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 역사하는 선교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후 4;12)
녹취자 : 허혜숙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이 편지에서 그는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선교, 혹은 목회의 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라는 이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었고 고린도 전서를 쓸 때에 고린도 교회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하게 책망하는 언사로 편지를 썼고 이후에 그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이 회개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또 어떤 사람은 그 회개가 너무 깊고 슬픔이 커서 낙심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위로할 겸 고린도 후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사도바울은 마음이 풀어졌는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여러 곳에서 풀어놓기 시작합니다. 그 처음이 1장에서 그가 일행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죽을 고생을 했는지를 펼쳐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같고 살 소망이 모두 끊어졌던 때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목회사역, 혹은 선교사역의 비전이 무엇인지를 4장 5장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생명이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많은 선교지에 있는 사람들, 자신이 목양하고 있는 영혼들의 마음속에 넘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생명’이란 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은 죽음에 항거하는 모든 기능이 생명입니다.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아마 이 세상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닮은 것 중 하나가 생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생명은 끊임없이 솟구치는 힘이고 인간은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살아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생명이고, 부여된 의미를 따라서 살게 하는 것도 생명입니다.
사도바울과 이 일행은 자신의 생명의 의미를 바로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과 이 모든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이유였고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이 바로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환란과 핍박, 시련과 고통, 육체적인 연약함과 모든 역경을 딛고 그래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사도바울과 그 사람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 때문이었습니다. 그 생명이 자신들 속에 끝없이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그릇 같이 연약했지만 사자 같은 삶을 살았고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였으나 포위되지 않고, 답답한 일을 만났으나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받았어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질 때도 있었으나 망하지 않게 만들었던 그 놀라운 힘이 비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명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역경을 헤치면서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부족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할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엄청난 영성의 증거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욕심이 사라질 때에도 생명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지만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모두 고갈되었을 때 그 때에도 우리는 죽음을 꿈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죽음을 꿈꾸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찰스 스펄전은 자신의 설교 속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죽도록 주님을 위해서 일하십시오. 그러다가 진짜로 죽게 되면 살려달라고 매달리십시오. 살려주시면 다시 죽도록 일하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 그 앞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다시 말해서 예수 때문에 자신들이 잘 죽을 때에 그 때에 자신 안에서 영적인 생명이 충만하게 생겨나고 그런 생명 속에서 사역할 때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비롯한 선교지 혹은 사역지의 많은 양떼들이 살아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역자들이 남들을 살리는 데에 관심이 있지 자신을 잘 죽이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일하지만 무엇인가 동의하기 어려운 어떤 결핍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자기의 육신의 꿈을 품고 사업을 하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열정과는 또 다른 종류의 그 무엇이 깃들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자기 죽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앞에서 깨지지 않은 자신이 깨지고,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예수를 위해서 하게 되고, 자기가 주님 앞에 마땅히 되어야 할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너무나 생긴 대로 살고 싶은 자기를 포기하는 그런 모든 경험은 끊임없는 죽음입니다. 그런 죽음을 매일매일 자기 안에서 경험합니다. 그 죽음이 자기 안에서 역사한 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데 죽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 분이 죽기를 바라시는 모든 것들 내려놓고 죽는 그 죽음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영혼은 살고 살아있는 영혼으로 전하는 복음, 살아있는 영혼으로 증거 하는 하나님의 생명 때문에 선교지에, 목회지에 많은 영혼들이 예수의 생명을 경험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긴 세월 목회사역을 해 보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교, 혹은 목회의 과정과 하나님이 자기를 변화시켜서 예수의 사람을 만드시는 과정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그냥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일처럼 일이 되게끔 하지 않으시고 그 일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보이시고 그 일을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바닥까지 드러내시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때문에 자기를 버리고 자신이 죽는 그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선교의 위대한 역사가, 목회의 역사가 나를 뛰어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관통하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 우리로 하여금 목회를 하게 만들었던 동기, 그리고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준 동기는 이 세상의 화려한 꿈이나 아니면 그것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어떤 두려운 공포가 우리를 거기로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사랑,
(찬송)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의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이 쓰레기 같은 나를 위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개달았을 때 이 벌레 같은 나를 위해 당신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깊이 터득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랑에 압도되는 것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프고 쓰라린 인생을 살아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픔이 내 아픔이었고 내 아픔이 곧 그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길을 걸어갑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에게 경험되었어도 그것이 항상 우리 마음속에 유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을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기이한 역사가 일어날 때에도 자신은 버림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송연후 선교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이제 목회가 아닌 선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 쉬운 길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더욱이 문화와 모든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안에서 자신에게 주신 복음의 영향력을 펼쳐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하나님의 어떤 인도를 받아서 훈련을 받은 후에 자신의 삶의 사역을 펼쳐갈 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있습니다. 선교사 안에 있는 우리 예수님의 생명은 그 모든 것을 이겨 살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명이 그 안에 있는 한 모든 역경과 시련은 이 생명을 시험 할 것이고 예수의 생명은 이 세상의 죽음보다 강하니 반드시 이겨서 고난과 역경 속에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의 위대함을 드러내 보여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선교를 시작하는 처음부터 마지막 선교사로서의 인생을 모두 끝내고 우리 예수님의 품에 안식할 때까지 그 때 파송설교를 했던 저는 이미 세상에 없겠지만 그 때까지 예수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의 기쁨과 힘으로 이 세상에 버림받은 모든 영혼을 끌어안고 그들에게 예수의 생명을 심는 선교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