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한 결단
여호와께서 너희로 자기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 하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 하실 것이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의 왕이 다 멸망하리라(삼상12:22~25)
녹취자:이경순
오늘 우리들이 지금 읽은 성경의 맥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왕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왕을 구하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기 전까지는 그들이 애급에서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왕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거나 감히 자기들을 다스릴 왕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와서 수많은 나라들과 접하고 전쟁도 하고 그러면서 지내오다가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가고 보니까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는 그 땅덩어리가 지도를 보시면 알지만 이쪽 바다를 내 놓고는 삼면이 다른 나라와 경계에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지방과 애급을 오가는 중요한 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그 지방에서는 비교적 기름진 땅이어서 곡식이나 이런 것들을 수확을 많이 하는 풍부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농산물이나 이런 것들에 수확도 많았고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 땅이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부러 그런 자리에다 이스라엘을 갖다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만약에 하나님이 광야나 벌판에다 세워놓으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나라에 주목을 끌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치가 있는 그런 입지에다 이스라엘을 같다 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시선을 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전 세계문명의 배꼽 이라고 그럽니다. 그 자리에다가 이스라엘을 갖다가 심으신 겁니다. 물론 그 기름지고 좋은 땅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쫒으셔서 하나님의 강하고 큰 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자리에 심어놓고 나무로 비유하면 거기에다 포도나무를 심어놓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멋있는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열방도 이스라엘 이라고 하는 특별한 민족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을 둘러싼 모든 나라들이 종교나 사상이나 이런 문화에 있어서 거의 같은 민족처럼 유사점이 많았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같이 사니가 비슷비슷합니다. 그런데 바깥에서 들어온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연고권이 있어서 원래 다 살던 사람들인데 하나가 들어와서 박혀 있는 것을 파내고 그 땅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주위의 나라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모로 자신들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였습니다. 잘 있는 가나안의 족속들을 쫒아내고 애급에서 종살이 하다가 광야를 떠돌던 무리들이 요단강을 건너와서 파죽지세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공격하면서 박혀있던 사람들을 쫒아내고 그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실만 봐도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백성들이었고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광야를 떠돌던 비루와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와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을 쫒아내고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살 수 있는가? 기이하게 쳐다보는 겁니다. 우리가 실감이 안 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왜 그런지 이스라엘을 보면 자꾸 이스라엘이 우리 편이라는 느낌이 받는 것은 그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당연히 그런 땅을 차지하고 사는 게 이치에 맞는 것 같지만 중동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겁니다. 옛날에 이스라엘 역사가 다 끝나는 것은 왕국이 망하는 역사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는데 그때 나라를 잃어버린 겁니다. 약2500년 가까이 되는 그때쯤 돼서 지금으로부터 약 722년에 먼저 망하고 586년에 망했으니까 약 2500여 년 전에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영원히 없어진 것입니다. 15세기경에 하나님이 주신 땅 3500년 전쯤에 주신 그 땅이 1000년 정도 정도 있다가 왕국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찾은 게 1946년도 다시 찾은 것입니다. 무조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면서 하는 얘기가 이 땅이 우리 땅이다 왜? 2500년 전에 여기가 우리 땅이었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살고 있는 사람입장에서는 황당무계한 겁니다. 2500년이 도대체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나는 때인데 그 때 조상들이 거기 살았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땅이다 라고하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겁니다. 그것보다도 더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차지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주목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나라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항상 이스라엘을 보면서 독특한 느낌을 받는 것은 왕이 없습니다. 사람들보고 너희는 왜 왕이 없느냐 너희 왕이 누구냐 하면 우리는 왕이 한분밖에 없는데 그분은 대도 안 물려주시는 왕이다 누구냐 하니까 아들도 없고 대도 안 물려주시고 누구에게로부터 왕위를 전수받은 분도 아닌데 그러니까 우리의 왕은 영원한 왕이다 그게 누구냐 여호와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려주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다스려 주신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으로서는 참 모욕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스펄전 같은 사람도 면류관을 쓰고 한나라의 왕이 되려면 너무 바빠서 그런 것 할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것도 나라도 인구가 수십억 되는 중국 같은 나라도 아니고 쥐방울만한 나라에 왕으로서 하나님 일컬음 받는 사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으로서는 참 모욕적일수가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왜? 그것이 바로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백성의 왕 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맺으시고 당신 자신이 그들을 다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주셔서 자신들을 다스려주신다 이것이 한없는 감사와 찬송의 제목이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왕은 너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한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손만 까딱하시면 너의 왕은 오늘 아침에 풀잎에 이슬이다 그 하나님이 왕이 되신 신앙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이 이렇게 왕이 되시는 것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이 식어지고 믿음이 떨어지니까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돌아보니까 그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수없는 침략을 받고 그리고 수없는 외적들의 외부로부터 오는 침입에 말하자면 공격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읽어볼 적마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정말 시련도 많고 그리고 참 어려움도 많구나. 그런 것을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위치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그리스도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가 그런 곳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을 올바로 섬기고 살려고 할 때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려고 할 때 어느 순간에 여러분들이 눈을 들어서 주위를 살펴보면 나만이 모든 공격의 표적이 된 것 같고 그리고 내가 바로 모든 가정사와 그리고 교회의 일과 그리고 이 모든 세상의 역사에 있어서 한 복판에 서서 말하자면 악한세력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그런 자리에 서있게 된 자신의 위치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것을 영광스러운 특권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고 사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사람에게 주목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주목받는 삶을 살아야지만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삶을 살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그 한가운데 우리가 놓여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던 열방의 많은 사람들이 그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인가를 눈여겨보게 되었듯이 우리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주목을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 다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등불을 켜서 말 아래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등경위에 두어서 올려보므로 말미암아 그 빛이 모두 비추게 하고 또 그 빛을 보고 그 빛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산위에 마을이 산 아래 있는 모든 마을에게 주목을 받게 되고 눈에 띄는 것 같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바로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모여서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이러한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삶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할 때에는 그 하나님을 친히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에 이사람들이 자부심을 느꼈는데 신앙이 식어지고 나니까 그담에는 이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렇게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괴로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전쟁에 지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왕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왕이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기게 할 수 있는 그 싸움을 왕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지게 만들어 주시거나 혹은 나라가 번창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왕이 없기 때문에 번영하고 번창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복주시고 은혜주시고 변화주시고 그리고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셨는데 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지 못할 때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운 그 다음부터 그 왕이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왕일경우에는 백성들이 풍성한 보호를 입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떠올랐다 사라져갔던 수많은 왕 중에서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끝까지 이스라엘을 자기의 몸과 같이 돌보아서 그 왕이 그 나라의 제위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던 그런 훌륭한 신앙을 가진 임금은 극소수였습니다. 대부분 그 임금들이 잘못해서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 역사에 대해서 호세아는 아주 간단한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분노하므로 그들에게 왕을 주었고 진노하므로 그 왕을 폐하였노라’ 하나님께서 그 왕을 주셨습니다. 그래 너네 좋을 대로 해라 하고 왕을 세워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기뻐서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백성들이 왕을 주소서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 우리를 직접 다스리지 마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이 싫습니다. 그 이야기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을 주시면서도 조건부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왕을 구하고 그리고 그 왕을 너희들이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도 그렇게 썩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러나 일단 허락한다. 그러면서 조건을 주십니다. 기왕이면 그 왕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면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지만 그러나 조건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왕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면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조건부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왕과 함께 나를 섬기지 않으면 그러면 그 왕이 오히려 너희를 삶에 커다란 고통이 되므로 말미암아 너희가 나를 버리므로 그 죄를 갚게 해 주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조건부 약속입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되고 잘못 된 것들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릇되고 잘못된 것들을 구할 때 안 주실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주시고 우리를 시험하시는 적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체는 원하지 않으시는데 왜 주시냐면 그것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순전함을 한번 시험해보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주신다기보다 허락하시는 것 즉 하게끔 놔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한 증거를 발람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막으시는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허락 해주신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발람에게 그렇게 발락이 저주해달라고 애원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셨지만 그가 굳이 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니까 그래 네가 알아서 해라 하나님께서 손목을 잡고 막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은 왕을 세웠지만 왕들이 누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을 다스렸습니까? 누가 하나님과 같은 지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다스렸고 누가 하나님과 같은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과 고난으로부터 보호하고 막아 주었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진정한 보호자는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이 나중에 고백을 합니다. 방백을 의뢰함보다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훨씬 낫다. 세상의 방백이나 권세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이 내 인생의 진정한 보호자이고 그리고 주관자이시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살아가라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해왔던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심을 보여주고 하나님은 이렇게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이 사무엘은 자기의 힘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놔둬라 그러자 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 한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너희를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너희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이것이 선지자가 가지고 있는 사무엘선지가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떠나거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마음에서 하나님두기를 싫어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에 두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여전히 기뻐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서 자신들을 다스려 주시는 것을 싫어했지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싫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고 그 백성들을 감화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고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교훈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시는 그 모든 은혜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쉬는 이유 기도하다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그 믿음이 식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가다가 휴게소에서 쉬는데 돈을 집어넣으면 복권이 나오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것을 사서 주머니에 넣어놓았다가 한준가 기다렸다가 신문에 발표가 나면 뜯어보고 그러는데 어떤 때는 사람들이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잊어버렸는데 발표가 났습니다. 그것이 일등이 된 겁니다. 그래서 희비의 쌍곡선도 일어나는데 요즘은 기다리기 싫어하는 시대이니까 그래서 돈을 집어넣으면 바로 나옵니다. 그러면 동전이나 칼로 긁으면 거기에 상금도 나오고 당첨된 것도 나옵니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 한 네 명이 서서 거기에다 쉼 없이 돈을 넣어서 그것을 긁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야 이제 그만 해라 꽝이 몇 개째냐? 그러니까 한 친구가 여태까지 열 개해서 꽝이 나왔으니까 이번에 확률적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하면서 계속 돈을 넣고 긁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실 수 있다는 신념이 다할 때 그 믿음이 다할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그 신앙고백은 ‘하나님 나는 당신을 믿으면서 살수는 없습니다.’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그 자체가 바로 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보면 우리 소리치며 사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나는 주님을 믿으면서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낫겠습니다. 응답을 기도하느니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낫겠습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갑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수없이 하나님을 향해서 보이지 않는 입으로 소리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불신앙의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이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다고 믿는 믿음,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모든 것이 가장 완전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주시는 그 모든 것이 가장 완전하고 좋은 것으로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때에 그 필요한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런 믿음이 마를 때 우리는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 선지자는 우리에게 이점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자기백성 삼으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가 하나님을 향하여 변덕스러운 것처럼 너희를 향해 변덕을 부리시는 여호와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코 하나님은 너희를 향하여 변덕스러우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만족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오늘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많이 들었던 나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코 범치 않겠다. 그런 유명한 성경귀절이 하나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사무엘이 이와 같이 미묘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상황이 얼핏 보면 아무 일도 아니라 지만 이제 이 상황은 아주 미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왕을 구한 것 불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달라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안 된다고 그러지 않고 주겠다고 그랬습니다. 그것 좀 겁나지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둘이 막 싸우면서 조금씩 갖겠다고 애들이 막 갖겠다고 서로 당길 때는 서로 가지려고 하는데 그중 어느 한 쪽이 맘대로 해 다가지고 가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것 다 털어놓고 벌떡 일어나면
기분이 이상합니다. 왕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아 곤란하다 아 좀 주시지요. 아 그것 좀 곤란한데 줄다리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을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너희가 왕을 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회개합니다. 왕 구한 것을 후회하며 회개 합니다. 그랬더니 그래라 그래 줄게 가만히 그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왕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회개 합니다. 줄게 그래 왕 세워주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과 함께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결국은 가져라 그러시면서 우리를 버리시는 구나 그러한 만감이 교차했을 겁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막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왕을 가져라 주시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왕을 갖도록 해달라고 애원할 때는 하나님이 그것만 허락해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노골적으로 너희 그것은 잘못 구한 것이다 그래서 회개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래 왕을 세워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깊은 불안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하나님 앞에서 범하지 않겠다. 이 사실은 우선 기도에 대해서 몇 가지 아주 중요한 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너희를 위하여 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로부터 누구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도를 필요로 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의 기도를 받아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중보기도를 받아야지만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 있을 수 있고 위기가운데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그리고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가운데서 보위하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만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지체를 보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이 신비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다 믿음이 좋아져서 참 한심한 사람들 보면서 그것도 신앙생활이라고 하나 세상에 참 어리다 철부지다 하면서 저것도 예수쟁이라고 하면서 여러분 한심해 보이지만 여러분 개구리가 올챙잇적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고 형편없던 사람이 이 만큼 성장하게 되어서 옛날의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볼 때에 아주 불쌍해 보이고 그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측은한 생각이 들도록 성장 할 때까지 여러분 뭐 먹고 자랐습니까? 여러분 아마 인간은 기억하기를 잊어버렸지만 여러분들이 이만한 믿음으로 자라기위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의 명단을 여러분들에게 내놓는다면 아마 깜짝 놀라고 아마 여러분들은 얼굴 들기가 힘들 겁니다. 두 가지 사실 때문에 왜냐하면 나 잘나서 이 만큼 신앙생활하고 있는 걸로 생각 했던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그 담에 두 번째는 얼굴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위해 기도했구나. 깨닫게 됩니다.
저는 잊히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개척을 12일 날하고 13일 날 새벽입니다. 처음부터 새벽기도를 안한다고 할 수 없고 새벽기도를 해야지만 나 혼자라도 그 시간을 지키고 가야 될 것 같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6개월 후에부터 하면 좋겠는데 일단 시작을 했습니다. 모험이었습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은 일곱 사람인가 여덟 사람인데 다 먼데살고 누가 나올 사람도 없는 것 같기도 해서 그때 김전도사님도 멀리살고 해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하고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하고 약속한 시간을 내가
대표로 지켜야지 그리고 오는데 그때는 다섯 시 반이였는데 일찍 갈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다섯 시 20분에 왔는데 여덟 명이 앉아서 새벽기도를 기다리고 있는겁니다. 그 때 만약에 내가 사람도 없는데 집에서 잠깐 중얼거리다 자야지 그랬으면 보통망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망신은 벌써 그 전날 오후 예배시간에 했습니다. 어떻게 교회 설립한다고 신경을 많이 쓰고 했던지 오전예배 마친 다음에 제집에 들어가서 오후에 설교할 것 다시 한 번보고 여기서 지체들하고 떠들고 교제하는 것 보다 조용히 있다 나와야 설교하는데 맘이 편하더라고 경험상 그래서 들어가서 성경을 펴놓고 있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전예배는 다른 교회 나가니까 못나오고 오후 예배에 우리교인들 몇 되지도 않는 사람의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해서 우리 개척했으니까 우리교회오라고 해서 거의 꽉 찼습니다. 눈을 뜨니 3시에 예배인데 3시 10분 인겁니다. 그래서 주여 왜 다음 주에 개척할걸. 왜 이번 주에 개척을 해서 그러면서 우리교인이라고 생긴 사람들이 전부다 다 나와서 우리 교수님 안 오신다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얼굴이 화끈 거리고 할 수 없어서 자느라고 늦게 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습니다.위로해주셔서 그날 제가 설교한 게 기억이 나는데 잠을 자서 그런지 정신도 맑아졌겠다. 다섯 시 반까지 했는데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보상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잠자도 온 사람도 저렇게 하나님이 설교할 수 있게 했다고 하는 그런 본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교인이 일곱 명밖에 없는데 여덟 명이 와서 조용히 앉아서 새벽기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이 만큼 크도록 이 교회는 누군가의 수없는 눈물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그것이 누군가는 약속을 안했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그치기 시작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붙잡아 주실 때에 사단의 역사를 막을 수 있고 그 때에 이교회에 들어온 영혼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지 하나님의 지키시는 팔이 떠났는데 교회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그겁니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에 모여 있는 신자는 사단의 도시락감입니다. 아이고, 여기오니까 밥들이 다 모였네. 그러는 겁니다. 반대로 교회가 기도하고 강력한 기도의 후원을 받을 때는 마귀들이 득실거리는 그 현장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에게는 또 도시락입니다. 서로 먹고 먹히는 치열한 전쟁이 있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운 이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속에서 주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국은 너희를 위하여 그 백성들은 이렇게 기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백성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명함 반 만하게 만들어서 거기다가 자기이름 쓰고 그리고 기도제목을 인쇄해서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다 껌까지 곁들여서 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꾸러 그렇게 돌아 다니는 것은 정말 추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구걸하러 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기도해 주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기도를 안하겠습니까? 한번이라도 합니다. 그것도 많이 모으면 그것도 꽤 됩니다. 기도해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부탁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 이 모든 사람들 이 모든 교회는 누군가의 기도를 먹고 교회가 서는 것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먹고 서느냐 그것은 모릅니다. 흩어져서 일주일간 사는데 담임목사가 무슨 비디오를 갖다놓고 여러분 사는 것을 몇 분기도하나 그것을 찍으러 다닙니까. 어떻게 압니까? 그럴듯하게 와서 앉아있으면 모릅니다. 그러나 느껴집니다. 누구 때문인지는 서서히 교회가 기도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때 교회는 겉모양이 그럴듯해도 속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이때 교회는 결국은 이렇게 누군가의 기도를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헌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섬김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엘 해리스의 웨일즈의 부흥운동의 도구로 써졌던 하엘 해리스의 전기를 읽어보니까 놀랍습니다. 기도로 일차대전을 막 움직이는 것입니다. 영국이 나치들에게 노출되어서 이제는 공중전에서 밀리니까 나치비행기가 런던 한복판을 폭격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모든 방공포대나 이런 것들이 다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십 오 분만 더 폭격을 하면 영국은 항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왔다가 이제 조금만 더 폭격을 하면 완전히 손을 들 텐데 손들기 직전에 갑자기 폭격을 하다가는 자기네 땅으로 가는 겁니다. 아무도 그 비행기가 왜 돌아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그 기도로 전쟁까지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서 끌고나가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유엔군이 개입해야 되냐 말아야 되느냐를 가지고 투표를 했는데 그 때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에 소련이 있었는데 그 나라 중에 한나라도 안 된다 그러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도 개입을 못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다섯 나라였는데 그때 소련의 사주를 받아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각본상에서는 소련이 그 회의에 참석해서 상임이사회에서 거기 전쟁에 개입하면 안 된다 두 나라끼리 해결하도록 내버려둬라 딱 막았으면 유엔이 개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육이오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기가 막히게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제가 어느 책에서 읽어보았는데 그 소련 대표가 회의장에 오는데 차가 망가진 것입니다. 연락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하나님이 처하게끔 만드신 것입니다. 결국은 불참된 것입니다. 불참하게 되니까 하나는 불참 기권으로 치고 나머지 넷이 찬성해서 유엔군을 보내기로 결정된 게 이게 말하자면 비화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 속에서 하나님의 조국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평화를 갈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 없이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도움 없이는 모이는 일들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데 강단에서 말씀이 생명수와 같이 쏟아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는데 그 말씀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감화를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감화를 받은 우리들이 그것이 순간의 느낌으로 지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꾸고 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쳐놓을 수 있는 데로 까지 나아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까? 불가능한 것 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속에서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수없는 모든 난관들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도움을 불러들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그 백성들이 누군가는 기도를 해서 그 백성들로 하여금 그 교회로 하여금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집 기도 받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 기도 받는 성도 기도하는 성도 이것으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 동안 흩어져 살고 우리는 피도 살도 섞이지 않고 다른 삶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흩어져 있는 이 사람들을 긴밀한 끈으로 묶어줘서 매일 축도하면서 되풀이하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게 만들어주는 그 진정한 힘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믿습니까? 기도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심방 해 봐도 그 영혼을 위해서 깊이 기도하다가 가면 그 뻗대고 지 멋대로 하던 그 아이가 양처럼 온순해집니다. 골목길에서도 너 그렇게 계속 살면 안 된다 권면 합니다. 교회에서는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도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를 질러도 장난치고 졸던 애들이 기도하고 골목길에 가서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 그러면 눈물을 펑펑 흘립니다. 결국은 기도가 그들의 마음속에 미리 길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노골적으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받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도를 먹으며 이만큼 컸고 지금도 누군가의 속을 태우면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기도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얼마큼 기도로 섬기고 있느냐 이것이 바로 오늘 성경이 여러분들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인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다른 일로 많이 섬긴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앞으로 섬기기 위해서 내가 준비한다는 이유 때문에 혹은 하나님 앞에 이 교회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섬김을 받아야하는 이런 것들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지 우리가 깊이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뛰어난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것은 정말 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하나님도 아십니다. 나는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도 부럽지 않고 우리도 이사 가려고 하지만 참 10층 20층 올린 엊그제도 강의하러 목회자들 모였기에 강의하러 갔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 자랑을 합니다. 우리교회 교육관을 짓고 있답니다. 아 그러시네요. 참
좋은 시겠습니다. 난 그런데 몇 평이냐고 안 물어봅니다. 속 쓰리게 뭘 물어봅니까? 자동차 3대 세워놓은곳도 남의 땅인데 몇 평이냐고 그거 알아서 뭘 해요 아 그러시냐고 하니까 아 이 평수가 몇평이다고 합니다. 그러면 난 평수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하면서 아 그러시냐고 우리가 교육관을 건축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6층을 짓는다고 아 그러시냐고 영화관까지 만들 거라고 아 그러시냐고 20억 들 거라고 아 잘하셨다고 우리는 지난주 다 모아보니까 1억쯤 나온다고 남의 집 가서 집 구경 돌아다니는 사람 난 이해가 안갑니다. 볼게 뭐있습니까 어차피 내 집도 아닌데 나는 정말 그런 것 안 부럽습니다. 그런데 정말 부러운 교회는 예배가 말씀을 전하고 기도할 때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 언젠가는 그 까짓것 땅 몇 평에 빌딩 그까짓 거 문제가 아닙니다. 땅 전체를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십니다. 믿습니까? 믿음이 있는겁니다.
어느 집사님인가 누가 와서 교회 건축을 하는데 목사님 벽돌도 없고 인부도 없고 뭐도 없고요 쭉 이야기를 하니까 옆에 장로님이 돈이 없다는 얘기를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냐고 돈이 없다고 한마디만 하지 그러니까 목사님이 아니 문장을 그렇게 길게 얘기 하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믿음이 어디 있느냐는 겁니다. 부럽지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교회는 70명이 교인인데 68명이 박사랍니다. 그래도 난 부럽지 않습니다. 부러운 교회는 정말 기도가 살아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하나님 앞에 부러운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주일동안 기도생활안하다가 여기 나오면 그럼 벌써 퍽퍽한 게 느껴집니다. 그날은 정말 애를 먹는 날입니다. 말씀이라도 터져가지고 푹 젖고 나서 돌아갈 때 쯤 돼서 일주일후에 올지 모르지만 뭔가 눈빛이 기도를 좀 해야지 그리고 가는 것 같은데 또 말씀이라도 안 터지면 그날 완전히 집에 돌아가서 캘린더에 엑스표 긋는날 입니다.이 날같이 되풀이 되지 말자‘ 하나님이 오늘 이 사무엘 선지자가 말합니다. 나는 교희는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서 범치 않겠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뭔가 의를 쌓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의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입니다. 그게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도록 우리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비록 방위 생활이지만 군대 비슷한 생활을 했는데 밤중에 나가서 보초를 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밤 세워서 보초를 서는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추운 겨울에 철조망 옆에 조그만 초소가 하나있는데 판자대기로 만들었는데 거기 있는데 우리같이 사제에 나오는 토스카나나 무스탕이도 없고 거기에다 속에 털도 안들은 광목으로 만든 전투복인가 뭔가 그것 하나입고 그 추운 밤중에 총을 메고 서는 겁니다. 그냥 잘 서라고 말로하면 참 좋은데 두 시간씩 서야하는데 가는데 40분 걸리고 오는데 40분 걸립니다. 오면서 벌써 몸이 다 얼어 붙는 겁니다. 온 몸이 차가운데 그 차가운 총이 체온을 더 뺏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총을 옆에 내려놓고 졸은 겁니다. 조니까 거기서 현역군인들을 시켜서 살금살금 와서 조는 초소에 와서 총을 다 걷어 간 겁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영창 가는 겁니다. 군인이 총을 들고 보초를 서야지 총 어디다 두었냐고 하니까 거기다 잠깐 내려놓았는데 눈뜨고 보니까 없다고 하는 겁니다. 들어가니까 아침에 총을 반납해야하는데 총이 없는 겁니다, 시침 떼고 어쨌냐 하니까 나중에 고백을 하는 겁니다. 너무 춥고 무거워서 옆에다 내려놓았다는 겁니다. 군인이 총을 메고 있는 것이 상 받을 일인건가요? 계속 메고 있으면 나중에 제대할 때 총을 계속매고 있어서 자에 상을 수여함 그리고 줍니까? 그런 상 받은 사람 있으면 연구대상입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그게 뭐냐면 의무입니다. 오늘 이 사무엘이 계속 기도하는 선을 행하겠다 말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쉬는 악을 범하지 않겠다. 기도 그 자체가 선이 아니라 그것은 기본적으로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자녀들 칭찬할 때 식탁에 올라앉아서 밥숟가락을 놓지 않고 식사시간 내내 붙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여러분 자녀 칭찬한적 있습니까? 꼭 숟가락 들고 있어야 밥을 먹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도 똑같은 원리입니다. 기도 많이 했다 그 기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그 기도자체의 상은 약속되어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생각할 때에 기도안하면 신앙생활의 본전이고 기도하면 별표 하나 붙는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이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것을 기도를 내가 너를 위하여 하는 기도를 쉬지 않겠다. 여기서 하나 엿 분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수시로 기도를 노력을 안하고 있으면 그 기도가 수시로 쉬어진다는 겁니다. 그 기도를 쉬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채찍질하고 격려하고 결심하고 마음에 각오를 하고 졸리울때는 다리를 꼬집고 하는 말하자면 절대적인 자신에 대한 극기 그것을 이겨야합니다. 이유는 이 육체를 가진 인간 속에서는 영적인 그런 삶속에서 살아가기를 싫어하는 내제적인 부패가 이 속에 담겨 있는 겁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십시오. 흐리멍덩한 사람 있습니다. 머리만 나쁜 게 아니라 삶에 있어서 매사에 분명함이 없는 흐리멍덩한 사람 일하는 건지 모르고 노는 건지 모르고 또 말씀을 듣는 것인지 자는 건지도 분명치 않고 뭐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분명치 않고 매사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게 영적인 삶이 매우 혼탁합니다. 부패하기 쉽습니다. 모든 게으름은 모든 불순종과 죄악이 자라면 비루합니다. 작은 삶속에서 자신을 쳐서 절제시키고 자신을 굴복시켜서 자기가 원하는 뜻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도 좀 나오십시오. 새벽기도 나오십시오. 그러면 네 주심이 은혜를 주시면 나오지요 지난주에 왜 못나오셨습니까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나오죠. 그런 사람은 은혜를 안주십니다. 우선은혜고 뭐고 간에 결심을 하고 뜻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하며 살아야겠다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지 하나님이 안깨워주어서 하나님이 무슨 콜보이 입니까? 하나님이 깨우시게~ 여러분 오늘 이 선지자는 말합니다. 지금 결심하고 있는 겁니다. 결심 안하면 사무엘 같은 선지자도 그냥 가만히 육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조금 하다가 집어치우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 다 경험해 보았을 겁니다.
그러면 옛날에 우리가 하찮게 생각한건 아닙니다. 진지하게 뭔가 결심을 합니다. 이번 주서부터 한 20일 만이라도 고난주간만이라도 40일만이라도 정말 각오하면서 한본 기도해봐야지 하고 결심을 해보지만 잘 안됩니다. 결심했으니까 되겠지 하지만 안 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면 내게 외쳐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 안 들으면 때려주어야 합니다. 내 속사람을 때려줘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리고 고치고 다잡으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생활을 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 위대하고 신령한 선지자가 자신에게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위대하지도 못하고 신령하지도 못한 우리들은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오늘 성경은 기도하기를 쉬면 그것은 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선 사단이 여러분들을 공격하는 것은 저돌적으로 돌격 앞으로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서서히 무장해제를 시킵니다. 그것이 첫 번째가 우선 적군을 공격을 하려면 전략적으로 보급로를 차단해야합니다. 어느 군인이건 아무리 용기가 뛰어나도 열흘만 굶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들도 가서 싸워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보급로를 차단시키는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해보여도 하나님이 위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데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돌격 앞으로 네가 죽든지 네가 죽든지 해보자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련하지 않습니다. 패배할 것 같은 싸움은 웬만하면 도전장을 내놓지 않습니다. 질 것 같은 싸움은 시작을 안 합니다. 그리고 살짝 다가갑니다. 그래서 보급로를 끊어놓습니다.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사업을 신나게 번창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요즘 어떻습니까? 잘 나갑니다. 그것은 사업이 잘나가지 자기 신앙생활은잘 안 나가는 겁니다. 어떤 때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찌르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목표는 영원히 기도하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쉬게 만드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분인데 개인적으로 간증을 하시는데 일주일에 두 번씩 철야를 했답니다. 건강이 너무 나빠지더랍니다. 그러니까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와서 눈물로 목사님 안 됩니다. 목사님의 육체도 인간의 육체입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라도 건강을 지키십시오. 그러면서 철야기도 못 나오게 하고 새벽기도 못나오게 한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너무나도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 성도들이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중에 고백하는데 전부다 사단이 탈을 쓰고 몰려 들어와서 자기를 미혹 한 것인 줄 몰랐답니다. 6개월 동안 새벽기도 안 나가고 철야기도 안하는 동안 교회가 곤두박질을 치더랍니다. 교회를 지려고 파일을 박아놓았는데 쇳덩어리가 무너져서 우리생각에는 도로 끼우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조금씩만 구부려져도 못쓴답니다. 그 파일은 못쓴다는 겁니다. 건물자체가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몇 십 트럭 되는 것을 포항제철 가서 용광로에 집어넣어서 녹여서 다시 만들어왔는데 15년 전 그때 돈으로 구천구백만원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하루 새벽기도안하고 쉬는데 돈 계산을 하는데 하루 쉬는데 몇 백만 원이 나온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그래 목사가 기도하다가 죽으면 어차피 기도하다가 죽으면 어차피 부름 받았을 때 기도하다 설교하다 죽으려고 부름을 받았는데 그 죽으면 순리지 해가지고 다시 시작했답니다.
여러분 결코 사단은 정면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정면공격을 할 때는 언제냐면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서 일격을 가하면 거꾸러질 것 같다 그렇게 판단이 될 때 돌격 앞으로 하는 겁니다. 돌격 앞으로 가 보이면 이미 그 성패가 끝난 겁니다. 보급로가 탁 끊어진 겁니다. 그러면 잠시 동안은 그래도 옛날의 그 기력이 있으니 살아가겠지만 그렇지만 그게 서서히 빠져나가서 마르고 나면 그냥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겁니다. 오늘 성경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는 너무 점잖게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 앞으로 괴롭힐 것입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뜻을 세웠습니다. 정말 우리 교인들은 참 순진하니까 기도합시다. 우리 기도를 해야 되겠지요 하면 간절히 그렇게 기도하면 뭔가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결심의 뜻을 세웠습니다. 여러분들을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 기도 합시다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싸워서 패배 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순간들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두 가지 질문을 하면서 여러분 주님이 언제 오실까요?두번째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지옥이 어딜까요? 주님이 언제 오실까요? 비가 오는 구질구질한 날 수요일 날 교회로 오신답니다. 어디가 지옥입니까? 새벽기도 초정 칠 때는 이불속에 들어가서 재종 치면 일어나야지 설교는 생략하고 기도나 하고 와야지, 재종 치는 데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종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있는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이겁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 싸움에서 이겨서 꼭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 앞에 그랬습니다. 이 기도는 결국은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더 좋은 섬김을 위한 준비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예수님이 결례를 받으러 오실 때에 예수님을 만났던 나이 많은 선지나 암나를 여러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일평생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던 분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자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는 사람 이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고 드러나는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훌륭한 말을 많이 하고 또 여러분들이 얼마나 그럴듯할지라도 속에 생명이 없다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을 붙들어주셔서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실 때 그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있던 교회 목사님이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실 때 하나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매 순간순간 붙들어주셔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아주 신성하고 가장 기본적인 의무입니다. 그러니까 주일 헌금 봉투 안 들고 교회 나오는 사람 없듯이 그것도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될 기본적인 몫입니다. 그래서 한참 순복음교회가 불길처럼 번져 나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모든 예배시간에 제일먼저 자신의 목회자 조목 사님 한분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 기도 그분을 위한 중보기도는 24시간 세계 어느 곳에서도 거의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만들었다 그런 고백을 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삶 자체가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교회적으로도 수많은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기도해야할 제목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돈 가지면 교회 이전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됩니다. 교회를 짓는데 돈이 없어서 교회문제가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어느 교회는 돈을 통장에 쌓놓고 벽돌을 사러 갔더니 교회에서 벽돌 사러 왔다니까 공장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더랍니다. 교회는 만날 외상 좋아한다고 그래서 백만 원짜리 수표 아흔아홉 장을 사장 보는 앞에서 깔아놓았답니다. 현찰로 사러왔다고 누가 일억씩 들고 벽돌 사러 옵니까 구천구백만원을 깔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랍니다. 완벽하게 가지고 시작하는 교회도 교회질 때 시험에 듭니다. 어느 교회는 한 푼 없어가지고 큰일 났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하는데 교회 지어지고 부흥 일어나고 심령이 편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지금이야 말로 절박하게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가정적으로도 기도 할 때입니다. 그게 벌써 다가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선지자를 통해 거듭거듭 상기시킵니다. 나는 안변한다. 옛날에 내가 약속에다가 내가 써준 그 싸인 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불변한다고 자신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면서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나아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 동안 오늘 이 저녁때 받은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교회가 다시 한 번 기도에 불이 붙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 변화되는 기도의 삶을 살아서 내 삶이 가정이 그리고 교회가 변화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