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교회 제1회 선교사 파송예배(2005.3.30 수요예배)
사랑받는 자의 삶(요21:18)
*성경봉독
*기도
잠깐 기도하시겠습니다. 고마우신 주님, 오늘처럼 뜻깊은 날에 주께서 보석과 같이 보호하시고 지키셨던 귀한 형제 자매들, 사랑하는 어린 아이 선교지로 보냅니다. 오늘 잠깐 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들 가슴 속에 깊이 이롱새겨지도록 도와주셔서, 선교지에서 힘들때나 형통할 때나 그 말씀이 저희들 일생의 선교사역에 힘이되도록 은혜를 내려주시고, 함께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셔서 저희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이 일을 수종들게 해 주시옵소서. 성령님께서 오늘 이 시간에도 함께 해주시기를 빌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사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대화를 나누신 후에 주신 말씀이지만, 사실, 사도행전쪽에서 보면, 이제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위해서 첫 번째 예루살렘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광경입니다.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디베랴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첫 번이 아니었습니다. 부화하신 후 세 번 째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이렇게 개인적으로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베드로를 예수님이 만나셨을 때, 사실 하실 말씀이 얼마나 많으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베드로를 만나 하신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갔지? 내가 너에게 충분히 경고했지? 죽는데까지 나를 따라온다더니 고작 나를 버리고 도망간 것이냐? 예수님이 이렇게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세 번을 물으셨는데, 희랍 원어에서는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그러나 결국 그 의미는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만약 네가 나를 끝까지 따른다더니 왜 도망갔니? 니가 죽는데 까지 나를 따라온다더니 왜 나를 버렸니? 이렇게 물으셨다면 베드로는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니가 나를 사랑하냐? 희랍어에 보면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했느냐도 아니고, 사랑할 거냐도 아니고, 지금 현재 모습 그대로 그 상태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린 것도 사실이었고, 그 전에 죽을 때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지금 와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래서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세 번 부인한 것을 지우개로 지우기라도 하는 듯,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 번 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신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우리 가슴을 후벼파고 들어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예요.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영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헌신해야 될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자격이 무엇인가 하는 핵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훌륭한 신학교를 나오는 것이 자격이 아니라, 치명적인 자격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지를 사랑하느냐? 네가 양 떼를 사랑하느냐? 선교의 비전을 사랑하느냐 선교지를 사랑하느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였습니다.
말년에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 있을 때 선교의 푸른 꿈을 안은 여러 형제들이 그 선교의 대가에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가 선교 지망생 들에게 물었죠. 여러분들은 왜 선교를 하려 합니까? 그랬더니 그들은 대답하기를 저는 선교의 꿈이 있습니다. 저는 이 중국을 사랑합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러이러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때 이 노 선교사가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으로는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선교사님은 중국이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선교사님은 이 위대한 선교사역이 비전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이 위대한 역사의 비전이 가슴에 없으십니까? 그랬더니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로는 선교의 동기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한 성경구절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예수의 사랑에 사무친 사람,자기를 이제 거기로 파송하시는 선교의 대 주재자이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생명 주신 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그는 선교를 정의하기를 선교사의 가슴에서 솟아오른 생수와 같은 주님의 사랑이 넘쳐가는 이것이 선교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제 파송을 받고 선교의 길을 가면서, 무엇보다도 선교의 꿈에 붙타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 분이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고 그 흉악한 죄에서 건져주신 것이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 죄인 중 괴수와 같은 인간에게 넘치는 그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를 도울 여러분들도 그런 사랑이 가슴속에 있어야지만,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그들의 현장에서 애를 쓰고, 성도들은 그를 후원하고 돕기 위해 골방에서 기도로, 또 보내는 물질로 애를 쓰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선y의 동기가 선교사나, 선교를 파송하는 교회가 동기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만난 주님, 헤아릴 수 없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불러주신 그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선교사가 되기 전에, 먼저 아주 착한 신자가 되어야해. 저는 이 두분의 선교사를 만난 지 칠 년 되었어요. 좋은 그리스도인들이예요. 그런데 그 좋은 그리스도인 됨을 일평생 잊지 마세요. 선교의 사역을 마치는 그 때가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신자가 된 그날이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주님을 내 생애에 있어 가장 사랑한 그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마지막으로 사실, 네가 날 사랑하느냐고 말하는 분이 인간이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대적으로 대답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물으시는 분이 당사자였어요. 모든 것을 아시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주님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었겠어요. 그러니 베드로가 보통의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네가 날 사랑하느냐 이 세 번 질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할수 없었을 거예요. 그렇게 어렵게 대답을 했으면, 이제 내 생명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그래? 날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이지, 그러면 나도 너한테 가만 있을 수 없지. 내가 하늘을 열고 네 선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마. 네 목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마, 뭘 주랴. 동역자의 복도 주고 물질의 복도 주고 자녀의 복도 주고 그 모든 것을 주마, 사실 그래야지 서로 오고가는 이야기가 맞는 것 아니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세요.
네가 젊어서는 띠 띄고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으나, 이제 나이 먹어서는 사람들이 너를 띠 띠우고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거다.
사실 삼척동자라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죠. 그래서 요한이 이 말을 해석했어요. 이 말씀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미리 말씀하시더라......여기서 강조점은 죽는다는 것이 아니예요. 그게 아니라,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말씀하시더라. 우리 사역의 성공 박수갈채를 받는 사역의 성취, 선교 비전의 현실화, 이거 보다도 더 커다란 가치, 비교될 수 없는 절대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에요. 영광을 받으시는 것.......
망가진 이세상, 죄 때문에 창조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구겨진 이 세상을 바로 펴고, 고치는 그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바로 그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못 말리는 사랑을 하는 베드로에게, 내가 네 생명을 거두어서 영광을 받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로마에 갔었습니다. 여러 곳을 보았지만,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지울 수 없었던 곳이 바로 베드로와 예수님이 만났던 로마의 그 자리였습니다. 어마어마한 핍박이 일어나자, 베드로는 자기의 제자들을 데리고 황급히 로마를 빠져나갔습니다. 동구밖에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의 발자국이 새겨졌다고 주장되는 돌판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거기 쿼바디스 교회가 섰습니다. 그리고 거기 서 보았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세요? 예수님 말씀하셨답니다. 베드로야, 나는 네가 버리고 온 로마를 위해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노라. 그 때 베드로가 눈물을 흘리며 주님 발 아래서 회개했습니다. 주님, 십자가는 제가 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순교를 감당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는 우리의 행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사역의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고의 가치는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충성스럽게 살려고 할 때, 이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고야 말겠다고 하는 의지적인 성향이에요. 성심을 다한 의지적인 성향이예요. 충성된 사람은 이 성향을 가로막는 난관들이 있을 때, 목숨을 걸고 그것을 뛰어 넘어 반드시 하나님 원하시는 일을이루어 드리고야 맙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예요.
그래서 저는 이제 여러분이 선교사로 파송받음에 있어 최고의 가치를 선교의 성공이나, 위대한 선교 비전의 성취가 아니라, 어떻게하면 나는 죽고 주님은 살아, 나는 잊혀지고 주님은 영광을 받으실까? 어떻게 하면 나는 사라지고 주님의 이름은 길이 빛날 것인가? 그래서 여러분들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극히 큰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라고 그 영광 안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분들을 보내는 모든 성도들도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고, 이들이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고 이들이 보냄 받은 자리에 우리가 간 것처럼, 그렇게 이 사역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주님 오늘 이 시간에도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종들을 선교지에 보내실 터인데 주의 큰 영광이 나타나게 하시고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죽기까지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종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