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S 여성선교사대회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잠20:3)
녹취자 : 허 혜숙
제가 최근에 ‘개념 없음’이라는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까 성도들이 은혜는 많이 받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목회자로서 깊이 깨닫는 것이 뭐냐 하면 은혜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인간의 기본적이 성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위해서 살고 싶고 그런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관성 때문에 특정한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변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미국에 집회를 갔더니 어느 지체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주 blight해 보이는 자매였는데 자기에게 신앙적으로 도움을 많이 준 지체가 있는데 그 사람을 15년 동안을 자기가 알고 지내는데 정말 영적으로 뛰어나고 자기가 처음 신앙을 가질 때에 자기에게 그렇게 많은 영적인 도움을 주어서 말은 안 하지만 그 사람을 멘토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참 놀라운 것이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매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삶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슨 특별한 뜻이 계시겠지요?’ 그래서 제가 답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특별한 뜻이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 절대로 물질의 여유를 안 주시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게 하시는 그런 섭리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깊이와는 상관이 없이 삶의 방식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높은 가치가 있고 낮은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이 높은 가치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명에 불타는 것, 아주 높은 가치이지요. 제가 아는 선교사 한 분은 부부가 은퇴를 했습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수없이 옮겨 다니니까 아이들을 온전히 교육을 시키기가 어렵잖습니까? 그런데도 아이들이 아주 아름답게 잘 자랐습니다. 그래서 후배 선교사가 물었답니다. ‘사모님, 자녀들을 어떻게 기르셨으면 그렇게 험한 선교사 생활 하면서 아이들이 저렇게 올바르고 아름답게 성장했습니까?’ 그랬더니 이 사모님 하는 이야기가 ‘나는 항상 아이들한테 미안해, 난 해 준 것이 없어,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한테 한 가지는 가르쳐줬어, 이 세상에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 가르쳐줬을 뿐이야.’ 이런 것이 높은 가치입니다. 여러분, 저는 선교사를 해 보지 않았지만 도대체 선교사들 중에는 부러운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 중에서 부러워하는 것은 A, B, C가 있답니다. A는 Attendance 참석하는 교인들의 숫자, B는 building, C는 cash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한테 거짓말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그것을 부러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첫 번째를 생각해 봅시다. 교인이 많은 것이 부럽습니까? 목회자가 죽을 고생을 합니다. 옥 목사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한 주에 여섯 번씩 설교해서 돌아가셨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건강에 말이 한 주에 여섯 번씩이지, 또 빌딩이라고 하는데 빌딩 말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빌딩 지을 때 100억 모아놓고 80억짜리 공사하는 교회 봤습니까? 절을 지을 때는 돈을 모아놓고 짓는데 교회 지을 때는 계좌에 믿음을 넣어놓고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는 결제가 안 됩니다. 건축업자는 믿음을 받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현금을 받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해서 죽도록 고생하고 만들어 놓으면 여기저기 고치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 번째는 cash라고 하는데 돈이 많아 보십시오. 한국에서 요즘 교회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돈입니다. 20억이 없어졌느니 30억이 없어졌느니 난리입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중심적인 가치, 높은 수준의 가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명에 순종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높은 가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많이 강조를 합니다. ‘십자가 신앙으로 돌아갑시다, 뜨겁게 기도합니다, 소명을 받읍시다, 그리고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헌신 합시다, 순결한 삶을 삽시다,’ 좋죠.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지만 그런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삶의 태도가 너저분한 사람들은 은혜를 받기는 받는데 그 은혜가 그런 너저분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보존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것은 이것입니다. 덕스러운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보호하는 그릇이다. 자, 예를 들어봅시다. 목회자이든지 선교사이든지 낭비벽이 아주 심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핸드폰도 새로 나오면 금방 바꾸고 뭐든 새로 나오면 사지 않고는 못 베기는 사람들, 그렇게 낭비벽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낭비벽이 심하니까 돈을 꾸고 돈을 갚고 이러면서 정신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쉽게 잃어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는 받습니다. 그런데 높은 자리에서 좋은 자리 차지하면 좋다고 그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시기하고, 분쟁이 일어나고, 싸움을 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가진 것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니까 사람들을 모함하고 시기하고 하는 분쟁들이 일어납니다. 이러면서 삶의 태도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혜를 간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쉽게 화를 내고 혈기를 부리는 사람들, 보십시오, 남편이 예수를 안 믿어서 그냥 아부하다시피 교회 좀 나가달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하고 반찬을 새로 해 준다, 뭐 퇴근을 하고 오면 발을 시켜준다 온 난리를 해서 3개월 동안 정성껏 정리를 했는데 하루 성질을 부려서 다 쏟아부어버립니다. 그러면 그것 좀 회복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며칠 지나면 하나님은 나는 너를 용서한다, 새 힘을 내거라 하지만 남편은 3일 만에 안 풀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덕스러운 삶의 태도가 영적 생활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이 마치 우리의 영혼과 육체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의하면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다’ 영광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장점을 가지고 있거나 인정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싸고 양을 많이 주는 음식점에 사람이 붐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조금 먹고 살만하니까 중산층만 되면 싸고 양을 많이 주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음식점을 찾습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보람이라는 것은 먹고, 자고, 노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가서도 나의 품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 것입니다. 제가 중국에 선교일로 출장을 갔는데 제가 맨 앞에 탔습니다. 내리자마자 제가 1번으로 내렸습니다. 공항에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서 손에 손에 꽃다발을 들고 나와 있는 것입니다. 뭐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약 3백명 이상 젊은이들이 모여서 사람들이 눈길이 나한테 오는 것 같지는 않아요. 쳐다보니까 내 뒤에 나는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이 내 뒤에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그런 연예인이라면 그런 눈길을 받겠지요. 또 우리나라 어떤 교수는 한 번 강의하는데 5백만 원 이라고 합니다. 그 대신 한 번 강의를 가면 두 시간 동안 하는데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만족을 하는 강의를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 강사들은 그룹 회장이 개인 비행기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부산으로 모셔오너라, 제주도로 모셔오너라 이렇게. 내가 만약에 그런 탁월한 학자라면 내가 그런 영광을 받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나하고 거의 비슷한 처지일 것입니다. 뭐 대단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런 것은 오히려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사람으로서의 품격,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격과 이 인간으로서의 격조를 잃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이 시대에 너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보면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교회가 이 세상이 작심하고 교회를 욕하잖아요? 물론 옛날보다 교회가 많이 타락했다 그것도 저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많다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보면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두가 다 그런 식으로 살아갑니다. 옛날에는 버스를 타면 젊은 사람들은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네가, 아줌마가 타면 학생들이 서로 일어나서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요즘은 어림도 없고 심지어는 지하실에서 할머니가 ‘얘, 너 왜 그렇게 버릇이 없냐?’한마디 했더니 할머니를 머리끄덩이를 잡아 다니고 때렸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앞에서 남녀가 끌어안고 막 뽀뽀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야, 남사스럽다 창피하지도 않냐?’ 했더니 옛날 같으면 얼굴이 벌개져서 피할텐데 눈을 똑바로 뜨고 ‘이 자식아 우리가 뽀뽀하는데 니가 보태준 것 있어?’하면서 개 패듯 패더랍니다. 기독교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전부 다 개념이 없는 세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항상 대가족 사회였기 때문에 층층시하였고 자녀들도 있어서 ‘어허, 형이 그러면 안 되지.’ 하면 그것을 계속 들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아, 나는 형이니까 동생들한테 양보해야지’, ‘동생이 그러면 돼?’ ‘아 나는 동생이구나, 내가 형한테 함부로 그러면 안 되는구나.’ ‘니가 에미가 되어가지고 그러면 되겠느냐?’ ‘아, 내 이름이 어머니이구나, 내 아래는 자식들이 있고 남편이 있구나’ ‘여자가 그게 뭐냐?’ ‘아, 그렇지 나는 아내인 사람이지’ ‘가장이 되어가지고 뭐하는 거냐?’ ‘아 그렇구나, 나는 가장이구나’ 요즘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개념이 없는 사람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지하철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할머니와 싸움이 붙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하철 역무원이 달려와서 ‘손님 왜 그러십니까? 많은 분들이 이용하는 곳인데 그러지 마십시오.’ ‘야, 내가 여기에서 싸우고 있으니까 내가 우습게 보이지? 야, 내가 학부를 하버드를 나오고 대학원을 예일대 나온 사람이야, 알기나 알아?’좀 조용해지려나 했는데 끝까지 말을 안 들었습니다. 나중에 방송이 나오더랍니다. ‘차 안에 계신 여러분, 이 지하철은 뉴욕 시민이 타는 공공시설입니다. 상스러운 욕이나 큰 소리로 떠드시면 안 됩니다. 제발 공중도덕을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하버드와 예일대 나온 사람들에게 신신당부 드립니다.’그런 세대입니다.
엊그제는 신문을 봤더니 미국은 애들을 가지고 우리나라보다 더 벌벌 떠는 것 아시죠? 필라델피아에 있는 레스토랑이 9년 동안 패밀리 레스토랑을 하던 주인이 하도 열을 받아서 식당 앞에다 간판을 붙였습니다. ‘여섯 살 이상 된 사람만 이 식당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저 집은 망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곳인데 여섯 살 이상만 들어오게 하다니’ 그랬는데 예상을 깨고 대박이 터졌습니다. 매출이 20%가 늘어나고 사람이 그 레스토랑에 오겠다고 예약이 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기자가 물어봤더니 9년 동안 식당을 했는데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네 살, 다섯 살 난 애들이 와서 엄마한테 땡깡 부리고 음식 집어 던지고, 접시를 집어던지고, 포크를 집어던지고 생난리를 쳐도 ‘어허, 이놈의 자식’ 이런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 하는 이야기가 은퇴한 부부들, 또 아이가 없는 사람들, 아이가 다 큰 가정, 와서 좀 조용히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머리가 터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일주일 사이에 격려 전화가 편지까지 천통이 넘게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무 멀어서 그러는데 당신 식당에 꼭 한 번 가겠다고 너무 잘했다고 그러면서 그 사람 하는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자기 집안에서는 자기 새끼가 중심인지 모르지만 그 아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모두 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념 없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수 없이 많은데 그 중에 오늘은 다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오늘 성경이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이다’ 여러분, 함께 생활을 하다가 서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한 번 머리끄댕이 잡고 대판거리고 싸운 다음에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봅니까? 사람으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을 박탈당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하는 사람이 목사와 선교사입니다. 목사들끼리 모여가지고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알다시피 성지순례가 힘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욕심대로 보려고 하니까 뽕을 빼려고 하는데 목사들이 성지순례를 가려고 시간표를 짜가지고 왔는데 현지에 가지고 가니까 이것은 20대 신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꼭두새벽에 나가 가지고 밤 늦게 12시 한 시에 들어오니까 나이가 들어 피곤합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가 나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합니다. 어느 지역이라고는 밝히지 않겠는데 선교사 한 가정이 완전히 철수를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자기 아내가 심장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모님들끼리 하도 싸우니까 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에 있던 어느 여전도사님이 다른 교회로 갔는데 그렇게 교역자들끼리 싸운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이 계시면 안 싸우고 담임목사님만 없으면 그렇게 싸운다고 합니다. 얼마나 싸웠는지 팔이 부러져가지고 병원에 실려 가서 기브스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싸운 것이 아니라 거의 조폭 수준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의 그리스도인, 그 다음에 목회자, 그리고 거룩한 선교사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격을 갖지 않는 삶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구원 다음에 정말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격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고 거기에 어울린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싸우는데 원인이 뭐냐? 대개 두 가지로 보는데 오늘은 그것을 ‘미련한 자’라고 했는데 첫 번째는 혈기입니다.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욱! 하고 솟아 나오는 혈기입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퀴즈 한 개를 내겠습니다.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 사람에게 사랑의 말을 고백하고 싶다, 이것을 참는 것이 힘듭니까? 아니면 누구를 봤는데 열이 뻗쳤어요 그래서 한 번 쏴 주고 싶은데 이것을 참는 것이 쉽습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전자가 쉽습니다.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열 받는 일이 생기잖아요? 누구한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던지 화나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가슴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내가 그 자식을 만나면 내가 이렇게 말해야지, 그 인간을 만나면 내가 이렇게 말 할 거야, 그러면 그 인간이 이렇게 말하면 내가 이렇게 쏴 줘야지 그래도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나는 이렇게 말 할 거야’ 밤새도록 대화를 하느라고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병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 안에서 끊임없이 언어가 솟아오릅니다. 제가 신학교 교수일 때 88년도에 교수가 되었는데 그 이듬해인 89년도에 제가 정말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매일 살아가는데 구름을 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때 한 주에 강의를 스무 시간을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피를 한 컵씩 쏟았습니다.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그 때 설교를 쓰기 시작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 이 세상에 있는 언어가 너무 보잘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향한 감정들이 표현할 길이 없어서 다 써놓고 나면 너무 웃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표현이 되나? 똑같습니다. 그 때 싸우다가 저 사람의 중요한 약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성은 나에게 지시를 합니다. ‘야, 니가 아무리 화가 나도 그 이야기는 하지 마라’ 그런데 감정은 확 복 바치는 것입니다. 감정이 이깁니까? 이성이 이깁니까? 나중에 가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지언정 지금은 확 쏟아놔서 그 인간에게 똥물을 쏟듯이 그 인간 얼굴에 뿌려야지만 속이 시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혈기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있을 때 그 동네에 있는 어떤 교회였는데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했습니다. 자기 깐에는 올바르게 한다고 교인 한 열댓 명 모일 때 재정집사 한 명을 뽑아서 그 사람에게 교회 돈을 맡겼습니다. 교인 한 20명 정도 모이는데 돈이 들어오면 얼마가 들어오겠습니까? 목사님이 ‘김집사, 오늘 이 돈을 좀 써야 되겠다’ 하면 ‘네’ 한다던지 ‘오늘 돈이 없는데 다음 주에 쓰시면 안 될까요?’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주재에 자기가 재정집사라고 목사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교회에 형편도 어려운데 그렇게 돈을 쓰시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깐죽깐죽, 그것도 주일날 헌금 다 계수하고 ‘얼마 들어 왔습니다’ ‘여기에 지출하시오’ 하니까 ‘목사님, 돈도 없는데 그렇게 낭비하면 되겠습니까?’‘지출하시오’ ‘못 하겠습니다’ 하니까 ‘이 자식이...’ 한꺼번에 옥수수가 네 개가 한방에 날리니까 확 쏟아졌습니다. 이 사람도 목사를 폭행으로 고발 했습니다. 별의 별 쇼가 다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가 다 욱! 하고 이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다스려야 됩니다. 그렇다고 제 이야기는 지도자로서 절대로 화를 내지 말라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은 통솔이 안 됩니다. 지도자는 무엇을 보면서 히히덕 거리고 하면서 감정의 표현이 너무 급박해도 안 되지만 좋은 것, 싫은 것, 그 다음에 불쾌한 것, 유쾌한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 사안이 자기의 개인적인 신상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을 때에는 그런 표시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아, 이런 것들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그리고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지도자의 임무입니다. 어차피 아랫사람들은 개념이 없으니까 뚜렷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혈기가 우리에게 충동이 되어서 우리 속에 확 하고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일류대학을 나와 가지고 프라이드도 있고 하니까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능력이 없는 남자들을 보면 가소롭게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승진이 될 때가 되었는데 자기만 뚝 떨어진 것입니다. 이 여자가 가만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사담당 상무한테 찾아갔습니다. ‘상무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제가 왜 이번 인사승진에서 낙오가 되었습니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저는 최고의 실적을 냈고 많은 사람과 비교를 해 보아도 제가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했고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상무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상무가 대답은 안 하고 담배를 피우며 허공만 바라보고 있더랍니다. ‘말씀을 해 보십시오. 제가 수긍할 수 있게 대답을 좀 해 주십시오. 제가 왜? 어디가 모자라서 승진을 못 했습니까? 너무 자존심이 상합니다. 제가 납득할 수 있게 말씀을 해 주십시오.’ 하고 계속 밀어붙이는데 상무가 대답은 안 하고 담배만 피우면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이 사람이 코너에 몰리니까 대답도 못하는구나 하고 계속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상무가 성질을 확 내더니 담뱃불을 팍 끄면서 ‘나도 너 일 잘하는 것 알아, 나도 너 승진 시키고 싶어, 그런데 니 부장이 너 싫대. 니 상급자가 너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승진 시키냐?’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일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의 상급자,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속에서 신망을 못 얻은 것입니다.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대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요즘 굉장히 살벌하잖습니까? 이 건희 삼성 회장도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하고 어떤 회사에서는 유능한 사람을 뽑아오면 상금을 준다고 하고 인사에 반영을 한다고 하고 ‘참 많은 변혁이 일어나고 있네요’ 했더니 그 사람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회장들이 아랫사람들한테만 유능한 사람하고 일하라고 하지 정작 자기는 유능한 사람과 같이 있으려고 하지 않고 편한 사람과 같이 있으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직원들이 있으니까 늘 그런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저를 따라하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함께 따라해 보십시오. ‘마음은 둥글게, 일은 네모지게’ 정말 좋은 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보면 거의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마음이 둥근 사람은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되는 것도 없고 안 하는 것도 없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일을 시키면 딱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사정을 합니다. ‘야, 퇴근해라 제발 퇴근해라’ ‘아닙니다, 저 이것 해야 합니다’‘가라, 가서 자고 내일 해라,’ ‘아닙니다, 목사님 먼저 들어가세요. 제 일입니다.’ 그리고는 밤을 꼬박세우고 아침이면 자기에게 부여된 대로 네모반듯하게 일을 해 놓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밤을 꼬박세우고 아침에 출근하면 ‘여기 완성했습니다.’ 하고 갖다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간이라도 빼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왜 그렇게 상처를 잘 받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경우가 올바른지,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가만히 두고 못 보는 것인지, ‘이것 하자’ 하면 ‘이것은 목사님,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고 기고는 내가 하지 니가 하냐? 속으로 불평을 합니다. 심지어는 수련회를 갔는데 ‘목사님, 우리도 월요일 날 쉬게 해 주십시오.’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도 안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직장 와도 노는 것 같고 집에 가도 일하는 것 같기 때문에 굳이 그런 휴일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딱 부러지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요구사항도 분명합니다. ‘목사님, 우리도 공무원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종합검진 시켜 주십시오’ 등등. 그리고는 사람끼리 부딪쳐서 마음 상하고 다툰다더라 보면 일 잘하는 직원끼리 부딪치는 것입니다. 저 쪽에도 딱 부러진 사람이 있거든요. ‘경우가 이것이 아니지, 경우가 이것이 맞지, 니 경우는 내 경우와 틀리지’, 그것이 왜냐하면 마음이 네모지니까 일도 네모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둥근 사람들은 직원들은 모두 좋다고 합니다. 저만 싫습니다. 퇴직할 때 되면 ‘아이구, 정말 하나님의 은혜구나, 네가 시집을 가다니’ ‘목사님, 저 시집가서...’ ‘아니다 아니야’ 안 도와줘도 돼. 다시 안 와도 돼. 참 어려운 일입니다.
조선시대의 거상 가운데 임상옥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다룬 ‘상도’라고 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장사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것이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임상옥이라는 사람과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박준영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임상옥이란 사람은 돈도 많이 벌고 사람도 많이 얻은 성공한 인물이 되지만 박준영은 둘 다 잃어버린 사람이 됩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이래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외톨이가 되어 버립니다. 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제가 처음에 전도사 할 때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이북 사람인데 욱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막 커 보입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자기는 뒤끝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는 뒤끝은 없는데 당한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을 합니다. 여러분, 롱펠로우라는 시인이 자기의 시 속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언젠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하나 쏘았네, 세월이 많이 지난 뒤에 그 화살이 어느 고목나무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네, 내가 옛날에 하늘을 향해 노래 한 가락 날려 보냈지,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야 나는 깨달았네, 그 노래가 내 친구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을’ 자기는 노래를 불렀는지 화살을 쏘았는지 다 잊어버렸는데 그런데 이 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혈기입니다.
우리나라에 그래도 이름이 있는 꽤 젊은 목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저널리스트가 집요하게 그 사람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을 글로 비난하고 비판하고 책 까지 냈습니다. 왜 그랬나 했더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처음 만났을 때 나이는 비슷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목사가 그 저널리스트한테 반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그랬답니다. 하나의 작은 화살 하나 쏜 것이 사람의 가슴에 콱 박히니까 두고두고 말하자면 다툼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일반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항상 마음속에서 어떤 격정이 훅 하고 일어날 때 이것이 바로 통제 없이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은 이런 다툼을 많이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사님들이 모여서 이야기 할 때 ‘저 사람이 왜 저런 이야기를 하지?’ 하는 그것이 바로 인격이라는 통제장치가 없어서 이것이 걸러지지 않고 마치 정상적인 사람은 배변의 욕구를 느껴도 화장실을 어느 정도 참을 수가 있는데 관략근이 망가진 사람은 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특히 동성애자 같은 사람들은 항문을 조이는 관략근 자체가 망가져서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으로 통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에 화가 나서 편지를 쓰면 아침에 그 편지를 읽으면 못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 통제장치를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인간이 받는 많은 상처는 행동보다 말에서 시작이 됩니다.
두 번째는 다툼의 삶을 사는 이유는 이익의 충돌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회사에서 아프리카와 무역을 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프리카로 날라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수룩하니까 사바사바 해 가지고 계약을 해 가지고 왔는데 누가 보더라도 환상적인 계약을 해 온 것입니다. 그렇게 유리한 계약을 해 올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지고 와서 보여주니까 주위 사람들이 굉장한 일을 했다고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회장이 ‘이 계약 누가 했냐?’ 칭찬을 하는 줄 알고 ‘제가 아프리카까지 가서 천신만고 끝에 회사에 유리하게 해 왔습니다’ 회장이 소리를 지르면서 ‘너 미쳤냐? 너 아프리카하고 이번 계약 한 번만 하고 끝낼 참이냐? 빨리 다시 가서 사과하고 그곳 사람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다시 계약을 해 와라’ 그러니까 그렇게 계약을 해 가지고 온 사람은 생각이 짧은 사람이고 회장은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서업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 가면 ‘일본 기전’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여러분 회사에 회장님이 되었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매년 신입사원을 뽑을 것입니다. 그러면 얼굴 예쁘게 생긴 여자부터 시작을 해서 일류대학 나온 남자들까지 모였는데 수 백 대 일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을 뽑을 것입니까? 당연히 여러분들도 학벌 좋고 공부 잘한 사람 뽑을 것 아닙니까? 공부 잘 하는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뭘 시켜도 공부 잘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 데리고 빈민가 봉사활동 할 것도 아닌데 이 치열한 글로벌 시대에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경쟁을 할 사람들인데 이름자도 못 쓰고 빌빌거리는 사람들 써서 뭘 하겠습니까? 당연히 공부 잘하는 사람들 쓸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 기전이라는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류대학 나온 사람들 다 떨어뜨립니다. 누구를 쓰냐하면 합격 시켜주면 감지덕지 할 사람들을 찾아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중에서 실력이 나은 사람들을 뽑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문대 나와서 삼성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도 하급 사원이 아니라 정식사원으로 얼마나 가슴이 벅차겠습니까? 와가지고 연봉 계약서 쓰는데 다른 회사보다 20% 더 준다고 하는데 이건 뭐 지방의 전문대 나와 가지고 그것도 삼성 들어 간 것도 감지덕지인데 거기에다 연봉을 턱 얹어 주는데 동기들 만나서 일류대학 나온 친구들 만나서 연봉 물어보니까 자기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하겠습니까? 이 안에서 뿌듯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어요? 직원들을 쥐어 짜는 것입니다. ‘너 그 따위로 하려면 그만 둬 임마’ 그러면 그 사람은 그만 둘리 없습니다. 일류대학 나온 애들은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만 애들은 여기를 떠나도 갈 곳이 없습니다. 이곳이 감지덕지 한 곳이기 때문에. 그 회사에 지침은 약간 능력이 모자라지만 회사에 들어온 것을 감지덕지 하는 사람들을 뽑아서 닦달을 해서 일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만약에 눈앞의 이익만 가지고 생각을 한다면 이 사람이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더 멀리 바라본 것입니다. 눈앞에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런 것들도 하나의 지혜입니다.
중국에 갔는데 제가 아는 장로님이 거기에서 공장을 하는데 요즘은 조금 나아졌을 것입니다. 중국 사람보고 공장 전체에 형광등을 4백 개를 달아 달라고 해서 달았답니다. 그런데 스위치가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켜면 4백 개 전체가 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원한테 ‘야,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화장실 가려면 4백 개 전체를 켜야 되지 않냐?’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한다는 이야기가 ‘여기 4백 개 단다고 써 있지 스위치 4백 개 단다고 써있냐?’라고 하더랍니다. 말은 맞지만 이 세상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중국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독일 사람과 일본 사람들이 사업을 하러 왔다가 3년을 못 넘기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끈질지게 버텨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인 사업가가 자동차를 몰고 신호대기 중인데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와가지고 문짝을 확 받고 쓰러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이 있잖아요? 그래서 문을 열고 자기 자동차 망가진 것은 뒤로 하고 사람이 쓰러졌으니까 가서 괜찮냐? 하고 일으켜 세워줬더니 자기를 빨리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차를 옆에 세워놓고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놓고 이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데려다 줬더니 연락이 왔더랍니다. 와서 병원비 내라고. 그래서 이 사람이 하도 기가 막혀서 ‘이 사람이 니가 와서 내 차를 부딪쳐서 찌그러뜨렸는데 니가 내 차를 물어내야지 나보고 니 병원비를 내라고 하냐?’ 했더니 ‘병원비만 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못했으니 내 생활비도 대라’ 해서 ‘그런 것이 어디 있냐?’ 했더니 ‘중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더랍니다. 이 사람이 하도 열을 받아서 소송을 해서 법정에 갔습니다. 법정에 가서 이 사람이 너무 열을 받아서 ‘내가 인간적으로 이 사람을 이렇게 했다’했더니 판사가 한다는 말이 ‘저 사람이 잘못을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데 니가 물어내라’ 하더랍니다. 오토바이까지 물어내라고 해서 하도 열을 받아서 뭐 이런 나라가 있냐? 내가 왜 그래야 하냐? 고 더 열을 받아서 판사에게 따졌더니‘왜 그러냐면 니가 부자잖아’ 하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이 속에서 치밀어 오를 정도로 분노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때마다 우리들이 이익에 매달려서 우리들이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면 우리는 정말 개념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교사님들이니까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어쩌면 그렇게 모금을 못합니까? 제가 어느 선교 단체에 갔는데 4년에 한 번 대회를 하는 곳에 강사로 가서 대회를 하고 올라오는데 마침 먼 곳에서 함께 비행기를 타고 먼 곳에서 온 선교사님과 통성명을 하고 어떻게 지내냐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자매님이 시작서부터 계속 우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소속된 선교단체한테 한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온 가족이 나오려면 비행기 표 값만 1200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어쨌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선교본부에서 연락이 오기를 네 통장에 돈이 없어서 비행기 표를 사서 보낼 수가 없다 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울면서 하는 말이 어떻게 선교회가 그럴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깊이 공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느냐 그래서 ‘차라리 나한테라도 연락을 하지 그랬냐?’ 그 때는 몰랐으니까 연락을 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선교 단체에서 제가 이사로 있었으니까 우연히 봤습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백 명이라면 40명은 잔고 제로입니다. 그리고 한 열 명은 잔고가 3천만 원 5천만 원 됩니다. 제가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그런데 약 17년 동안을 목회를 하면서 그 비결들을 어느 정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선교사님들이 정치적으로 모금만 잘 하고 실제적으로는 선교사역을 잘 못할 수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선교사역을 할 때에 경비나 이런 것들을 합리적으로 사용하지 못해서 아주 잘 조절해서 사역을 하고 사용을 하는 사람도 있고 한 원인으로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선교사들이 본국 교회와 가지고 있는 관계입니다. 목회자는 처음 개척할 때부터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역을 합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커지게 되면 당회가 세워지고 또 자기가 직접 세우지 않았을 경우에는 이미 세워진 곳에 가니까 장로님 눈치도 보고 권사님들 눈치도 보고 하면서 자기 자신이 겸손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선교사는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어느 국가에 가면 자기가 왕입니다. 뭐 그렇다고 진짜 왕처럼 산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을 하고 권한이 자기한테 있는 것입니다. 원주민은 다만 한 달에 100불을 도움을 받더라도 자기한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사님,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되겠습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최소한 이런 소리는 듣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5년 10년 쌓이다보니까 이 마음속에서 항상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굉장히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리더로 세워지면 잘 하는데 누구 밑에 직원으로는 일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고나서 관계가 아주 멀어졌는데 한 번은 어느 선교사님이 이런 저런 사업을 한다고 해서 우리 교회에서 한 번은 1500만 원 정도를 걷어주고 그 다음에 약 1000만 원 정도 걷어줬습니다. 한 두 해에 일어난 일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5-6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교회 마당에 버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선교사님이 ‘목사님, 제가 내일 모레면 선교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저 버스를 가지고 가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틀림없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하면서 한사코 그 버스를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가져가려고 하냐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하든지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교회에도 규칙이 있고 교회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담임목사 개인 물품도 아니고 당회도 있고 한데 그러면 장로님한테 가서 우리가 도와주는 선교사님이 저거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하면 장로님들이 ‘그걸 뭘 물어보고 주세요 빨리 주시지 그러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그래도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신앙형도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라는 정말 황당한 사람도 많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님이 다섯 가정이었는데 한 가정이 철수하고 우리가 brought up 하고 있는 선교사 가정이 여덟 가정인데 그 중의 한 가정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에서 자라지 않는 가정은 파송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정이 우리 교회에 밟아보지도 않은 사람을 파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와 약 7년을 교제를 했습니다. 교제였다고 하지만 늘 가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맨 처음에 얌전하게 생긴 젊은 형제가 나를 찾아와서 ‘목사님, 책을 읽고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우리나라에 오셔서 우리 사역자들을 약 30명 모아놓을 테니까 강의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해서 그 때는 지금처럼 많이 유명하지 않았으니까 바쁘지 않아서 가서 강의를 해 주고 온 것이 인연이 되어서 자주 만나면 일 년에 두 번 그렇지 않으면 한 번 해서 7년 동안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후원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 부부가 아주 넉넉한 후원자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교회 일로 조찬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회의를 하고 내려오는데 파송식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7년이 된 선교사한테 파송식을 하냐고 했더니 그 동안 후원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하냐고 하니까 옛날에 자기가 자라던 교회에서 해 준다고 했다고 해서 그 교회에서 후원을 해 주냐고 하니까 부담을 느낄 것 같으니까 그냥 교회 이름으로 파송만 해 달라고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고 교회에 와서 의논을 하니까 교회에서 모두 인정을 해 주어서 우리 교회에서 파송을 해 줬습니다. 그래서 8년째인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에는 진통제 같은 관계가 있고 보약과 같은 관계가 있습니다. 진통제 같은 관계란 뭐냐면 생전 얼굴도 보이지 않고 찾아오지도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따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저 김남준 목사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그런데 누구에요?’ ‘저 아무개 아무개 집사인데 목사님이 청년일 때 같은 교회에 있었던 집사입니다.’해서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아 제가 목사님 뵙고 싶어서 전화 했다고 제가 어느 나라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데 뵙고 싶다고 해서 그러세요, 오세요 하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벌써 20-30년 전에 만났던 사람이었으니까 반갑게 옛날이야기도 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제가 일주일 후면 들어가는데 1500만원만 주십시오.’ 10년 전 일이었습니다. ‘왜 그러느냐?’했더니 무슨 학교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는 그래도 한국에 가끔 나오고 거기에서도 인터넷도 되고 내 소식도 들었을텐데 자기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김남준이라는 이름 석 자가 생각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돈 쓸 일이 생각나니까 내 이름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이 비록 아주 지체가 낮고 가진 것이 없어도 저 사람이 나를 만나는 것을 기뻐하고 내가 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이다 라고 할 때에는 마음이 열려서 모든 것을 도와주고 싶지만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그래도 저 사람에게 내가 이용이 되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사람은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물론 이해하지요. 그 분이 그것을 받아가지고 개인의 영달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 ‘그것 뭐 쩨쩨하게 그러느냐 필요하다는데 턱 주지’ 하는데 그렇게 돈이 많으면 문제가 안 되거든요.
제가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직원 예배 설교를 해 달라고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바빠서 가지 말자 했더니 저희 직원 한 사람이 그래도 그 방송국과 좋은 관계를 가진 것이 좋습니다. 해서 갔습니다. 설교를 끝나고 나오는데 ‘아, 목사님, 설교 참 잘 들었습니다. 이것 한 장 쓰고 가시죠.’ 설교를 했으면 ‘목사님, 설교를 잘 들었습니다. 목회는 힘들지는 않습니까? 제가 목사님 책 한권 읽었는데 참 재미 있더군요’ 하든지 ‘목사님 제가 언제 한 번 목사님 뵈었습니다,’ 하든지 얼마든지 화제 거리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설교가 끝났는데 ‘목사님, 설교 잘 들었습니다. 이것 한 장 쓰고 가시죠’ 하고 턱 내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봤더니 자기네 방송국 후원 신청서였습니다. 한 달에 얼마 내겠다고 쓰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밀어 놓고 ‘다음에 쓰죠’ 했더니 ‘목사님, 우리 방송국에서 목사님 설교 꼭 내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요, 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이 썩 즐겁지 않아서요.’ 그랬더니 ‘아닙니다. 목사님 설교 내보내면 우리 시청자들이 굉장히 좋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개념이 좀 생기나 했더니 ‘목사님, 설교 한 편씩 내 보내는데 8백만 원입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아주 잘 하시기 때문에 2백만 원에 해드리겠습니다’ 그 때 제가 뜻을 세웠습니다. 텔레비전 방송국에는 절대 안 내보낸다. 그리고 그 방송국하고 인연을 끊어라 그 다음부터는 관계도 맺지 말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다 하고 왔는데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지금 어느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계세요?’아니 주보에 다 나왔는데 그럽니다. 그래놓고 ‘언제 청빙 받아서 가셨어요?’ 그래서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개념이 없나 하고 그 다음부터는 상대도 안 합니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제 친구 목사님한테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친구 목사가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목사님 워낙 설교를 잘 해서 2백만 원에 해드리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 목사가 그래도 나는 착하게 나왔는데 이 목사가 ‘이백만 원요? 그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목사님 설교를 네 번을 내보내면 8백만 원인데 목사님은 설교를 잘하셔서 2백만 원에 내보내겠다는 말입니다.’ 해서 이 목사가 ‘절 이백만 원을 주시는 것이 아니구요?’ 뒤집어졌습니다.
그런데 CBS 그 방송국에서 13년 전에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릉 ‘여보세요’‘저 김남준 목사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이름만 들어도 여러분들도 아는 자매였습니다. ‘저 CBS 방송국에 아나운서 OOO입니다.’ ‘아, 그러세요? 저도 자매님 이름 들어 봤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목사님, 제가 목사님 설교를 몇 번 들었는데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희 기독교 방송국에서 새벽에 설교를 내보내야 되겠는데 허락을 해 주시겠어요?’ 해서 저도 모르게 ‘얼마를 내야 하는데요?’ 저도 이미 닳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자매님이 정색을 하면서 ‘아닙니다, 목사님, 돈 주고 내보내는 것이 아니구요, 제가 이 프로를 책임지고 있는데요, 시청자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야 된다고 제가 ale기 때문에 설교를 오히려 저희가 드려야 되는데 그렇게는 할 수가 없어서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 한 사람만 만났습니다. 그리고 저기 오신 집사님 한 분이 장로 피택이 되었는데 그 방송을 듣고 회심하고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그 때 이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개념이 있는 사람이 방송국에 있나? 생각을 했습니다. 13년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전주로도 가고 울산으로도 가고 여러 군데를 다 다녔습니다. 그런데 항상 나와 관계가 끝나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가끔 문자도 오고 전화도 오고 지난번에는 CBS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데 처음으로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도와달라고, 그래서 천만 원을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방송국에 금요일 날 정규 방송에 내 보내면서 저희들에게 상당한 돈을 저희들에게 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15분 동안 새벽시간에 내 보내는 설교비용이 13년 전 가격으로 120만 원짜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분들은 무엇이 사람을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울산으로 내려간다는 것을 알면 정확하게 알고 찾아와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거기 집회를 갔으니까 대학총장 기관장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거기에서 느낀 것이 경상북도 도지사를 시켜줘도 충분히 할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항상 이렇게 처음부터 살아가는 삶이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흘려보내고 이렇게 평소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이 그렇게 무엇인가 남에게 베풀고 거들어 주고 무엇인가 나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들이 강물처럼 흘러가듯이, 강물이 흘러가면서 그 물이 빨려들어 가면서 거기에 숲이 형성되듯이 그렇게 평소에 그런 삶을 살면 위기와 어려움이 왔을 때 돕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한 순간에 사람을 관계를 맺고 할 때에 항상 그렇게 하지 말고 평소에 사람들과 만나고 그 사람을 돕고 그 사람을 도와주고 무엇인가 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 자체도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서 살면 절대로 외톨이가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하겠습니다. 제주도에 조선 초기에 있었는데 그 때에는 제주도가 도가 아니라 하나의 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는 아시다시피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쉽지만 옛날에는 그 길이 배를 타고 거의 250-300km 이상을 타고 가야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범선을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통제하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부정부패가 많이 행해지는데 거기는 또 땅이 척박하고 농사가 많이 되지 않으니까 백성들의 삶이 아주 피폐했습니다. 거기에 목사를 파견을 하면 거기는 중앙에서 통제를 안 받으니까 개념 없는 행동들을 하면서 거기에서 착취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불과 1년이고 2년이면 계속 돌렸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동안에 말하자면 한 몫 해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사람들은 지친 것입니다. 목사가 새로 온다 하면 큰일 났다, 이제 돈푼깨나 있는 유지 집안부터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제주도 목사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내려가서 제일 먼저 기강을 잡고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하는데 이 사람은 내려가서 일체의 관기들도 멀리하고 청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면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재판을 돈 먹이지 않으면 재판을 제대로 해 주는 법이 없는데 깨끗하게 재판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지들이 한보따리씩 돈을 싸가지고 오니까 야단을 쳐서 물리면서 이런 짓 하는 것 아니라고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수수한 차림으로 그 임기 1년인가 2년 동안에 고을 구석구석을 다 살피면서 가난한 사람들 위로하고 베풀고 하면서 정말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이 너무너무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오래간만에 목자 같은 목사가 왔구나, 목사란 지금 같은 목사가 아니라 제주도 목의 목사라는 이야기인데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쉽게도 그 사람의 임기가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체 동아리도 안 나오고 관청에도 안 나오는데 들리는 이야기가 중병에 걸려서 목사님이 누워계시더라 라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병인가 했더니 온 몸에 무슨 종기가 나는 병인데 약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슬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청렴하게 애쓰신 목사님이 저렇게 아프시면 어떻게 하나 그런데 들려오는 이야기는 딱 고칠 수 있는 약은 하나의 비방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이 뭐냐면 종기 난 부분에 우황을 발라야 한다고 합니다. 종기가 어디에 났느냐고 하니까 온 몸에 다 났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황은 소가 산삼을 먹고 암처럼 생긴 것이 우황입니다. 아무 소나 잡으면 우황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도 못하게 비쌉니다. 금을 그만큼 달아도 우황을 못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 누군가가 우리가 그 분한테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데 제주도가 우황의 명산지입니다. 그러니까 돈 있는 부자가 돈을 들여서 소를 사서 소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우황이 들어있을 만한 소를 잡고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소 중에서 우황이 들어있을 만한 소를 잡아서 너도나도 없이 제주도에 있는 우황을 다 모아서 유리그릇에 담아서 진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참이 지난 후에 ‘이제 꼭 오셔서 우리 목사님을 문병할 사람은 문병을 하십시오’ 해서 갔더니 정말 목사가 온 몸에 노란 우황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있더랍니다. 괜찮으십니까? 하니까 목사가 눈도 못 뜨고 ‘여러분이 나를 이렇게 봉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이 여러분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저를 고쳐줄 것입니다.’ 그리고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깔끔한 모습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우황을 바르고 이렇게 나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 주에 떠납니다’ 하고 배를 타고 떠나는데 사람들은 부둣가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 잘 가시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거부가 되었답니다. 몸에 바르고 있었던 것은 밀가루에 노란 치자를 우황처럼 온 몸에 바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둔 것은 진짜 우황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을 칭찬하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후려치고 그 도민들을 닦달을 하고 떠날 때에는 나쁜 자식욕을 먹으면서 요만큼 훔쳐가지고 왔는데 이 사람은 아낌없이 자기를 다 베풀면서 마지막에는 거부가 되어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생각될 때 그 때 사람들은 절대로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주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하는 것을 좋아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외국에 가면 외국 학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유명한 사람도 많이 만나는데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 오면 우리교회에 와서 한 번씩 설교를 하고 싶다 고 합니다. 개혁주의적인 교회에서 설교하고 싶다고 우리교회에 오는데 우리 교회에 오시면 따뜻하게 환영을 하고 출장길에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사례비는 많이는 주지 않지만 따뜻하게 환영하고 음식하나라도 맛있게 대접을 하고 아이들 시켜서 꽃다발도 주고 그러면 하고 갑니다. 그러면 자기 설교한 것 이곳에서 설교한 것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주고 하는데 내가 외국에 간다 할 때 ‘너희 나라 갈테니까 만나줄 수 있냐 ’하면 거의 열 사람이면 아홉 명은 회신이 옵니다. 그럼 만나자, 지난번에도 화란에 갔는데 그곳 화란에 제일 큰 신학교 총장님입니다. 만날 수 있겠느냐 하니까 시간이 도저히 없고 아침에 잠깐 시간이 난다고 해서 ‘그럼 아침 같이 먹자’ 했더니 자기가 그렇게 바쁜데 내 숙소에까지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은 8시부터 9시 반까지 아침을 같이 먹고 헤어지기로 되어 있는데 12시가 되었는데도 나를 놓아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자꾸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랬냐면 식사가 다 끝난 다음에 내가 노트를 꺼내고 ‘우리 대화’하자 한 것입니다. 그 사람 박사논문을 내가 읽고 갔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OOOO에 대해서 논문을 썼는데 나하고 토론을 좀 하자, 그러면서 묻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지하게 어려운 조직신학 박사논문인데 그것도 한국에서 온 목사가 메모까지 해 가지고 정리해 가지고 와서 책을 펴놓고 노트필기를 막 하고 가야된다고 하는데 안 놓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전혀 몰랐던 평촌에서 온 김남준 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고 차를 한 잔 마셨구나, 다음에도 또 만났으면 좋겠다, 아, 가나라고 하는 나라 선교사를 만났는데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 그런데 놀랍게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 같더라, 좋은 인상을 남기고 또 만납니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흘러가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이 나를 이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유익을 끼치고 어디에 가든지 내가 비록 가난한 목회자이고 내가 비록 저 시골구석 같은 나라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선교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나 나름대로 가진 거짓이 없는 진실한 품격, 그까짓 돈이나 이 세상의 기회, 이 세상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의해서 요동치지 않고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선교사로서 목회자로서의 품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그 자취가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막 구할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면 이것이 좋은 삶의 태도 속에서 오래도록 간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정말 복된 사람이 되어서 누구든지 여러분들을 만나면 매력이 있는 사람, 다시 만나고 싶고 기다려지고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