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교회, 재창조의 씨앗
1. 삼위 하나님의 교통하는 아름다움은 창조세계 안 에 새겨졌습니다.
1) 하나님이 창조세계 안에 두신 현실적인 아름다움과 실현 가능한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해 봅시다.(131)
우선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좋았더라” “좋았더라”가 나오고 6일 째에 “매우 좋았더라”라고 나옵니다. 히브리말로 ‘매어드’라는 부사가 첨가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은 시간 안에서도 보실 수 있는 분이고 시간을 초월해서도 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 되었을 때 그것밖에는 모릅니다. 쉽게 말해서 사람이 서 있으면 그 사람의 모습만 들어오는 것이지 30년 후에 어떻게 늙을 지도 우리가 한 번에 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은 무슨 앱이 나왔다고 하는데 거기에 사진을 놓고 찍어서 30년 후 이렇게 하면 30년 후에 어떻게 얼굴이 변하는지 나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통계를 가지고 유추하는 것이지 실제로 그 모습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을 때 세계가 참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름다움이 거기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증진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증진되는 아름다움까지 한 번에 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것이 부사 ‘매워드’, ‘매우’라는 부사가 붙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 그림을 보면 알기 쉽게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현실적인 아름다움, 여기에서 현실적인 아름다움이란 창조당시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합니다. 창조당시의 아름다움을 보면 현실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현재적인 아름다움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투영된 아름다움인데 이것이 인간이 노동을 하고 섬기면 더 아름다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가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창조하셨을 때 모두가 참 아름다웠다고 했을 때 마지막으로 하와가 창조됩니다. 하와가 혼인을 통해서 둘이 함께 사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 때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실현가능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인간의 섬김과 노동을 통해서 아름다워지는 부분도 있고 자연적으로 아름다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새 종류도 더 많이 퍼졌을 것이고 끊임없이 그 종자들이 퍼져서 하나님이 종류별로 창조하셨는데 그 종류 안에서 분화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종자는 하나님이 종류별로 창조하셨는데 종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개의 종류도 마티스도 있고 큰 개도 있듯이 다양한 종류가 많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그렇게 더 아름다워져 갔다고 봅니다.
2) 상호연관이란 무엇이며, 모든 만물이 상호연관을 누리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132-133)
상호연관이란 서로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연관이 있다는 것은 동물들이 낮 시간에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생성해 냅니다. 그런데 식물들은 그 이산화탄소가 없으면 광합성 작용이 안 됩니다. 그것을 먹고 산소를 뱉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물들에게는 그 산소가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만물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어느 작용이나 이런 것들이 다른 것들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는데 하나님이 맨 처음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인간이 일으키는 공해에 의해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고 나서 그 긴 세월동안 소비하고 뭔가 자연에 손해를 끼쳤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지난 100년 동안 자연에 끼친 손해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그런 환경문제가 엄청나게 심각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진단장비가 발달하지는 않아서 암이 발견되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처럼 이렇게 일반화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암이 보편화되고 일반화 되었습니다. 다행히 암을 치료하는 것도 발달이 되어서 암에 걸려도 ‘이제 건강에 신경을 써야겠구나.’ 이런 수준까지 왔지만 여전히 이것은 환경문제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매들이 결혼을 해도 아이가 안 생기는 문제도 생기는데 이런 것들이 환경호르몬 같은 것들이 인체를 결함시키면서 많은 문제들이 오고갑니다. 탐욕으로 자연을 낭비하고 엄청난 대가를 돌려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상호연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이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창세기 1장1절에 나오는데 2절에서 그 창조된 상태를 혼동과 공허로 묘사하는데 그것을 질료라고 보는 것입니다. 질료라고 하는 것, 원재료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것들로 제2의 창조를 하심으로서 이런 모든 자연만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육체까지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질료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혼은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동일하게 질료로 창조 된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운명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서로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쪽이 무너지게 되면 다른 한쪽이 반드시 해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환경에 대한 생각을 강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까지는 자연적인 연관인데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사랑의 교통을 하면서 삼위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합니다. 인간은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사랑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인간이 인정을 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나누어지는데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창조됩니다. 하나님의 일부는 아닙니다. 하늘로부터 왔다고 해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은 직접 창조하신 것입니다. 어느 시점이냐는 것은 우리들이 쉽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영혼과는 달리 질료에 의해 창조됩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는데 육체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자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TV프로에 보면 암에 걸려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의사가 두세 달 밖에 안 남았으니까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진통제나 줍니다. 그러면 아무 희망이 없으니까 포기하고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산 속에 들어간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죽었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TV에 나올 수가 없고 살아있는 사람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적인 치유로 고침을 받습니다. 그런 것들이 인간의 몸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몸이 공해에 찌든 음식을 먹고 공해 속에서 살고 날이 어두워도 잠을 안자고 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 모습이 마치 양계장에서 닭이 알을 많이 낳으라고 밤새도록 불을 켜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많은 범죄의 50%가 밤 9시 이후에 벌어집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연들만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도 파괴시킵니다. 당연히 인간의 육체가 자연 속에서 살면 살수록 인간의 몸이 안녕을 누리는 것입니다. TV에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는데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한 가지는 참 좋겠다는 생각과 거기에서 자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TV도 없고 신문도 안 오고 심지어 핸드폰도 안 가지고 사니까 얼마나 평화롭겠습니까? 물론 부지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홀로 거기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저것이 인생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혼자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는 것이 인생일 텐데 말입니다. 인생이란 것이 사람이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몇 달은 저렇게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살아가지만 의식적으로 자연친화적이 되려고 애를 쓰고 우리는 휴지 하나라도 덜 버리고 쓰레기 하나라도 덜 버리면서 자연에 이익을 끼치며 선대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3) 인간이 마땅히 사랑하고 선대해야 할 대상을 나누어 설명해 봅시다.(133-136)
사랑해야 할 대상과 선대 혹은 선의로 대해야 할 대상으로 나뉜다고 했습니다. 예쁜 강아지는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까? 아닙니까? 그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방식이 보신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영국에서인가 법제화 된 문제인데 살아있는 랍스터를 철판위에 올려놓거나 그릴 위에 올려놓으면 처벌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랍스터만 그렇겠습니까?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해당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나라 해물탕을 보면 기겁을 합니다. 전복도 꿈틀거리고 게도 팔딱거리고 낙지도 움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끓여야지만 제대로 된 매운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처벌을 받습니다. 저는 문화적으로 익숙해져서 매운탕을 보면서 혐오를 느끼거나 하지 않고 괜찮은데 먹는 것들 중 소도 행복하게 키워서 순식간에 고통을 받지 않고 죽게 해서 고기를 섭취하고 랍스타 뿐만 아니라 낙지도 어느 정도 동물 복지 권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살아있는데 꼭 펄펄 끓는 물에 데쳐서 먹어야 할 당위성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세계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우주 개발을 한답시고 사람들이 막 쏘아서 수만 개의 우주 쓰레기들이 돌아다닙니다. 5mm정도만 되는 쓰레기에 맞아도 우주선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인간은 작은 먼지 하나에 부딪쳐도 죽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를 두 시간 반 만에 한 바퀴를 도는 속도니까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사실은 그것도 우주를 선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인간이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생산해내고 공해를 일으키는 생활의 방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수소차입니다. 그것은 마지막에 산소를 내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효율성 있게 이용할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바람직합니까? 어쨌든 그런 것들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칭찬할만한 것입니다. 산업의 발전을 하면서 사회가 굴러갈 때에 기독교인들이 자본의 효율성을 생각하면서 경쟁에서 이겨야 되겠지만 동시에 환경의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할 지 모르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가서 아마존의 밀림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훼손이 되어서 거기에서 생산되는 산소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가 돈을 걷어서 그곳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보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내가 땅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데 지구 전체의 산소 공급을 위해서 당신이 집을 짓지 말라고 하면 우리가 동의를 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보상을 하면서 사용료를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구에 있는 자원을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주님이 오시지 않겠느냐고 한다면 주님이 내일 오셔도 그 일은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세계가 아름다워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다 설명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면서‘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온 인류가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4) 죄가 창조세계에 미친 결과를 교통하는 사랑의 깨어짐에 따라 설명해 봅시다.(135-136)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선대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결국은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적의가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과 생명이 단절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저를 포함한 현대인들이 왜 이렇게 작은 일에 쉽게 화가 날까? 우리들도 현대의 풍조에 물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단순히 은혜가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서 발끈하고 분노하고 참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차를 세우다가 주차에서 시비가 벌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현대인들이 결국은 인간에게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데는 엄청난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입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직까지도 자식을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저는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신학대학원 다닐 때 항상 청량리에서 스쿨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하루도 빠짐없이 아들을 휠체어에 싣고 그 아줌마 오는 시간과 제 시간이 딱 맞았습니다. 그 아이가 5학년쯤 되었는데 정확하게 그 엄마와 아이를 2년 동안 매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한테서 어떻게 하든지 내 아이와 함께 이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다부진 힘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엄마가 어려운 시련을 당해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이 있는 한 잘못되지 않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식을 두고도 자살을 하거나 도망을 가거나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무한한 사랑의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반은총 가운데 그 사랑을 남겨놓으셨습니다. 그 사랑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조금 힘들다고 자기 자식을 내팽개치고 가버린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랑을 안 하니까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세계도 우스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종말사상 같은 것들이 환경에 미친 영향도 매우 큽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사라질 것인데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망가진 세계를 다시 새롭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이 재창조를 위해 첫 번째로 행하신 일은 무엇입니까?(137)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일이 재창조를 위한 첫 번째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삼위일체와 관계가 있는 교회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펼치면서 살아가도록 그리고 이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또 들어오면서 온 인류가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입니다.
2) 재창조될 세상의 모습이 어떠할지 설명해 봅시다.(137-138)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님이 제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자 씨입니다. 종자 씨를 심으면 거기에서 무엇인가가 자랍니다. 그 종자는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 심는 것입니다. 아무리 빈궁할 때에도 그 종자는 먹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종자는 식구들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종자 씨가 온 인류에게로 퍼져나가서 열매를 거두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의 세계까지 재창조가 확산이 되어서 모든 만물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저주가 풀리고 자연세계에 온전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고래가 숨어 있다가 물개를 잡아먹는다든지, 그래서 발기발기 찢어서 자기는 포식하고 만족해하는 그런 세상이 모두 끝난다는 것입니다.
3) 재창조될 세상을 위한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37-138)
솔직히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자연의 세계를 새롭게 하시는 데에 교회가 특별히 기여할 바는 없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의 세계를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꼭 해야 될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재창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주어져 있는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삶으로서 모든 만물들을 그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해방시켜주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물들을 끔찍하게 학대하거나 방치해서 유기 견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번식을 통제하고 관리해서 어쨌든 살아있는 동물들은 기본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들이 돌보아 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선을 사랑하면서 뻗어나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서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것을 넓혀서 자연을 선대해야 하는 것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도 교회의 한 모습입니다.
3. 첫 창조와 재창조는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1) 목적에 있어서 첫 창조와 재창조는 어떻게 연관됩니까?(138-139)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창조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이 재창조는 타락한 인간을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재창조 하신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이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재창조입니다. 재창조된 사람을 통해서 사회를 재창조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속으로 말미암아 재창조가 이루어지고 마지막에 이 사회가 완전하게 변하지 않고 늘 갈등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전하게 새롭게 하실 날이 옵니다. 이렇게 재창조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시작이 되고 이 세계의 종말로서 완성이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창조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 풍성히 나타나게 하는 것이 재창조라는 것입니다.
2) 교회가 재창조의 환성을 위한 씨앗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140)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교회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갖고 자신들이 먼저 이것을 누리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리도록 만들어서 결국은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인류가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가 먼저누리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었다가 그 모든 구원받을 사람들이 완성된 숫자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종말에 대한 완성이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교회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이 희망하시는 사회의 한 과정입니다. 그것이 완성되면서 교회가 곧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완성될 세계에서 누릴 사랑의 질서를 미리 누리는데, 그날에 누릴 사랑의 질서는 어떠한 것입니까?(141-142)
하나님이 정하신 존재의 질서가 있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 존재의 질서가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위에 계시고 그 다음에 인간이 있고 밑에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뒤집는 것이 악입니다. 이 질서를 뒤집는 것이 악입니다. 여기에서 누리고 있는 질서가 확장이 되어서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질서대로 돌아가고 인류는 그 질서를 가치의 질서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삶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선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자연도 그리스도인과 함께 있을 때 훨씬 더 행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방식에는 여기에 부록처럼 나왔는데 성육신 이전에는 삼위일체 중 한 위격이신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을 아는 것이고 성육신 후에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 세 가지입니다. 삼위일체 중 한 위격,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그리고 마지막에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그래서 그 이전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를 봤고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