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선교회 집회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6-13)
녹취자: 임국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여자는 성경에서 예수님께 와서 향유를 한 번에 부어버린, 그런 특별한 드림으로 주님을 섬겼던 여자였습니다.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이 여자의 행한 일도 행하여 나를 기념하리라 하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여자가 어떤 여자이고, 어떤 섬김을 우리 주님께 드렸기에 예수님께서 이 여자의 섬김을 그렇게 극찬하였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또, 이 식사에 초대받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 여자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문둥병이 걸린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다니에 사는 이 문둥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마도 현재 문둥병을 앓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은 없고 예전에 문둥병을 앓았다가 나음을 받은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문둥병은 잘 낫지 않는 병이지만, 혹시 문둥병이 치료되어 나았을 경우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그 치료가 완전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들어와서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은 아마도 문둥병을 앓고 고생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고 예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을 자신의 초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문둥이 집에 식사하기 위해 가셨고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식사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초대받지 않은 한 손님이 이 자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자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오늘 이름도 기록되지 않은 여자였고, 이름 대신 성경은 죄인인 한 여자였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고도 다른 복음서에서도 병행 기사가 나오는데 거기서도 죄인인 여자였다고 기록하고 있고 죄인이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여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죄인이 아니라, 아마도 틀림없이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지목하던 대표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곧 창녀 혹은 기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개처럼 여기는 부류의 사람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남성의 경우에는 세금을 받아가는 세리였고, 여성의 경우에는 이방인과 함께 이방인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여성들에 대해서는 아주 극단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리는 동족의 고혈을 짜내어서 로마에 갖다 바치고 자신들이 그 돈을 착복해 치부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리를 미워했다면, 이 창기 여성들은 몸을 팔고 술을 팔아 이방인들도 마다하지 않고 불결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증오하였던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예수님께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기념될만한 섬김을 우리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섬김을 이 여자가 예수님께 올렸기에, 이렇게 두고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여자의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그 참된 섬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선 제일 먼저, 이 여자의 섬김은 말 없는 섬김이었습니다. 꽤 긴 본문 속에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예수님과 베다니 문둥이 시몬과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등장하지만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었고 이 기사가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의 대사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는 그 모인 사람들 중 가장 더러운 죄인이었지만, 대사가 없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여자의 섬김은 처음부터 말이 없는 섬김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처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아주 용의주도하게 예수님을 위해 섬길 준비를 하고 예수님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이 여자는 이미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은혜에 깊이 감사해서 예수님께 섬기기 위해서 나아온 여자였던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향유를 붓고 마지막에 이 성경의 기록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주님을 향한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여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드렸던 섬김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구원해주셨으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나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이 하찮은 인간을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그 구원의 계획에 합당하게 살아야지만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거기에 인생의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위한 섬김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의 계획은 주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하고, 우리는 말없이 주님을 섬기는 일생을 사는 가운데 그분에게 기념이 될 만한 인생이 될 때 그것이 참다운 가치가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이 여자는 자기 같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서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가 깊이 감사했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님께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정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정말 말없이, 그리고 침묵하는 가운데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면서 섬기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어찌하든지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무엇이든지 무위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열심히 마음의 중심을 주님께 드려서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것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주님 앞에 침묵하며 섬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여자의 섬김의 두 번째 특징은 최선의 것을 드린 섬김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주님께 가져온 것은 향유 한 옥합이었습니다. 당시에 이 향유는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쓰이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아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시장에 가서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우리로 말하자면 금붙이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향유를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이 여자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부었습니다. 부었을 때 이 향유는 이 제자들이 보기에는 300 데나리온쯤 되는 가치가 있는 향유였습니다. 당시에 이 1 데나리온은 장정 남자가 해 뜰 때 나가서 일해서 해 질 때까지 일하고 받을 수 있는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 말하면 한 1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고, 그러면 이 300 데나리온의 향유의 값은 오늘날 24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 되는 거액의 향유였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방인에게 술을 팔고 웃음을 팔면서 이 여자의 꿈은 그 향유를 계속 모으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향유를 가지고 일정한 재산이 모이면 시골에 내려가 땅이라도 사고 농사라도 짓든지 다른 사업을 해서 이 동족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부끄러움을 면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여자의 향유가 매일매일 쌓였고, 어쩌면 이 여자의 꿈도 함께 자라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분이 자기 같은 죄인을 그토록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신 그 큰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자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은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깨달아진 사랑이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한 증거가 있는데, 하나님이 자기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신다고 하는 그 큰 사랑은 용서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시고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 더러운 죄인인 자기 사이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는 자기 같은 더러운 죄인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피 묻은 십자가에서 발견합니다. 매일매일 이 세상에서 살면서, 유혹을 받고 시험에 들고 혹은 세상을 사랑하게 될 때마다 자기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 용서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예수님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자기는 전혀 볼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 눈이 뜨여지고 밝은 빛이 들어오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고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인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최선의 것을 주님을 위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주후 110년에 안디옥이라고 하는 도시에 이그나티우스라고 하는 교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매한 인품과 신앙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이고, 불신자들에게까지도 존경을 받는 탁월한 성직자였습니다. 로마의 부패상을 설교 시간에 지적했다는 이유 때문에, 로마 조정의 박해를 받아서 감옥에 투옥되었고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그 훌륭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로마 제국에 커다란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까지도 이 경건한 성직자를 위해서 로마에 탄원을 보냈습니다. 이제 조정의 마음이 어느 정도 움직였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 이그나티우스가 죽음을 면하고 석방될 기미까지 보였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이그나티우스 선생을 면회했습니다. 그리고 위로드렸습니다. “선생님,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열심히 구명운동을 하고 있고 로마가 마음을 움직이려고 합니다. 꼭 석방될 수 있도록 저희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이때 이그나티우스는 자기를 찾아온 제자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여기서 우리 주님께 나의 최선의 것을 제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이그나티우스가 우리 주님께 꼭 바치고 싶었던 최선의 제물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용서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 자신의 최선의 것을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이 이 여자로 하여금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 깨뜨려 부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여자가 예수님께 드리고 싶었던 최선의 섬김이었습니다. 이 향유는 이 여자의 인생의, 삶의 진로를 바꿔놓을 수 있는 유일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드려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된 것은 예전에는 자신의 성공과 자신의 번영이 인생의 꿈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이제 이 여자의 인생의 목표가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성공과 변화 그리고 번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기에, 이 여자는 향유를 깨뜨려 식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모두 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깨뜨려 예수 그리스도께 부었을 때의 마음 안에는 향기로운 향유의 냄새가 꽉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가장 훌륭한 섬김은 자신의 최고의 것을 우리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예화) 나는 최근에 감명 깊은 군인들의 이야기를 두 개 들었습니다. 하나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할 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을 하다가 미군 병사가 총에 맞아서 만신창이가 되어서 죽어 가는데, 그래서 마침 따라갔던 목사님이 달려가서 그 위생병과 함께 상처를 지혈해 주면서 끌어안고 위로를 하였습니다. “이보게, 많이 아프지요? 조금만 참아. 당신 꼭 살 수 있을거야. 조금만 참아. 힘들더라도 ··” 총에 맞아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옆구리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피를 찍어서 옆에 있는 헝겊에다 글씨를 썼습니다. ‘Semperfidelis’(충성)
(예화) 이번에 소말리아에서 해적작전을 하고 선원들을 구출하다가 소위 한 사람이 세 발이나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1cm만 비껴갔더라면 즉사 했을 텐데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지 않으냐고 물어보자 그 군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군인이 된 후에 제 목숨은 나라와 우리 민족의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생각했습니다. 과연 오늘 누군가 나에게 와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고자 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 나도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예수를 믿고 내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래로 지금까지 나의 목숨은 언제나 우리 주님과 교회의 것이었습니다.”
(찬송)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에서 밀알로 살게 하소서”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성공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번영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고, 자신의 최선의 것을 우리 주님을 위해서 바치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취직의 문이 너무 좁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10명이 졸업하면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조금 부럽다, 정말 괜찮은 직장이구나’ 그런 데 들어가는 사람은 두 명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다 임시직, 아니면 그냥 돈을 벌지는 모르겠지만 장래성은 없는 그런 곳에 종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입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우리 나라를 보고 전 세계를 다녀보니, 너무너무 할 일이 많아,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완전히 교육이 무너졌습니다. 특히 중·고등학교 교육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아주 정직하게 말하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내가 우리 집 애들을 학교 보내지 말자고 반대를 했겠습니까. 결국엔 학교에 갔지만 말입니다. 정말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그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아주 포기하고 우리끼리 학교를 하는 냐 하는 것도 가능한 대안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대안은 무엇이냐면, 모든 희망이 다 사라진 것 같은데도 거기에서 진짜 교육이 되는 곳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살아 있는 학교,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하나님을 뜨겁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곳입니다.
(예화) 우리 딸이 대학교 1학년인데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좋은 선생님들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딸이 얘기를 했습니다. “아빠, 아빠,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
고3은 그런 말 하기 쉽지 않지 않습니까. 좋은 선생님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도 이야기합니다. 직업이 없다고 그렇게 타령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 선생님이 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이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 돈 많이 벌어서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선생님이 되지 말고 ‘내가 선교사로 이 학교에 왔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다 쏟아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선생으로서 정말 올바른 길을 가는 사표를 보이면 지금도 뜨겁게 존경할 학생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쓸모없는 이런 죄인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신 것은 이렇게 망가진 세상을 고치면서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화) 어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는 목사님이신데,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에 갔는데, 편지가 왔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난 이 군대에 오니까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러더니 군대생활을 너무 열심히 하니까 군대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야, 너 그냥 말뚝 박아라” 그래서 거기서 부사관 시험을 봐서 부사관이 됐습니다. 장기복무를 한 것입니다. 서로 안 하려고 하는데 장기복무를 했습니다. 장기복무를 열심히 했더니 위에서 오더니, “넌 정말 군대생활을 너무 잘하는구나. 그러지 말고 너 학교 보내줄테니까 사관학교 가라.” 해서 3사관학교 가서, 군대 다니면서 학교를 가서 졸업을 하고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승진을 해서 대위랍니다. 그러더니 언젠가는 연락이 왔는데 부대에서, “당신 아들이 최고의 소대장으로 뽑혔”답니다. 그래서 상장을 주고 상품을 주고 부모님까지 제주도 여행을 시켜줘서 자기들이 아들 덕분에 가서 제주도 여행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목사님이 어디 가서 얘기를 들으니까 군대에서는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직이 중요하다고 해서 보직을 잘 받아서 줄을 타야지만 진급도 하고 명예도 올라간다고 해서, 하루는 아들이 왔길래 그랬다고 합니다. “얘야, 나랑 얘기 좀 하자. 네가 열심히 군대생활 하는 것도 좋지만 머리도 좀 써야 되지 않겠니. 내가 들으니까 보직이 매우 중요하단다. 너도 잘해서 좋은 보직을 해서 계속 승진도 하고 계급도 올라가고 그러거라.” 했더니 이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빠를 쳐다보고 “아빠” “왜” “아빠는 아빠가 보기에 제가 군대가 나라에서 월급 많이 주고 앞길이 창창하니까 내가 그거 바라고 군대생활하는 것 같으세요? 아빠, 나는 그런 것 아무 상관없어. 나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나라를 지키고 죽을거야.” 그러니까 아버지가 너무 챙피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들은 “아빠, 군인의 임무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는거야.”
이 세상의 많은 망가진 세상들이 여러분들이 그렇게 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그래서 우리교회 청년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콜링을 하려고 합니다. 아니, 순교할 각오로 공부하면 선생 못 되겠습니까? 그 아무리 어려워도 사법고시보다야 쉬울 것입니다. 그것도 하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죽어라 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건 할 수 없습니다. 그럼 학원에 가서 살아야지, 학원도 공부 잘 해야 간다고 합니다. 뭘 하든지 어쨌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의 것을 드려서 주님을 위해서 섬길 때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기 아들이 지금 서른 살인데 스물 일곱 살 때 편지를 받았는데, 소대장인데 자기 소대장에게 소대원들 스물 한 살, 스물 두 살 먹은 아이들이 편지를 썼는데,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께’라고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소대장한테. 얼마나 모범을 보이고 부하들을 사랑했으면 그 여섯 살, 일곱 살 차이밖에 되지 않는데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라고 편지를 썼겠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이 개념이 없고 개판으로 사는 것 같아도 다 누가 없어서 그러냐면, 선생님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뜨겁게 사랑하고 자신의 살점이라도 떼어 주고, 아까 누가 간증하지 않았습니까. 간을 65%를 떼어주고 신장을 하나 떼어줄 수 있는 정도까지 자신들을 너무 사랑하고 인간이 살아가야 할 참된 길이 무엇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셨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더라. 그렇게 하나님 앞에 큰 꿈, 크다고 그게 많이 높아지고 유명해지는 꿈이 아니라,
(찬송)
“이곳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부르셨네. 주의 얼굴 구할 때 역사하소서.”
그렇게 한 줄기 빛으로 살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고 그 한 줄기 빛 때문에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과 그 한 줄기 빛 때문에 어둠 속에서 갈 바를 모르는 영혼들이 참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게끔 산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짜, 정말로 비전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수련회 끝나고 비디오 한 편 보십시오. 여러분들 중에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옛날 비디오 인터넷에 들어가서 찾아보면 뭐가 있냐면, ‘언제나 마음은 태양’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카데미 상을 받은 시드니 포니쳐라는 흑인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아주 감명을 주었던 영화입니다. 틀어보세요.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최선의 것을 꼭 선생이 아니라도 모든 직업 활동에서 구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세 번째, 이 여자의 섬김은 비난을 받는 섬김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 깨뜨려 부었을 때, 그랬더니 이 여자를 심하게 책망하면서 이것을 팔아서, 300 데나리온이 넘는 향유인데 이것을 팔아서 돈으로 바꿨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 여자를 책망했습니다. 우리가 뜻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살다보면 이런 난관이 옵니다. 하나님을 조금 섬겼을 때, 즉시 기쁨을 주시고 행복을 주시고 즉시 커다란 상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누구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경우에, 주님을 위해 섬겼는데 돌아오는 댓가는 모욕이고, 비난이고, 욕설이고,, 손해고, 희생입니다. 이런 것들이 거꾸로 돌아올 때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섬기면서 항상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당신의 섬김을 우리에게 온전히 바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모욕을 받고 수치를 당하고 사람들에게 짓밟혔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짊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뜻을 아주 분명하게 정하고 그래서 누구든지 와서 “당신이 왜 삽니까” 라고 물으면 아주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이러한 소명 때문에 삽니다.” “주님이 은혜를 많이 주시면 어디다 쓰려고 합니까?”라고 물으면 “은혜를 주시면 나는 주님이 주신 그 은혜를 가지고 이 소명을 이루는데 쏟아 붓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의미는 그 하나님을 위한 꿈 때문에 자신의 실제적인 삶이 재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어떤 여자가 날씬하고 예뻐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밤에 잘 때마다 통닭을 먹습니다. 운동은 절대로 안 합니다. 그리고 돈 생기면 화장품 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먹는 것만 사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여성 중에서 아름답고 예쁜 여성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다 그럴 것입니다. “나는 추한 여자가 돼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와 자극을 주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영길 총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룬다.”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살았으면, 저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은 누구든지 다 꿀 수 있는 것인데, 그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 재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야구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포크볼을 던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이 짧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2cm의 손가락을 병원에 가서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손을 펼쳐 보이면 완전히 기형인 것입니다. 2cm가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너무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난관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선한 목표를 세우면 항상 난관이 있게 마련입니다. 난관이 왜 없겠습니까. 어려움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 난관과 어려움이 닥칠 때 그것을 잘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꿈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여자의 행동 자체가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신 적도 없는데 3000만원짜리 향유를 갖고 와서 깨뜨려서 확 예수님께 부어버렸습니다. 가끔 교인들이 음식을 대접할 때, 너무 비싼 것을 대접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굳이 꼭 이렇게 먹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3000만원, 여러분 중에선 아마 3000만원짜리 식사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확 쏟아 부은 것입니다. 그 3000만원을 돈으로 팔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얼마나 좋으냐고 했던 제자들의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논리가 없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논리 있는 제자들 편을 들어 주신 것이 아니라 논리가 없는 이 여자의 편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난관이나 시련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주 선한 목표를 세우고 온전히 주님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할 때, 그것이 좌절되고 어려움 당할 때마다 이상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젊은 날에 방향 없이 사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그때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충성스럽게 젊은 날에 아주 굳건한 목표를 세우고 하나님께 매일매일 은혜와 능력을 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무엇으로 세워주시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에이든 윌슨 토저라는 목사님이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비유를 남겼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천사 세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다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금으로 만든 지휘봉을 주시면서 “너는 내려가서 한 나라의 임금이 되어서 이 나라를 다스리거라” 또 한 사람에게는 금으로 만든 큰 주판을 주면서 “너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엄청나게 큰 기업을 경영하면서 회장이 되거라” 세 번째 사람에게는 다 떨어진 철모에다 막대기를 꿰어주시면서 “너는 이것을 가지고 내려가서 똥을 푸거라” 라고 얘기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 천사가 각각 자기의 도구를 들고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내려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러면 각기 금 지휘봉과 금 주판, 그리고 똥 푸는 철모를 들고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올 때 세 천사의 마음은 같았겠느냐 달랐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높은 일이고, 장사하는 일은 좀 덜 높은 일이고, 똥을 푸는 일은 천한 일처럼 보일 지도 모르지만, 이 천사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택정함을 입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자기에게 맡기신 분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워낙 공부할 머리가 없는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또, 사업을 해도 워낙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력을 해도 되는 분야가 있고 안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모두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실 때 크게 쓰는 사람도 있고 아주 작게 사용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 세상 사람들은 영광과 비천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두 하나님의 종들일 뿐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맡겨 주신 대로 선하게 사는지, 그래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섬김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을 드리면서 사는 것이 신앙의 영광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주님의 이 교훈을 꼭 품고 자기의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렸던 이 여자처럼 그 뜻을 굳게 세운다면 여러분들은 정말 아름다운 드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