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도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1~8)
녹취자: 김경애
우리가 이 동산에 처음 올라왔는데 사실은 작년에 개척을 하고 몇 달되지 않아서 우리 집사님들이 단출하게 올라와서 기도하고 간 곳입니다. 기도원이 기도가 잘되는 곳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예수님께서 몇 개의 비유를 드시는 가운데 우선 이 첫 번째 비유는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는 말씀하시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치고 기도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도 못해 식사 때라도 하지 않습니까? 취침할 때라고 기도를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안하는 사람은 거듭난 것이 의심 가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안하면 어떤 때는 답답한 일을 만나거나 기가 막히는 일을 만날 때는 ‘아이고 하나님!’ 부르면서도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기도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한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기도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예수님이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항상 기도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 힘을 내서 기도를 해버리고 그 다음에는 낙심하고 주저앉아서 기도를 안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기도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늘 경험될 수 있는 위험중의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낙망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비유를 통해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비유를 드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느 도시에 한 재판관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고을의 현감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이냐 하면 신앙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인간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향해서는 사람에게 안하무인격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도 없고 사람을 향해서는 교만한 마음이 가득한 이런 교만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재판관으로 있으니까 그 고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은혜를 입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인간성이 나빠도 신앙이 좋으면 거지같은 인간성을 신앙으로 할 수 없이 누르고 인간에서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탕이 아주 악하고 못돼 먹었는데 하여튼 신앙에 꽉 붙잡혔기 때문에 마주 대놓고는 막 퍼붓고도 돌아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는 신앙의 마음을 움직여서 할 수 없이 자존심은 허락하지 않지만 전화를 걸든지 찾아가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움직이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있든지 아니면 신앙이 없어도 사람이 원래 다른 사람 일에 나서기 좋아하고 도와주기 좋아하고 퍼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닙니까?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든지 그런 사람들은 괜히 자기일이 아니면서도 나서서 욕을 많이 먹고 오지랖도 넓지만 그러나 또 좋은 일도 많이 합니다. 사람들에게 펑펑 퍼주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에도 형제 하나가 있었습니다. 졸업을 우리와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느냐하면 등록금을 마련해 와서 친구를 주고 마련해가지고 와서는 또 친구를 주고 또 마련해보니까 친구가 등록을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는 등록을 하지 못해서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월급을 타서 책방에 가서 학교 앞 서점에는 신학생들이 외상으로 가져간 책이 술집장부처럼 장부책이 잔뜩 쌓여있습니다. 가서는 ‘아저씨 우리 반에 누가 책을 가져갔습니까?’ ‘아무개가 가져갔다’ ‘그게 얼마입니까?’ ‘삼십만 원입니다.’ 삼십만 원을 줄 테니 지워달라고 하면서 남의 장부책을 지워줍니다. 돈을 갚으려고 와서 보면 누가 갚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갚았습니까?’ ‘몇 월 며칠에 아무 날 아무개가 와서 갚았다.’ 그러면 인간적으로 너그럽고 베푸는 것이 많으니까 그렇게 베풀더니 이번에 목사안수를 받을 때 꽃다발이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트럭을 하나 빌려서 꽃다발을 싣고 갔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는데 청첩장을 오천 장을 보냈답니다. 그렇게 해서 나누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자도 아니고 후자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비열하고 야비하고 자비심도 없고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는 이런 신앙적으로 전혀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무엇을 의미하시려고 했느냐하면 그 사람으로부터 뭔가 자비를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어서 이 사람을 예로 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한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과부입니다. 요즘이야 민주적인 시대니까 감히 그럴 수 없지만 옛날 같은 시대는 원래 남편이 없고 혼자 사는 과부들은 그렇게 서러운 일이 많습니다. 남들에게는 서럽지 않은 일도 ‘나 혼자 사니까 무시하는가보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마음에 맺힌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이 많고 고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과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후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수룩하니까 재산을 후리고 가산을 도둑질하고 그렇게 물질적인 손해를 보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 과부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이 과부를 엄청나게 억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아주 큰 고통을 주고 오늘 성경에 표현하기를 원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수에 대해서 이 사람은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나는 나에게 원수진 자를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누구를 찾아가느냐하면 재판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장을 찾아가는데 이 재판장이 자기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왜? 모든 권세는 재판장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우리끼리 왔으니까 기도원에서 듣는 사람 없으니까 툭 털어놓고 이야기해봅시다.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의 마음에 드십니까? 말이 좀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시는 그 일들이 항상 기쁘고 마음에 듭니까? 그렇습니다. 안들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도 ‘너는 내 마음에 드느냐?’ 그러십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내 인생을 이렇게 끌고 가시는가? 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쪽으로 끌고 가시는가? 아니 왜 이 일을 꼭 이런 식으로 몰고 가시는가? 왜 하나님이 이 기도는 응답하지 아니하시는가? 왜 내가 분명히 이것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주시는 것일까? 이러면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내 인생을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인생의 문제가 부딪힐 때 하나님 말고 찾아갈 때가 있으면 이야기해보십시오. 거기 있으면 그곳으로 가십시오. 그 대신 뒷감당은 혼자 해야 합니다. 가보십시오.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안 보려고 해야 안볼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숙명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그것을 따지지 말고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으면 어디에 매달립니까? 사업하는 분들은 사업을 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면 어디부터 매달립니까? 머리를 굴리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하면서 머리를 굴립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과부처럼 과부가 수많은 사람, 어쩌면 이 재판장보다 돈 많고 더 잘생기고 말 잘하는 사람 수없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왜? 해결은 그런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이 재판장에게 있습니다.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이 과부가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인생의 문제에 부딪히고 사업의 문제에 부딪히면 누구에게 매달립니까?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합니다. 그것은 이것이고 머리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때 돈 때문에 위기를 만나면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까? 돈을 가진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먼저 바랍니까? 돈을 가진 사람의 긍휼을 먼저 기대합니까?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정말 하나님에게 우리의 문제의 해결의 열쇠가 있다고 매달립니까?
그런데 오늘 재미있는 것은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과부의 억울한 일이라고 그래봐야 십중팔구는 돈에 관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과부의 재산을 속여먹거나 빼앗거나 그런 악한 사람일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남편을 죽인 그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발견하느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나아갈 때에 높은 수준의 기도의 제목을 가져야지만 고귀한 영성이라는 것은 이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기도의 제목은 우리가 변해감에 따라서 기도의 제목은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비록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수준이 낮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수준이 낮은 신앙이면 수준이 낮은 데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애가 어디서 누구에게 듣고 와서 폼 잡고 아빠에게 와서 아빠, ‘저 무엇 하나 사주세요.’ ‘무엇을 사줘?’ ‘세계철학백과사전을 사주세요.’ 그것을 어디서 들었느냐하니까 지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 정도는 읽는다는 것을 어디서 들었습니다.’ 사다주면 일곱 살밖에 먹지 않은 놈이 영어, 독일어로 되어있는 원서를 읽을 수 있습니까? 읽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그런 허세를 부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확실히 하고 갑시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눈만 뜨면 가장 간절하게 부딪히는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가장 하나님을 의뢰하여야할 기도제목입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우리 자매들은 눈만 뜨면 ‘시집가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그런 간절한 생각이 떠오르는 가장 커다란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가장 신실하게 의뢰해야합니다. 믿습니까? 그것입니다. 우리가 고귀하고 높은 기도를 하는 기도의 영성만이 높은 영성이고 그리고 우리가 사소하고 주변적이고 이렇게 우리의 삶속에 직결된 사소한 문제들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말하자면 천박한 영성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들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동일한 응답의 기쁨과 희열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억울한 일,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과부에게는 인생의 이 문제 하나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만 뜨면 그 원수!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불을 끄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 원수! 이 원한을 풀어야 할 텐데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문제에서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기도의 제목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와서 기도하면 마음에도 없고 생각에도 없는 기도제목을 만들어내어서 거창하게 기도함으로써 자기의 영성이 얼마나 높은 가를 보여주려는 이러한 영적인 생활들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가장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제목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를 긍휼이 여겨주셔서 해결해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 기도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는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물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했지만 그러나 기도를 해도 이 기도가 응답되는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그 기도를 포기하고 쉬게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항상 기도하지 못하고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약점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제목 속에서 우리들이 늘 습관적으로 기도하지만 아득히 잊혀져가는 기도의 제목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이 불의한 재판장을 찾은 과부를 보십시오. 4절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그랬습니다. 과부가 와서 매일 아침이면 출근을 해서 달라고 내 소원을 들어달라고 애원을 하는데도 이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들도 우습게 여기는 교만한 재판장이었기 때문에 과부 하나가 와서 그렇게 떠들고 울고불고하면 ‘쫒아내라. 들어내라. 내쳐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밥만 먹으면 출근하면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왜? 집에서 아무리 생각을 하고 궁리를 해보았자 재판관이 내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가장 커다란 기도의 제목이 응답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과부가 비록 이 재판관이 자비로운 사람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그러나 씨름을 하듯이 이 재판관에 가서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그럽니까? 그가 즉시 들었더라고 말하지 않고 ‘그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때로는 그 기도를 금방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 기도가 오래도록 기도를 계속하게끔 하나님께서는 놔두십니다. 왜 그런지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만 해도 하나님이 금방 들어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때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부산으로 집회를 갔는데 그 목사님은 강대상이 아주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이다음에 교회를 지으면 그런 강대상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처럼 쓸데없이 크지 않고 설교자가 쏙 들어갈 수 있게 만든 강대상인데 여기서 이렇게 손잡이를 돌리면 보면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그러니까 키가 큰 사람이 와도 방석을 빼고 그럴 것이 없이 그냥 돌리면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 속으로 쏙 들어가서 설교를 하니까 아주 편안했습니다. ‘강대상이 어떻게 샀습니까? 맞추었습니까? 수입했습니까?’ 그러니까 맞추었답니다. 이 강대상의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데 강대상을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강대상을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기도를 했는데 그 다음날 엔화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서 215만원이 든 봉투를 누가 갖다놓고 갔답니다. 그 강대상을 맞추려고 전화를 해보니까 정확하게 200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보고 하는 이야기가 자기는 골방에서 조용히 앉아서 혼자 중얼중얼 ‘좋은 일에 쓰면 좋겠는데’ 그렇게만 이야기했는데 응답된 기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가 입으로 내놓기만 해도 들어주실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동안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느냐하면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있는데 그 기도의 제목이 안 이루어집니다. 어떤 때는 이루어질 것 같다가 안 됩니다. 안될 것 같다가 또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씨름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맨 처음에 기도할 때 우리 속에 있는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이나 두 번 기도를 해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망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면 들어주시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절대로 손해나는 것이 없습니다. 응답이 안 되는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기도원 밥을 많이 먹었으니까 대답을 해보십시오. 믿습니까?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도는 응답하시느냐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기 전에 그만두는 기도는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기도가 아니라 응답할 때까지 기도하지 않은 기도입니다. 응답할 때까지 기도하지 않은 기도입니다. 왜 그러면 기도하면 손해나지 않는지 들어봅시다. 어떤 하나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이 없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찮은 문제였습니까? 하찮은 문제를 가지고 어떤 정신없는 사람이 그렇게 목을 빼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도를 하고 애걸을 하겠습니까? 뭔가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를 기도하자마자 들어주셨다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니까 할렐루야 주님을 감사하고 찬송해야합니다. 그리고 어떻습니까? 기도할때마다 들어주시고 얼마나 좋습니까? 아니 어떤 사람이 자기문제를 놓고 간절히 몇 년을 기도해도 안 들어주는데 내가 가서 한번 손을 얹고 ‘하나님 이 문제를 주께서 해결해 주셔야하겠습니다.’ 간절히 기도해줄 때 그 자리에서 응답해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응답을 해주시지 않으면 그 다음에 어떻겠습니까? 오랫동안 기도해야 응답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매달려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또 가서 매달려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그럴 때 무슨 마음을 가져야하는지 아십니까? 그래요 하나님 누가이기나 한번 해봅시다. 이런 신앙적인 오기를 가져야지 무엇을 하지 않겠습니까? 한번 찔러보고 안 되면 피시식 터지는 풍선 같아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일 년을 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이년을 해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기도입니다.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가 간절하면 삶이 기도를 중심으로 변합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중심으로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기도를 중심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헌신되고 성결하고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습니다. 기필코 썩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오늘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간절한 기도의 제목, 기도할 것이 없어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영적으로 메말라있으니까 간절히 기도해야할 것을 이것이 무엇인지 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일주일, 이주일, 삼주일, 넉 달이 지나도 안 들어주셨는데 그러다가 일 년이 지나서 들어주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기도를 하면서 내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이 바뀝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 잘 보여야할 것 아닙니까? 기도는 간절히 하는데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일만 하면서 막 사는 사람들은 연구대상입니다. 연구대상이 매주 몇 건씩 나오는데 아무튼 연구대상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제목을 간절히 갖게 되면 그 다음에는 옷 입는 것 관심 없습니다. 그 다음에 치장하는 것 관심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 차를 탈것인가도 관심 없습니다. 다 기도의 영이 죽으니까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씁니다. 물론 조금 신경을 쓰긴 해야 합니다. 거기에 탐닉하고 빠져서 정신을 팔아먹은 것이지 기도에 간절히 매달려보십시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좋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그 사람이 안타까워하는 모양입니다. ‘야, 이 사람이 무엇을 그리 생각하느냐 사업을 하다가보면 돈을 벌 때도 있고 밑질 때도 있는 것이지 그렇게 아등바등 하면서 사업을 하느냐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하다보면 하나님께 무슨 계획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금방 응답을 해주시지 않고 한참 있다가 응답해주시면 그 응답으로 가는 시간동안에 우리가 바뀌는 것입니다. 확실히 바뀝니다. 믿습니까? 기도의 제목이 간절하니까 사람이 바뀝니다. 그리고 기도의 제목이 열렬하니까 냉랭하던 사람이 뜨거워집니다. 기도의 제목이 간절하니까 눈물이 메마르던 사람이 그 메마른 눈에 심령의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매달려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무엇입니까? 그것 하나 응답받으려고 매달렸는데 오랜 기간 기도한 다음에 응답을 받고 뒤돌아보고 거울을 보니까 내가 바뀌었습니다. 할렐루야! 환경을 바꾸려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씨름을 했는데 씨름을 하다보니까 내 교만이 부서지고 내 자아가 부서지고 나 중심의 사고방식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신앙이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렐루야입니다. 오히려 첫 번째보다 더 감사합니다. 하나를 기도했는데 두 개를 주셨으니까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A를 달라고 기도했는데 B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바꾸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A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B로 바꿔주십니다. 바꾸어주실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기도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내 원하는 대로는 안 해주셨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니까 우리 머리가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훌륭하겠습니까? 그것을 비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받으면 우리가 훨씬 더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바꾸어주십니다. 바꾸어주시면 지금 당장은 마음에 안 들어도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마음에 들고 귀하고 그리고 이것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꾸어주실 때에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어도 바꾸어주시기만 하면 세월이 흘러가면 그것이 최고였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안 된다고 그러실 때가 있습니다. ‘안 된다.’ 그러실 때가 있습니다. 안된다고 그러실 때 안 된다는 이야기까지를 듣지 못하니까 그렇지 안 된다는 응답을 확실히 받고나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끔 이야기하는데 잊히지도 않습니다. 예은이 아빠입니다. 진석이보다 조금 커서 그냥 설날 때 막 엎어져서 우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칼 좀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줄 리가 있습니까? 조금 있더니 사람들이 밖에 잠깐 나왔는데 안에서 자지러지면서 우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칼을 손에 들고 손을 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어린아이의 마음이 감격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주는데 주는 것입니다. 칼을 들을 때까지는 기분이 마음껏 좋았습니다. 그것을 손에 들고 손을 썰어서 피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그럴 때 그 없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안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안주실 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앙을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눈의 가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깊은 병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속상한 것입니까? 자기는 손을 펴서 기도할 때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귀신을 내어쫒는데 자기의 이 육신의 질병은 못 고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놀렸겠습니까? ‘자기 눈도 못 고치는 병신이 누구를 고친다고 그러느냐!’ 그러면서 웃긴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습니까?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없애달라고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느냐하면 ‘그것이 은혜다.’ 나중에는 뭐라고 그럽니까? ‘내가 자랑할 것이 있으면 부득불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내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여짐이라.’ 일평생 자기의 연약한 눈, 글씨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연약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잠시 불편했지만 그 위대한 역사를 이루면서 조금도 자신을 높이지 않고 불멸의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지속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기도는 우리의 영적인 삶을 파괴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오래도록 쉬지 않고 하나의 기도의 제목을 놓고 기도를 시작하면 끝을 볼 때까지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중간에 포기를 하는 것입니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십니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몇 명이나 보겠느냐?’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들 낙심할 때 굳게 믿고 이렇게 기도하면 이 기도가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이렇게 매달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이 기도가 결코 헛일로 끝나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 기도가 이루어지리라고 하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부딪히는 또 다른 문제는 낙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본 적 있습니까? 너무 아쉬워서 돈이 없으면 안 되어서 너무 급해서 돈을 꾸러갔는데 집에다가 돈을 두고 왔는데 돈을 꾸러간 것과 혹은 통장에 돈이 많은데 은행시간이 끝나서 돈을 꾸러가는 것하고 통장도 없고 집에도 없어서 돈을 꾸러가는 것과 기분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경험해보셨습니까? 다릅니다. 통장에 돈이 잔뜩 있는데 은행시간이 마감되어 끝나면 암담합니다. ‘돈 백만 원 있어? 은행이 마감되어서 내일 아침 9시 반에 꺼내줄게.’ 그것은 당당합니다. 그런데 돈이 아무리 찾아봐도 씨가 마른사람은 ‘십만 원 있어?’ 벌써 목소리가 기가 죽습니다. 당당하게 큰소리로 돈을 꾸러 다니는 사람은 뒤에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고 간구할 때에 우리들이 기도하다가 그렇게 빠지기 쉬운 어려움이 무엇이냐 하면 간절히 기도하는데 낙망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어 그래? 더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거나 아니면 은행에서 찾아주면 어떻습니까?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꾸어줍니다. 쳐다봅니다. ‘내가 돈이 어디 있어? 없어.’ 마치 내가 있어도 너에게 꾸어주겠느냐? 그런 식으로 훑어볼 때 그 느낌을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 여자가 며칠을 당했습니까? 한번? 두 번? 세 번? 한참동안 당한 것입니다. 가서 간절히 눈물을 흘리고 매달리면서 대문 앞에 매달려서 ‘재판장님!’ ‘재판장님!’ 매달리니까 소리가 들려오는 소리가 ‘저년을 내쳐라!’ 갖다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한번만 더 오면 치도곤으로 혼날 줄 알아라. 다시 가서 매달리는데 쳐다보지도 않다가 해가 저뭅니다. 그 다음으로 병졸들이 와서 내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루하루가 절망의 연속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낙망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쉽습니까?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와서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 앞에 어려운 입을 열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것도 잘 보이려고 평소에 안하던 수요예배까지 나와서 예배가 끝난 다음에 사람들이 다 가도 뒤에 앉아서 쭈그리고 10분이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주시는 것입니다. 한번이 아니라 서너 번씩이나 응답을 안 해주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낙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낙망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낙망하는 일은 언제나 있습니다. 낙망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하면 체념하고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슨 숙명입니까? 이 기도제목은 응답받지 못할 팔자라고 적어놓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말랐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식었습니다.
캐리라는 영국 근대선교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16세기 때 사람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선교에 대해서 눈뜨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종족들에게 가서 선교해야한다고 간절히 외쳤더니 그 유명한 목사님들이 앉아서 하는 말들이 ‘이보게 젊은이 만약에 이방인들의 구원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자네가 설치지 않아도 직접 하실 것일세.’ 완전히 초칼빈주의자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럴 때 이 윌리엄 캐리는 구두를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죽을 쪼가리로 모아서 지구본을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지구를 그려놓고 밤마다 품에 앉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이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들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쉽게 응답되었겠습니까? 안고 자고 자서 닳아서 반질반질하게 닳을 때까지도 응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인디아로 보내시고 그리고 위대한 근대선교의 한 장을 여시는 것입니다. 죽고 나서 3년 뒤에 응답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은 모두 우리가 하는 그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언제나 쌓이고 쌓이는 것이 그 기도가 고상하고 훌륭하고 고차원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열린 교회가 있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아서 이 세상의 먹고사는 일 같은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세계 선교와 그리고 이 나라가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공법이 물 같이 흐르고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 이 땅의 참된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그것 말고는 별로 기도제목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일이나 모레의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다가온 어쩌면 눈을 뜨면 매번 만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 직장에서 내 상사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야겠습니다. 직장생활이 고달프옵나이다.’ 기도제목입니다. 여러분! 얼마든지 우리에게는 정말 간절하고 눈뜨면 매일 마주치는 기도의 제목들이 있습니다. 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의 최대의 적은 기도하다가 그만두는 것이고 기도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모든 기도의 한계를 뿌리치고 물리쳐야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때 이 불의한 재판장,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과부를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달려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재판장이 과부의 기도를 들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더욱 이렇게 무지막지한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의 약속을 주시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듣기 위해서 마음을 열고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간절히 매달려 기도할 때 응답받는 우리가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하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은 깊은 우물과 같습니다. 우리를 신령하게 하는 그리고 운명적인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는 변화의 역사는 깊은 우물과 같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두레박을 깊이 드리웁니다. 우물이 얕을 때는 두레박을 던지면 툭 떨어지면서 금방 물이 올라옵니다. 그 물은 좋은 물이 아닙니다. 불순물이 들어갑니다. 시골에 어떤 때에 가보면 ‘아’ 하고 소리 지르면 한참 소리가 메아리치는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한발, 두발 세발, 네발, 다섯 발, 여섯 발을 내려도 두레박이 물에 닿지를 않습니다. 일곱 발, 여덟 발을 내려도 두레박이 닿지 않습니다. 한없이 내려서 두레박이 어디에 걸렸는가 하고 내려다보니까 아직도 수면이 멉니다. 열 발, 열한 발, 열두 발을 내렸는데 덜컹 하면서 두레박이 물에 닿는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 물을 올립니다. 쉽게 올라옵니까? 한발, 두발, 세발……. 해서 잔뜩 길어서 그 물을 쏟습니다. 뜨겁게 찌는 여름 펌프의 물도 미지근한데 이 두레박에서 길어온 물은 얼음을 띄운 것처럼 시원합니다. 좋은 것은 깊은 데에 있습니다. 믿습니까? 기도의 줄을 깊은 기도의 우물에, 응답의 우물에 내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신실한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