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바라기 선교캠프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눅 23:26-27)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기독교적인 문화에 익숙해져서 기독교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도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보다 더 착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것도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뜻도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러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예스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알고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것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정말 주님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믿고 회개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이라 하는 것은 죄 지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방법 이었습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사형 방법 가운데 가장 잔인한 방법 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형벌은 로마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로마 사람들이 변방의 야만족 이었을 때 만들어 놓은 사형 집행의 방법 이었습니다. 이 십자가 형벌의 잔혹성은 이제 죄 지은 사람을 나무에 매달아서 죽이는 것입니다. 한 번에 목숨을 끊지 않고 양손과 발에 못을 박아서 그래서 탄탄하게 나무에 매달아 놓으면은 그 70킬로그램 내지 80킬로그램 되는 인간의 몸이 못 3개에 의지해서 아래로 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자꾸 찢어지면서 거기서 피가나와 그러면 온 몸에서 피가 흐르게 되면 그 때에 그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두통이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목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는 최대한의 고통을 겪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십자가의 형벌의 특징 이었어요.
예수님은 잘못된 것이 없으심 에도 불구하고 악한사람들의 고소에 빠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매달리기 위해서 끌려가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기 전 에는 당시 두 가지의 규례를 따라야 했는데 첫째는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자기 스스로 짊어지고 사형장 까지 가는 일 이었습니다. 약 15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죄수들은 그것을 지고 자기가 사형당할 곳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 이니 라고 하신 말씀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릴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형벌이 있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 채찍에 맞는 것 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채찍을 연구한 어떤 사람들에 의하면 그 채찍은 아홉 가닥으로 되어 있고 그 가닥 끝에 뼈나 금속으로 만든 금속우물들이 달려 있어서 벗은 몸에 죄수를 후려치면 살점을 물고 뜯어지는 그런 무서운 채찍 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렇게 사형 형벌을 받으신 다음에 라이도리온 이라하고는 왕궁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 가셨고 거기에서 많은 모욕과 창피를 당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이 채찍에 맞으심으로써 예수님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셨고 이윽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 서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사형을 행한 데는 끔찍한 형벌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재판이 필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읽은 이 본문 앞에는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와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형에 해당된다는 언도를 받으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시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재판은 죄 있는 사람을 형벌하기 위해서 내리는 판결인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 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받으셨고 거짓증인들의 주장에 의해서 예수님은 사형 언도를 받으셨습니다. 더욱이 재판장인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해달라고 소리쳤으니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두려워하는 유대 종교주의 자들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로 판결해 주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그러한 위협적인 기세 속에서 재판장인 빌라도도 예수님은 무죄한분이라고 확신 했지만 그 확신을 따라서 판결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형 언도한 재판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평소에 가르치셨던 가르침 중에 하나는 의롭고 올바르게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모든 재판의 과정이 불법하고 악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을 매긴 이 재판을 예수님께서 순종하며 따라가시는 것은 평소에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온 몸이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그 십자가를 지고 쓰러질 듯 골고다언덕을 향해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들은 모두 악을 행하여 우리에게 이 모든 사람들은 모두 악을 행하여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로 작정 하였지만은 그러나 더 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게 하시고 우리의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고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구원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 그리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 예수님은 바로 이 세상에 모든 예수 믿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계획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기꺼이 당신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이 천년 전의 사건이 오늘 나의 죄인을 위한 것이요 나를 이 모든 죄에서 건져 내 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나에게 주시기 위한 구원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구원 받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시작 됐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것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그리고 제 멋대로 살 아 갑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에 복음을 듣습니다. 내가 이 모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는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아주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었고 예수님은 흠 없으신 그분이 나 같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깨답게 됩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이복음의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로 믿어지기 시작 합니다. 그 땡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비로써 이 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예수그리스도가 사대성인 중 한 분이 아니라 바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전에는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전부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스도는 비록 이 천년 전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나의 믿음의 눈ㅇ로 볼 때 그 분이 나의 죄로 인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고 나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속에 믿어지게 되는데 그때 우리 속에 확실한 내가 죄인인 것과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과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지극히 위대하고 탁월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샘물이 터지듯이 확 터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터지는 것이 뭐냐 면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우리의 마음속에서 확 솟아나...예전에도 나는 사랑하던 사람 이 었지 만은 나 밖에 사랑 할 줄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 이었어요...그러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만나요... 나 같이 더러운 죄인을 위해 흠 없고 순전하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흘려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에게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솟아나요. 그래서 이제 내 마음속에서는 이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하나도(?)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확 솟아나요.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주님을 사랑 하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찼을 때 기도가 폭포수처럼 올라와요 주님을 참 사랑할 때 우리는 기도를 잘 하게 되요. 그러면 기도 안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네...맞아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게 속성 이예요. 목사님이 20년 전에 한 20년도 넘었지... 25,,23년 전에 전도사 시절에 여러분처럼 근무 했을 때 토요일 날 나 혼자 기도하러 가면은 여러분 같은 고등학생들이 한 명 둘씩 모여서 그러면은 이제 예수 믿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기도하는거야... 한 참 기도하다 보 면은 해가 떠~여러분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공부를 얼마나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예요..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이속에서 사랑의 샘이 기도의 샘이 확 솟아 나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이 속에서 확 솟아나요.. 그러면서도 자기의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공부를 못하노니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느니 부모님과 갈등을 하든가 돈이 없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렇게 나를 사랑 하셨는데도 나는 매일 떠나서 길 잃어버린 양처럼 방황하며 사는 것이 나의 인생에 가장 큰 비극 이구나 나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구나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는 내가 예전에는 어둠속에서 방황하고 죄를 짓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방황하면서 인생을 살았지만 사실은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찬양: 어둡고 캄캄한 그 곳 가시밭 길에 길 잃은 양 한 마리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오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때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아마 이 시간은 새벽6시에서 한 8시 사이쯤 됐을거예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갔는데... 이때가 유대인의 최대의 명절 유월절 이었기 때문이죠.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빨리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을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은 최대의 관심 이었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기도 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기 때문 이었어요. 그러나 아상하게 예수님은 그렇게 많이 행하셨던 놀라운 기적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시며 그렇게 유창하게 들려주시던 설교도 그치신채 묵묵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지고 거기서 죽으셔야 했기 때문 이예요..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오늘 성경은 그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가르쳤습니다.
첫 번째 사람들은 백성들 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예수님의 뒤를 따라왔는지 오늘 성경에는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눅:23장) 34절을 한 번 보세요.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백성은 서서 무엇을 했다고 했죠?..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구경을 하고..
47절.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 이었도다 하고 이를 무엇 하러 모인 무리들 이었다고요?.. 그러니까 이 백성들의 정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서 왔다 라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이 바로 자기들을 위해서 죽으시는 것임을..그게 어떻게 구경 거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따라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벳새다 광야에서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백성들을 먹이시던 그 기적의 떡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팔복산에서 울려 퍼지는 산상수훈의 설교를 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람들은 막상 예수님이 자기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을 보자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어떻게 되나 보기위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시게 되었죠? 그 분이 무슨 죄를 짓으셨고 어떤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불행해 지게 하셨나요? 예수님은 가난하고 외로운자들의 친구였고, 병든자들의 의사였고, 무지한 자들의 선생님 이었고, 갈곳없이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족이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기 까지 살아오신 예수님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예수님이 이제껏 살아오신 인생의 길은 액체의 생애 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 들을 섬기시기 위해 발을 씻기시기 까지 봉사하기 위해 땀을 흘린 생애 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항상 기도 하시던 눈물의 생애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더러운 인간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대신 당신의 피를 모두 쏟으신 보혈의 생애 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 이라면...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누군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정말 나 같은 죄인을 위해 그 거룩 하시고 순전 하시고 아름다우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위해 골고다언덕으로 올라 가신 것이 바로 자기들의 죄 때문에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경 하면서 따라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이 사람들의 모습이 여러분들의 모습은 아닙니까?..성경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셔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했다고 눈물로 가르치지만, 여러분들은 마음속에 어떠한 회개의 눈물도 흘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까?..
1905에서 6년 사이 인도 카하시라는 지방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어요. 존슨펀(?)이라는 선교사가 그 곳을 방문했고 동리에 가보니까 어른들은 하나도 없고 애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울고 있었어요 그래서 선교사가 아이들에게 물어봤어요..
얘들아 너희 왜 울고 있니? 너희 부모님들은 다 어디 가셨니? 아이들이 말 했어요.. 선교사님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예배드리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울고 있니? 엄아 아빠가 없어서 보고 싶어서 우는 거니?.. 그러자 그 중에 한 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대답했어요.. 아저씨 그런 것이 아니예요.. 엄마 아빠는 예배드리러 가고 우리들은 여기 봉서 기도회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기도 하면서 생각 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많이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조금 밖에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답 했어요..
찬양: 머리에 가시 멸류관 어이해 쓰시셨는가?.. 책찍에 피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신앙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가 눈물 흘리시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울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고..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죽으셨을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그것이 신앙 이예요..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던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에 대해서 오늘 성경에는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자의 무리들 이라고 했습니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무엇때문 이었을까요? 왜 다른 사람들이 다 웃고 떠들고 농담하고 까불며 예수님 십자가를 구경하며 따라갈 수 있는 그 때에 왜 이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울지 않고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백성들에게 없는 한가지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예요.. 그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어요.. 멸시와 욕을 다 당하고 일 평생 우리를 위해서 종처럼 섬기셨던 그 예수님..마지막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는 그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이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요.. 자신들을 많이 섬기고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의미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십자가 끝나고 나면 위대한 영광스런 부활이 있을것이라고 하는 사실까지는 아직 몰랐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자기들 때문에 죽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가 없었어요.. 예수님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악한 로마병정들이 허락해 줄 일이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를 지고 끌려 나오실때에 여인들이 울었고 그 울음소리는 골고다언덕에 가까워질수록 피 흘린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아무리 울고 이 여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악한 로마 병정들을 예수님을 끌고가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해주고 병든자를 고치던 예수님의 그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갈릴리로 생활이 어려운 집을 다니시면서도 불쌍한 죄인들을 찾으시던 그 발에 기다란 못을 박았습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2000년전에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찬양: 망치소리 내 맘을 울리면서 들렸네.. 그 피로 내 죄 씻었네..
여러분들은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치워졌고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돌아 갔습니다 만은 지금도 교회는 보이지 않는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 입니까?.. 그 십자가를 보고 웃고 떠들고 구경하는 이 사람들 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 입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여러분들이 이 수료 안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 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 이십니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