너희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며 그리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인생이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절박한 질문, 거기에 대한 대답 여기에 있어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니까 인생이 참된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고려해 놓지 않고서는 인생의 참 모습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불변하게 살아계셔서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 모든 보이는 세상과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모든 인생을 만드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업수히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자기의 인생의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것입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지 믿는 사람이 아니든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곧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어떻게 대우했느냐는 것과 똑같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고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으신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 투성이의 인생입니까? 착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거짓되고 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흥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가 하면 가증하고 죄악덩어리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이 세상의 부를 누리고 그리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이와같은 모순이 늘 그들에게 걸림거리였고 늘 그들에게 고통거리였고 근심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그리고 그 분이 그 모든 인생을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살아가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죽음이라는 순간이 오면 그때에 비로소 이 세상의 모든 부조화와 이 세상의 모든 모순이 단번에 청산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말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사람이 정하고 이 세상의 법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온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리고 이 모든 세상을 부여잡고 지금도 들풀의 생명 하나라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이 죽는 것을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피해 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놓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미 정해진 종착지를 향해서 매일 매일 우리의 남은 삶을 가불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현듯 어느 땐가 우리에게 죽음이 이를텐데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란 것입니다. 왜,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살아온 모든 인생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인생 가운데 일어났던 모든 부조화와 그리고 모든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들을 죽음을 통해서 최종적인 답안을 주시고 그래서 죄인 된 자들을 지옥에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지시고 주님을 믿었던 사람들을 살리사 생명의 나라로 옮기시는 이 놀라운 역사를 우리들이 경험하면서 과연 그 때 모든 영혼들은 하나님은 참되시다 노래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사도는 우리의 인생을 무엇에 심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장난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대충 한 번 살아서 살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마치 필요한 물건을 사다가 써 보고 필요 없으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수 있지만은 우리의 인생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장난처럼 쓰다 버릴 수 있는 그런 소모품이 아니란 것입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 번 쓰다 버리는 소모품과 같은 인생이 아니라 거기에는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심각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바로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을이면 농부들이 곡식을 거두지 않습니까? 똑같은 밭에서 씨를 뿌렸는데 어떤 집의 밭에서는 아주 풍성한 수확을 거두고 어떤 집에서 아주 쭉정이만 거둘때가 있습니다. 어느 집 밭에서는 무가 탐스럽게 자라서 최상품이 나오고 어느 집 밭에서는 그러한 상품이 나오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오늘 말씀에 보니까 우리의 인생이 바로 심는것과 같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수확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장난처럼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결실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장난처럼 씨를 뿌리고 그저 자라거나 말거나 내버려 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뿌려진 씨앗으로부터 참된 결실을 기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씨를 뿌리고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이 뿌려진 그 씨에 가 있을 것입니다. 사도가 오늘 가르쳐 준 바에 의하면 우리의 인생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인생은 한 번 장난스럽게 씨를 뿌리고 살 수 있는 그런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요? 반드시 씨를 뿌린 그것이 결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돌아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오늘 그 씨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체를 위하여 씨를 뿌리는 자고 또 하나는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람 밖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도 우리는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토요일 깊은 밤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또 일했습니다. 절약하고 또 절약했습니다. 수고하고 또 수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매일 일과에 쫓기며 살아왔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육체를 위해서.... 우리들이 애쓰고 수고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그리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야지만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 되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런 심판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성경은 우리의 인생,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삶의 진실은 육체를 위하여 부지런히 심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특징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진지합니다. 그들의 삶은 열심입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에 이르기까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하고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봉사하고 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애쓰고 수고하는 것이 비록 그 인생이 장난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그 인생이 쓸데없이 휴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인생은 진지했습니다.그 인생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은 무엇보다도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며 살았습니다. 목표에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가치를 느끼며 그 목표를 위해서 살기로 매일 매일 성실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가르쳐서 성경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산 인생의 결과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더 비극적으로 말하기를 그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들을 거두게 되리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던 그 인생의 마지막 결실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죽음이 그 앞에 이르렀을 때 이제껏 추구하고 애써왔던 모든 것들은 바라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죽음이 그의 앞에 다가왔을 때 그것이 조금도 죽음 앞에서는 자기의 인생을 붙들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들의 바로 대표적인 성격들인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것, 그것은 비록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애쓰며 살고 아무리 진지하고 그리고 노력을 기울여도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을 동안에만 그것이 목표가 되고 꿈이 되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흰 이빨을 드러내고 파도와 같이 으르렁 거리며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인생을 위협해 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어서 성난 파도와 같이 우리에게 덤벼들 때도 우리의 영혼이 평안하다고 하나님 앞에 노래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을 궁극적으로 이길 수 있는 참된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병원에 가보시거나 상을 당한 집에 가 보시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언제나 우리들은 한쪽 반대를 보면 그 반대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한 속에서 한 번 살아보면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질투와 시기 속에서 살아갔던 사람들,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참된 사랑과 겸손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병들어서 육신이 곤고하여 고통을 받아본 사람들은 건강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 적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서 어느 병원에 문병을 갔다가 나오는데 어느 여인이 창가에 서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들먹이며 있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그 죽음에 직면했을 때 모든 가치있는 것들은 단숨에 사라져 버립니다.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지도 못하고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도 만들지 못하고 우리의 삶을 바쁘게 만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들의 행복이요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들의 성실함의 마지막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인생은 보다 영원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정말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은 결코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렇게 자기의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그가 아무리 그것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애쓰고 수고한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거두는 것은 육체를 위해 열심히 살면 살수록 더 많은 썩어진 것들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썩어진 것들을 거두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언젠가는 그 썩어진 것들을 수확의 단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들은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생명은 내가 네게 주었거늘 내가 준 생명으로 네가 무엇을 거두어 왔느냐고 하나님은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수 있는 것은 육체를 위해서 심던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들을 거둔 그 결과입니다. 죄와 죄악과 슬픔과 타락과 그 모든 비참함의 수확을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 그것을 우리의 인생의 수확이라고 돌려드려야 할 날이 온 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라 그 마지막 날에는 이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이 너희를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그 하나님이 인생의 중심에 서 있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살아가는 삶을 성경은 정죄하는 것입니다. 네가 열심히 살고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너를 태우기 위한 심판의 불꽃은 더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의 마지막 결과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돌려 드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참된 중심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은 푯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보십시오. 한때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들이 여러분을 즐겁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참으로 그 모든 물질을 손에 넣고 한 없이 그 물질을 마음대로 사용했던 사람들은 결코 그 물질 때문에 행복했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이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금과 은과 눈에 원하고 마음에 바라는 모든 것을 손에 넣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니 바람을 잡는 것과 같도다 말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영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화) 저의 전도를 받아서 지금은 어느 큰 교회에 아주 충성스러운 집사님에 되신 자매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스무살부터 직장생활을 하다가 아주 유능한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했습니다. 너무 너무 사랑을 해 주니까 세상에 그 자기 남편 이외에는 남자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했죠, 너무너무 사랑을 한 거에요. 하여튼 뭐 그렇게 나이가 먹도록 그렇게 사랑을 하고 조금도 이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시골로 내려가서 전근을 하는 동안에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나중에 이 자매님이 그 사랑하던 남편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그 쓰라림이라고 하는 것은 뭐 상상을 할 수가 없겠죠. 울면서 자기의 부정을 고백하는 그 남편에게 이 남편으로부터 받은 그 상처가 일생을 가도 지워질 수가 없을 정도로 막 쓰라린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그가 저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변한다 해도,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마른다고 할지라도 내 사랑하는 그이만큼은 자기 이외는 없는 것처럼 평생을 살 줄 알았다고. 그러면서 나중에 덧붙여서 하는 말이 뭐냐고 하면 바로 그런 일이 있고나서 깊은 시름에 잠겨있을 때 자기가 주님을 알게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아주 신실한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그 남편을 비롯해서 시부모님과 모든 가족을 다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물질만 영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람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한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 사람들 속에는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를 많이 받고 고통을 받고 눈물을 흘립니까? 변하는 것들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붙들고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은 상처가 많은 법이에요. 기대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상처는 아픔이 되고 아픔은 다시 흔적이 되었어요. 사람에 대한 미움과 세상에 대한 원망에 대한 상처를 부둥켜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생하며 유리하는 영혼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우리는 마음의 병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되고 영원한 것이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그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위하여서 사는 또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 인생이 따로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과 같이 안개와 같이 잠깐 있다가 사라져가는 인생이고 그리고 가치 없는 것 같이 없어지는 그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없고 아침의 안개와 같이 있다가 곧 사라져가고 들풀과 같이 피었다가 시들어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인생이 살아가는 그 모든 육체의 일들이 의미없는 일들이 되어지지 아니하고 의미있는 일이 되어질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비록 허탄한 일을 하는 것 같고 그리고 가치가 없는 일에 복종하는 것 같지만은 그러나 우리의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애쓰고 슬퍼하는 모든 것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영원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똑같이 살아갈지라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들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다가오는 으르렁거리는 죽음의 위협 앞에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져버리지만은 그러나 죽음이 우리에게 닥칠지라도 겸허하게 그 순간을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내일을 위하여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영원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길이 단 하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을 위하여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 곧 하나님을 위하여 심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해 주신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지만은 팔십을 살던 구십을 살던 백을 살던 그것이 한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정말 완전한 평화와 참된 행복을 얻기를 원한다면 어떤 식으로 던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이 영원과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철학과 교수가 정문 앞에 이렇게 보니까 등교 시간이 되는데 학생들이 다 들어가고 한참 있다가 버스타고 늦게 오는 학생들이 막 뛰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헐떡거리고 뛰어오는 학생을 세웠습니다. ‘학생 왜 뛰나?“ ’수업시간에 늦었습니다.‘ ’늦으면 어때?” ‘그러면 수업을 못 듣죠’ ‘ 수업을 못 들으면 어때서 뛰어’ ‘수업을 학점이 안나오죠....못낳조? 애기를 못 나으면 어때’ ‘계속하다가 마지막에 애기낳고 장가들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 뭐해?’ ‘집짓고 그러고 살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하지? ‘죽지요’ 그러면 어태까지 한 거 다 빼고 왜 뛰었어?‘ 그러더니 그 학생이 가방을 끄러메고 여태까지는 한참 뛰어왔는데 다음에는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하면서 뛰지를 않고 천천히 걸어가더래요. 그렇습니다. 어찌하던지 이 세상에서 변화가 많고 죄와 슬픔이 많은 세상에서 이 세상의 물결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그리고 참된 기쁨을 소유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일이 어떻게 해서든지 영원과 관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을 오늘 성경은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 삶은 바로 영원을 향하여 심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마지막으로 사도는 그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심고 그 하나님을 위하여 심어서 거기로부터 영생을 거두며 살아가는 인생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해 질 수 있느냐? 어떻게 열심히 살아가던 삶이 육체를 열심히 살아봤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다가 마지막에는 그 육체를 위하여 죽어가는 것이 인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면 그렇게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인생이 이 세상의 죽음의 위협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것이 영원을 향하여 살아가는 것 그것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어떤 의미에서 이 십자가가 우리의 인생을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으로 하여금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한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죄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히 멀어진 사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선한 것을 찾아도 악한 것 밖에는 손에 잡히지 않고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해도 애쓰고 수고하며 뿌려도 마지막에 거두어지는 것은 육체를 위하여 썩어진것들밖에 거두어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좋은 것을 위해서 씨를 뿌렸으나 마지막에는 가시와 엉겅퀴만을 거두게 되는 농부와 같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 있어서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는 여러분의 인생과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묶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못 박혀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참 하나님과의 관계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향하여, 성경을 향하여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끊임없이 물어볼 것입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책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살아야만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것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펼 때마다 성경이 여러분을 향하여 소리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믿느냐?’ 이것을 성경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오, 십자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딴 이야기부터 합시다 라고 할 때 그럴 때 성경은 나는 너희랑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여러분 인생이 영원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밖에는 걸어갈 수 께서 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여러분 마음속에 깊이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때 비로소 여러분의 인생에 자기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에서 성령을 위하여 심어서 영생을 거두게 되는 인생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집요하게 여러분을 향하여 도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는 네게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향하여 십자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십자가도 여러분에게 선언합니다. 너의 인생도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다. 들에 폈다가 내일이면 사라질 풀꽃과 같은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요 너의 인생은 이 세상의 쓰레기와 같은 인생 이상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십자가는 참으로 나에게 그 무엇입니다. 그 십자가가 나를 살렸고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구하시는 것을 압니다 라고 고백할 때 십자가는 여러분에게 또한 소리칩니다. 그래? 너는 하나님 앞에 그 무엇이냐, 비록 들풀과 같은 인생이고 그리고 아침에 피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네 인생은 결코 헛되고 그리고 가치없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보배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 인생은 60년 70년 짧은 인생을 살지만 그러나 너의 숨쉬고 호흡하는 것이 영원을 향하여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끌려가고 고통을 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불같은 치열한 불꽃에 타오를지라도 너의 인생이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었노라고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여러분은 미안하지만 영원히 육체를 위하여 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성실하게 사십니까? 그 성실함이 다 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미칠 것입니다. 애쓰십니까? 애쓰면 애쓸수록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에는 수고와 슬픔과 진노의 담 밖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는 바로 이 문제에 답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육체로 자랑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육체로 자랑하고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뽐내고 육체와 세상에 있는 것들로 자랑하려고 할지라도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것이 없으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사도가 선언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고 이 십자가를 통해서 오늘 살아가는 이 인생이 자기의 육체를 위해서 심는 삶에서 돌이켜서 성령을 위하여 심고 비록 자기의 육체는 쇠하여 가고 그리고 날마다 후패하여 갈지라도 육신이 쇠하고 후패하여 갈수록 그 속에서 오히려 새롭고 빛나는 것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막과 같은 이 모든 육체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최종적으로 영광가운데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영혼의 참된 본향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이 그에게 생겼던 것입니다. 비록 그의 인생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슬픔과 그리고 수고와 눈물뿐인 인생을 걸었을지라도 그것은 결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삶이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고 하나님을 알지 않고는 여러분의 인생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며 우리의 육체의 원하는 바대로 우리의 육체를 내어주고 그리고 그 우리의 눈에 원하고 마음에 원하는 바로 살기 위해서 자기의 육체의 욕망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그들을 시기하고 그들을 처치하며 그렇게 육체가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까? 성경은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향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오르는 지옥의 심판의 불길 밖에는 없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현듯 우리의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각자 우리의 인생은 자기의 마음대로 살았거니와 우리의 인생을 마지막으로 끌고 가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셔서 생명을 주셨던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고 사도가 말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 단순한 십자가가 자기의 인생을 너무나 놀랍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 있었고 주님이 말씀하셔도 들을 수가 없는 인생, 죄로 말미암아 사로잡혀서 죄 가운데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은 죄악속에 빠져 들어가며 이따금 마음속에 영원한 것을 향하여 살기를 원하는 마음의 소원함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따라 가지를 못하는 인생, 애쓰고 수고할지라도 쉼이 없는 인생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스스로 찾아낼 수 없었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이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 사건,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참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대한 신앙은 결코 제가 말로 여러분에게 가르쳐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의 영혼이 자기의 모든 마음이 이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 놀라운 광채 그것의 그 인생이 사로잡혀 본 사람만이 인생이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로잡혀 본 사람만이 인생의 참된 자유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하십니까? 어느 물리학자가 말합니다.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코끼리 3마리씩을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공기의 중압을 지고 살아간답니다. 아무도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무중력 상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는 여러분의 모든 매인 것들을 완전히 끊어 자유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와 참된 만남이 이루어질 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이라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예수의 이름 찬송하리...’ 죽음아 나를 향하여 오너라,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냐, 죽음아, 나를 향하여 오라, 내가 너를 만난 후에 사망을 깨뜨리고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부활의 권능을 보리라. 이렇게 자유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죄악가운데 살아가며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무엇인가에 모를 사슬에 묶여서 매일 매일의 육체를 위하여 심고 그 육체를 위하여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을 향하여 십자가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그냥 있는 십자가가 아니라 말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미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이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이 지금도 여러분에게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의 인생을 너무나 많이 바꿔놓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는 35살 먹던 해에 35년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35년 동안 살아온 다음에 뒤 돌아볼 때 인생의 반 토막을 산 그 때였지 않습니까? 마지막 결론을 내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나머지 35년이 이 지나온 35년의 반복이라면 내 인생은 이 땅에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겨 놓았나,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말하기를 그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보이는 것, 잡히는 것은 오직 하나라고 하는 거에요.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뿐이라는 것이에요. 왜? 여러분, 우리의 일생 동안에 애쓰고 수고한 그 수고한 결과로 얻어진 수확의 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가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이런 정도의 인생을 살아드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가지고 안된다는 것입니다. 애쓰고 수고할 지라도 그 열매는 수고와 슬픔뿐이고 힘쓰고 성실할지라도 그 결과는 죄와 고통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열매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 무엇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때 남는 것은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이것이 나를 살려고 이것이 나를 건졌고 이 십자가가 육체를 위해 심는 나의 인생을 성령을 위해 심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은 유일한 동기요 모멘트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사도는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노래)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십자가가 사도 속에 붙잡히자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될지가 분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알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고 십자가를 붙들지 않는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결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자기를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자기가 세상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에요. 전에는 세상이 유혹하는 대로 자기가 따라갔지만 자기 십자가에 못박히고 세상을 따라 살 수가 없어요. 세상이 전에는 막 쫓아왔는데 십자가에 죽어버렸어요.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그리고 불변하는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 들풀과 같은 인생들이 만약에 이 변하지 않는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견고하겠습니까? 죽음이 우리를 향하여 으르렁 거릴때 사망아, 내게 오라, 내가 너를 맞고 너 뒤에서 너를 깨뜨리고 나를 부활시키실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을 바라보노라 라고 나아갈 때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래서 진실로 주님을 믿고 죽은 사람의 인생은 우리들이 슬퍼하거나 애통할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 어떤 형제가 아버지를 잃고 막 우셨을 때 나는 아버지가 너를 보고 울어야겠다. 너는 슬픔 많은 이 세상에 남아있고 아버지는 천국에 올리워갔으니...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담대하게 평화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도 우리는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흔들리지 아니하는 참된 하늘의 평안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통과 위기를 만납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우리는 거기에서 피리를 불 수 있습니다. 마라와 같은 쓰디 쓴 물을 먹으면서 걸어야하는 고통이 있을 때가 있다하여도 거기서 우리는 주님을 찬송할 수가 있습니다.
노래) 그 풍랑 인연하여서 주께로 갑니다.
노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얼마나 여유있고 감사하고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이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주님처럼 여러분을 사랑하는 분은 없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 주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 수고가 무엇이냐, 너희 흐르는 그 눈물, 네 마음에 있는 그 딸린 아픔이 무엇이냐,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라 네가 너에게 성령을 위하여 심고 이 세상이 아니라 영생을 거두게 되는 길을 이미 보여주었노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라, 못박혀 죽은 내 아들을 믿으라, 이것이 오늘 성경의 외침인 것입니다.
다같이 우리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