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 선교사역
녹취자 : 허 혜숙
해마다 저를 선교학교에 집어넣는데 의도 자체는 선교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도 열린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담임목사로서 본 교회 선교의 정책이라든지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이 시간을 어떻게 가질까 생각하다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질문들을,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한 번 질문을 받아서 정리를 해 봐라 그랬더니 저한테 여섯 개 정도의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것들로 시작해서 선교에 대한 개념 이해, back to Jerusalem 운동, 아프카니스탄 사태, 땅 밟기 운동 등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CRTS 사역, 선교사 파송의 문제, 국내 외국인 사역, 해외 목회자 사역 이런 것 등등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씩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열린 교회 선교사역에 대한 원칙과 방향이 있다면 무엇인지, 다른 교회와 다른 독자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사실 열린 교회가 무슨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가 되어서 독자적으로 선교회를 구성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렇게 크게 지금 추진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미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가 선교에 발동이 걸려서 우리도 공부해 가면서 열심히 선교사역을 우리들이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선교사역의 원칙과 방향이 있다면 무엇이냐? 물었는데 우리 교회는 기본적으로 선교사역을 해 나갈 때 다른 평신도 선교사나 아니면 교역자로서 목사가 되어서 선교를 나가는 것 이런 것들이 다른 곳에서 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다만, 열린 교회에서 선교사역은 할 수만 있으면 우리들 입장에서는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들을 후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비즈니스 선교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선교, 또 복지라든지 이런 등등의 선교라는 성질 자체가 전 포괄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열린 교회 사역은 그런 일들을 선교사들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그런 선교사역이 되기를 우리는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평신도이든 교역자이든 간에 일단 선교를 나갈 때에는 그 사람이 진리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전하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선교사역을 추구해 나가는 그런 것들이 되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고 방향입니다.
아직은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하지 않았고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있어서 너무 높은 grade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이 한국에서 자신이 선교의 소명을 받은 것을 입증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이 준비하며 목회자가 되는 것처럼 선교사들도 별로 소명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선교지에 가서 혼란을 일으키고 어둡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우리들이 맨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몰랐는데 우리가 하나씩 둘 씩 이렇게 선교를 실행해 가면서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지혜도 생기고 방향도 생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두 번째로 선교에 대한 개념이해인데 최근 한국교회 선교모습 안에 ‘back to Jerusalem운동’ 이나 ‘아프카니스탄 사태’, ‘땅 밟기 운동’ 등 여러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운동들이 전부 다 한국에 있는 인터콥 선교회와 관련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터콥 선교회의 최바울 선교사에 의해 주도된 이 선교 운동은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도 몇 해 전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몇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한 일들이 있었는데 신학적으로 잘못 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기본적으로 최바울 선교사가 쓴 ‘세계 영적 전쟁의 도행가’라고 하는 책과 몇 권의 책을 썼는데 이 양반 자신이 신학적으로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파편적으로 주어들은 세대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back to Jesalem 운동’이라고 하는 운동 자체도 자기의 독자적인 부랜드가 아니라 토마스 왕을 비롯한 세대주의에 물든 사람들에 의해서 중국 주도의 선교가 펼쳐질 것이라고 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되고 유럽으로 전파된 복음이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고 미국으로 건너간 복음이 동남아, 한국으로 들어오고 이것들이 마지막으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서 이슬람 국가들을 거쳐 지나가면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면 그것이 예수님이 오시는 종말이다, 이런 구도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세대주의적인 전형적인 해석들, 그 다음에 E. U와 이스라엘의 관계라든지 유럽의 대통령이 나오는 문제라든지 단일의회가 만들어지는 문제, 666, 화인 맞은 자, 이런 등등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개혁신학과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식의 세계의 선교 역사나 혹은 세계정세의 해석들은 똑같은 생각을 조용기 목사님이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1980년대 중반쯤 될 때인가 한참 계시록 설교에 빠지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수많은 잘못된 계시록에 대한 해석들을 내놓게 되는데 소위 이스라엘과 E. U, 그 때는 ECC였습니다. 유럽 공동체 거기에서 E. U의 대통령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라는 이야기 그 다음에 열 불을 E. U 국가로 이야기 했는데 지금 E. U 국가가 열 개가 훨씬 넘어있습니다. 그런 해석들에 비하면 오히려 최바울 선교사의 신학이 훨씬 구도가 맞아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최바울 선교사의 해석을 보면 선교의 대적을 셋으로 보는데 사단이 있고 적그리스도가 있고 경제 지배의 세계의 통치 이런 것들이 선교의 대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과 한판 전쟁을 벌이고 그것이 영적 전쟁에서의 대결구도이기 때문에 그런 속에서 커다란 영적 전쟁이 일어나면서 선교가 이루어 진다 라고 보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개혁주의에서 내린 해석이 아니라 세대주의에서 내린 해석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배경에 깔았기 때문에 지금 ‘back to Jerusalem 운동’도 전개가 되는 것이고 세계 선교에서 마지막에 중국이 놀라운 복음화를 이루고 그 다음에 중국 사람들이 세계 선교에 기여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예측은 할 수가 있지만 그것이 중국 쪽으로 복음이 전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슬람을 관통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하게 될 때에 그것이 역사의 종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성전, 예루살렘에 서 있는 성전이 마호멧 교도의 머스크가 되어 있잖아요? 그것이 결국은 유럽 정치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이스라엘로 넘어오고 그래서 거기에서 성전이 세워지고 하는 것과 세계 역사와 종말 이런 것들이 관계가 있다라고 하는 해석은 개혁주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세대주의 해석 입니다. 여러분들은 몇 해 전에 ‘휴거’라고 하는 소설책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극을 주었다라고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흥미진진합니다. 그런 식의 모든 해석들이 결국은 새로운 해석이 아니라 세대주의적인 해석입니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 것들을 개혁신학에서는 창조부터 타락, 구속, 완성에 이르기 까지 통일된 언약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행위언약과 은혜 언약이 다르지만 그것은 시행의 방식이 다른 것이고 행위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을 이어 오시고 하면서 이어가는 새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일관적인 계획과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바울 선교사의 신학은 처음부터 그런 개혁주의적인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의 세계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신비주의적인 세계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플라톤의 이원론과 비슷한 그런 개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알면서도 선악과를 따먹게 놔두시고 그리고 결국은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도록 하나님이 방치 하셨느냐 그것은 하나님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정이란 것이 마귀를 완전히 멸하기 위해서는 마귀가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고 그 죄에 대한 형벌로서 하나님이 마귀를 처단하심으로서 마귀를 없애버리셔야 했는데 그런 의도를 성취하시기 위해서는 이 세계를 이용해서 타락하고 이 마귀가 망가뜨리게끔 허락을 하는 것이 마귀를 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는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토당토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창조된 세계가 타락하고 망가진 것은 사실 사단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위에서 조정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적인 존재로서 자기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악한 마귀가 존재하는 그것이 이 세상을 망가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처음부터 마귀와 하나님을 대적자로 보고 하나님에게는 이 마귀를 없애야 되는데 직접 없애는 방법은 없었고 마귀가 직접 죄를 지어서 처단을 해서 마귀를 없애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셔야 했던 하나님 나름대로의 속사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황당한 해석으로 시작을 해서 모든 것들을 대결구도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울에 있는 봉은사라는 절을 그리스도인들이 밟아서 밤마다 가서 기도하고 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하시죠? 그 일이 있고 나서 최 바울 선교사가 신문사에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왜 저런 식으로 주장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사태 때에도 모두 금지했을 때 시행을 하려고 천 명 정도의 한국 사람들이 갈 뻔 했었는데, 쉽게 말하면 그렇게 몰려가서 죽더라도 해야 된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순교하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세대주의적이고 세계자체를 단순하게 악령과 성령의 대결로 보고 그 다음에 이 세상에 인간들 자신도 악에 속한 사람이냐 선에 속한 사람이냐 이렇게 명료한 대결구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이야기하는 흠 없고 정결한 신자는 첫째는 마귀와 상관이 없어야 되고, 적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어야 되고, 경제를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중심적인 지배 체제으로부터 거기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 놀아나지 않는 그런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해석들이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있는데 저는 사실 굉장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저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었는데 실제로 교회에서 맨 처음에 문제들이 제기되었을 때 사실 저는 열린 교회에서 워낙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잘 소화 해 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교회를 혼잡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의 금요기도회 시간하고 선교회 기도회 시간을 똑같이 만들어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관이 현저하게 잘 못 되어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차라리 거기에 교회를 만들어라, 교회를 만들어서 각 교회에서 나온 성도들이 그 교회를 떠나서 차라리 그 교회로 가게 해라, 그러면 나는 보내주겠다. 가서 심방도 하고 목양도 하고 돌봐도 주고 헌신하는 사람만 돌보지 말고 헌신도 못하고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오락가락 하는 사람도 심방하고 성경 가르쳐주고 차라리 목회를 하라고 해라 그래서 큰 교회를 만들어서 선교를 하든지 해라 했습니다.
한 번 물을 먹고 온 사람들이 돌아와서 열린 교회는 뜨뜨 미지근하다 왜? 선교를 하려면 죽든지 살든지 양단간의 대결로 가야지 이건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태도들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거기에 연루되어 있었고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별로 피해가 없었는데 다른 교회들은 굉장히 많은 피해를 받고 그래서 굉장히 안 좋은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천지는 뒷문으로 들어오고 윌터콥은 앞문으로 들어온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렇게 많은 욕을 먹고 한국 선교사 협회에서도 제명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균형을 현저하게 잃었습니다. 예전에는 직접 하고 싶었어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루가 되어 있어서 못했는데 이제는 여러분들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개혁주의 세계관하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땅 밟기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땅 밟기 운동이라는 것이 소위 말하는 피터 와그너가 주장했던 영역주권사상, 여러분들이 몇 해 전에 봤던 인기리에 많이 팔렸던 책 가운에서 ‘가게의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라고 하는 매릴린 히키가 쓴 책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이 바로 지금 이야기하는 영적 전쟁의 도해와 맥을 같이 하는 사상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매릴린 히키가 어느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장을 하나 사가지고 농사를 짓는데 죽어도 농사가 안 되더라고 합니다. 도대체 왜 농사가 여기에서 안 되나 하고 봤더니 거기에서 400백 년 전에 인디언들이 거기에서 우상을 섬기던 곳이었답니다. 그래서 이 농장을 4백 몇 십 년 동안 농장에 달라붙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않은 한 여기에서 풍년이 들 수가 없다 하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귀신을 내 쫓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땅을 밟으며 하나님 앞에 열렬하게 기도하고 땅을 밟았더니 그 다음해부터는 풍년이 들게 되었더라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것에 사람들이 굉장히 매료가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단기적으로 그렇게 제시를 할 때에 사람들이 아주 뜨거워지고 열렬해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뜨거워지고 열렬해 지는 것 같아도 더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전 방위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있으니까 영국 국교회와는 화합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청교도 신앙을 강력하게 부르짖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하니까 진짜 야비하게 핍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잡아다 고문하고 죽이고 때리고 심지어 청교도 자녀들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권한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청교도 운동이 금방 불이 꺼지게 되었던 이유는 청교도 자녀들은 대학에 진학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할 수 없으니까 깊은 학문적인 연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선대 세대와 같은 학문과 경건을 겸비한 훌륭한 청교도들이 못 나오는 것입니다. 열렬하게 복음을 전파하고는 하지만 못 나오는 것입니다. 정책적으로는 훌륭히 성공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 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떻게 예배의 방식이 다르고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일 수 있느냐?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느냐 하며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주장하는 것은 설령 누가 이단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진리의 영적인 싸움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이지 그것을 잡아서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고문하고 죽이고 하는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것이 옳을 수 있느냐?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생각들이 잘못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이단을 다룰 때 특히 보헤티우스 같은 사람들이 피치우스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소통을 이야기할 때 그 소통이 탁월하게 아름다운 신앙의 모본을 이교도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불교나 이슬람이나 너무 안타깝지요? 왜냐하면 참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길이 있는데 그것을 현저하게 왜곡하고 그것에 체계를 세우고 그래서 도저히 설득을 당해서 참된 복음을 들을 수 없도록 그렇게 왜곡된 사상의 체계 속에서 사람들을 살아가게 만드니까 굉장히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종교 영역에 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이나 현대 사회의 영역 어디에든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들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우리들이 경건하고 깨끗한 삶으로 사람들에게 모본을 보이고, 그다음에 유능하게 사상적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능하게 사상적으로 변증해서 기독교가 그런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또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에게는 진실하게 인격적으로 복음을 전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게 돕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지 나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을 완전한 대립으로 보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그러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나에게는 아직 우리에 들지 않은 양들이 있어서...’ 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도 언젠가는 이교도였고 불신자였고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사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참고 기다리고 복음을 전하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개념으로 우리들이 접하고 세상이 본질적으로 악한 영들이 있고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인하면 그것은 개혁주의가 아니죠. 그렇지만 그것을 완전한 대립으로 보고 심지어는 인간이 병에 걸리고 그 다음에 무슨 구제역이 돌고 하는 이런 것 자체가 마치 사단의 역사인 것처럼 이렇게 구도를 만드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들이 옳은 것이라고 보지 않고 앞으로도 상당한 문제를 만들어 내겠다고 보는 것입니다.
터키에 엄청난 지진이 90년대에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때 전 세계에서 많은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이 열심히 도왔습니다. 왜냐하면 터키와는 이상하게 형제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 터키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열심히 돈을 모아서 그 쪽으로 구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터키 선교에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구제품이라고 해서 먹을 것, 입을 것 생필품들이 궤짝에 채워서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궤짝을 하나씩 받아 가지고 집에 가서 열어보았더니 거기에서 성경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지금 재난을 당해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종교를 팔아서 구제품을 받고 떡을 먹을 정도로 그렇게 비굴하지는 않다’ 그러면서 그것을 반납하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중심은 우리끼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했고 어찌하든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해야지만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 ‘우리가 보낸 구제품 그냥 먹으려고? 자식들 어림없지, 예수 믿어야 주지’ 이런 마음으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기독교가 독선적이고 자신들의 재난에 자신들을 비굴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으려고 한다는 반선교적인 정서를 불러 일으켰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여러분, 외국인이 독일 사람인가 하는 사람이 성경공부 가르치고 했었는데 변심한 터키인들이 찾아가서 살인을 해서 신문지상에 나고 했잖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전부 잘못된 방식의 선교들이 쌓여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 싸움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정말 영적인 싸움이어야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여러 명이 살해를 당하고 문제가 일어나서 나라 간에 문제가 되고 군대가 개입되어서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여러분들이 비난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식의 대립적인 구도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이 영적으로 그런 대립을 인정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우리들이 실제로 이웃들에 대해서 사랑을 가지고 예를 들면 ‘저 새끼들은 마귀 새끼들이야’ 라고 접근하면 선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현장에서 간음하다 나온 여인들도 있었고 세리들도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품었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냐면 본질을 다른 종교에 양보하고 타협을 해서 본질을 훼손하라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끝까지 붙들고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너그러워서 이웃으로서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관점은 되어야지요. 그 심정은 우리들이 깊이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그런 구제물품을 보내고 그들이 그런 재난에서 구출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선교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면서 우리들이 신사적으로 구제를 했다면 메리트가 훨씬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터키의 선교사들에 대한 박해가 훨씬 심해졌습니다. 요즘도 터키에서 선교를 거의 못 합니다. 제가 갔을 때 비공식적 집계로 터키에 선교사가 1000명이었는데 그리스도인이 120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굉장히 발전한 것이고 그 이전에는 선교사가 700명이었는데 그리스도인이 600명이었습니다. 그렇게 핍박이 굉장히 많았고 그런 핍박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분법적인 구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개혁주의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리고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그 사회에 영적인 모든 구도를 영적인 대립구도로 볼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그 나라 속에서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내와 많은 사랑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은 CRTS 사역인데 중국 신학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중국 선교에 대한 방향과 방침은 무엇인지요? 제가 작년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선교만 해도 저 멀리 탈북자 선교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비즈니스 선교에 이르기 까지 많은 층 차의 선교 사역들이 있습니다. 저는 한 교회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중국에 신학교를 세웠는데 이 신학교를 세운 목적 자체는 중국에 일시에 한국 사람들에 의해서 어마어마한 선교사들이 나갔고 선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나간 사람들이 한국 사람만 5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복음사역자의 학력이 너무 낮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당장 전도사역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이 앞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중국 사회에 발맞추어서, 지금은 중국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원 없이 돈을 마구 쓰는 사람들이 2천 5백 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의 씀씀이는 놀랍다고 합니다. 정말 아까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요즘 유럽이니 어디니 여행을 다니면서 돈을 씁니다. 연안부터 시작을 해서 국민소득이 높아지기 시작하고 교육을 못 받으면 직업을 가질 수 없으니까 교육열이 굉장합니다. 이러면서 서쪽으로 이동해 간다고 합니다. 이 시기를 거기에서는 20년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최소한 30년 정도가 걸려야지만 저쪽 신장까지 개발이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그렇게 도시를 중심으로 교육열이 높아져 간다고 할 때 교회를 가도 그 교회에서 가르치는 삼자교회의 지도자들은 학력은 있는지 모르지만 자유주의 신학이 굉장히 번성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하교회 지도자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데 너무 학력이 낮습니다. 요즘은 고학력자들이 신학을 하는데 고학력이 되어도 미국이나 한국에 와서 신학교육을 받지 않으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학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신학교들이 미래에 학문과 경건을 함께 겸비하고 다음 세대에 중국을 신학적으로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구조에서 이것을 제가 10년 동안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그래서 CRTS를 만들어서 최고의 신학교육의 질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그 대신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렬하게 기도생활하고 이렇게 해서 지금은 아마 건물 조그만 데서 구석에 모여서 한 학기에 20-30명 모여서 한국에서 오는 신학자, 미국에서 오는 신학자 강의를 들으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하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들이 3년에 졸업을 안 시키고 4년에 졸업을 시키는데 4년 동안에 대학원 교육을 받는 동안에 거기에서 받는 교육의 질은 한국에 있는 A급 신학교의 질을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교육을 시키는 그것이 전체적인 신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목회를 해 나가고 중국교회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역할들을 우리들이 심어주는데 있어서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신학교 사역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첫 해에 열 두 명인가를 뽑아서 일 년을 교육시키는데 매일 학교에 오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6주 와서 교육을 받고 월요일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인데 한 명 당 정확하게 교육비가 1000만원이 들어갑니다. 천만 원이면 한국에서 제일 좋은 신학교 1년 학비가 천만 원이 안 되고 자기가 조금 아껴 쓰면 기숙사에 들어가서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이 됩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계속 했더니 지금은 우리 학교가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제일 탁월한 학교라고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면서 지금 현재는 비용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한 학생당 6백 만 원 정도까지 내려갔습니다. 학생들이 많아지고 강의가 통합되고 그러니까 대부분이 교수 강사료입니다. 그렇게 해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냐면 이렇게 해서 거기에서 상당히 학문에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미국보다는 한국으로 유학을 시키고 싶습니다. 물론 뛰어난 학생들은 미국으로 보내고 한국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은 이유는 어차피 중국교회는 한국교회와 손잡고 가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한국교회를 많이 이해하는 것이 그들에게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고 다음 세대가 되더라고 계속적인 선교적인 연관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이 적합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안신학교에서 3학년을 졸업하게 되니까 그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한국으로 유학을 오려고 합니다. 이번에도 와서 한 학생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부를 가르치고 돌아가서 여기에서 가능하면 석사, 박사까지 마치고 돌아가서 한국어가 능통하고 한국교회에서 목회의 기술들이나 신학적인 안목들을 잘 익힌 다음에 거기 선교지에 돌아가서 자기가 이미 몸담았던 한국교회와 연계를 가지면서 끊임없이 공통적인 사역들을 해 나가도록 길을 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진로의 문제인데 당장 목사 안수를 주는 일은 안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선교적인 판단이 생겼습니다. 그 대신 그 학생들이 어떻게 하든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겠다는 생각이고 내륙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내륙사역은 중국인 졸업생들과 한국인 선교사들 그리고 한국에 있는 평신도들과 연결이 되어서 기차를 타고 7-10시간 가서 아주 내륙 외진 곳에 가서 거기에서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데 너무 무지합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어떻게 하고 목회를 어떻게 하고 교리가 무엇이고 하는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가르치면서 사역을 해 나간다면 아마 그 영향력은 굉장히 폭발적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쪽에 사역을 가지고 있고 맨 처음에 생각할 때에는 여기에서 보낸 모든 선교사들이 이 중국사역에 하나로 전부 조인하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똑같은 일을 해 나가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요즘 와서 제가 생각할 때 조금 무리가 아닌가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일들에 강력한 끌림이 있고 도전이 있는 사람들은 보내서 독자적으로 사역을 하게하고 그렇게 하면서 한국에 있는 열린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그 쪽에 있는 졸업생들 그리고 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선교사들 이렇게 삼자가 엮어지면서 새로운 신학교 협력체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졸업생들이 나오게 되면 그 학생들이 열린 교회와 손잡고 또는 그 학교와 손잡고 선교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미션들을 펼쳐나간다면 학교 안에서 이미 선교사들하고 이루어진 관계를 토대로 하나의 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선교 집단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중국 교회를 향해 가진 방향입니다. 사실 욕심 같아서는 그런 신학교를 현저하게 어려움을 느끼는 곳에 한 군데 정도 더 신학교를 만들어서 거기에서 신학교 사역을 감당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벌여놓은 일도 하도 힘드니까 사실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국 신학교는 아무래도 교수 한 사람이 신학교를 끝가지 책임지고 학장으로 있어서 본 교회와 신학교 그리고 학계에 있는 모든 교수들과 연계를 이루어 가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신학교 교수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열린 교회를 잘 이해하는 목회자겸 신학자가 신학교 학장으로 취임을 해서 열린 교회와 중국사역 사이에 브리지 역할을 하고 교수들 사이에서도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몇 사람 물망에 오른 사람도 있고 열린 교회 출신도 있고 해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길을 잘 열어주시면 그런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선교사 파송 문제를 질문을 했는데 이런 질문입니다. 열린 교회에서 중국과 캄보디아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송에 대한 원칙 목사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는 어떠하며 젊은 선교사에 대한 담임목사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사실 많이 오해들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열린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준이 굉장히 높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좋게 우리들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태까지는 무엇인가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교역자의 과정을 밟으니까 그렇다면 교역자의 과정을 밟으면서 훈련을 받고 이 사람이 정말 선교하기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것들을 평가받고 이러한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교회에서 교역자로 써주고 이렇게 했는데 지금은 전문인 선교사도 많고 평신도 선교사도 많은데 평신도 선교사들이 은혜를 많이 받고 가서 비즈니스 선교를 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이 선교사로 가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것들을 검증하기 위해서 신학도 하지 않은 평신도를 교역자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이런 문제점들이 많이 노출이 되고 그래서 앞으로는 이제 금년에 잘 정리를 해서 내년부터는 평신도로서 선교사로 가는 경우와 신학을 하고 목회자로서 선교를 가는 것과 잘 구별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구분을 해서 선교사를 파송을 하고 걔중에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이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교역자로 생활을 하면서 선교 지도자로서 가능한가 하는 것을 점검받으면서 파송을 하겠지만 평신도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선교분과 위원회에서 뚜렷한 기준을 만들고 그 다음에 평신도라고 하더라도 선교사 후보생으로서 교회가 먼저 받아주고 그렇게 해서 후보생 그룹이 만들어지고 그 후보생 그룹들을 파송하기 까지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모임을 갖고 일정기간동안 제시된 커리큘럼을 따라서 공부를 하고 열린 교회 선교 마인드를 익히는 훈련을 함께 받게 하고 그 후에 평가를 받게 해서 선교사를 파송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문인 선교사에 대해서는 저는 아주 좋게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평양 과기대 같은 곳에 가서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고 교수로 있는 사람도 있고, 이쪽에 연변 과기대나 이런 곳에 가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전문인 선교를 캄보디아 같은 곳에 나가려고 하더라도 석사학위 정도만 있어도 그 학교에서 너무나 원하고 영어만 가능해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물론 그 학교에서 월급은 한 달에 몇 십 달러 밖에 안 줍니다. 그런 것은 뭐 자기가 선교사로서 자비량으로 하거나 후원자를 모집해서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나가야 되겠지요. 이런 일은 얼마든지 많이 잇기 때문에 앞으로 전문인 선교에 전도가 굉장히 밝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전문인 선교도 평신도 선교사인데 이런 사람들이 나가게 될 때 지금처럼 모두 교역자가 되어서 거기에서 평가를 받고 파송여부를 결정하고 그러는 시스템은 아니다 이런 말씀을 여러분에게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상반기 중에 하반기에 이르기까지 선교파트에서 이런 문제들을 잘 정돈을 할 것이고 내년도부터는 대대적으로 선교사 후보생들을 모집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충분히 그 속에서 함께 생활을 하고 신학적으로도 훈련을 받고 목회적으로도 훈련을 받고 하면서 진짜 파송을 할 만한 선교사들을 거기에서 찾아내고 자격을 부여하고 하는 그런 방식으로 특별히 평신도 선교사 파송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국내 외국인 사역인데 국내 외국인 사역이 열린 교회 안에서 태국, 스리랑카, 중국 팀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목사님의 견해와 비전 그리고 향후 계획은 어떠하신지요? 사실 제 심정은 좀 더 많이 전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지금은 그렇게 많지를 않고 40명 정도 모이는데 가장 좋은 것은 열심히 전도를 해서 태국에 있는 지체들이 약 100명 모였는데 그 중에 아주 탁월한 형제가 있다 그리고 신학에 헌신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 열린 교회에서 신학을 시켜서 그 태국인들이 독자적으로 교회를 꾸려나가는 것이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을 해 주어서 태국 교회라고 하고 태국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같은 나라 사람이 담임목사가 되어서 운영하고 그 대신 열린 교회가 자문을 계속하고 후원을 하고 지도는 해 줄 수 있겠죠, 그래서 거기에서 교회 일꾼들을 세워서 회의를 구성하고 함께 교회를 섬기고 하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을 불러다가 우리가 직접 가르치고 하는 것들은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를 만들면 태국의 좋은 목회자들이 세워지게 되면 우리는 열심히 태국 사람들을 전도를 해서 그 교회에 보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교회가 장소적인 공간이나 여유 같은 것들이 있다면 어느 한 공간을 떼어서 태국 교회라고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어차피 과도기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도기적인 역할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그 사람들을 연구하고 이해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심을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다른 팀은 어떻게 합니까? 우즈베키스탄이고 많이 있는데 사실 언어별로 모든 팀을 하나씩 만든다는 것은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니까 일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일꾼들을 세우고 특별히 그쪽 나라로 평신도로 나아갈 사람들이 이곳에 반쯤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돌본다면 언어훈련이나 이 모든 것들도 훨씬 더 원만하게 이루어지리라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외국인 사역들을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 팀들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들을 제시할 것이고 외국인 사역의 방향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발전해 갈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해외 목회자 사역이 있는데 해외 목회자 훈련을 열린 교회에서 시작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방향과 비전은 무엇인지요? 예배시간에도 한 번 말씀 드렸는데 저는 제법 많은 나라를 가 봤습니다. 물론 안 가본 나라가 훨씬 많지만... 그런데 가서 보면 대부분 해외에 있는 한인 교회들을 목회하고 있는 한인 지도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분들은 외국에 유학을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목회를 하러 간 사람도 있는데 한국에 있으면서 이민들에 대해서 불타는 소명감을 느껴서 한국에서 많은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뿌리치고 거기에 가서 개척을 하고 이런 분들은 생각보다 희귀합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목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때 하나의 대안으로서 이민의 계기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별로 재미가 없어서 간 것인데 목회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유학을 간 사람들의 경우는 오래 목회 경력을 쌓고 가봐야 부목사 생활을 하다가 청년부 정도를 지도를 해 보다가 유학을 간 경우이고 대부분 전도사 때 혹은 강도사 때 그냥 파트 맡아서 교육전도사 하다가 형편이 닿으니까 이제 유학을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다운 목회를 본 적도 별로 없고 해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거기에서 말하자면 굉장히 질이 별로 좋지 못한 교인들이 많은 한인 사회의 문제들을 보면서 목회를 하게 될 때 굉장히 어려움이 많은 것입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저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고사하고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저렇게 목회를 하면 절대 안 된다 라는 방식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공부는 많이 했지만 어떻게 그 공부들을 자기의 목회 사역 속에 녹여 낼 것인가 하는 것들은 잘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존감은 굉장히 강합니다. 쉽게 누구한테 머리를 숙이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잘 안됩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교회에서 생활비를 못 주니까. 그래서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파트타임 담임목사, 여러분 이해가 됩니까? 파트타임 담임목사, 담임목사가 어떻게 파트타임일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생활비를 줄 수 없으니까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할 사람은 많은데 교회가 적으니까 교회가 자꾸 찢어지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보면서 결국은 돈으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제대로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목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들이 도와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영국 목회자 세미나를 첫 번째로 했는데 목회자들이 굉장히 좋아하고 갔습니다. 어느 정도나 접목을 시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계속 하면서 여기에서 실제적으로 목회를 하는 기술들도 신학과 함께 터득시켜줘야 합니다. 전도하는 요령, 새 가족 양육하는 것, 심방하는 것, 설교하는 것, 모두 다, 그리고 새 가족 교육할 수 있는 모든 교재를 제공해 주고 그런 일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들을 잘 준비를 해서 자기의 교회에 직접적으로 실행할 사람들을 불러서 교육을 시켜야지 성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영국 목회자 세미나를 교회에서 받고 가게 되었는데 사실 맨 처음에 영국 목회자 세미나를 영국에서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 일부러 갔었습니다. 화란에 들렀다가 영국에 갔는데 그렇게 썩 좋은 곳이 아니었는데 백 명의 영국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회의실을 빌려서 세미나를 하려고 했더니 100명이 회의실을 사용하는 비용이 숙박비, 식비 빼고 생수하고 커피하고 쿠키 정도 주고 하루에 천만 원을 달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한 사람 앞에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의실만 사용하는데 비용만 5일 동안이면 5천만 원이 나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니까 100명을 교육시키는데 거기에서 1억 5천만 원으로도 어림이 없구요 거의 1억 8천 만 원 정도를 가져야지만 모임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게 되면 나 혼자가면 안 되고 스텝들도 다 따라가야 해서 한 번 세미나 하면 2억 정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거기가 고향이니까 참석했다가 뭐가 좀 급한 일이 있으면 빠져나오고 그러잖습니까? 그래서 한국에서 하자 해서 굉장히 많이 절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훨씬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오면 그 쪽과는 완전히 연결이 딱 끊어지니까 훈련에 집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냐 하면 새 가족 목회를 이렇게 하고 아무리 영국에 가서 이야기를 해도 현장을 보여줘야 교육이 되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그 방법이 좋았다, 우리가 만일 백 명을 모아서 교육을 했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겠지만 백 명이 아니라 이번에 우리가 열 몇 명 했는데 앞으로 약 20명 정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역을 계속 해 나가려고 합니다.
농어촌 목회자 사역을 할 때 맨 처음에 불과 20-30명밖에 안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170명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영적인 도전을 받고 충전을 받으면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굉장히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가서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목사님들이 세 구역으로 나눠서 지역에 모여서 매달 공부하기로 했답니다. 그 분들은 그렇게 해서 잘 이해하고 은혜를 받으면 설교에 반영이 되고 목회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위치에 있으니까 성도들에게 굉장히 커다란 임팩트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5월 달에 화란을 방문하게 되는데 화란에 가기 전에 영국에 가서 목회자들을 모아서 세미나하고 도움을 좀 주고 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열린 교회 같은 교회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굉장히 마음 든든해하고 마음속으로 고향처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에는 한국 사람들이 다 오셨잖아요? 그런데 영국에는 이런 정통적인 영국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교육의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신학교 교수님이 한 분 오셔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더더욱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가면 목회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목회를 배울 수 있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 방치해 놓고 있습니다. 오려면 와라 그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목회자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3백만 원 정도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인플레가 두 배 정도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150만 원 정도 되는 쓰임새입니다. 거기에서 아무리 애들 학비와 병원비를 해결해 준다고 하더라도 거의 하류층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어마어마한 존경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젊은이들이 점점 신학을 지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한 사람이 담임목사를 하려면 복음주의 교단에서는 여덟 교회를 담당을 해야지만 생활비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담임목사인데 여덟 교회를 담당해야지만 담임목사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결국은 선교 적으로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될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실하게 잘 교육을 받고 진짜 은혜를 받아서 영국 사람들에게 열린 교회 정신들을 가지고 목회 할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 생활 비 우리가 대줄 수는 없을까요? 그러면 그 사람은 이 교회 저 교회 남의 교회처럼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교회에 붙어서 열렬하게 목회를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회들을 하나님이 열어주시기를 바라고 연변의 교회 목회자들한테 요청이 있었는데 열렬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CALL 하면 자기네 경비를 들여서 2주 동안 올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역자들한테 미안하고 우리 일꾼들한테 미안하고 하도 일을 벌여 놓아 가지고 너무 바쁜데 미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를 쓰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한국어를 다 하시는 분들이니까 농어촌 세미나하고 살짝 묶어가지고 말하자면 해외 농촌 반을 따로 묶어가지고 그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신앙적이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20명이 교육을 받는 것보다 200여명이 교육을 받으면 자기네들끼리 서로 은혜 받은 이야기 하고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내년 3월에 연변 과기대에서 개강예배 때 강사로 초대를 받았는데 그 전에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 때 가서 이야기를 해서 필요하면 나오라고 한 다음에 협의를 해서 내년에는 연변 목회자들에 대한 세미나를 이야기 하고 그 분들이 굉장히 좋은 목회자들이 많은데 그 분들이 자기네들이 점점 잘 살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목회와 이런 것에 있어서는 한국에 비해서 굉장히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강사들에게 굉장히 열렬히 뭔가를 얻기를 원하는데 오면 너무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돈 많이 가지고 와서 세미나 오라고 해서 양복을 한 벌씩 다 맞춰주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뭐냐고 하니까 너무 고생을 하셔서 위로를 한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막 화를 내면서 무슨 위로는 위로냐고 목회가 다 그런 거지, 우리가 거지도 아닌데 먹을 것 해 서 먹이고 양복 해주고 그런 것이 뭐 필요가 있냐는 것이냐고 우리는 영적인 것을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실제로 그 내용을 보면 한국 교회들이 세속화 되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은 거기에는 사람들 속에 옛날에 고난 받으면서 신앙생활 하던 원색적인 복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아주 못 마땅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외국을 돕는 것도 성도들이 후원해 준 돈을 가지고 착한 마음으로 했을 것 아닙니까? 목사님 옷 한 벌 사주고 사모님 화장품 사주고 그러면서 위로를 드린다고 하는데 자기네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 안에서 살고 핍박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데 자기들은 코끼리 밥솥 냉장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 그런 것을 들려줘서 가슴이 뜨겁게 그 중의 목사님 한 분이 자기 동료 한 사람이 열린 교회 한 번 들어와 보라고 해서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어느 주일에 예배를 보러 왔습니다. 어느 주간의 예배에 참석했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자기가 회심한 이후로 예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가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린 것이 회심한 이후로 처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너무 사모합니다. 장문의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자기네들이 15명밖에 못 모이는데 꼭 한 번 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며칠 후에 바빠서 안 간다고 했는데 간청하는 편지를 두 번을 받고 나니까 간다고 하라고 비서한테 이야기 했습니다. 금년에는 안 된다고 내년에 가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1년이 금방 지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코가 끼어서 갔는데 정말 이 세상에는 아직도 주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가르쳐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영광입니까? 우리 선교위원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지 모르지만 그 저는 미국에 있는 목회자들도 한 번 불러서 교육을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번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난 후에 눈물 없이는 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30명만 모이면 목회자 생활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에 지금은 100명이 모여도 생활이 안 된답니다. 그래서 50명 60명 다니는 교회들이 렌트비를 못 내서 전부 문을 닫고 사모님은 파출부로 나가고 목사님은 택시 기사로 당분간 취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일이면 갈 곳이 없으니까 그 사람들끼리 모여서 눈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호주 교회 가 본 교회들을 보면 전부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몇몇 교회들이 그런 목회자들 모아서 좋은 호텔 빌려서 아주 편안하게 돈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약 500명 정도 목회자 불러다가 놓고 2억 원씩 쓴다고 합니다. 좋은 호텔에서 식사 대접하고 쉬게 해 줍니다.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지 돌아가면 뭐가 바뀌는 것이 있습니까? 돌아 가보면 똑 같은데? 그것이 생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열심히 교회 붙어있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성지순례를 갔는데 다들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교회에 빨리 가고 싶다고 하는데 옆에 있는 목사님이 나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우리끼리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교회가 기쁨이 되고 거기에서 목회를 하면서 영혼들이 변하는 보람을 느낄 때 목회자들은 교회가 그립고 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목사님 말씀이 똑 같습니다. 무슨 위로는 얼어 죽을 위로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깊이 동의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는 바로 거기에 있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영혼들을 변화시키고 은혜 주시는 거기에 위로가 있는데 위로는 무슨 위로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위로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하는데 그것이 무슨 전문적으로 위로를 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해외목회자들에 대한 것들을 강화해 나가고 싶습니다. 너무 가엾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많이 훈련 되었을텐데 보이지 않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보이는 보편교회에 대한 사랑입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교파를 초월한다고 해서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것 아닙니다. 저는 알미니안 주의자들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미니안 신학교 가서도 설교를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보편교회의 하위 단위이니까 가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돕고, 사랑하고 그러면서 우리 입장은 분명히 가지고 있고 이러면서 사랑으로 따뜻하게 죽 돌보면서 그렇게 베푸는 것입니다.
저는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 벅찹니다. 그래서 오죽 답답했으면 이번에 로케이션을 떠나게 하라 홍보팀들을 그렇게 해서 얼마나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하셨는지를 성도들한테 가르쳐줘라, 그러면 더 많이 가고 더 많이 헌신하지 않겠느냐? 거의 죽어가던 교회들이 살아나는 것 보면 목회자들이 눈물 흘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교회가 변화가 될 때 20-30년씩 나는 희망이 없다 하던 교회가, 변화가 없던 교회가 뜨거워져서 교인들을 사랑하고 목회를 하는데 눈물 없이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들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이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교회가 정말 변화 되어서 영혼들이 뜨거워진다더라 하면 나는 우리 1교구가 30명 50명씩 늘어난다더라 하는 것보다 더 기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잘 안 되어도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있으니까 그런데 거기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그렇게 변화되어가지고 열렬해 지는 것을 보면 그런 교회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픕니다. 솔직히 말해서 뭐가 아깝겠습니까? 그래서 몇 년 전에 장로님들하고 같이 아웃리치를 떠났는데 손바닥만 한 아주 예쁘고 잘 나온 빔 프로젝트를 가지고 갔는데 목회자가 그것을 매우 가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이 ‘아 장로님, 우리교회도 저런 것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네요.’ 하니까 장로님이 ‘목사님, 목사님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 빔 프로젝트가 아니라 다른 것이 필요 합니다’ ‘뭐가 필요해요?’ ‘전도가 필요 합니다’ 교인 네 명인데 이것을 틀어놓고 뭘 하겠어요? 그렇게 열렬하게 목회를 하면 변화가 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이 주셨잖아요? 그래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 흘러가면서 베푸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헌신 자들 만 많이 나오면 영국 위원회 하나, 호주 위원회 하나, 일본 위원회 하나 만들어 가지고 솔직히 전부 다 동원되니까 힘든 것이지 영국 위원회 약 30명 만들어가지고 영국 목회자 30명만 열심히 돌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1년 열심히 돌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호주 목회자 위원회 또 20명 정도 열심히 1년 돌리는 것입니다. 돈도 내고 교회도 후원도 하고 비행기 타고 가서 협의도 하고 불러내서 여기저기에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마지막으로 해외 목회자들과 관련해서 미래의 우리의 비전이 정말 성학들을 길러낼 수 있는 그런 수준 높은 신학교육을 시키는 것이 목표인데 경비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데 내년부터는 해외 유학생 선발고시를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진짜 튼실한 목회자이면서 신학교 선생이 될 만한 제목이 있는 사람들을 선발을 해서 우선 우리 교회에 레지던트처럼 출석을 하게하고 그 학생들을 어차피 영어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교회에서 기본적인 생활을 하게 해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사역을 배우고 죽 신앙을 배우고 선교지의 선교사역들도 배우고 이렇게 여유를 가지면서 어학공부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학원 크게 하고 있는 집사님이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선발만 되면 열린 교회에 와서 1년 안에 개인교수를 하든지 뭘 하든지 간에 빡세게 돌려서 최고의 어학점수를 받게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매달 시험 봐가지고 결과를 학원에서 통보해주면 그것을 가지고 평가를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실력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놓고, 내 욕심 같아서는 그냥 full로 후원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비용이 많이 들 것인데 1년에 생활비 포함해서 약 4-5천만 원 정도 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온전히 공부에 몰입을 하게끔 그렇게 해가지고 대신 돌아오면 열린 교회가 세운 신학교에서 5년 동안 봉사한다. 아니면 열린 교회 신학교가 갑자기 안 생기면 돌아와서 무안신학교 사역과 협조를 하면서 열린 교회 연구사역을 위해서 5년간 dedication 하겠다 서약을 하면서 1년에 한 번 모두 모이라고 해서 설악산 같은 데서 수련회도 하고, 아니면 미국에 모두 모이라고 해서 수련회도 하고 해서 나름대로 은혜를 받게 하고 정신을 넣어주고 하면서 앞에 정착을 하고 후배들이 가면 끌어주고 하면서 왜냐하면 갈 수 있는 학교들이 우리와 신학사상이 맞아야 하니까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 15년 정도 하면 아마 관양동 학파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신학적인 분명한 칼라를 만들고 이 사람들이 목회와 연계를 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그룹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신학교 선생을 하는 사람도 잇고, 목회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열린 교회 와서 부목사 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게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신학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하면 아주 놀랍게 upgrade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국은 지금 공부를 하고 돌아와도 너무 경쟁이 심해서 들어갈 학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면 무안신학교에 전임교수로 쓰면 어때요? 아주 좋죠. 중요한 과목들 조직신학이나 역사신학이나 몇몇 과목들을 전임으로 채용을 해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역을 하고 그 다음에 교수로 못 들어가면 괜찮은 신학교에 가서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고 또 교회 사역도 일부 돕고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쌓아가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좋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우리들이 방문을 해서 신학교 돕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9월에 트리니티 신학교에 공식적으로 방문을 하기로 학교 측과 arrange를 했는데 그렇게 가서 자꾸 도와주기 시작하는 것은 저 나름대로 계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가서 휙 주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명한 학생한테 줘라‘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명한 학생이 누구냐? 언젠가 파송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 학교를 실제적으로 도우면서 우리가 여기에서 파송한 학생들의 학비를 후원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후원을 1년에 5천만 원씩 몇 학교 하고 있는데 그러지 말고 아예 3만 불정도 한다 해서 한꺼번에 줘버리면 그 학생이 full support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뭔가 씨를 뿌리는 작업이 없이 열매를 거두려고 하면 그것은 사행심입니다.
일반적인 교회가 공부 하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공부를 한 사람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는데 저는 공부하는 여러분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우리 교인들이 공부하는 것 좋아한다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 집 사람은 매일 말립니다. 하라는 애들은 공부를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아빠만 계속 공부한다고... 그렇게 하면서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정말 지금 이야기 한 것만 우리들이 끌고 나가도 어마어마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슴이 벅찹니다. 이번에 안수집사님들을 뽑았는데 중요한 직분을 맡겨주어 하나님 앞에 힘차게 헌신하면서 나아갈 때 정말 꿈꾸는 일과 같은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 될 일인데 여러분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일들을 알릴 때 우리가 헌신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이기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입니다.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나 외국에 있는 목회자 세미나 한 번 하면 제가 거의 죽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오늘도 3시 30분에 깨어가지고 이것이 뭡니까?
혀가 꼬이고 단내가 납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드러누우면 수요일까지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시차가 11시간씩 바뀌니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학생들이 그렇게 은혜를 받고 또 신기하게도 그렇게 기다리고 좋아해 줍니다. 그러니까 고맙잖습니까? 그것이 책의 힘이기는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 솔직히 말해서 책 한권에 밥 한 그릇 그것에 혹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너무 좋아합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은데 1999년도에 동부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세미나에 갔는데 설교가 끝났는데 학생들이 복도에 와서 나를 붙들고 펑펑 우는 것입니다. 자기네는 공부는 하는데 너무너무 곤고하다는 것입니다. 걔네들은 그렇게 한 번 일깨워주면 확 깨닫습니다.
이번에도 여러분들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해서 저에게 들었습니다. 공부하던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depression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공부해서 이것이 목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고 과연 이것을 배우면 한국교회 가서 써먹을 데가 있을까? 그리고 굉장히 큰 침체에 빠져있는데 약 서너 명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서재를 죽 보여주면서 ‘내가 이 개혁파 정통주의를 만나서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을 배운 것이 우리 열린 교회 목회에 어떻게 녹아들고 설교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내가 자료를 다 보여주면서 한 세 시간을 함께 시간을 하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 제 마음이 막 뜨거워졌어요, 빨리 가야겠어요, 가서 공부해야 겠어요’ 했습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도 교수님들이 몇 분이 오셔서 우리 도서관을 너무 좋다고 탐내는 것입니다. 2만권밖에 안 되는데 없는 것이 없을 수가 없는데 시지학적으로 구분을 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다고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같이 공부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자료에 대한 그리움과 이런 것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교구들의 전집 여덟 권이 구해졌는데 그 서점에서 엄청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collection은 다른 나라에 가서는 만져도 못 본다는 것입니다. 서른 몇 권의 고서가 들어오는데 만 4천 유로인가 그렇게 해서 조금 깎았는데 보석 같은 그런 자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번에도 삼위일체 쓸 때 성도들이 모금활동 해 가지고 신학 전문 도서관 보태준 것으로 고서들을 사가지고 왔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랬더니 이번에 누가 목사님 책은 이렇게 보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항온 항 습기를 제가 헌신하겠습니다. 그것이 있는 도서관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집어넣으면 책에 맞게끔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비싼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니까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헌신 자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열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끔 신학을 할 수 있는 장비들, 말하자면 이것들이 무기잖아요? 이것들이 10만권쯤 갖춰서 시스템들이 있어서 사서나 이런 사람들이 자유자제로 활용할 수 잇게끔 서빙을 해 준다면 여기에 와서 공부하는 그 자체가 학생들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고 유익이 되는 일이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저로서는 역량이 안 되지만 힘닿는 대로 어떻게 하든지 이제는 내 남은 목회 사역 기간 중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사역 중에 한 번 외국어로 번역해서 영어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주고 싶다는 절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영어를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교수 생활하면서 여기에 있었는데 그 분이 나중에 제 설교를 많이 듣고 나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내용을 완벽하게 영어로 옮길 수만 있다면 영국에서도 굉장히 커다란 임팩트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작업은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미래에 신학교가 세워 질 지 모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신학교 질을 결정하는 것은 건물이나 의자가 아니라 선생하고 동료, 학생들이 어떤 수준의 학생들이 들어왔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학생들 등록금 걷어가지고 교회가 챙기려고 하는 것 아니니까 우리는 실력 있는 사람이 다섯 명 박에 없으면 다섯 명 뽑아서 좋은 교수들하고 같이 강의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외국의 학자들과 좋은 교분을 가지면서 미래 신학교에 함께 동역할 수 있는 환경들을 조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역을 해 나가는 가운데 선교적인 어떤 성과를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금년이나 내년쯤에는 우리 열린 교회에서 나오는 많은 자료들을 여태까지는 거꾸로 했었는데 이제는 영어로 translation 해서 홈피도 강화하고 그 다음에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에 기고도 하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지난번에 닥터 이밍크 박사가 왔었잖아요? 이번에 5월 달에 화란에 가서 만납니다. 그 때 왔을 때 제가 책을 두 권을 줬습니다. ‘한국교회 성장과 미래의 역할’과 ‘존 오웬’하고 그런데 나중에 편지가 왔습니다. 비행기 타고 가면서 죽 읽었는데 굉장히 교훈적이고 아주 clear한 논리여서 자기가 많은 통찰을 얻었다고 합니다. 몇 사람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작년에 칼빈 신학교에 갔을 때는 거기 학생처장이 그것을 읽고 굉장히 은혜를 받아서 그 강당을 천 불씩 받고 빌려주는 것인데 자기가 은혜를 받고 마음이 움직여서 공짜로 빌려줬습니다.
한국 교회가 상황이 어떤가 하는 것을 자기도 일본 선교사인데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쪽에 활동들을 강화해서 그런 것들을 나누고 싶고 ‘자네 그 길을 정말 가려나’이런 작품들을 깔끔하게 번역을 해서 인도네시아어나 아니면 태국어로 번역을 해서 제 3국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번역을 하게하고 미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정식으로 소개를 해서 출판을 하게 고 중국은 중국대로 번역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명의 목회자들을 깨울 수 있는 역할을 하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들하고 우리 농어촌 목회자들에게서 일어나는 일들과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마음을 품읍시다. 뭐냐면 항상 조금씩조금씩 확대하면서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 대신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산악선교 안 하냐 뭐 안하냐 하지 말고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하고 있는 이것들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내년도에는 북한이 지금 형편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독적으로 사역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지금 중국에서 북한 사역을 잘하고 있는 단체들이 몇 있는데 그런 단체들하고 연계를 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들이 도울 수 있는 루트들을 찾아서 돕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고 하는 그런 절실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방면으로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위원장님 되시는 집사님들과 이대현 장로님이 여기를 맡고 계시지만 굉장히 열렬하게 헌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이렇게 제가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을 상세하게 색칠을 하면서 선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생을 살아도 주님 섬기는 날은 많지가 않습니다. 자기 밥 벌어 먹고 살려고 했지 뼈저리게 주님 섬기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교회에서 선교적인 프로젝트와 비전을 가지고 우리들을 구체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섬기면서 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헌신하면서 위원장이 되어서 하나 맡아서 열심히 3년이고 5년을 섬겨서 목회자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 받고 해서 교회가 바뀌는데 그것은 사실 목회자도 할 수 없는 일을 평신도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써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물질의 복도 많이 주셔서 여러분들이 당당하게 섬길 수 있고 사실 영국에도 열 몇 명 했는데 올 사람이 훨씬 더 많았거든요. 그런데 돈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비행기 표 값이라도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 열 명이든 30명이든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우리들이 사역을 해 나가면서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대로 사역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