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교 특강
녹취자: 김명진
여러분 주일날 하루 종일 설교 듣는 것도 지겨운데 무슨 또 선교학교 강사로 불렀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선교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에게 허락된 시간이 80분 정도인데 한 시간 정도에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리 못한 것은 내년에 또 들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열린교회에 와서 설교를 깊이 집중해서 듣고 은혜를 받았다면 알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교회는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선교는 단순한 전도활동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하나님을 위한 사역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선교사역은 처음부터 포괄적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의미에 있어서 조금 다릅니다. 전도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전해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그것, 거기까지가 전도라고 하면 선교는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 사람이 전 포괄적인 성경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고 학문과 정치와 사회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 그 이상을 구현해 나가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선교입니다. 선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종합적인 특성 때문에 우리들이 그냥 전도만 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다든지, 그렇게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선교사들이 전도해야 하지만 그 선교사들 가운데는 모든 사람이 골고루 전도하지만 전도 외에는 다른 것은 할 수 없는 선교사가 파송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선교사들이 전도하지만 전도해서 어떤 선교사는 학문을 가르치고, 어떤 선교사는 전도를 해서 거기에 구제 사역을 잘 펼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도움이 되고, 어떤 선교사는 전도를 잘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그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등등의 다양한 종합적인 사람들이 다방면에 걸쳐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린교회 선교 역사를 이 한 시간 동안에 다 밟아 보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희들이 본격적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한지 십년 정도 됐습니다. 열린교회가 세워진 지 십년 만에 이곳에 이사를 왔고, 지하실 교회에서 4년 정도 있었고, 지하실에 7명이 개척을 했는데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동네 골목의 7개의 건물을 빌려서 주일이면 그곳이 열린 타운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50명이 모였을 때 그 다음 건물로 이사를 가고 250명이 4년 만에 이사 간 큰 교회당에서삭월세로 이사를 가가게 되었는데 3년 만에 천명이 되었고, 그리고 천명이 되어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여기에 와서 2002년도 4월 30일이 십년 되는 해이었고, 올해 4월 30일이 십 일년 되는 해입니다. 그렇게 해서 장년 900명~1000명, 어린이 300명이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이사 와서 구체적인 선교의 계획을 짜게 되면서 본격적인 선교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선교를 하게 된 지 10년 정도 걸렸습니다. 10년 후에는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선교를 하기 시작했고, 그래도 우리는 항상 이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져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몸이 어른스러워지면서 온 몸의 지체들이 함께 커져야지 7살 아이가 손만 권투선수처럼 만들어 보겠다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성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10년을 오면서 처음부터 선교가 교역자들이 주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연대를 이루면서 선교사들과 협력하면서 광범위하게 평신도들의 참여로 주도되는 선교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열린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사역들 대부분이 평신도들이 주도가 되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파송할 때도 파송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최종적으로는 당회에서 결정을 하지만 평신도들이 1~2년 동안 선교학교부터 선교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람이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는지를 먼저 결정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안된다는 사람을 당회에서 파송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평신도들이 선교사역에 대거 참여하면서 헌신적으로 이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십년 동안 하나님께서 이만큼 교회가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신학적으로 탄탄한 토대 위에서 성장하도록 도와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열린교회의 선교는 처음부터 시작할 때부터 저의 생각은 삼지사방으로 사람들을 다양하게 보내는 파송 숫자위주의 선교는 처음부터 지양을 했고, 우리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의해서 다른 교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교회가 하도록 내버려 두었고 다른 교회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우리교회만이 할 수 있는 사역에 집중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의해서 제일 먼저 선택한 선교 사역이 바로 중국 선교입니다.
중국 선교는 97년도부터 개입을 해서 중국을 드나들면서 선교를 하기 시작해서 십년 동안을 고심을 하고 십년 동안 일 년이면 최소한 두 번 이상씩 들어가면서 중국에서 제가 이 학교 저 학교에 가서 강의도 하고 집회도 하고 많은 선교활동을 하면서 “도대체 우리 열린교회에 하나님이 주시려는 독특한 소명이 무엇입니까?”하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모든 걸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 결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먼저 지식이 필요합니다.
중국 선교를 지켜 본 결과 깊이 깨달은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97년도쯤에는 급속도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비공식적인 통계이지만 중국은 매일 20만 명씩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사실인데 중국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목회자들이 너무 실력이 없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왜 그렇게 문제가 되었냐하면 우선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삼자교회에 들어가 있습니다. 삼자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중국식 사회주의로 다 세탁을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지난번에 홍수가 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때 당국에서 지시가 내려옵니다. 그 홍수 때에 홍수를 막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천국에 갔다고 가르쳐라 이런 식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뭔가 확고한 복음적 신앙을 견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삼자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지하교회에 갑니다.
지하교회는 당국에서 허락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법을 들이대면 교회를 해산시킬 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을 상당히 많이 받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유학까지 하고도 지하교회를 개척을 합니다. 그런데 그 때만해도 그런 사람들이 아주 드물었고,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어린 청년들이 중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을 하고 고등학교에서부터는 개인 돈을 내고 다녀야 하는데 시골에서 농민들은 1년 벌이를 하고 5천 위안쯤 남는데 한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려면 4천 위안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고등학교 교육을 가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시에 나와서 발마사지도 하고, 또 잘못하면 유곽에도 빠지고 공장도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 중에서 은혜를 받은 아이들이 시내로 오면 한국교회에서 선교사들이 가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삼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신학교육을 가르쳐 주는데 문제는 누가 가르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돈이 부족하니까 한국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에 중국에 놀러 온 김에 가르치고 가게 하시고 올 때 돈도 좀 가지고 오게 하고 이렇게 가르치니까 삼년 사년을 가르쳐도 중구난방으로 하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중국은 연안을 중심으로 계속 민도가 높아지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는데 이런 사람들이 앞으로 이런 교회에 가서 정착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 고급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을 실력이 있는 목사로 제대로 신학교육을 시키는 것,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결심을 하고 몇 년 동안 구체화 시켰을 때에 그때 우리가 파송한 사람이 안드레 선교사 부부입니다. 그분들은 97년도 그 이전부터 알게 되었고 십년 동안 하다가 이미 다른 교회와는 관계가 끊어져서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것으로 하고 중국의 신학교육의 비전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몇 해 동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CRTS(Central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라는 중앙개혁 신학교라는 것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2007년도에 학교를 세울 때만 해도 이미 많은 중국에 있는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온 수많은 신학교를 거치면서 사실은 실망 할대로 실망을 한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에 중국도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중구난방 식으로 가르침들이 가슴에 잘 와 닿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4년제 대학을 제대로 나온 사람들을 시험을 봐서 신앙과 지식의 수준을 고려해서 사람을 뽑고, 뽑은 사람들을 최고수준의 교육, 최소한 한국에서의 A급 신학교, 미국에서의 최소한 B급 정도의 교육을 시킨다. 그렇게 모토로 하여 시작을 했는데 이렇게 해서 첫해에 16명이 응모를 해서 2명인가가 떨어지고 14명이 합격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서 면접을 했는데, 영어로 통역을 하기도 하고, 중국어로 통역을 세우기도 했는데 좋은 학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꿈을 가지고 그 학생들은 무슨 학교가 이루어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일 년 동안에 4번을 중국에 들어가서 4번 동안을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강의를 했습니다. 그 30여명 정도가 모여서 강의를 듣고,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아야겠구나.’하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다 우리학교에 들어올 실력이 아니었으니까 19명이 들어와서 4~5명이 떨어지고 14명이 합격을 했습니다.
이 학교를 풀타임으로 대학교처럼 가르치면 좋은 인력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텐시브 코스로 집중적으로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월요일에는 매주 모여서 거기서 기본적인 히브리어, 헬라어, 기독교 강요, 열린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신학적인 설교들을 공부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일 년에 6 주를 봄, 가을, 겨울 계절 학기를 만들어서 그 때에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했습니다. 첫해에 한 사람 교육비가 만 불씩, 1100만원이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선교사 생활비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학교 건물을 빌리고, 필요한 용품을 사고, 세를 내고, 교수들 사례비를 드리고 항공료 끊고, 호텔비를 내고, 그 중에 제가 쓴 돈은 포함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도 한 사람 앞에 만 불이 들어갔습니다. 그 일은 다른 교회는 절대로 못 할 일이다. 왜냐하면 만 불이면 선교사 한 명을 파송할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 그 14명이 공부를 하고 일 년에 만 불씩 까먹으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졸업을 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하다가 애기를 난다고 학교를 쉬는 사람이 있고, 2년 다니다가 미국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고 가는 사람이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번에 처음 졸업하는데 10명이 졸업합니다. 그것도 최선ㄹ 다해서 했는데 10명이 졸업을 합니다. 여기 검속 상황이 좋지 않아서 제가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확고하게 열린교회에서 배웠고, 그래서 제대로 된 한 사람의 목회자는 수 천 명의 평신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그 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뽑을 때부터 확고하게 소명이 있고, 확고하게 고급의 신학교육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실력이 되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첫해에 열 네 명을 뽑았는데 그 중의 두 명이 현직 대학교수였습니다. 그리고 박사 학위자, 석사 학위자 등 아주 유능한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영어를 아주 잘 합니다. 학생들 중의 60~70%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졸업 논문도 영어로 썼습니다. 그 14명을 위해서 교수님들을 한 주에 세 명씩 들어가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2일 반을 가르치고 나오고,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가서 2일 반을 가르쳐서 2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3학점짜리 한 과목 분량을 3일 동안 마칩니다.
이 선생님들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교수님들 중에서 실력이 검증된 분들만 보냅니다. “교수님 한번 만 가서 강의 좀 해주십시오.”하고 내가 부탁을 하면 후배들도 많으니까 갑니다. 그러나 한 번은 가지만 두 번은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하는 말이 정말 중국에 가서 가르치면 보람은 있는데 다시 더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도 아주 바쁜 시간을 쪼개서 쓰면서 연구도 하고 그러는 분들인데 그렇게 해서는 똑같은 과목을 계속해서 가르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교수님들이 가시면 연구비를, 그 때는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인플레가 올라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가시면 항공료, 호텔, 숙박비, 식비, 연구에 보태 쓸 수 있는 연구비를 우리가 드렸습니다. 여기서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것이 중국에서 지출하는 돈의 상당수를 차지했습니다. 그분 들이 돈 때문에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강사진들이 들쑥날쑥하지를 않고 5년 전에 하시던 분이 지금도 계속합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강사를 정리하는 일이 있어도 한국 최고의 강사들이 지금도 계속 합니다. 그렇게 제대로 교육을 받고, 받아들이는 실력이 되니까 학생들의 실력이 쭉쭉 늡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가서 강의를 하고 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 공부가 끝나고 나면 그 수많은 질문들 때문에 한 번 갔다가 오면 은혜를 많이 받고 다음에 꼭 또 가고 싶다고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한국 선생님들이 강의를 했고 이것이 첫해부터 해서 지금이 현재 오년 째입니다.
그러니까 5년 동안에 첫해에 한 사람 앞에 1000만 원쯤 들어갔고 둘째 해에 700만 원쯤 들어갔고, 셋째 해에도 700만 원쯤 들어갔고, 그 다음 해부터 거의 600~700만원을 왔다갔다하며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따지니까 한 해에 최소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비용이 1억 4천만 원부에서 시작해서 이번에는 3억 5천만 원 가까이 예산이 들어갔으니까 5년 동안 10억 가까이 들어갔는데 지금 현재 10명이 졸업했으니 웬만한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나름대로 신학교육에 대한 가치를 굳게 가지고 있으니까 가능합니다. 조금 전에 제직회 1/4분기 보고회에서 브리핑을 받고 왔는데 석 달 동안에 지급한 장학금이 1억 3천만 원입니다. 1년 동안 지급하기로 되어 있는 장학금의 목록이 6억 400만원입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여러분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지요? 그것은 중국 학생들에게 지급할 돈이 아닙니다. 한국에 있는 학생들, 학교와 여기에서 사역하고 있는 신학생들 그리고 외국에 유학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입니다. 그것이 올 한해에 6억 400만원입니다. 그것은 선교비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비 이외에 들어가는 장학금입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사람을 길러내는 이 일이 선교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다. 그것을 확신하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이것이 가능합니다. 다른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다른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다른 데에 투자하지 여기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이 4년 동안 가르쳐서 5년차에 접어들어 이번에 10명이 졸업을 했고 이번에 M. Div. 코스라고 하는데 일반은 4년 학사학위를 하고 2년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를 가는데 신학은 다릅니다. 신학, 의학, 법학은 다릅니다. 신학의 경우에는 4년을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을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3년은 석사과정을 하는데 아카데미 디그리가 아니라 프로페셔널 디그리입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거기서 공부를 마치면 그냥 목회자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학이라는 학문을 더 공부를 하고 싶으면 2년을 석사과정을 한 번 더 공부해야합니다. 그것이 Th. M. 이라는 과정이고 그것을 끝내야 박사과정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 M. Div. 3년 과정을 6주밖에 출석을 안 하니까 3년짜리를 4년에 걸쳐서 마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5년이 되는 해에 졸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 해 Th. M. 과정을 개설합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신약, 구약, 조직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학 중에서 선택해서 들어가서 그 과목만 2년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올해부터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냐 하면 한 학기에 2과목이나 3과목을 개설을 해야 하는데 학생 2~3사람을 위해서 교수님을 보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한 사람이 만 불이 아니라 이만 불이상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석사과정을 2년을 공부하고 나면, 신학에서는 대학 졸업 후 3년을 공부하면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고 5년을 공부해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전공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학교를 올해 개설을 합니다. 그 학생들을 2후에 졸업을 하면 이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교수요원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 학교를 이끌어 왔고 이 학교에서 학사와 모든 것들을 써포트 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현재 선교사 4 가정이 그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 가정이 소명을 받아서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고, 이번에 인사한 김전도사님 가정이 가서 학교일을 보면서 기본적인 학생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Th. M. 과정에 학생들이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2년 후에는 졸업해서 선생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중국선교의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앞으로 저희의 꿈은 CRTS를 네 개를 더 세워서 West, East, South, North 이렇게 다섯 개를 별 모양으로 만들어서, 한 학교에서 매 년 15명 정도의 고급 인력들을 생산해 내서 15명씩 5군데에서 나오면 75명씩, 이 사람들이 나와서 학문과 목회를 겸비한 실력 있는 목회자로서 최소한 대학이상 나온 지성인들을 말씀으로 목회할 수 있는 목회자를 길러낸다면 한해에 75명이면 10년이면 750명이고, 750명 한 사람 앞에 200명씩의 교인들이 매달린다고 하면, 10년 후에 15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20년을 잡고 보면 30만 명이고 그 교인들을 300명으로 본다면 약 45만 명의 사람들에게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서 인도할 수 있는 영향력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중국에 가서 며칠 동안 헌신하면서 소나기처럼 가르치고 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지속적인 영향력을 주겠습니까? 몇 사람이 와서 아멘 아멘하며 열심히 노트 필기를 하고 가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가 야심차게 이 프로그램을 계획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 무엇이냐면 학문만 모자라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국이 종교의 자유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70년대에 문화대혁명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면서 외세 세력들을 다 몰아내는 가운데 기독교 종교에 대한 박해가 이루어지면서 유물론 사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투옥되었고,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어지면서 그것이 20년 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이 개방되면서 자유가 주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중국에서는 불교는 경계를 하지 않지만 특히 기독교를 아주 경계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아주 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면 삐뚤어지고 잘못 되어 있는 사회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독재, 부패 이런 것들을 못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기독교가 자유가 주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목회자들이 목회를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1세대들입니다. 교회를 다녔어도 제대로 된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목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몇 해 전에도 중국에 갔더니 거기에서 유력한 지도자 한 사람이 저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목사님 이제는 선교사 그만 보내고 목회자를 보내주십시오. 복음 전하며 돌아다닐 사람 말고, 이미 예수 믿는 사람 500명, 600명 모아 줄 테니까 그냥 일평생 이 동네에서 살면서 이 양떼들을 위해서 말씀을 전하고 목회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목회자형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 선교를 나간 분들이 그것이 약합니다. 여기에서 충분히 목회를 하다가 간 사람들은 선교적인 마인드가 약하고 어렸을 때 일찍 선교에 눈을 떠서 간 사람들은 여기에서 목회를 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고급교육을 할 뿐만 아니라 선교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지만 한 교회에서 한 지역에서 꾸준히 목회를 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세우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설교를 신학의 내용이 있는, 벽돌을 쌓듯이 계속해서 신학적인 내용들을 쌓아 올려가는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교육과 함께 실제로 그런 목회 현장을 봐야합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이지만 CRTS의 학생들을 교회에서 전액 후원을 해서 수학여행을 여기로 오게 합니다. 올 가을에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오면 항상 가을 사경회 할 때 옵니다. 2주 동안 와서 오자마자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강하게 훈련을 받습니다. 전도, 목회, 구역인도, 양육, 교회조직, 경영하는 것까지 다 배워 가는 것입니다. 한 번 온다고 해서 다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모르니까 심지어 교역자회의 하는 것을 보고도 이 친구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습니다. 각자 각자가 보고를 하면 담임목사가 “그렇게 하지 마라. 그것은 잘 했다. 그것은 이렇게 해 보도록 하자. 그것은 아직 결정하지 말고 의논해 보자.” 하는 것을 보고도 ‘이렇게 교회가 움직일 수 있구나’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상 있는 일인데.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교회의 지도자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교회의 컬러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대장 스타일이면 “내가 왕이다, 너희들은 다 내말을 들으라.” 그러면 교회가 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이분이 혼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나나 너나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이러면 그냥 친구처럼 생각하면서 담임 목사가 무슨 말을 하면 반대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교회가 운영이 됩니다. 제대로 된 교회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자. 그래서 데리고 와서 새가족 공부에서부터 전도 나가는 것, 병원 심방 가는 것 등을 다 보여주고 가르치고 사경회 참석하고, 통역을 완전히 준비해서 통역을 전부다 하면서 설교를 어떻게 하는 것인가, 성도들이 사경회를 참석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 이런 것들을 다 배우고, 마지막에 설악산 1박 2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질문을 하고 대답하고, 서로 격려하고 보냅니다. 그래서 돌아간 친구들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가서 다 이야기를 해서 경찰에 이야기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조금 당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너무나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데 이게 어떻게 하는지 몰랐는데 와서 보니까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여기서 공부하는 교재를 번역해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5년 전에 CRTS가 세워질 때는 과연 저 학교가 몇 년이나 할까? 저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몇 년이나 할까?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저희를 좋아하는 선교사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선교사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편에 있든지 간에 CRTS가 중국 최고의 신학교라고 하는 것은 이미 선교사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인정이 되고 있는 명문의 신학교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획기적으로 제가 계속 외국에 다니면서 학자들과 발을 넓히고 하는 이유에는 여러 선교적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외국 교수님이 와서 설교를 했지 않습니까? 자주 오는데 어떤 교인이 그랬답니다. “우리 교회에는 너무 외국 사람들이 자주와. 우리 목사님은 맨날 외국 사람을 부른 다”고 하는데 제가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른 사람들은 반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기들이 여기에 오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빨라스틴 교수님도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왔다간 ‘헤르만 셀더 하위스’라는 세계 칼빈주의학회의 회장이 있습니다. 그 분이 “너 가면 꼭 열린 교회에 가봐라.”해서 이 사람이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서 열린교회에서 주일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가 온다는데 예배드리다가 은혜 받고 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오후 예배에 설교 좀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계속 옵니다. 5월에도 오고 6월에도 옵니다. 저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놀랍게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는 평촌 시골입니다. 여기가 얼마나 시골이냐면 우리가 방배동에 있었을 때는 전도하기가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입니다.”하면 “그게 누구에요?”하고 묻습니다. 책도 읽지 않습니다. 처음에 와서 전도대원들이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동네에서 다들 알려져서 오는데 그 정도로 여기가 시골입니다. “목사님 서울에서 목회하시죠?” “아닙니다. 서울은 도시이구요. 저희는 시골에서 목회합니다. 여기는 평민들만 사는 평평한 촌입니다.”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놀랍게 길을 열어 주서 연결이 되었습니다. 저는 유학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엘 비키 목사님의 학교에 가서 설교를 했는데 밥을 먹다가 사모님이 “김목사님은 미국에 몇 년 이상 사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흘 이상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하고 답했습니다. 제가 하는 영어는 그 분들이 애정으로 들어주겠지요. 어쨌든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다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은혜도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필라델피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개강 집회를 했는데 교수들이 다 모여서 했는데 은혜를 주셨고 내년 4월에는 서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학위수여식의 설교자로 저를 지명을 했습니다. 집사람과 저의 비행기 티켓을 다 내면서 초청을 하였습니다.
이런 연결들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 CRTS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말을 합니다. “우리 당신 중국에 오게 되면 꼭 강의를 한 번 해달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세계적인 학자한 사람이 화란에서 중국의 CRTS에 초청을 해서 이 학생들이 세계적인 학자에게 구약강의를 강의를 들은 것입니다. 이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10월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학장과 교수 세 명이 와서 강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 세계에 다니면서 이 학교를 알리면서 국제적인 연대를 갖자. 그래서 세계의 유수한 학교들이 몇 년 뒤에는 당신네 학교를 우리의 분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탐나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 속에서 지난주에 김성진 목사님이 통역을 했는데 그 분이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 우리 청년이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혼도 많이 나기도 했는데, 그 동안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잘 해서 좋은 학자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채용을 해서 그래서 CRTS학장을 맡기고 “외국의 교류 사역을 그대가 주관해서 해라”해서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 나라가 다 있습니다. 이것을 다 하려면 밤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은 중국편입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중국 편을 하고 다음에 캄보디아 편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학교가 잘 자리를 잡고, 체제가 잘 잡혀있고 수많은 교수님들이 강의를 하려 하니까 통역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수님들이 중국어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통역이 필요합니다. 통역은 아무나 갖다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역을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설교를 아주 잘 하는 사람과 죽을 쑤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역자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보니까 제 설교를 은혜스럽게 통역하는데 5년의 훈련이 필요 합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는 중국에서 좋은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해서 그 학생들이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신학을 배우면서 어떤 교수가 가도 능숙하게 통역을 할 수 있도록 여기에서 계속 사람을 길러냅니다. 세 명이나 5명 정도를 선택을 해서 길러내면 그 중에 마지막에 ‘이 사람은 진짜 열매다’ 하는 것이 50~60% 정도가 길러집니다. 그 학생들의 학비, 생활, 모든 것들을 다 하면서 지금도 계속 길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나와서 영어와 중국어가 듣고 싶다고 누르면 중국어, 영어가 나옵니다. 영어, 중국어가 주일 예배 시 항상 통역이 되고 그것이 녹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 길러내는 것입니다.
중국의 선교는 선택과 집중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는 선교 헌금이 올해 여러 분들이 헌신을 많이 해줘서 4억 4천만 원 정도 걷힐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쓰는 돈이 4억이 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선교사들 4가정이 가있는 것을 써포트 하는 모든 것은 여러분이 낸 헌금이 아니라 교회에서 후원하는 것으로 가는 것입니다. CRTS 학교에서 쓰는 돈만 4억 정도 됩니다. 전체적으로 선교에서 쓰는 비용이 6~7억 정도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선교헌금을 낸 것은 전체에 필요한 선교비 중에서 65%~70%정도 됩니다. 나머지는 교회에서 추가적으로 내서 사역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중국선교가 이렇게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중국 선교만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캄보디아, 아웃리치, 태국, 아프리카, 북한 등등의 선교사역이 계속 확장되고 있고 중국에만 선교사를 파송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소명을 받으면 우리는 소명을 존중하고 우리는 그 사람을 선두로 보내서 교회가 협력할 것은 협력한다. 이런 중심입니다. 절대로 중국하나로만 드라이브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선교가 상당한 열매를 거두고 있는데 앞으로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 Central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하나가 생겨났는데 이번에 W, West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 무안에서 하고 있는 곳에서 후보지 하나를 정해 놨는데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있는 거리에, 거기에 우리들이 포스트를 세우려고 하고 여기에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번에 계획하고 있는 학교는 CRTS와는 다른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 CRTS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젊은이들을 뽑아서 가르치는 곳인데, WRTS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 중에서 아주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왜냐하면 중국에서 대학교육은 아주 소수에게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등학교를 나오고 현실적으로 목회를 하거나 선교 활동을 하고 있고 소명에 불타고 총명한 사람들을 뽑아서, 신학대학 4년제 교육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반 학문도 가르치고, 이렇게 되면 가르치는 교수들이 신학 교수만이 아니라 대학부 학부 중에서 그 중에서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고 선교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실력있는 국내외 교수들이 들어가서 인문, 사회, 언어의 과목들을 가르치고, 영어 교육은 아주 강하게 가르쳐서, 그렇게 해서 그 학생들을 4년 대학교육을 5년 정도 안에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정규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모든 학점을 부여하고 그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 여기를 졸업한 사람들에게 대학 졸업자격을 인정해 주어서 이 사람들 중에서 모두 갈 수 는 없겠지만 시험을 통해서 통과한 사람을 CRTS에 진학시키려고 합니다. 거기에 있는 학생들의 신학교육은 누가 할 것인가? 우리들이 지금 계획 하고 있고, 이렇게 하면 내후년 쯤 개교를 할텐데 후년쯤이면 Th. M. 1기 졸업생들이 나옵니다. 그 학생들은 CRTS에서부터 M. Div., Th. M. 까지 최소한 6년을 그 학생들이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게 되면 그 학생들 중에서 아주 탁월한 학생들을 그쪽 교수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육은 중국어로 강의 할 수 있으니까 강의 할 수 있는 내용이 배는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확고한 교육을 받고 목회가 무엇이고 학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후학들을 거기에서 가르치게 됩니다. 4년 과정을 5년 후에 마치는 것으로 보고, 5년 후에는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한 학생들이 정식으로 중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여기에서 우리가 인정을 해서 대학학위를 주고, 그 학생들이 다른 응모한 학생들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합격하면 CRTS에 들어오게 되도록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WRTS에서는 학생들의 수를 15명 씩 해서 60명 정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보안의 문제가 없으면 80명되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으면 15명씩 4학년 해서 60명 정도의 학생들을 탄탄하게 교육을 해서 보내는 것으로 하고, 이렇게 하면 거기에 올라가서 4년 동안은 기본적인 경건과 인문, 사회학, 언어, 성경을 공부해서 토대를 다지고, 3년 동안은 목회자로서의 훈련을 제대로 받고, 2년 동안은 학자로서의 훈련을 받습니다. 물론 3년을 마친 사람들이 2년 코스에 모두 코스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원해도 실력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고, 본인이 그렇게 까지 어렵게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역을 할 수도 있고, 그 학생들이 2년을 마치고 나면 매년 2명씩이라도 실력 있는 선생이 나오고, 석사과정 3년에서는 계속 실력 있는 목회자들이 나오고, 4년 과정에서는 매년 15명이상씩 3년과정을 공부하고 실력 있는 목회의 길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 일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 일들이 성공적으로 사역이 돌아가게 되면 북방이나 혹은 남방, 혹은 동방 쪽에 학교 하나를 또 만들어서 거기에서 학부과정을 만들든지 선교지의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예를 들어서 대학이 굉장히 많이 있고, 무안 같은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대학생만 50만 명입니다. 그런 도시일 때는 조달하기가 쉽고, 그런 경우에는 CRTS 같은 학교를 만들고 다른 경우에는 다르게 만들고, 이렇게 해서 학교를 계속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CRTS가 자리를 잡고 Th. M. 을 만들고, 그 다음에 WRTS를 만드는 것 까지가 2년 후에까지의 계획입니다. 그 이후에 계획은 이 학교를 세우고 한숨 돌리고 그다음에 본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우게 되면 동방이나 남방이나 북방 쪽에 세워서 궁극적으로는 다섯 개의 다이아몬드형의 학교가 되게 하는 것이 목표이고, 교수들을 하나씩 채용하여 그 학교를 맡기고, 하나의 학교가 세워지게 되면 선교사가 최소한 3가정이 들어갑니다. 선교사들을 서포트 해서 신학교육을 이루고, 받은 학생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사후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초창기에 한국에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나가있는 사람이 5만 명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참 묘합니다. 거기에는 물론 평신도 선교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라파에 있는 신학교들이 중국에 신학교를 세우려고 노력을 했는데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도 싫어하고, 서구 사람들은 강력하게 침탈당한 아편전쟁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경계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한국 사람은 을지문덕장군 같은 사람이 중국을 괴롭힌 것 이후에는 별로 없습니다. 수나라가 을지문덕 장군에 의해서 패배하면서 백만 대군이 죽으면서 망한 것이 중국 역사입니다. 아득한 역사의 기록 밖에는 우리가 늘 중국에게 눌려서 살았지 기를 못 폈기 때문에 호의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선진화의 길을 가고 그 경제력을 가지고 80년대부터 여행자유화가 생겨서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지고 선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잘했든 못했든, 물론 어두운 면도 많이 있지만 중국에 있는 교회가 서는 데에 그나마 신학교육의 맛이라도 보고 그나마도 가르칠 수 있게 된 90% 이상의 도움을 한국교회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초창기에 하던 그런 선교적 신학교육 방식으로는 안되고, 이제는 보다 전문화 되고, 중국도 연안부터 시작해서 소득수준이 계속 높아져서 엘리트 계층들이 생겨납니다. 그 사람들이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대학 나와서 세상물정 알고 공부한 사람이 은혜 많이 받은 사람이 초등학교 겨우 나와서 목회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받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맞아야 하니까 그런 실력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의 꿈은, 중국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 교회가 무엇인지, 목회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이건 사실은 한국교회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라 100년에서 길게 보면 200년의 역사 속에서 다져진 것입니다. 이것을 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전수해 줘야 합니다. 우리교회에서 12년 동안 목회한 양연식 목사님이 이번에 선교 훈련을 받고 있고 6월에 파송을 하게 되는데, 4월 정도에 논문을 쓰고 6월 정도에 박사학위를 받을 것입니다. 보내는 이유는 그 목사님은 여기에서 12년 동안 청년부부터 시작해서 다 했기 때문에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압니다. 가서 그 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중국 학생들이 여기에 왔을 때 양 목사님의 강의를 한 번 들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얼마나 도전을 받았는지 그 사람들이 가서 양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해달라고 열렬하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후 몇 년 후에 결정되었다고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기도 했는지도 몰랐습니다. 결국은 양 목사님이 한국에서 목회를 하고 싶었는데 기도를 세게 해서 바다를 건너 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로 잰 것처럼 전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인도를 하십니다. 거기에 가서 학교를 하면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학생들을 길러냅니다. 이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저같이 좋지도 않고, 실력도 없고, 무지랭이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목회를 하니까 이렇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선교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학생들은 훨씬 더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가면은 우리들은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합니다. 저를 원장님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이 원장님 좀 오라고 하는데 원장이 하도 바빠서 저는 강의하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여기에서도 하는 것이 매일 설교, 강의이니까 거기 가면 얘기 하고 싶은데 학생들이 강의 좀 해달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와서 열심히 하더니 요즘은 왜 강의를 안 하냐고 합니다. 다음에 가서 한번 하겠다고 했는데 거기서 학생들이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삶을 보면서 선교사들을 존경하게 되고, 거기서 성숙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으로 잘 자라 갑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만나서 선교사님들 이야기를 하면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한 사람 앞에 만 불을 쓰냐? 우리나라에서 만 불을 가지면 웬만한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스쿨은 어림도 없지만. 6주 공부 하는데 한 사람 앞에 첫 해에 1200만원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의심이 드는데 그런데 믿음을 가지고 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냐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길은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기뻐하지 않는 것을 증거를 보여주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은 처음에는 모르는데 걸어가면 놀랍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아해 했습니다. ‘목사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을 교육하는데 어떻게 만 불씩 하느냐, 그 돈이면 선교사 한 명을 파송할 수 있는데’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많이 했겠지요. 처음에는 실제로 그런 이야기들도 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진행시키면서, 이쪽에 있는 열린교회 교인들이 아웃리치를 그곳에 가면 그 학생들을 만나고 옵니다. 그 학생들과 대화를 한 사람들은 모두 매료가 됩니다. 여기에 학생들이 와서 2주 머물고 가는데 그 학생들이 여기에 오면 펑펑 울고 갑니다. 우리가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생전 처음 와서, 작년에는 그 학생들과 동해바다를 갔는데 그 학생들 중에 네 명이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봤다고 합니다. 이게 바다구나. 이 학생들을 생전 처음 봤는데 이 학생들이 말하기를 자신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답니다. 어느 학생이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다니니까 어느 성도가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양말과 먹을 것을 사서 바구니에 담아갔는데 이 학생이 이것을 받고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피도 섞이지도 않고 살도 섞이지 않고 만난 적도 없는데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구나.’ 이 학생들은 중국에서 열린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를 한답니다.
학생들이 오면 교회에서 숙소를 마련해서 재워 줄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전부다 홈스테이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선교사들과 교통을 하고, 그 학생들은 비록 며칠이지만 예수 믿는 가정들이 어떤 것인지를 비록 배우게 됩니다. 그 중에 한 학생에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더니 “안 선생님 저 홈스테이 한 집에서 봉투를 받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동그라미가 너무 많습니다.”하고 주더랍니다. 열어보니까 백만 원짜리 수표가 네 장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학생들에게 교육적이지 않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하면 중국에서는 한 가정 한 자녀인 원칙이 있어서 둘을 나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호적에 등록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 것이 성마다 다른데 200만원을 내야 하는 성이 있고 400만원이나 600만원을 내야하는 성도 있습니다. 가난해서 피임도 못해서 애를 난 집에서 그렇게 이 아이들이 지금 19살이 되었는데 무등록자입니다. 호적이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범죄의 표적이 됩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을 끌어다가 인신매매단이 400달러에 파는 것입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 가면 사실 중국이 태국이나 캄보디아나 베트남 같은 데는 비교가 되지 않는데 그런 데에 가서 그 사람들 밑에서 3D의 일을 합니다. 그렇게 심각합니다. 중국 정부에서 어떻게 해결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해결하겠지요. 그런데 부인이 둘째아이가 생겼는데 그리스도인이니까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니까 이 부부가 그날 저녁에 같이 기도를 하다가 ‘아무래도 저 아이를 낳으면 미등록자가 될 텐데.’ 하나님이 감동을 하셔서 “너희가 대줘라.” 이런 감동을 느낀 것입니다. 그 학생이 너무 놀라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 400만원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점심을 몇 년 전까지 5위안으로 때우던 학생들이었습니다. 5위안이면 천원입니다. 그러니 400만원은 상상할 수도 없는 돈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성도들이 이 학교를 사랑합니다. 이 학생들이 2주간 오면서 성도들에게 사랑이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고 돌아갑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냐하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영국, 화란, 미국 등 이런 쪽에 있는 학자들과 이미 이루어진 연대를 가지고, 하나님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물론 저하고 같이 있으면 사람들이 편하다고 좋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서 한 번, 두 번 만나고 나면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됩니다. 물론 그 중에 안 되는 사람도 있지만 안 되면 저도 그만 두는 것입니다. 소통은 서로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학자들을 의도적으로 만납니다. 제가 실제로 을 읽고 가서, 저는 깊이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밖에 대화를 못하는데 저는 정치면 정치, 물리면 물리, 양자역학이면 양자역학, 심리학이면 심리학, 무엇을 이야기를 해도 한 두 시간쯤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깊이 내려가면 바닥이 드러나겠지요. 그러나 깊이 갈만 하면 다른 데로 화제를 돌리면 됩니다. 깊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무들 좋아합니다. 교회에서도 손님들을 예의 갖춰서 맞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외국 사람들은 은근하고 오래된 교제를 좋아합니다. 우리처럼 과격하게 단판을 짓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외국에 갔을 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을 만나도 저는 처음 만났을 때 강사 초청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한 번 두 번, 일 년, 이 년 사귀고 나서 이제 친근해졌을 때 접근해서, 받을 건 받고 줄 건 주면서 교류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학자들을 중국에 많이 보내어서 학생들에게 국제적인 시야를 열어주고 그 학생들에게 유학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주고 학문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학교를 세워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중국 선교를 해서 우리들이 하는 것은 그렇게 목회자다운 목회자를 길러내는 이 일을 위해서 많은 수고와 네트워크와 돈이 들어가고 기도와 희생이 필요한데 이렇게까지 하는 교회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들에게 주신 부름 이라고 보고, 이 일에는 경쟁자가 없는 섬김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국을 위해서 꼭 기도해주시고,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든지 CRTS 한 번 가보십시오. 아웃리치를 갈 때 따라가든지 아니면 계절 학기를 할 때 휴가를 내서 따라가면 봉사를 한다고 하면 데려갑니다. 물론 비행기 표는 자기가 끊어야 하지만 먹여주고 재워 줍니다. 거기서 칠판을 닦고 학생들 차도 끓여주면서 어떻게 선교의 계획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지를 보면서 여러분이 도전을 받는 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이상 말씀 드린 것은 열린 교회에서 4분의 1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학기에 캄보디아 편을 말씀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